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칼럼

Beawiharta ⓒREUTERS

Beawiharta ⓒREUTERS

동남아 전문가인 필자의 하루는 지역 관련 뉴스 읽기로 시작된다. 마침 지난 1월 20일 아침 태국의 The Nation에 실린 ‘2016년, 아세안에겐 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ASEAN Needs Stronger Leadership in 2016)’라는 제목의 칼럼이 눈을 끌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칼럼니스트의 글이다.

첫 줄부터 북한의 최근 핵 실험이 언급되더니 두 번째 문장에선 4차 북한 핵 실험에 대해 아세안 국가 외교장관들의 공동성명(1월 8일 자)이 너무 약하다고 비판한다. 칼럼은 2016년 의장국을 맡은 라오스의 리더십을 겨냥해 아세안이 지역 안보 문제에서 핵심 행위자(key player)가 되려면 어떻게 지역 안보 사안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충고로 끝을 맺는다. 칼럼의 저자는 꽤 균형 잡히고 아세안 사정에 정통할 뿐 아니라 옹호자이기도 한데 왜 북한 문제에 대한 아세안의 입장에 ‘평소와 달리’ 비판을 가했을까? 흥미로웠다.

그러면서 필자가 국내 한반도, 북핵 문제 전문가와 당국자로부터 자주 받았던 질문, “왜 아세안 국가들은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없는가?”에 대한 답을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질문은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북한의 핵 실험 같은 주요 사건이 터지거나 연례 아세안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에서 남북이 기 싸움을 벌일 때마다 거듭돼 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세안이 집합적으로, 회원국들이 개별적으로 한반도∙북한∙북핵∙통일 같은 문제에 기울이는 관심은 한국이 남중국해 갈등 같은 아세안의 안보 현안에 보이는 관심에서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이다. 우리가 보이는 관심만큼 우리에 관심을 갖는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아세안 관심의 한계

아세안 국가가 한반도 문제, 북한 문제에 큰 관심이 없는 이유는 뭘까. 아세안의 생각과 심리를 해부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아세안 내부 요인이다. 아세안은 국력의 크기가 다양한 국가의 모임이다. 이해관계가 저마다 다르다. 아세안 내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도 어렵다. 그런 나라들에게 한반도 문제는 한국, 북한뿐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같은 강대국과 관련된 현안인데다 핵무기 문제이기까지 하다. 개도국, 약소국 입장에서 이런 게임에 섣불리 끼어들다 자칫 자국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발을 안 들이는 게 좋다. 강대국의 고차원 게임이라서 개도국-약소국에 별 영향 미칠 것이 없다고 생각해 관심을 덜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아세안 10개국 모두 남북 동시 수교국이란 점도 변수다. 실제로 몇몇 국가는 남북에 기계적 균형을 추구한다.

두 번째로 한국의 문제다. 한국이 한반도 문제, 북핵 문제에서 우리 입장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할 때 아세안 국가들은 묻는다. “한국은 아세안의 안보 문제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동맹,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고 해도 자국 이익과 관계 없이 다른 나라를 선뜻 돕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가 우리보다 약소국일 때는 더욱 그렇다. 한국이 아세안 안보에 관심도 없고, 아세안 안보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도 별로 없는 마당에 아세안이 발벗고 나서 한국을 지지하고 도울 이유는 없다. 한국이 남중국해 문제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해 왔듯 아세안도 한반도 문제에 대해 같은 태도를 취한다.

세 번째로 한반도 현안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이해 수준 문제다. 이들 나라들은 기대와 달리 한반도 문제, 북한 문제, 북핵 문제를 깊이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룬다는 동남아 국가들의 안보 전문가를 만나 본 일이 없다. 관심 있는 안보 전문가도 별로 없다. 한류와 한국에는 관심이 높아도 한국의 국제 관계나 안보 문제에 대한 동남아 전문가들의 인식, 이해는 놀라울 정도로 낮다. 지식도 피상적이다. 그러나 이를 동남아 국가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한반도 문제가 자국 안보와 직접 큰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 마당에 자세히 알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동남아 국가들이 한반도 문제에 명확한 입장을 내기는 어렵다.

 

한국의 전략은 옳았나?

그렇다면 이런 나라들을 상대로 지지를 호소해 온 한국에는 문제가 없는가? 한국은 ‘다소’ 잘못된 가정과 전략 아래 아세안 국가들에게 한국 안보 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촉구해 왔다.

우선 동남아 국가들도 우리만큼 한반도 문제를 생각할 것이란 잘못된 가정의 문제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와 북한 문제를 우리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보는 아시아 지도, 동북아 지도의 중심에는 늘 한반도가 있다. 동북아 안보, 전략의 중심은 한반도이며 모두 다 우리처럼 이 문제에 관심이 있을 것으로 여긴다.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하고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시작한다. 그런데 정말 누구나 다 그럴까.

아시아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다른 지도를 보고, 다르게 지정학적 계산을 한다. 한반도는 중심이 아니다. 그 결과 아세안 국가들은 북한 핵 문제에서 직접적인 안보 의식을 가질 수 없다. 그런 나라를 설득하기는 힘들다.
두 번째, “그 동안 아세안 국가를 얼마나 지원해 줬는데 우리 입장을 지지하지 않느냐”라는 한국적 인식의 문제다. 한국 공적 원조의 25%가 동남아 지역으로 갈 만큼 지원 규모가 큰 것은 사실이다. 양측 무역도 활발하고 한국 기업의 투자도 많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은 동남아에 우리의 몇 배 큰 원조를 공여하고 투자를 한다. 단적으로 일본은 한해 약 40억 달러 즉, 한국의 10배가 넘는 원조를 동남아 지역에 공여하고 있다. 미국(72억 달러)과 유럽 역시 한국보다 훨씬 큰 손이며 아세안의 안전 보장에 이들은 더 중요한 변수다. 한국의 투자와 원조가 아세안 국가에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도 지원, 투자 때문에 이 나라들이 한반도 문제, 북핵 문제에서 한국을 무조건 편들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원조와 투자를 대가로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을 지지하도록 만든다는 전략도 설득력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의 안보 현안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우호적 지지를 확보하려면 무조건 지지를 요구하기보다 다음과 같은 노력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먼저 한국이 아세안, 아세안의 안보 문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 문제에 상호 협력 해야 한다. 우리가 지지하고 돕는 만큼 아세안도 한국 안보 문제에 관심을 둘 것이다. 두 번째 이를 위해 2013년 시작된 한-아세안 안보대화(Korea-ASEAN Dialogue)를 활성화 해야 한다. 한-아세안 대화의 부대 회의가 아닌 별도 회의로 키워야 한다. 모든 협력 사안을 논하는 한-아세안 대화와 별도로 한-아세안 안보대화를 열어 양자 간 안보 현안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나아가 아세안이 안보 문제 논의에 소극적이라고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들을 이끌(lead) 것인가를 고민하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장을 통해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동남아 국가들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를 피부에 와 닿게 설명해야 한다.

세 번째,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아세안 내에 한국 문제 전문가를 양성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어와 한국의 사회∙문화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 대외 관계, 그리고 안보 문제의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한국 안보 현안의 심각성을 아세안에 알리고 양측의 안보 협력을 심화시키는 중추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아세안을 보는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국제 관계에서 한국과 한반도 문제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가끔은 우리의 심각한 현안이 그들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보일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효과적인 접근법이 생긴다. 작은 국가들, 우리의 지원을 받는 국가들은 당연히 우리 입장을 지지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개도국, 약소국과 이야기 할 때 가려운 부분을 먼저 긁어주는 접근이 필요하다. 외교에는 작은 일도 없고 작은 국가도 없다. 외교무소사(外交無小事)라는 주언라이 (周恩來)의 말을 새겨 야 한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