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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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8일 실시된 제13대 이란 대선에서 강경 보수파 라이시(Ebrahim Raisi) 후보가 당선됐다. 보수파가 장악한 헌법수호위원회의 자격 심사에서 당선 가능권에 있던 온건파 후보들이 대거 탈락하면서, 이들을 지지하던 도시 중산층과 젊은 세대의 투표 거부, 트럼프(Donald Trump) 미 정부의 고강도 제재를 막지 못한 온건파 로하니(Hasan Rouhani) 대통령과 자리프(Mohammad Javad Zarif) 외무장관을 향한 저소득층의 실망이 라이시 당선으로 이어졌다. 비록 역대 최저 투표율과 높은 무효표로 싸늘한 민심이 나타난 선거였으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Ali Khamenei)의 제자이자 충복인 라이시 대통령 당선자는 이번 승리로 차기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향후 이란이슬람공화국의 선거 권위주의 체제는 더욱 굳어지고 대외정책 역시 더 강경해질 전망이다.

8월 5일 출범한 이란의 강경파 행정부는 이란 핵합의(포괄적 공동 행동계획, JCPOA) 복원 협상에 대해 기존 틀에서는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라이시 대통령과 강경파 측근들은 로하니 정부와 차별점을 부각하며 협상 대표인 아락치(Abbas Araqchi) 외무차관이 가져온 6월 마지막 핵협상안 내용이 의회가 법으로 만든 핵합의 지침을 담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강수로 맞서고 있다. 한편 6월 14일 새롭게 들어선 이스라엘의 연립 정부는 과거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정부와 다르게 미 민주당 정부와 관계 복원에 집중하고 있고, 바이든 정부 역시 이스라엘과 입장을 조율하고 있는 중이다. 이스라엘은 이란 강경파와 이들이 후원하는 역내 프록시 조직에 대해 군사작전을 벌이며 세력 억지 및 관리에 집중할 것이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2020년 9월 아브라함 협정 체결 이후 조직된 수니파 걸프국-이스라엘 간 전략적 연합을 적극 활용하여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행정부마저 강경파가 장악한 이란에 맞설 것이다.

 

제 13대 이란 대선: 선거 권위주의 심화와 강경파 라이시 당선

이번 이란 대선에서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제자인 라이시 후보가 61.9%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투표율은 48.8%로 1979년 이란이슬람공화국 수립 이래 치른 대선에서 가장 낮았다. 로하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지난 2017년 대선 투표율 73%보다 25% 가량 낮은 수치다. 새로운 대통령과 보수파는 취약한 정당성을 의식한 듯, 낮은 투표율을 코로나19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낮은 투표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3,726,870표에 달하는 무효표다. 싸늘한 민심의 바로미터다. 그림 1에서 보듯, 라이시에 이어 2위를 기록한 레자이(Mosen Rezaei) 전 혁명수비대 사령관 후보가 얻은 3,412,712표보다 무려 30만 표 이상 더 많다. 이란 대선은 투표용지에 지지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적는 방식인데, 이번 선거에서는 예전과 달리 이름 철자가 조금 틀려도 유효표로 간주한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무효표가 많이 나왔다. 2017년 대선 무효표가 3%에 불과한데 비해 이번 대선 무효표는 무려 13%로 단순한 실수로만 보기에는 석연찮다.1 대선 후보 가운데 개혁파로 여겨지는 헴마티(Abdolnaser Hemmati) 전 중앙은행장 후보는 8.3%를 얻는데 그쳤다.

올해 61세인 라이시는 4년 전 대선에 출마하여 38.2%의 지지를 얻었으나 57.1%를 득표한 현직 로하니 대통령에 고배를 마셨다. 라이시 당선자는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직에 오른 1989년 이래 보수 지배연합의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호라산(Khorasan)주의 성소도시 마슈하드(Mashhad) 태생이다. 5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신학 공부에 매진해 20대에 검사직에 올랐다. 그런데 라이시가 혁명 이후 걸어온 ‘꽃길’은 동향의 스승 하메네이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메네이는 라이시를 2017년 대선 전에는 이란 최고의 종교재단(본야드)인 ‘이맘 레자(Imam Reza) 재단’ 대표로 임명했고, 대선 패배 후에는 사법부 수장직에 앉혔다. 미국 정부는 이란 최고지도자가 공직에 임명하는 사람을 제재한다는 행정명령 13876호에 따라 2019년 3월 사법부 수장이 된 라이시를 같은 해 11월 제재대상인물 명단에 등재했다. 라이시는 1988년 정치범에게 사형판결을 내린 이른바 ‘죽음의 위원회’ 판사 5명 중 한 명으로, 지난 2017년 대선뿐 아니라 이번 대선에서도 국내외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2

 

그림 1. 2021년도 제13대 이란 대선 공식 결과

그림 1. 2021년도 제13대 이란 대선 공식 결과

1위 라이시(득표율 61.9%), 2위 레자이(득표율 11.7%), 3위 헴마티(득표율 8.3%), 4위 하셰미(득표율 3.4%). 출처: Iran News Agency, 2021년 6월 19일.

이번 대선의 낮은 투표율과 높은 무효표의 원인은 헌법수호위원회의 자격 심사에서 유력한 온건파 후보자가 대거 탈락하자 온건 개혁파 지지세력인 도시 중산층, 청년층, 여성 유권자가 투표 거부 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주로 사회경제적 하층민인 라이시 지지층은 로하니 대통령과 자리프 외무장관이 대표하는 온건파가 트럼프 정부의 고강도 제재에 따른 경제난과 민생고를 막지 못했다고 맹비난했다.

보수파가 장악한 헌법수호위원회는 6월 18일 선거에 앞서 5월 16일에 시작한 자격 심사에서 나이, 교육 정도, 경력 수준 등의 이유를 들어 내무부에 출마 신청을 한 출마 희망자의 99%를 탈락시켰다. 여성 후보 등록자 40 명 전원을 포함하여 모두 585명의 출마신청자가 자격 미달 선고를 받았다. 자격심사를 통과한 최종 후보자는 모두 7명인데, 사법부 수장 라이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지기반이 약하여 라이시에 필적할 수 없는 후보들이었다. 정치적 경향을 보면 7명의 후보는 보수파 5명, 중도파 1명, 개혁파 1명이다.

한편 그림 2에서 보듯, 지난 5월 2일 이란 개혁파의 모임인 ‘이란개혁전선(Jabhe-ye Eslahat-e Iran)’은 자체 투표를 통해 1위 자리프 외무장관, 2위 자한기리(Ishaq Jahangiri) 제 1부통령, 3위 타즈자데 (Mostafa Tajzadeh) 전 내무차관 (그림 최상단 오른쪽부터 자리프, 자한기리, 타즈자데) 등 14명의 개혁파 후보를 발표했지만,3 단 한 명도 대선 후보로 출마하지 못했다. 출마를 포기한 자리프를 제외한 13명은 모두 헌법수호위원회 심사의 벽을 넘지 못했다. 대선 후보 가운데 온건파 성향 헴마티는 개혁파로 분류되지 않아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다. 또한 초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의 손자로 개혁파 차기 지도자로 꼽히는 하산 호메이니(Seyed Hassan Khomeini)는 하메네이 현 최고지도자의 ‘압박성’ 충고에 따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4

이번 자격 심사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놀랍게도 탈락한 출마희망자는 합리적 보수파로 분류되던 라리자니(Ali Larijani) 전 국회의장이다. 시아파의 ‘바티칸’으로 불리는 성소도시 곰의 유력한 성직자 집안 출신 라리자니가 대선 후보로 나올 경우 라이시로 향할 보수표가 분산될 수 있고, 라리자니를 중심으로 반라이시 세력이 결집할 가능성이 있어 출마를 저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법학자 울라마와 혁명수비대가 구축한 보수 지배연합이 라이시 대통령 만들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어떠한 요소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러한 심사 결과에 온건 개혁파 지지세력인 도시 중산층, 청년층, 여성 유권자가 선거에 등을 돌렸다. 또한 선거는 정책과 비전의 대결 장이 아니었고 자격심사를 통과한 최종 후보자의 선거 공약은 큰 차별점을 드러내지 못했다. 라이시 후보의 대선 공약 역시 온건파 정부의 경제 실정을 향한 비난이 대부분이었고 핵합의 복원이나 여타 대외정책 관련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5

 

그림 2. 개혁파 모임 이란개혁전선이 뽑은 대선 출마 선호 14명

그림 2. 개혁파 모임 이란개혁전선이 뽑은 대선 출마 선호 14명

출처: 개혁성향 일간지 Etemad(에테마드), 2021년 5월 3일

이란의 직접 선거 출마는 헌법수호위원회의 후보 등록자 자격 심사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가능하다. 헌법수호위원회는 이슬람법 전문가 6명과 여러 분야의 법에 능통한 무슬림 법률가 6명 등 모드 12명으로 구성된다. 이슬람법 전문가는 최소지도자가 직접 선정하고, 무슬림 법률가는 최고지도자가 임명한 사법부 수장이 의회에 추천하여, 의회가 투표로 선출한다.6

이처럼 헌법수호위원회의 자격심사가 선거 출마자를 결정하는 이란은 민주주의 없는 선거(elections without democracy)를 행하는 혼합 체제(hybrid regime) 혹은 선거 권위주의에 해당한다.7 1979년 반독재 시민혁명이 일어나 당시 팔레비(Mohammad Reza Pahlavi) 왕정이 무너지고 교조적인 이슬람공화국이 출범했다. 팔레비 체제의 경우 한 사람이 사유화한 권력이 친서구 부정부패 정권을 지배했다면, 이슬람공화국은 울라마와 체제 수호의 정예군 혁명수비대가 보수 지배연합을 구성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1400여 년 전 등장한 이슬람에는 공화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란이슬람공화국 대내외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는 울라마의 ‘이즈티하드(ijtihad, 독립적인 판단)’에 맡긴다. 이란이슬람공화국에서는 이슬람법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가의회(현재 88명, 8년 임기)가 뽑은 종신직 종교지도자가 국민 전체가 직접 뽑은 대통령보다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최고지도자는 군부와 사법부, 외교권을 장악하며 대통령의 결정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책을 거부할 수 있고 혁명수비대의 보위를 받고 있다.

 

대선 이후 온건파의 정치적 무력감 확산과 강경파의 차기 최고지도자직 다지기

이번 대선에서 강경파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이란 내부 권력은 보수파가 온전히 장악하게 됐다. 2020년 총선 역시 보수파의 대승, 개혁파의 참패였다. 2013년 대선, 2014년 총선, 2017년 대선은 모두 온건 개혁파가 승리를 거뒀으나, 2018년 트럼프 정부의 대이란 최대 압박 정책 이후 판세가 뒤집혔다. 핵합의를 지지한 온건파의 입지는 현저히 위축된 반면, 강경파의 장악력이 공고해졌다. 더구나 2020년 1월 미국이 고드스(Qods) 부대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사령관을 암살한 이후 강경파는 온건파를 향한 압박수위를 더욱 높였다. 혁명수비대는 내부 숙청작업을 마치고 전열을 가다듬은 뒤 급진 대외정책 구호를 연일 쏟아냈다. 2021년 1월에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따라 금융기관이 원유수출 대금을 지불할 수 없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선박을 나포해 한국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하며 지불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대선 이후 온건파 정치인은 물론 이들의 전통적 지지세력인 중산층, 청년, 여성은 이란이슬람공화국의 선거 권위주의 체제를 재차 각인하고 정치적 무력감에 빠졌다. 설리번(Jake Sullivan)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란 외교안보정책의 최종 결정권자가 대통령이 아니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에 이번 대선이 2021년 4월부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시작한 이란 핵합의 복원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8 그러나 팽창주의 대외정책과 비효율적 경제정책에 따른 경제위기, 구조적 부정부패, 철권통치로 대표되는 이란의 총체적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세력은 온건파 세력밖에 없다. 선출 대통령과 의회의 권한이 지나치게 취약하지만 이들의 존재 자체가 강경 보수파에게 견제와 압박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란 강경 보수파 지배연합은 제재완화로 이란을 정상국가로 만드는 것보다는 반미 구호를 앞세워 역내에 이슬람 혁명을 수출하고 프록시 조직을 육성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대통령과 행정부, 의회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힘의 우위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면서 울라마-혁명수비대 보수 지배연합은 시민의 요구를 억눌러왔다. 이들 보수 지배연합은 이슬람혁명 정신에 바탕을 둔 국가 이익을 추구했고 비효율적 공기업의 비대화, 관료의 부정부패, 급진적 대외정책 때문에 정책의 투명성이나 집행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혁명수비대 산하 바시즈 민병대는 소규모 민생고 시위도 유혈 진압해 반체제 여론이나 움직임을 용납하지 않는다. 혁명수비대 내부에서 대외 전략을 맡고 있는 고드스 부대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 이라크의 카타이브 헤즈볼라를 포함한 인민동원군, 예멘의 후시 반군, 가자지구의 하마스 등 역내 프록시 조직을 후원하며 헤게모니 장악에 주력해왔다.

또한 이들 보수 지배연합은 제재 완화 이후 개방과 외자유치보다는 내수 위주의 저항경제를 주장하고 있다. 핵합의 이후 민영화와 시장개방 정책은 이들 강경 보수파 지배연합의 이해관계에 배치된다. 따라서 2015년 핵합의 타결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3차례 실험 발사하면서 정국 경색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당시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역시 강경한 반미 구호를 공식석상에서 연일 외쳤다.

종교재단 본야드와 혁명수비대 산하 회사는 민관 플랜트 프로젝트의 대부분을 독식하며 세금면제 혜택까지 받아왔다. 혁명수비대가 운영하는 회사는 원유 분야에 집중 포진해 있지만, 부동산, 통신과 미디어, 자동차, 건설, 금융, 농업 분야 전반에 걸쳐 골고루 퍼져 있기도 하다. 혁명수비대는 국가 전체 자산의 40%가 넘는 부를 소유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암시장까지 고려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 미국의 제재로 이란 경제가 충격을 받고 있지만, 보수 지배연합의 경제체제는 여전히 견고하다. 본야드가 대표적이다. 혁명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혁명 이후 확장되어 자선에 기반을 둔 복지증진 사업을 넘어 본야드의 손길은 이란 경제 곳곳에 퍼져 있다. 본야드는 정부 보조금과 면세 혜택을 받는다. 국가의 업무인 재화 재분배를 책임지고 있기에 공적인 영역에 속한 기구이지만, 행정부나 입법부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혁명수비대 역시 하타몰안비야(Khatamol Anbiya)라는 본야드를 가지고 운영하고 있지만, 이란 내 전체 본야드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타몰안비야가 다른 본야드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역시 파악하기는 어렵다. 미 재무부는 본야드가 이란 경제를 좌지우지할 뿐 아니라 해외 테러조직도 지원한다고 보고 본야드를 직접 제재하고 있다.9

그러나 코로나19 시기까지 맞물린 현재 이란의 경제파탄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2018년 8월 미국발 1단계 제재가 시작되면서 리알화의 가치는 80%까지 급락했고, 기본 식료품 가격은 50% 이상 올랐다. 이어진 유가보조금 삭감으로 휘발유 가격이 50%나 급등하면서 2019년 11월 항의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다. 3년째로 접어든 제재와 코로나 19 여파로 현재 이란의 경제 지표는 참담한 수준이다. 인플레이션은 48%(세계은행)를 넘었고, 주택가격은 작년 대비 80%(테헤란), 월세는 40% 올랐으며, 국민 과반수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다.10

나아가 이번 대선은 차기 최고지도자 선출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관심이 더욱 높았다.11 호메이니에 이은 현 2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고령인데다, 암 투병중이다. 대통령으로 재선되어 재임하고 있던 하메네이는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하자 전문가의회에서 최고지도자로 선출되었다. 차기 최고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직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는 것이 중평이다. 그렇다면 라이시 대통령 당선자는 이번 대선에서 차기 최고지도자직을 향한 디딤돌을 마련한 셈이다. 더구나 여러 언론매체가 라이시를 아야톨라로 부르면서 라이시의 종교지도자 능력을 부각하고 있다. 한편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Mojtaba Khamenei)가 아버지를 이어 최고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 최고지도자의 업무를 상당부분 모즈타바가 수행하거나 돕는다는 평이 서방 언론에서는 꾸준히 흘러나온다.12 그러나 로하니 대통령이 이란이 혁명을 한 이유 중 하나가 세습 왕정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처럼 최고지도자직이 세습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전문가의회에서 결정하면 가능하다. 라이시와 모즈타바는 끈끈한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향후 이 두사람의 협력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이란 강경파 대통령의 당선 이후 중동 정세

2021년 4월부터 6차례 진행되어 온 비엔나 핵합의 복원 협상은 보다 생산적인 7차 협상을 위해 6월 20일 휴식기를 선언했다. 이란 대선에서 강경파 후보 라이시의 당선이 공식 발표된 다음날 협상 당사국인 P5+1(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독일), 유럽연합, 이란이 내린 결정이다. 핵합의 복원 협상단의 러시아 대표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은 거의 소진됐고 이제는 정치적 결단만이 남았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의 대표도 기술적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진전을 이뤘고 최종 타결을 위한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고 했다.13

이란 대표단은 6차 회담 결과를 본국에서 면밀하게 검토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6번에 걸친 협상에서 이란은 최대 규모의 제재 해제를, 미국은 최소한의 형식적 복귀를 원하면서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이란은 미국에 복원되는 핵합의를 조약(treaty)으로 바꾸고 향후에 다시는 파기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공식 문서로 남기라고 요구했다. 미국이 복원하려는 이란 핵합의는 대통령의 행정 협정(executive agreement)으로,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아 행정부의 의지만으로 체결이 가능하다. 즉, 미국과 이란의 대통령이 합의서에 서명만 하면 효력을 지니는 것이다. 하지만 이란 측의 요구대로 조약으로 할 경우 미 공화당 의원과 친이스라엘계 민주당 의원의 반대로 미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미국은 비엔나 핵합의 복원 협상에서 우선 2015년도 핵합의를 복원한 뒤 탄도미사일 개발이나 역내 친이란 프록시 조직 지원, 10년 뒤 이란 핵개발 억지 문제는 추후 포괄적 협상을 통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가 파기한 핵합의를 형식적이나마 빨리 복원한 후 중국 견제와 쿼드 활성화, 인도-태평양 전략, 기후변화 정책에 집중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선 이후 이란 새 정부 출범을 위한 인수작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법부는 대통령을 포함해서 로하니 행정부 각료 전원의 해외출국 금지령을 내리고 부패조사에 들어갔다. 이란 강경 보수파 지배연합은 트럼프 정부의 고강도 제재에 따른 극심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의 핵합의 복원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였으나, 라이시 당선 이후 기존 협상틀을 깨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란은 현재 미국 제재의 대폭 해제를 주장하고 우라늄 농축 90%를 언급하는 강수를 두고 있다. 하지만 민생고에 대한 불만은 중산층뿐 아니라 보수층의 지지세력인 저소득층에도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보수 지배연합의 부담도 매우 높아졌다. 이번 대선의 저조한 투표율 역시 이들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권 안정화를 위해서라도 당분간 강경한 대외정책 보다는 제재를 완화하여 공익을 확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행정부까지 장악한 이란 강경 보수파 지배연합의 현상 타파 움직임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지연전략인지, 아니면 파기를 위한 수순인지 우려까지 낳고 있다.14

한편 2021년 6월 14일 새롭게 출범한 이스라엘의 연립정부는 과거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정부와 달리 미 민주당 정부와 관계를 복원하는데 집중했고 바이든 정부도 이란 핵합의 복원 과정에서 우방국 이스라엘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화답했다. 2015년 오바마 정부 주도의 핵합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던 미국의 우방·동맹국 이스라엘과 UAE·사우디는 이번 핵합의 복원 과정에서 협상 참여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는 이란에 강한 불신을 표출하며 기존 이란 핵합의가 이란의 핵개발을 막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작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이들 우방·동맹국을 달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합의 복원이 이란 강경파의 역내 팽창주의 행보를 더욱 빠르게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현재 이란의 국내 정치 구도가 2015년과 매우 달라졌기 때문에 핵합의 복원에 따른 경제 이익이 온건파와 일반 시민이 아니라 강경파에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2019년 이란이 핵합의 이행 파기를 선언한 이래 핵시설 공격, 핵과학자 암살 작전을 벌였고,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할 경우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진 않겠다는 메시지를 이란과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이란이 핵무장을 할 것으로 확신하는 이스라엘은 2019년 7월 나탄즈 핵시설 화재, 2020년 11월 이란 핵개발의 대부 파흐리자데(Mohsen Fakhrizadeh) 살해, 2021년 4월 나탄즈 핵시설 대형 폭발 작전을 수행했다. 이스라엘의 도발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가자지구 등에서 친이란 프록시 조직을 육성한 이란이 정작 자국 내 정보국 내부 단속에는 실패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UAE와 사우디 역시 이란 강경파의 역내 영향력 강화를 우려하고 있다. 2021년에 들어서도 역내 친이란 프록시 조직은 미군 시설과 사우디를 계속 공격했다. 2월에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 본토를 향해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감행했고, 3월에는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가 미군 기지를 드론으로 공격했다. 이에 미군은 6월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는 친이란 민병대의 기지와 무기고를 공습했다. 2월 바이든 정부가 미국이 예멘 내전에서 정부군을 돕는 사우디 주도 아랍연합전선을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을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했지만, 이란의 프록시 후티 반군의 사우디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UAE와 사우디는 2020년 9월 수니파 걸프국-이스라엘 간 체결된 아브라함 평화협정을 계기로 마련된 전략적 연합을 적극 활용해왔다. 아브라함 협정의 체결 이후 이스라엘은 UAE가 개방한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의 군사력 정보를 자유롭게 얻었고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UAE와 바레인에 이란발 위협을 알려줬다. 나아가 UAE와 이스라엘이 동지중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고 UAE와 사우디는 이스라엘의 미 중부사령부 편입 반대 입장을 최근 철회했다. 바이든 정부는 중동에서 이스라엘만이 보유하고 있는 F-35 전투기를 UAE에 판매하는데 동의했다. 이스라엘은 앞으로도 이란 강경파와 이들이 후원하는 역내 프록시 조직에 대해 군사작전을 벌이며 세력 억지 및 관리에 집중할 것이고 UAE와 사우디는 이에 적극 협력할 것이다. 중동에서 자국의 역할을 줄이려는 바이든 정부는 이란 핵합의 복원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UAE-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 협력도 지지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چرا مسئولان عدم مشارکت ۳۰ میلیون ایرانی را نادیده می‌گیرند؟ / مسئولان جمهوری اسلامی باید بین خود وضعیت اضطراری اعلام کنند
  • 2. U.S. Department of Treasury, “Treasury Designates Supreme Leader of Iran’s Inner Circle Responsible for Advancing Regime’s Domestic and Foreign Oppression,” November 4, 2019.
  • 3. 개혁파의 자체 투표 결과 순위는 다음과 같다(괄호안이 득표수). 1위(37표) 자리프 외무장관, 2위(35표) 자한기리 제1부통령, 3위(32표) 타즈자데 하타미 행정부 내무차관(2009년 부정선거 항의 시위로 체포되어 7년 옥살이), 4위(25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하타미 행정부 보건부 장관, 5위(21표) 아레프(Mohammad Reza Aref) 하타미 행정부 제1부통령(2013 대선 때 출마했으나 선거 막판에 중도개혁세력 결집을 위해 로하니를 밀고 후보에서 사퇴), 6위(20표) 라프산자니(Mohsen Hashemi Rafsanjani) 이란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고 라프산자니의 장남으로 현 테헤란 시의회 의장, 7위(19표) 샤리아트마다리(Mohammad Shariatmadari) 로하니 행정부 행정부통령, 통상부장관, 8위(15표) 카바케비안(Mostafa Kavakebian) 민주당(Hezb-e Mardomsalari) 사무총장, 9위(13표) 사드르(Mohammad Sadr) 체제공익판별위원회 위원, 10위(12표) 사데기(Mahmoud Sadeghi) 전 국회의원(10대), 11위(11표) 3명 몰라베르디(Shahindokht Molaverdi) 루하니 행정부 여성가족 부통령, 쇼자이(Zahra Shojaei) 여권신장 운동가이자 하타미 행정부 여성문제 대통령 자문, 아훈디(Abbas Akhoundi) 라프산자니 행정부 주택부 장관이자 로하니 행정부 도시개발부 장관, 14위(10표) 하라지(Sadegh Kharazi) 하타미 행정부 대통령 자문위원.
  • 4. 하산의 동생 야세르(Yasser Khomeini)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하산이 대선 출마를 두고 조언을 구하자 이번 대선에 나서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Jamaran News, مشروح گفت و گوی جماران با سید یاسر خمینی/ جزییات دقیق دیدار یادگار امام با رهبر معظم انقلاب
  • 5. Omer Carmi, “From Rouhani to Raisi: Pressing Questions on the Eve of Iran’s Election,” The Washington Institute PolicyWatch 3503, June 17, 2021.
  • 6.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2017, 『이란 이슬람공화국 헌법 』, 서울: 모시는 사람들.
  • 7. Beatriz Magaloni, 2010, “The Game of Electoral Fraud and the Ousting of Authoritarian Rule,”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54 (3).
  • 8. Patrick Wintour, “Raisi’s Election Victory Raises Difficulties as Iran Nuclear Deal Talks Resume,” The Guardian, June 20, 2021.
  • 9. 박현도, 2020, “이란의 사회보장제도,” 『아시아 사회보장제도 비교연구: 동남아시아 및 서아시아 주요국 사회보장체계』, 서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지향, 2019, “카슈끄지 사건과 이란·사우디·터키의 각축전,” 『아시아지역리뷰웹진 <다양성+Asia>』, 2 (1); Hesam Forozan and Afshin Shahi, 2017, “The Military and the State in Iran: The Economic Rise of the Revolutionary Guards,” The Middle East Journal, 71 (1).
  • 10. Maryam Rahmanian and Aresu Eqbali, “One Iranian Woman’s Year in the Shadow of U.S. Sanctions and Covid-19,” The Wall Street Journal, December 23, 2020.
  • 11. Alex Vatanka, “Iran’s Presidential Elections Are All About the Post-Khamenei Era,” Middle East Institute Policy Brief, May 17, 2021.
  • 12. Julian Borger, “Mojtaba Khamenei: Gatekeeper to Iran’s Supreme Leader,” The Guardian, June 22 Jun 2009; Wilfried Buchta, “Will Khamenei’s Son Play a Role in Iranian Succession?” The Washington Institute PolicyWatch 3467, April 7, 2021.
  • 13. John Irish, Parisa Hafezi, “Russia Says Parties to Iran Nuclear Talks Need More Time Before New Meeting,“ Reuters, July 2, 2021.
  • 14. Christiane Hoffmann, “Maas droht Iran mit Ende der Gespräche,” Der Spiegel, July 30, 2021; Henry Rome, “Iran Eelected a Hard-Liner President. What Does That Mean for the Nuclear Deal?” The Washington Post, June 21, 2021.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박현도
박현도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박현도 연구교수는 현재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양자협력사업인 <중동 산업협력 포럼> 사무국장, 법무부 국가개황정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다.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학사, 캐나다 맥길대학교 이슬람연구소에서 이슬람학 석사, 이란 테헤란 대학교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이슬람과 중동의 역사다. 최근 『인도 대전환의 실체와 양상: 인도와 이슬람의 만남』(다해, 2021), 『2020 한류, 다음』(한국국제문화교육진흥원, 2021), 『아시아 사회보장제도 비교연구: 동남아시아 및 서아시아 주요국 사회보장체계』(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0),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균열과 유라시아 지역의 대응』(민속원, 2020), Studies in Islamic Historiography (Brill, 2019)를 여러 학자와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