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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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새벽 2시, 남과 북은 ‘무박4일’의 긴 마라톤 협상 끝에 목함지뢰 사건으로 촉발된 군사적 대치상황을 해소하는 6개 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일각에선 대성공이라고 평가하지만 목함지뢰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 대북방송 중단 등의 합의를 보면 미완의 성공이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순연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북한이 ‘사과’가 아닌 ‘유감 표명’에 그친 점이 크게 부족하다. 다만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의 유감 표명은 5회에 불과했었다는 점에서 평가에 인색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정부가 요구한 재발방지 문제가 후속회담 논의로 미뤄진 것은 크게 아쉬운 대목이다. 두 번째로 민간교류, 이산가족 상봉 등 의제를 확장함으로써 앞으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고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남북관계 진전을 결정적으로 가로 막고 있는 군사안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에 대한 방향이 제시되지 않아 미흡함이 남는다.

이와 같은 아쉬움과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고위급협상 타결을 계기로 남북 관계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이에 앞으로의 남북관계 운영과 관련해 몇 가지를 살펴 보고자 한다.

먼저 북한에게는 무엇보다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북한은 우리의 안보태세와 강력한 대응의지를 두려워한다. 이번 위기 상황과 2013년 개성공단 폐쇄 위기 때 보여준 북한의 행태는 이를 증명한다. 우리가 안보태세를 튼튼히 하고 원칙에 입각한 일관된 입장을 견지할 때 북한은 대화에 나오고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사태가 전개되는 동안 우리는 안보태세를 강화하면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그 결과 북한은 대화와 협상으로 나왔다. ‘살려고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한미연합방위의 중요성도 재차 부각되었다. 사태의 전 과정에 걸쳐 미국은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조율하면서 대한(對韓) 안보방위공약을 지속적으로 확인함과 동시에 필요할 경우 B-52 전략폭격기, 스텔스기,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을 배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북한을 압박했다. 공고한 한미연합방위 태세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북한에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북한이 우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요구를 수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빛 샐 틈 없는’ 한미공조와 공고한 한미연합방위 태세는 북한을 다루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건임이 다시 확인됐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고 신중하게 대응한 우리 국민들의 자세도 평가 받아야 한다. 사재기, 현금인출 같은 사회적 동요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남남 갈등도 없었다. 전우들과 함께 하겠다며 전역과 결혼을 연기하는 군인들,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겠다는 예비군들의 당찬 모습은 그간 제기돼 온 ‘젊은 세대의 안보불감증’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 줬다. 국민의 단합된 자세는 정부가 자신감을 갖고 북한에 당당하게 대하며 사태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우리 내부의 갈등은 북한만 이롭게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국민들이 단합해 북한을 상대할 때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번 합의를 기점으로 남북관계에 대한 희망과 욕구가 증가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평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제시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과도한 희망과 성급함은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먼저 정부는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조급한 태도를 보일수록 북한은 이를 악용할 것이고 우리가 치러야 하는 비용도 커진다. 시간표를 따르려 하지 말고 실질 성과를 중심으로 남북 관계를 운영해 나간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사안의 경중과 시급성에 근거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차분히 그러나 철저하게 따지면서 해결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할 때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따라서 고위급회담 이후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우선 과제로 해결해야 할 것인지를 정하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산가족상봉이나 민간교류 활성화보다 당국간 후속회담에 무게를 싣고 재발 방지 방안에 대한 합의 도출과 이행 담보에 전략적 중심을 두어야 한다.

대북억제태세와 전략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철저히 복기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목함지뢰 사건과 북한의 포격은 대북감시태세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더구나 대북감시태세가 격상돼 있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포격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하고 예방도 못했다. 나아가 지금까지 호언해 왔던 즉각 대응이나 원점타격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였다. 한마디로 위기관리에는 성공했으나 예방에는 실패했다. 군은 이를 철저히 반성하고 대책 강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군의 대북억제태세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고, 결심하고, 때린다’는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보고, 듣는’ 대북감시능력을 최단시간 내에 획기적으로 증강시킴으로써 상시 감시체제를 유지, 보복적 억지가 아닌 예방적 억지에 충실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은 역설적으로 한·미·중 3국 협력 가능성을 높였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한미중 3국의 공통 목표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미·중 3국간 정책협의와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9월 초 중국을 방문하고, 10월 16일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두 정상회담은 대북정책에 관한 한·미·중 협의를 강화하고 공통의 접근방안을 만들 수 있는 호기다. 북핵을 넘어 북한 문제 전반에 관한 포괄적이고 입체적인 대북 정책을 마련해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고 협조를 확보, 한국이 주도하는 대북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