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언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희망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야기한 위기상황이 역사적인 정상회담의 기회를 만든 만큼, 두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의제는 비핵화이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와 韓美가 추구하는 ‘비핵화’의 내용은 판이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주한미군의 한반도 축출과 한미동맹 와해가 핵심인 반면, 한미의 ‘비핵화’는 남북한의 핵개발 포기가 핵심이다. 북한과 한미가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다른 목표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마치 두 사람이 똑같은 모자를 썼지만 전혀 다른 인물인 것과 같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간과하는 것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과 한미의 입장차이가 지금부터 30여년 전 북핵협상 초기에 형성된 오래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비핵화’를 전면에 내세운 채,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연막을 치고 혼란을 야기하면서 핵개발에 매진해왔다. 제네바 기본합의, 9·19 공동성명, 2·13 합의 등 주요 합의마다 ‘비핵화’란 간판으로 핵포기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핵심 목표인 주한미군 축출과 한미동맹 와해를 포기한 적이 없다. 결국 북한과 한미는 ‘비핵화’라는 한 배를 탔지만 전혀 다른 꿈을 꿔왔던 것이다. 이 글에서는 ‘비핵화’ 용어의 기원과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비핵화’는 북한정권의 집요한 기만전술의 결정체임을 밝힌 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정부의 대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Ⅱ. ‘비핵화’의 기원과 변천과정
1.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지대화(Nuclear-Weapons-Free-Zone)’
냉전시기 對소련 견제 차원에서 미국의 전술핵이 한반도에 들어올 즈음인 195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거론했고, 1980년대 들어서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1980년 10월 개최된 제6차 당 대회에서 김일성은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의 구체적 실천조치로 한반도의 비핵·평화지대화를 제안했다. 1988년 11월 7일자 군축방안은 1989년 말까지 주한미군과 핵무기를 북위 35도 30분 후방으로 재배치하고 1990년 말까지는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할 것을 제의했다. 1990년 5월 31일자 군축안은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주장하면서 ①남한內 모든 핵무기가 즉각 철수되도록 공동 노력, ②핵무기의 생산·구입 금지, ③핵무기를 적재한 외국비행기와 함선의 한반도內 출입·통과 금지를 제안했다.
남북한이 핵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1991.10.22-25)에서 북한은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선언(초안)’을 제시하며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에 초점을 맞춘 다음 7개항을 요구했다.
① 핵무기의 실험생산·반입·보유·사용 금지
②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비행기함선의 한반도 출입·통과·방문 금지
③ 핵우산을 보장하는 조약과 핵무기의 저장배치 금지
④ 핵무기가 동원되는 군사훈련 금지
⑤ 주한미군과 핵무기의 철수
⑥ IAEA의 북한 핵시설에 대한 사찰과 북한에 의한 남한內 군사기지 사찰의 동시 실시
⑦ 핵국들에 대한 핵위협 금지 및 비핵지대 지위 존중 요구
2. 韓美의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
냉전종식이라는 정세변화에 편승해서 1991년 8월 1일 외무부가 남북한의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해 핵비확산 문제를 포함한 군사현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발표하기 전까지 핵문제에 관한 한국의 대북제의는 없었다. 주한미군이 전술핵을 배치한 상황에서 핵문제 논의 자체가 북한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핵무기의 존재 여부를 확인도 부인도 않는 NCND 정책에 저촉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같은 해 9월 24일 노태우 대통령은 제46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남북간에 신뢰가 구축될 경우 재래식 군축은 물론 한반도 핵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선언’을 제의한 1991년 10월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한국은 별도의 제안없이 북한에 대해 조건없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IAEA 사찰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미국의 핵우산 보호가 필요하며 미국 항공기와 함선의 한반도 착륙·통과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북한의 비핵지대화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도 구체적인 입장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11월 8일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한의 핵개발 포기에 초점을 맞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을 통해 ‘비핵화’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 원자력을 평화적 목적으로 이용
▪ 핵무기의 제조보유·저장·배비·사용을 금지하는 비핵 5원칙
▪ NPT와 IAEA 보장조치협정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
▪ 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의 보유 금지
▪ 기타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
1991년 12월 10-13일 개최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한국은 노태우 대통령의 선언을 보완해서 ‘한반도 비핵화 등에 관한 공동선언(안)’을 제의했다.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지만 핵문제에 진전이 없다는 내외의 우려를 반영하여, 남북한은 1991년 12월 26일 핵문제를 위한 대표접촉을 판문점에서 개최했다. 여기서 북한은 기존의 비핵지대화 주장을 철회하고 한국의 입장을 대부분 반영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초안)’을 제시했다. ‘비핵화’라는 한국의 용어를 수용한 것은 물론 재처리·농축시설의 포기를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핵우산 보장협정 금지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비행기와 함선의 출입·통과·방문 금지도 거론하지 않았다. 남북한은 몇 차례의 협상 끝에 1991년 12월 31일 남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규정한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금지하는 비핵 8원칙
▪ 평화적 목적으로만 원자력을 이용
▪ 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 보유 금지
▪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에 대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 실시
▪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구성‧운영
3. 북한의 전술적 후퇴와 집요한 기만전술
북한이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한 것은 생존을 위한 전술적인 후퇴였다. 냉전 종식이라는 격변의 시기에 김일성은 정권유지를 위해 한국과 국제사회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북한은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 탈피를 위해 대일 수교와 대미 관계개선을 추진했고, 한·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개발 포기와 국제핵사찰 수용을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었다. 적어도 외형상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전략목표를 관철시키는데 전력 질주해왔다. 우선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위한 협상에서 외부로부터 강요된 핵위협을 공동으로 저지시키고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 담보를 받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자고 제의하였다. 핵통제공동위원회 출범 이후에도 외국군대의 핵무기 저장과 배비 및 영토출입 금지, 핵무기 사용을 가상한 군사훈련과 작전 금지, 핵무기 지원을 전제로 한 협정체결 금지 등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 당시 철회했던 문제들을 다시 제기했다.
구체적으로, 1992년 3월 19일 개최된 제1차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회의에서 북한은 비핵화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이행합의서(초안)을 제시하면서 ‘비핵지대화’ 주장 시 제안했던 문제들을 다시 제기했다. 아래와 같은 이행합의서의 내용은 북한의 ‘비핵지대화’ 입장이 그대로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① 외국군대의 핵무기 저장배비 금지
② 외국핵무기의 영토진입 금지
③ 핵무기 사용을 위한 작전연습 참가 금지
④ 핵무기 사용을 가상한 작전훈련의 영토內 허용 금지
⑤ 핵무기 지원을 전제로 한 협정조약 체결 금지
⑥ 핵무기 생산을 전제로 한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 수입 금지
⑦ 핵국들로부터 한반도 비핵화의 지위를 보장받고 외부의 핵위협을 막기 위해 공동 노력
또한 1993년 6월에 개최된 제1단계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강석주 북한 대표는 미국에 대해 팀스피리트 훈련 영구 중지, 주한미군기지 사찰 수용, 대북 핵무기 불사용, 대남 핵우산 제공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했다.
북한은 지금까지 ‘비핵화’라는 용어를 매개로 한미가 북한의 핵포기에 대해 환상을 갖도록 프레임을 설정하고, 한편으로 핵개발에 매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한미를 상대로 1991년 10월 제안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선언(초안)’의 내용을 관철시키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했다. ‘비핵지대화’의 모든 항목을 한미가 ‘비핵화’를 위해 수용해야 할 사항으로 제기하면서 한국의 핵개발 포기, 주한미군의 한반도 축출 및 한미동맹 와해를 실현하겠다는 북한의 전략목표에는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 2018년 3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제시한 비핵화 실현의 조건, 즉 “한미가 북한의 선의에 응해서 평화와 안정의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실현을 위해 점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도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비핵화’는 북한의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 공세에 대응해서 한미 양국이 만들어낸 용어이다. 남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되 한미동맹에는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 ‘비핵화’의 본래 취지이다. 1990년대 초 위기에 몰린 김일성이 국제사회의 핵개발 포기 압박에 직면해서 국면타개책으로 한미의 ‘비핵화’ 용어를 수용하고 한국의 의견이 대부분 반영된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외견상 핵개발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상대의 용어까지 차용한 것이다. 비핵화 공동선언 협상에 참여한 김영철 현 통일선전부장이 이 선언은 90% 남한의 안을 수용했으므로 “이것은 당신들 협정이지 우리 협정은 아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북한은 대폭적으로 양보했다. 그러나 ‘비핵화’라는 모자로 바꿔 썼지만 북한이 하는 말과 행동은 그대로 ‘비핵지대화’였다. 전술적 후퇴를 위해 수용한 ‘비핵화’ 용어를 공세적으로 역이용해서 한미를 기만하여 시간을 벌고 보상을 챙기면서 핵개발에 성공했다.
북한은 지금까지 ‘비핵화’ 용어를 악용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오판하도록 한미와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혼란에 빠뜨렸다.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비핵화’를 명시한 국면전환용 합의로 위기를 모면하고 경제적 실리를 챙겼으나 핵개발은 일관되게 진행했다. 1991년 비핵화 공동선언에서부터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합의, 2012년 2·29 합의 등이 모두 북핵폐기에 실패한 표면상의 원인은 북한의 합의위반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이 애당초 ‘비핵화’에는 관심이 없었고 ‘비핵지대화’를 관철하겠다는 일념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북한은 ‘비핵화’로 포장한 ‘비핵지대화’ 목표를 철회한 적이 없고, 모든 협상에서 그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외길을 걸어왔다. 지금도 미국의 적대정책 청산, 체제위협 해소, 체제보장 등 다양한 용어를 현란하게 구사하여 우리를 기만하고 혼란을 야기하면서 ‘비핵지대화’의 전략목표를 관철하려고 하고 있다.
Ⅲ.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대책
1. 김정은이 선대의 유훈을 거역할 수 있는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방북결과를 브리핑하면서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표명했다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1
“(북한이) 북미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고 북미대화의 의제로 비핵화도 논의 할 수 있다. 특히 저희가 주목할 만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다’(라는 발언이다).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김정은의 ‘비핵화’ 발언에 주목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를 우리가 생각하는 핵폐기로 철썩 같이 믿고 있다는 뜻이다. 서훈 국정원장도 3월 8일 미국 방문길에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은 양보할 수 없는 문제이고 한미 연합훈련도 북한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상태에서 대화하려는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2 “우리는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 북한의 궁극적인 비핵화 목표를 명백히 밝혔다는 점이다.” 그는 김정은이 말한 비핵화가 핵동결이나 핵확산방지가 아닌 정말 완전한 비핵화이냐는 질문에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가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으로 직접 비핵화를 약속한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와 별도로, 워싱턴을 방문한 정부 고위관계자도 3월 9일 특파원 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3
“비핵화는 비핵화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와 한국과 미국이 말하는 비핵화는 다를 수 없다. 그게 다르면 협상이 안 된다. 비핵화 정의는 1992년 남북한이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있다. 거기 보면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명백히 나와 있다. 그 외에 다른 비핵화가 있을 수 없다.”
사실 ‘비핵화’가 유훈이라는 말은 김정일을 포함한 북한 당국자들이 종종 해온 말이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3월 18일 美 CBS 방송인터뷰에서 북한 최고당국자가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 김정일의 발언만 봐도, 2005년 정동영 특사 면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2009년 10월 원자바오 중국총리와의 회담, 2011년 10월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과의 인터뷰 등에서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거듭 밝혔다. 2018년 3월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에 따라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가장 최근에 현 집권자인 김정은이 직접 한 말이므로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그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만약 김정은이 말한 ‘선대의 유훈’인 ‘비핵화’가 핵포기를 뜻한다면 2012년 개정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고 2018년 신년사에서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성취’를 선언한 김정은은 선대의 유훈을 거역한 죄인이 된다. 핵개발 포기라는 유훈을 어기고 핵무기를 개발해서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습체제에서 수령의 유훈을 거역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김씨 가계에서도 결코 있을 수 없고 북한주민들도 수긍할 수 없는 중차대한 일 아닌가? 최소한 외세의 위협 때문에 핵을 개발해서 유훈을 어겼지만 외세의 위협이 사라지만 핵을 포기하고 유훈을 따를 것이라고 해야 맞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정일과 김정은 모두 핵을 개발하면서 선대의 유훈을 어겼다는 사실을 인정한 적이 없다. 이는 핵포기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공언하면서 핵무력이 선대의 염원이자 보검이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는 나라의 자주권을 믿음직하게 지켜낼 수 있는 최강의 국가 방위력을 마련하기 위해 한평생을 다 바치신 장군님과 위대한 수령님의 염원을 풀어드렸으며 전체 인민이 장구한 세월 허리띠를 조이며 바라던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틀어쥐었습니다.”
4월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과제는 김정은이 우리 특사단에게 말한 ‘선대의 유훈인 비핵화’가 우리가 이해하는 북한의 핵포기인지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선대의 유훈인 비핵화’와 신년사에서 선포한 ‘장군님과 수령님의 염원인 핵무력’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북한이 지난 30년간 우리를 기만한 ‘비핵화’의 연막을 거둬낼 수만 있다면 설사 외형상 성과 없이 끝나더라도 정상회담은 성공한 회담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지켜낸 위대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2. ‘비핵화’ 대신 ‘핵폐기’로 용어를 통일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남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위해 고안한 ‘비핵화’ 용어가 북한의 기만전술에 악용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 용어를 폐기해야 한다. ‘비핵화’ 용어를 고집하는 한 북핵협상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동문서답하듯 서로 다른 얘기를 하며 겉돌고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한미는 비핵화 대신 ‘핵폐기’(Nuclear Dismantlement)로 용어를 통일해야 한다. 미국의 역대 행정부는 지금까지 한국의 핵개발 포기라는 비핵화의 반쪽을 잃지 않고 한반도를 핵비확산 정책의 모델로 삼으려고 비핵화 용어에 집착했었다. 하지만 비핵화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실패했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는데도 이 용어를 고집한다면 관료주의의 타성과 책임회피로 비판 받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양국은 북핵관련 모든 공식, 비공식 무대에서 ‘핵폐기’로 용어를 통일해야 한다.
이와 관련, 북핵 완전폐기를 위해 고안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omplete, Irreversible, and Verifiable Dismantlement: CIVD)가 어느 순간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omplete, Irreversible, and Verifiable Denuclearization: CIVD)로 둔갑한 것도 문제이다. 예를 들어, 폼페오(Mike Pompeo) CIA 국장은 3월 11일 FOX News에 출연해서 북한이 CVID(denuclearizaton)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입장에서 CVID는 완전하고 불가역적이며 검증 가능한 주한미군 축출과 한미동맹 해체가 된다. 한∙미 양국은 CVID의 ‘D’가 Dismantlement, 즉 핵폐기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3. 남북정상회담은 북핵폐기에 집중하는 ‘원 포인트’ 회담이어야 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와 평화체제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정부의 기본방향은 옳다고 본다. 북핵위기가 심화된 것이 정상회담의 주요 계기인 만큼 경제지원이나 교류협력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다만, 평화체제 구축과 북핵문제를 한 번의 정상회담에서 일거에 타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평화체제 구축에는 오랜 시간과 신뢰구축의 과정이 필요하다. 과거의 단계적 접근법이 실패한 것은 접근방식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북한 정권의 집요한 핵개발 의지와 ‘비핵화’로 포장한 기만전술 때문이었다. Top-Down이든 Button-Up이든 상대가 딴 마음을 먹고 약속을 지킬 의지가 없다면 어쩔 수가 없다.
수소폭탄 실험까지 성공한 상대의 핵포기를 끌어내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 만약 북한이 핵포기의 대가로 ‘비핵지대화’의 전략목표인 주한미군 축출과 한미동맹 와해를 관철시키려 할 경우 우리는 정상회담 실패도 각오해야 한다. 훗날 역사는 그런 정상회담을 성공한 회담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대한민국을 지킨 지도자로 기록할 것이다. 상황이 엄중할수록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서두르지 말고 돌아가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일거에 난제를 해결하는 ‘원 샷’ 회담이 아니라 북핵폐기라는 하나의 의제에 집중하는 ‘원 포인트’ 회담이 되어야 한다.
4. 북핵폐기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정확하게 미국에 전달해야 한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비핵화는 북한의 핵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북한에 핵무기는 물론 핵개발 프로그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정의용 특사를 면담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인 후 트위터에 김정은이 “한국특사단과 동결이 아니라 비핵화에 대해 논의했다”며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했다. 백악관은 정상회담 수용 배경을 설명하면서 미국은 양보한 것이 없고, 김정은이 핵폐기에 대해 논의하는 데 동의했으며, 최대의 압박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대북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므니신(Steven Mnuchin) 재무장관은 3월 11일 NBC 방송에 출연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왔다면서 그것은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를 둘러싼 북한과 한미의 입장차이가 해소되지 않으며 북미 정상회담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나서 동문서답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볼튼 백악관보좌관은 3월 19일 RFA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포기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빨리하는 것이 좋다면서 북한이 리비아식 핵포기 용의가 없는 경우 정상회담은 아주 짧은 만남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말이 다를 경우 회담이 실패하는 것은 물론 예측불허의 트럼프가 북한에 속았다고 생각하는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더욱이 북미 정상회담은 한국이 주선하고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대외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만약 회담이 실패한다면 우리 정부가 국제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이 기대와 다른 입장을 제시한다면 실망한 트럼프가 우리 정부에 책임을 전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는 등 한국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정상회담 중재까지 받아들였으니 이제 한국이 미국을 따라야 한다며 군사옵션 사용에 동의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사이에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갖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바람직하다.
5. 이란 핵합의 파기 및 북미 정상회담 불발 가능성
폼페오와 볼튼이 각각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에 기용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것을 시사한다. 폼페오는 CIA 국장으로 재임하며 북한문제 전담조직을 창설하고 북핵문제 해법으로 정권교체까지 거론했고, 볼튼은 북한은 억지할 수 없으며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강성인물이다. 특히 이들이 이란의 핵활동을 동결한 2015년 핵합의(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에 비판적인 트럼프 대통령과 생각을 같이 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란 핵합의가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개발권을 인정했고, 각종 규제조항도 한시적이며, 이란이 조약파기를 선언하고 다시 핵개발에 뛰어들 경우 1년안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불안전한 합의라고 비판했다. 또한 핵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탄도미사일 개발과 중동지역의 테러 지원 등 중동평화를 해치를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합의 서명국들과 미 의회에 대해 이란 핵합의를 보완하도록 요구하면서 탈퇴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미 국내법에 따라서 주기적으로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 준수 의사를 의회에 밝히도록 되어 있는 데, 다음 예정일은 5월 12일이 기한이다.
이란 핵합의에 대한 트럼프의 비판적인 시각이 북미 정상회담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란 핵합의를 오바마 행정부의 실책이라고 주장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합의를 북한과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 큰 문제는 핵개발 과정에 있던 이란과 달리 이미 핵을 보유한 북한과는 이란 정도의 합의에 도달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에 임하는 미국의 결의를 과시하고 대북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평소에 비판적이던 이란 핵합의를 파기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란 핵합의 파기를 목도한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합의가 의미가 있을 지를 의심하면서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도 있다. 결국 트럼프가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면 김정은이 정상회담 자체를 보이콧 할 가능성이 크다. 강성 외교안보팀의 등장도 북한이 만나봐야 득이 될게 없다고 판단하고 회담을 거부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다.
6. 정상회담 이후에 대비해야 한다
정상회담은 최고 의사결정권자들 간의 회담이기 때문에 난국돌파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우리 정부도 그런 희망을 갖고 ‘톱 다운’(Top Down) 방식의 ‘원 샷’ 회담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도 정상회담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김정은이 최고 결정권자이기 때문에 빅딜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반면에, 정상회담은 외교협상의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정상회담에서 실패하면 더 이상 외교적 해법을 추구할 길이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앞으로 한반도 상황은 북미 정상회담의 성패에 좌우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도 중요하지만 후속적으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의 준비회담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어떤 경우에도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한국은 북핵위협에 대응한 핵억지력을 구축해야 한다.
▪ 북미 정상회담 성공 → 합의동결: 핵과 미사일 시험 모라토리엄, 영변 핵시설 활동 중단, 미 본토를 겨냥한 ICBM 동결 및 폐기, 검증 등 단계적 해법에 합의하고 북핵완전 폐기는 궁극적인 목표로 선언하는 수준에서 합의한다. 북한은 일정한 핵무력을 보유하게 되고 미국은 본토에 대한 핵위협을 해소함으로써 양측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방안이다. 대북제재가 상당부분 완화되고 북미 관계 정상화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북핵폐기가 언제 가능할지 기약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은 북핵위협에 상시 노출되는 처지가 된다.
▪ 북미 정상회담 실패 → 무력충돌 → 합의동결: 정상회담이 실패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군사옵션을 사용하고 이에 북한이 대응해서 국지적 무력충돌이 발생한다. 이후 중국, 러시아, 유엔 등의 중재노력에 힘입어 양측이 정상회담 성공때와 비슷한 수준의 합의동결을 이룬다. 역시 북핵폐기가 물 건너간 상태에서 한국은 북핵위협에 상시 노출될 것이다.
▪ 북미 정상회담 실패 → 무력충돌 → 자연동결: 정상회담이 실패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군사옵션을 사용하고 이에 북한이 대응해서 국지적 무력충돌이 발생한 후 대결국면이 지속된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ICBM을 포함하여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만큼의 핵전력을 갖춘 후 핵개발을 중단하고 유지 및 관리 단계에 들어간다. 역시 북핵폐기가 요원한 상태에서 한국은 북핵위협에 상시 노출될 것이다.
이와 달리,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할 수도 있다. 미국의 관료집단이 트럼프의 성급한 결정에 제동을 걸고 북한의 명확한 핵포기 의사를 먼저 확인하려 하거나 북한이 미국의 강성 외교안보 진영 등장과 이란 핵합의 파기에 반발하는 경우 정상회담은 불발될 수 있다.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문턱까지 간 것 만으로도 엄청난 정치적 이익을 챙긴 김정은으로서는 위험부담이 높은 정상회담에 굳이 나서려 하지 않을 수 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 북핵문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한 데, 역시 한국은 북한의 핵위협에 상시 노출되는 처지가 된다. 북핵위협에 대응한 새로운 핵억지태세를 시급히 구축할 수밖에 없다.
▪ 북핵협상 성공 → 합의동결: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북미 고위급회담, 4자회담, 6자회담 등을 통해 앞서 소개한 정상회담 성공 시에 가능한 수준의 동결에 합의한다.
▪ 무력충돌 → 합의동결: 트럼프 행정부가 제한적인 군사옵션을 사용하고 이에 북한이 대응해서 무력충돌이 발생한 후 국제사회의 중재로 합의동결이 이뤄진다.
▪ 무력충돌 → 자연동결: 트럼프 행정부가 제한적인 군사옵션을 사용하고 이에 북한이 대응해서 무력충돌이 발생한 후 대결국면이 지속된다. 북한이 ICBM을 포함한 다양한 핵무력을 갖춘 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유지 및 관리 단계에 들어간다.
▪ 자연동결: 북핵해결에 대한 외교적, 군사적 해법이 모두 가동되지 않고 대결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이 ICBM을 포함한 다양한 핵무력을 갖춘 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유지 및 관리 단계에 들어간다.
* 본 글은 03월 28일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제3차 KIMA FORUM’에서 발표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