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서울경제] 2012-07-10

고래잡이 재개 서둘지 말자

신창훈 아산정책연구원 국제법및분쟁해결연구실장

정부는 지난 4일(현지시간)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IWC) 회의에서 국제포경규제협약이 허용하는 ‘과학적 연구 목적의 포경’을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우리나라는 포경에 반대해온 호주 등 여러 국가들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고 있다.

포경 재개 방침이 국제포경규제협약 및 IWC의 목적ㆍ역할과 상충하기 때문이다. 1946년 국제포경규제협약이 채택되고 IWC가 설립됐을 당시에는 고래를 자원으로 봐 ‘지속 가능한 포경을 위한 고래자원 관리’가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나 1986년 상업적 포경을 전면 금지하는 모라토리엄이 통과된 후 협약과 IWC의 주된 목적은 고래를 자원으로 관리하기보다는 ‘멸종 위기의 고래를 보호’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일본에 대한 소송 ICJ에 계류 중

과학적 연구 목적의 포경은 IWC가 1986년부터 상업적 포경을 전면 금지하자 일본이 남극해에서 포경을 강행하며 내건 구실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궁색한 변명”이라며 일본을 비난해왔다. 일본이 한술 더 떠 남극해에서 밍크고래를 종전의 2배, 혹등고래와 참고래를 50마리씩 더 잡겠다는 고래 연구 프로그램(JARPAⅡㆍJapan Whale Research Program under Special Permit in the Antarctic Ⅱ)을 발표하자 호주 등은 국제포경규제협약을 포함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2010년 5월30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이 사건은 양측이 변론서를 제출하는 등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작살을 이용해 고래를 잔혹하게 죽이는 포획방법도 윤리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돼왔다.

우리 정부가 일본과 동일한 목적을 내세우며 포경을 재개하겠다고 한 것은 시기적으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호주와 포경금지 동조국들이 “포경금지 의무는 국제관습법상의 의무”라고 주장하며 소송까지 진행 중인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한국이 노골적으로 일본 편을 들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종전까지 일본처럼 과학적 연구 목적의 포경이라는 관행을 선택한 적이 있는 국가는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뿐이었다.

우리 EEZ에서의 포경과 일본의 관할해역 밖(남극해) 포경은 법적 측면에서 매우 다르기는 하다. 단순한 고래잡이 재개 통보만으로 국제사회의 구체적 대응조치가 발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2009년부터 의혹의 대상이 됐던 불법 고래잡이 문제가 이제는 과학적 연구 목적을 위한 고래잡이와 뒤엉켜 ‘씨 셰퍼드(Sea Shepherd)’와 같은 국제환경단체로부터 보다 극단적인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도 커졌다.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고래고기가 일본에 불법 유통되는 사례가 발생한다면 고래잡이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국가들이 보복 조치를 할 가능성도 있다.

국제사회 보복조치 자초할 수도

정부 계획대로 내년부터 우리 EEZ에서 과학적 연구 목적의 고래잡이를 해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일본ㆍ노르웨이ㆍ아이슬란드 등 지극히 일부 국가만 허용하는 고래잡이를 우리가 허용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얼마나 될까. 정부는 고래잡이 재개에 관한 정책 결정을 하기 전에 우리의 고래고기 식문화와 산업이 26년간의 단절을 뒤엎어버릴 만큼 중요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돼 있는지, 잔혹하지 않은 방법으로 고래잡이를 할 수 있는지,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긴급한 현실적 이익이 존재하는지, 고래고기 불법 유통을 방지할 구체적 방안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사전 설명을 국제사회와 우리 국민에게 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