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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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바이든(Joe Biden) 미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철군 방침을 발표한 지 넉 달 만에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했고 아프간 정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20년 전 미국은 탈레반 정권의 축출을 위해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으나 전후 장기 재건 정책에는 실패했다. 미국이 후원하나 정당성과 역량이 부족했던 아프간 정부는 국제원조금을 독식해 거대한 부패 카르텔을 형성했다. 반면 파키스탄에 피신해 전열을 가다듬은 탈레반은 2000년대 중반 이래 아프간 내 세력을 확장했다. 2020년 트럼프(Donald Trump) 정부는 아프간 정부를 배제한 채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이후 아프간 정부 내 불안과 불신이 퍼졌다. 결국 인권·민주주의와 동맹의 가치를 강조하는 민주당 정부하에서 탈레반의 재집권이 시작됐다.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간에서는 탈레반 지도부의 조직 장악력 약화, 수뇌부의 분열로 인해 정국 불안정이 심화하고 있다. 탈레반의 카불 탈환 후 주변 지역에 흩어져 있던 알 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대원들이 아프간으로 대거 운집했다. 이들 지하디스트 조직과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탈레반 지도부는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한 하부 조직의 극단화 추세와 추종자 이탈에 따른 압박 아래 통제력을 잃고 있다. 또한 가장 극단적인 IS가 이전보다 훨씬 과감한 연쇄 자살폭탄 테러를 통해 존재감을 빠르게 키워가고 있으며 탈레반 수뇌부 내 하카니 네트워크는 IS와 밀착하며 독자 행보를 보인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시리아와 이라크가 IS의 근거지였다면 2021년 IS의 무대는 심각한 안보 공백을 보이는 아프간으로 넘어오면서 국제 지하디스트 세력이 다시금 활성화될 전망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재건 정책 실패와 탈레반의 카불 함락

 
2021년 4월 미국은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의 20주기에 맞춰 철군을 완료하고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반군의 평화를 기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8월 초부터 탈레반은 주요 도시를 함락하기 시작했고 8월 15일 아프간 정부군은 탈레반 반군에 허망하게 투항했다. “국민과 함께 죽을 각오로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미국에 약속한 가니(Ashraf Ghani) 아프간 대통령은 탈레반이 카불 외곽에 진격하자 거액의 현금을 챙겨 해외로 도주했다. 부통령, 국방장관, 정보국장을 포함한 측근들 역시 탈출했다.1 결국 아프간 체류 미국인의 대피가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탈레반은 대통령궁을 접수했다. 미국은 2001년 이래 아프간에서 1조 달러 이상 비용과 2300명 이상 병력을 잃었으나 탈레반은 아프간을 다시 집권하게 됐다.

아프간 정부와 군경의 극적 몰락은 사회 내 만연한 부패와 불신 때문이었다. 내부 불만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폭발의 압력을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투명하지 않은 사회에 정확한 여론은 없었고 몰락의 전조 현상 역시 감지되기 어려웠다. 갑작스러운 붕괴가 일어나자 미국, NATO 주도의 국제안보지원군, 아프간 정부와 시민, 탈레반 모두 놀랐다.

아프간 정부 내 부정부패는 카르자이(Hamid Karzai) 초대 대통령 시기부터 자리 잡았고 이후 국가 재건의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2001년 미국이 아프간 전쟁으로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직후 임시정부의 수장이 됐다. 당시 탈레반 정권은 9·11 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 수장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신병 인도를 거부했고 부시(George W. Bush) 정부는 소규모 특수부대와 공군을 첨단 기술로 무장시켜 신속하게 전투를 끝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2004년과 2009년 선거에서도 이겼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탈레반 축출 직후 열린 아프간 부족장 원로 회의는 타지크족 출신의 이슬람 법학자 시라트(Abdul Satar Sirat)를 임시정부 수장으로 추천했으나 미국은 탈레반의 지지기반인 파슈툰족 출신 카르자이를 최종 낙점했다. 그러나 2005년 이래 탈레반이 게릴라전을 조직하자 미국은 카르자이 정부 대신 아프간의 요충지를 장악한 여러 군벌과 협력했다.

카르자이 정부는 카불 안에서만 권한을 행사하는 취약한 정부였으나 미국과 국제기구의 원조금을 독식했고 거대한 부패 카르텔을 형성했다. 정부 엘리트는 사병의 급료를 가로채기 위해 군인 명부를 허위로 기재했고 간부들의 뇌물수수와 사기 행각 때문에 훈련과 장비를 위한 재정은 늘 부족했다. 서류상 아프간 정부군은 352,000명의 군경으로 이뤄졌으나 실제로는 254,000명만이 복무하고 있었다. 카르자이 대통령 재임 기간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아프간은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로 인해 늘 하위를 차지했다. 한편 미국이 탈레반 격퇴전에서 지방 군벌의 도움을 받는 대신 그들의 마약 밀매를 눈감아주자 탈레반도 마약 거래를 통해 재정을 키울 수 있었다. 이에 탈레반 병사의 월급이 아프간 정부군 월급보다 4배나 더 높은 상황이 벌어졌다. 아프간 군경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고 하부 조직마저 부패로 점차 무너져갔다.2

이처럼 미국은 아프간 재건에서 부정부패를 퇴치하고 직업정신이 투철한 군경을 키우는 데 실패했다. 전후 안정화와 재건 정책에서 정통성 있는 통합 정부 구성, 대규모 군경 양성에 대한 치밀한 준비는 기본이나 미국은 탈레반 축출과 알 카에다 소탕의 단기 목표에만 치중한 나머지 장기 프로그램을 준비하지 못했다. 미군과 함께 NATO 주도의 국제안보지원군도 아프간 군경 육성의 책임을 맡았으나 오히려 책임 주체가 불분명해지면서 정책의 효과는 떨어졌다. 더구나 초기 아프간 군경 육성 정책을 두고 럼스펠드(Donald Rumsfeld) 당시 미 국방장관은 군의 경량화를 고집했는데 이는 탈레반이 게릴라전을 조직해 반격을 시작했을 때 명백한 착오로 드러났다.3

2001년 미군에 쫓겨난 후 파키스탄의 국경지대로 피신해 전열을 정비한 탈레반은 2005년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고 2006년 북서부에 이어 남부 칸다하르주 주변을 장악했다. 하지만 탈레반 게릴라에 맞서 싸울 미군, 국제안보지원군, 아프간군의 지상군 규모가 턱없이 작았고 미군의 첨단 군사과학은 산악지대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게다가 당시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후였기에 아프간 병력 증파가 어려웠다. 탈레반의 자살폭탄 테러가 급격히 늘어나자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은 그제야 아프간 군경의 치안력 강화를 서둘렀다.

2009년 오바마(Barack Obama) 정부는 증파를 단행했고 2011년엔 미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을 사살했다. 이어 2014년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은 아프간 임무 종료를 선언했다. 그러나 아프간 군경의 역량이 아직 충분치 않고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의 영향력이 아프간에도 미치자 2015년 오바마 정부는 철군 계획을 보류했다.

이후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자 아프간 정책의 혼란이 이어졌다. 2019년 미국은 카타르에서 탈레반과 접촉을 시작했고 2020년 2월 아프간 정부를 배제한 채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14개월 내 철군을, 탈레반은 알 카에다와의 교류 단절을 약속했다. 트럼프 정부의 평화협정은 탈레반에 사기 증진과 조직력을 다질 기회를 제공했다. 2021년 바이든 정부가 들어섰지만 시기만 조금 늦췄을 뿐 철군은 계획대로 이뤄졌다. 비록 공화당 정부가 시작한 전쟁이었지만 미국의 국제무대 귀환을 외치는 민주당 정부 아래에서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이 일어났고 미국의 20년 아프간 재건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탈레반 지도부의 통제력 상실과 내부 분열에 따른 정국 불안정과 억압통치 부활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집권하는 동안 이슬람 교리를 교조적으로 해석해 공개 참수와 처형, 손발 절단형, 투석형, 태형 등을 집행하며 공포정치를 펼쳤고 특히 여성의 권리를 억압했다. 아프간 여성은 교육을 받거나 일을 할 수 없었고 공적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됐으며 여성에게 기술이 있다 해도 단순 가내 수공업에만 종사할 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은 채 두 눈만 망사 사이로 내놓는 부르카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했고 혼자선 이동할 수 없었다. 화장, 머리 커트, 손톱 손질이 금지됐고 이를 어길 시 정부의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이러한 탈레반의 극단적 정책은 폭압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슬람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했고 이슬람 세계 대부분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다시 집권한 탈레반 정권은 20년 전과는 다른 포용적 통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발표와 달리 하부 조직원들은 전국 곳곳에서 가정집, 상점, 언론사를 뒤지며 무자비한 폭력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다. 탈레반 지도부는 젊은 대원들이 알 카에다나 더 극단적인 IS로 옮겨갈 것을 우려해 하부의 일탈을 묵인하고 있다. 이전과 달리 지도부의 통제력이 힘을 잃고 조직 내 위계질서마저 흔들리는 것이기도 하다.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자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알 카에다와 IS 대원들이 아프간을 지하디스트의 해방구로 여기며 운집했고 이들 조직 지도부 간의 주도권 다툼이 시작됐다. 급진 지하디스트 조직에는 더 많은 하부 조직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욱 과격한 행보로 존재감을 과시할 필요성이 커졌다.

따라서 탈레반 지도부는 하부 조직의 극단화 추세와 이에 따른 압박을 이기지 못한 채 억압통치로의 회귀를 보여주고 있다. 9월 7일 발표한 33인의 임시정부 구성을 보면 통합 정부 구성의 약속과 달리 전원 강경 보수주의 남성에 탈레반 주류인 파슈툰족 출신이었다. 같은 달 21일 발표한 차관급 인사에서도 소수 민족 출신 일부만 포함됐을 뿐 여성은 배제됐다. 이어 탈레반 임시정부는 여성부를 폐지하고 이슬람법 샤리아 적용을 관리 감독하는 권선징악부를 부활했다. 과거 집권 시기 권선징악부는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이슬람을 되살리고 쾌락주의를 처벌하기 위해 종교 경찰을 거리 곳곳에 배치한 바 있다. 대학에서 남녀 분리 방침, 중등학교에서는 남학생만 등교 허용 발표도 뒤따랐다. 카불의 새로운 시장은 여성 공무원에 출근 금지령을 내렸고 이에 앞서 탈레반 대변인 역시 여성 직장인은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밝혔다. 카불대의 새로운 총장은 여성 학생이나 강사가 학교에 오는 것을 금지한다고도 발표했다. 25일 서부 헤라트주에서는 탈레반 대원이 납치 용의자 4명을 즉결 처분해 주검을 광장 기중기에 매달아 전시했다. 같은 날 과거 권선징악부 수장을 지낸 탈레반 지도부 인사 투라비(Nooruddin Turabi)는 손발 절단형이 부활할 수 있다고 밝혔다. 27일에는 남부 헬만드주 탈레반 대원이 이발소에서 수염을 깎거나 음악을 트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발표했고 이에 앞서 카불에서도 탈레반 대원이 거리에서 남자의 머리와 수염 스타일을 단속 규제해왔다.4

탈레반 지도부는 내홍에도 시달리고 있다.5 발표일을 두 차례나 번복해 나온 임시정부 최종 구성을 보면 알 카에다, IS와 밀착해 조직 내에서 강경하고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하카니 네트워크의 반발과 이에 따른 내부 권력 다툼이 드러난다. 협상파이자 가장 유력한 수장 후보였던 바라다르(Abdul Ghani Baradar)가 부수장으로 밀려났고 입지가 약한 하산 아쿤드(Hasan Akhund)가 수장을 맡았다. 하카니 네트워크의 거센 불만에 바라다르를 중심으로 한 수뇌부가 정부 구성에서 한발 양보한 결과로 보인다. 바라다르는 2000년대 파키스탄에서 숨어 지낼 때도 아프간 정부와 협상을 타진했고 2019년 카타르의 탈레반 정치사무소 대표를 맡아 트럼프 정부와 평화협정 과정을 진행했다. 바라다르가 탈레반의 실세로 부상하자 2021년 7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바라다르를 톈진으로 초대해 신장 자치구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과의 단절을 촉구하면서 경제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조직 내 급진 분파 하카니 네트워크는 2010년대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을 상대로 한 자살폭탄 테러와 아프간 정부 요인의 납치와 암살을 주도하면서 부상했다. 2015년에는 탈레반 내 급진 분파가 IS 아프간 지부를 세우는 데 일조했다. IS 아프간 지부는 이후 IS 호라산으로 이름을 바꾼 후 탈레반마저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번 임시정부 구성에서 하카니 네트워크 소속의 시라주딘 하카니(Sirajuddin Haqqani)는 내무장관에, 칼릴 하카니(Khalil Haqqani)는 이민장관에 내정됐는데 이들에겐 미연방수사국의 현상금이 걸려있다. 한때 정부 구성 명단에 불만을 품은 칼릴 하카니가 바라다르와 논쟁 끝에 총격전을 벌여 바라다르가 부상하거나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6 한편 탈레반의 3대 지도자 아쿤드자다(Hibatullah Akhundzada)는 임시정부의 상징적 지위인 최고 종교지도자 자리를 차지했다.

 

탈레반의 재집권 이후 국제 지하디스트 세력의 활성화와 역내 불안정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재집권하자 시리아·예멘·소말리아의 알 카에다 연계 조직,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지구의 하마스는 축하 성명을 잇달아 발표하며 미국의 패배에 환호했다.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이 떠나자 주변 지역의 급진 지하디스트 세력이 빠르게 유입돼 탈레반, 알 카에다, IS가 몸집을 불렸고 이들 조직의 수뇌부는 치열한 주도권 다툼에 들어갔다. 이 중 가장 극단적인 IS가 과감한 자살폭탄 테러를 통해 존재감을 빠르게 키워가면서 아프간 대내외의 혼란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7 이에 더해 과거 미국을 도와 탈레반 축출에 앞장섰던 북부동맹이 탈레반을 향한 항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2021년 8월 26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민군이 카불 공항에서 필사의 대피를 서두르던 중 IS 아프간 지부로 알려진 IS 호라산이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고 미군 13명과 아프간인 170명이 사망했다. 탈레반 내 극단주의 분파였던 IS 호라산은 8월 30일에도 카불 공항을 향해 로켓을 발사했으나 미군이 요격했다. 당시 카불의 치안은 탈레반 내의 강경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가 맡고 있었고 이들은 IS 호라산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IS 호라산은 9월 18일과 19일 동부 낭가하르주에서 7차례 연쇄 폭탄 테러를 일으켜 탈레반 대원과 민간인 30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10월 3일에는 탈레반 대변인 모친의 카불 장례식장에서 IS 호라산의 배후로 추정되는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10월 8일 북부 쿤두즈주 시아파 사원에서, 15일 남부 칸다하르주 시아파 사원에서도 자살폭탄 테러가 각각 일어나 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IS 호라산이 배후를 자처했다.

IS 호라산은 탈레반의 재집권 이전에도 아프간 내에서 테러를 일으켰지만 대상 지역, 빈도, 규모 면에서 현재만큼 두드러지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2020년 5월 12일 국경 없는 의사회가 지원하는 카불 산부인과 병원을 공격해 간호사와 임산부 24명을 살해했다. 같은 해 11월 2일 IS 호라산 배후의 카불대학교 폭탄 테러가 40여 명 사상자를 냈다. 최근 IS 호라산의 테러는 이들의 근거지인 동부 낭가하르주와 수도 카불을 넘어서 북부는 물론 탈레반의 심장부로 알려진 남부 칸다하르주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10월 한 달 사이 3차례나 대규모 테러를 감행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인다.8 2015년 IS 호라산의 결성 당시 그 규모는 2000-3500명 사이로 알려졌으나 탈레반의 재집권 이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추종자들이 몰려들면서 조직원 수가 빠르게 늘어났다.9

2014년 시리아의 락까와 이라크의 모술을 근거지로 삼아 IS가 등장한 후 국제 지하디스트 테러조직의 환경은 획기적으로 변했다. 전 세계 90여 나라의 젊은이들이 가상 공간 채팅방을 통해 외국인 전투원, 자생적 조직원의 이름으로 극단주의 조직에 스스로 가입한 후 인터넷 평등주의를 강조하며 상향식 의사결정을 주도했다.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한 IS의 선전 홍보전은 주효했으나 지도부의 권위와 위계질서는 점차 약화했다. 조직 수뇌부가 조직원을 선별 모집하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운영한 알 카에다와 탈레반과는 매우 달랐다. 또 IS는 이슬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자신의 목표에 동의하지 않으면 같은 수니파 무슬림이라도 학살했다. IS 호라산 역시 탈레반, 소수 민족, 미군, 국제안보지원군 모두를 공격했다. IS 지도부의 목표는 존재감을 과시해 추종자를 많이 끌어들이는 것으로 누가 얼마나 죽든지 나아가 탈중앙화가 진행되든지 크게 상관은 없다는 뜻을 고수했다.

9·11 테러가 발생해 전 세계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지 20년이 된 지금 알 카에다의 우두머리 빈 라덴은 2011년 미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고 나머지 핵심 멤버들은 미국에 수감되어 있다. 알 카에다 이라크 지부로 출발해 2014년 국가 건설을 선포했던 IS는 2017년 반IS 국제연합전선에 의해 패퇴 됐다. IS의 수장 알 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는 2019년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했고 IS 포로 수만 명은 시리아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과 이라크의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

하지만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을 계기로 국제 지하디스트 세력의 활성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시리아와 이라크가 IS의 근거지였다면, 2021년 IS의 무대가 미군 철수 후 안보 공백이 불거진 아프간으로 넘어오고 있다. 물론 2014년 당시 시리아에는 내전의 심화로 인해 다양한 무장조직이 난립했고 현재 아프간 상황은 내전의 혼돈에는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IS의 등장 이후 획기적으로 변모한 지하디스트 세력화의 특징은 온라인을 통한 활성화와 IS 브랜드의 프랜차이즈화 현상이다. 시리아와 이라크 주변국의 많은 젊은이가 IS의 홍보 공간에서 집단적 극단화 과정을 거쳐 직접 훈련 캠프에 들어왔다. 또한 IS 채팅방에서 극단주의에 입문한 유럽 국적의 자생적 테러리스트는 소외된 무슬림 이민자의 분노를 결집해 자국에서 테러를 일으켰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무슬림 국가의 군소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IS의 유명세에 편승하기 위해 잔혹한 행위를 추종, 모방한 후 인터넷에서 IS에 충성을 선언했다. 이미 온라인 홍보전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IS 호라산이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제치고 존재감 확보에 성공했고 그 여세를 몰아 추종자 충원에 맹렬한 기세로 나서고 있다. 현재 아프간 주민의 70% 이상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8만여 탈레반 대원과 1천여 알 카에다 대원 역시 SNS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10

중국은 아프간 접경지대에 있는 최대 아킬레스건인 신장 자치구의 동요를 우려해 탈레반 정권에 아프간 재건 사업을 약속했고 공관도 철수하지 않았다. 중국은 위구르 독립운동 세력이 탈레반의 재집권과 지하디스트 세력의 부상에 고무되어 활동에 나설 것을 두려워한다. 최근 반미 행보를 함께 보여온 터키, 이란, 러시아도 중국, 파키스탄과 함께 아프간 공관을 유지하며 탈레반 정권의 안정 노력을 돕겠다고 했다. 현재 아프간의 경제는 현금 부족으로 위기 상황에 부닥쳐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제사회는 탈레반 정권이 약속대로 폭압통치를 포기할 때 경제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터키, 이란, 러시아가 지원 대상으로 언급했던 바라다르 부수장을 포함한 탈레반의 수뇌부는 현재 젊은 대원의 일탈과 지도부의 내부 분열 때문에 조직 전체의 장악력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특히 IS와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압박과 추종자 이탈을 고려해야 하는 이들 수뇌부는 선택의 시간이 왔을 때 신장 자치구에서 자행되는 중국 정부의 무슬림 탄압에 침묵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과거 탈레반은 대표적 위구르 독립운동 조직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을 적극 도왔다. 탈레반 정권에게는 통합 정부를 구성해 경제 위기를 타파하고 IS 격퇴전을 조직해 정상국가의 면모를 보이려는 역량과 의지가 총체적으로 부족하다.

IS가 아프간을 근거지로 삼아 국제 지하디스트 세력의 핵심으로 부상해 전 세계에 위협을 가하면 미국은 여러 동맹·우방국과 연합전선을 결성해 공동 대응으로 맞설 것이다. 현재 ‘중동 떠나기’를 실행하는 미국은 역내 동맹국 기지를 거점으로 무인기의 정밀 감시와 타격에 의존하는 ‘수평선 너머(over the horizon)’ 전략으로 테러 위협에 맞서고 있다. 2014년에도 미국은 65여 나라와 함께 반IS 연합전선을 조직해 자문과 훈련 및 무기를 제공했고 지상 전투병은 대부분 쿠르드족을 동원했다. 당시 격퇴전이 난항을 겪자 미국은 IS를 공동의 적으로 여기는 이란, 러시아와 힘을 함께 모으기도 했다. 미국 및 유럽과 중동의 미 동맹·우방국은 IS 격퇴전에 집중하면서 시리아 내전에서 자국인을 학살한 아사드(Bashar Assad) 독재 정권의 축출을 보류했다. 아사드 정권을 후원한 이란과 러시아는 이 틈을 타 시리아 반군 공격에 박차를 가했고 정부군은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이후 이란은 역내 프록시 조직 육성에 속도를 내 팽창주의 행보를 가속했으며 중동 내 비자유주의 질서가 공고화됐다. 향후 아프간을 중심으로 IS 격퇴전이 조직될 경우 이란, 러시아, 터키는 물론 중국이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는 역내에서 효과적인 대테러전과 자유주의 질서의 후퇴에 대한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Elise Labott, “To Leave Afghanistan, Biden Must Solve His Ghani Problem,” Foreign Policy, February 2, 2021.
  • 2. Siobhán O’Grady, “In response to Afghanistan Papers, former president Karzai blames U.S. funding for fueling corruption,” The Washington Post, December 10, 2019; Craig Whitlock and The Washington Post, 2021, The Afghanistan Papers: A Secret History of the War, New York: Simon & Schuster.
  • 3. Special Inspector General for Afghanistan Reconstruction, 2021, What We Need to Learn: Lessons from Twenty Years of Afghanistan Reconstruction, Arlington: SIGAR.
  • 4. Peter Beaumont, “‘Necessary for security’: veteran Taliban enforcer says amputations will resume,” The Guardian, September 24, 2021.
  • 5. “In power, the Taliban’s divisions are coming to the fore,” The Economist, October 2, 2021.
  • 6. “Taliban deny their deputy prime minister, Mullah Baradar, is dead,” Reuters, September 16, 2021.
  • 7. Amira Jadoon, Andrew Mines, and Abdul Sayed, “The evolving Taliban-ISK rivalry,” The Interpreter, Lowy Institute, September 7, 2021.
  • 8. Sajjan M. Gohel, “The Taliban Are Far Closer to the Islamic State Than They Claim,” Foreign Policy, August 26, 2021; Robert Muggah and Rafal Rohozinski, “Islamic State-Khorasan’s Reach Extends Far Beyond Afghanistan,” Foreign Policy, September 9, 2021.
  • 9. 최근 파키스탄에서도 테러가 급증해 2021년 9월 한 달간 발생한 테러가 2020년 한 해 발생 건수를 넘어섰다. 대부분 아프간 국경지대에서 일어난 테러였다. “Weekly Assessments & Briefings,” South Asia Intelligence Review, November 1, 2021.
  • 10. Emerson T. Brooking, “Before the Taliban took Afghanistan, it took the internet,” New Atlanticist, Atlantic Council, August 26, 2021; Zeina Karam, “Taliban success in Afghanistan seen as boost for extremists,” Associated Press, August 27, 2021; Rita Katz, “Future of Al Qaeda, ISIS & Jihadism,” The Wilson Center’s 20 Year Memorial of the September 11th,, August 27, 2021; Craig Timberg and Cristiano Lima, “Today’s Taliban uses sophisticated social media practices that rarely violate the rules,“ The Washington Post, August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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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