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남중국해 갈등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질서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중심적인 사안이다. 수많은 분석들은 일정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먼저 각 행위자들이 국가 이익을 상정하고 이를 대전략(grand strategy)과 치밀한 세부 전술을 통해 실현한다고 보는 가정이다. 특히 중국은 지정학적∙지경학적 이익, 국내 정치적 사정까지 반영해 ‘남중국해 대전략’을 세우고 그 전략 아래 주도면밀하게 이익을 확장하고 있는 나라일 것으로 전제된다.

그러나 중국이 주도면밀한 정책을 펴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2009년 이후 중국은 남중국해와 관련해 자기주장을 강화하고 이를 군사적 행동으로 뒷받침했다. 그러나 중국의 자기주장 강화는 구체적 전략과 계획 없이 추진돼 결과적으로 실패한 정책이 됐다. 득보다 실이 컸다. 중국이 꿈꾸는 장기적 이익과 비전을 실현시키는 구체적 전술과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없다. 중국이 상정하고 있는 남중국해에서의 국익은 장기적 이익인 반면, 자기주장 강화와 군사적 행동에 따른 손실은 단기적이며 지금 당장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남중국해 정책 실패는 안이한 상황 판단, 세밀한 전략 부재에서 비롯됐는데 2009년 이후 세 사건이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 중국은 2009년 유엔대륙붕한계위원회에서 동남아 국가들이 취한 행동에 당황해 느닷없이 ‘과도한’ 군사력을 동원, 이들 나라를 압박했다. 치밀한 장기 계획 없이 밀어붙인 것이다. 두 번째, 이런 대응은 미국의 ‘아시아 피봇(Pivot to Asia)’ 정책의 성격을 군사적 관여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매우 꺼려했던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강화와 남중국해 문제의 ‘국제화’라는 결과가 초래됐다. 마지막으로 9단선(nine dash line) 문제를 국제중재재판소로 가져간 필리핀에게도 역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재판 결과로 인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2009년 이후 강화된 중국의 자기주장

중국의 남중국해 정책 변화

최근까지 중국은 군사적 행동과 강력한 자기주장을 비교적 자제해 왔다. 중국은 오랫동안 장기적 관점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접근했다. 1986년 덩샤오핑 (Deng Xiaoping)은 당시 필리핀 부통령과의 대화에서 “남사군도(Spratly Islands) 문제는 잠시 유보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영토 분쟁)가 중국과 필리핀, 중국과 다른 국가들의 우호 관계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덩샤오핑은 또 1988년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 당시 필리핀 대통령에게도 “많은 세계지도에 남사군도는 항상 중국의 영토로 표시되어 왔다.1 남사군도는 중국에 속한다”라면서도 “양국 우호 관계의 관점에서 잠시 이 문제는 접어두고 공동 개발의 접근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2 중국은 2002년 동남아 국가들과 남중국해 영토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무력사용을 자제한다는 ‘남중국해에서의 당사국 행동선언(Declaration on the Conduct of Parties in the South China Sea, DOC)’도 체결한 바 있다.3

DOC 체결 이후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남중국해는 2009년 이후 다시 갈등에 휘말린다. 신미국안보센터(Center for New American Security)의 남중국해 분쟁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00년~2008년 9년간 충돌 및 긴장 사례는 총 15건이다. 중국과 동남아, 중국-미국의 충돌이 다 포함된 숫자이다. 이에 따르면 2007년에는 한 건의 충돌도 없었다. 그러다 2009년~2012년 4년간 충돌 및 긴장 사례가 37건으로 급증했다. 2009년 3건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6건,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14건의 충돌이 있었다. 2009년 이전 연간 1.6건이던 충돌이, 2009년 이후 연간 9.3건으로 급증했다.

동남아 국가들과 일상적으로 충돌하는 가운데 중국은 최근 2년간 남중국해의 암초들에 군사시설을 세우는 등 영토 확장 작업을 지속해 왔다. 2014년부터 피어리 크로스 리프(Fiery Cross Reef), 게이븐 리프(Gaven Reef), 남존슨 리프(Johnson South Reef), 휴즈 리프(Hughes Reef) 등에서 간척 사업을 벌이고 활주로 및 군사시설을 확장했다.4 중국은 이런 시설들이 어선 등의 대피를 위한 인도적 시설이라고 주장하지만 언제든 군사 목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직접 도발도 했다. 베트남이 강력히 항의하고 반중국 시위를 벌이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은 베트남의 경제 수역에 석유시추선을 들여보내 탐사작업을 벌였다. 2016년 2월에는 우디섬(Woody Island)에 HQ-9(중국명 紅旗, Hong Qi)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했다.5

중국 외교 방향의 전환: Assertive China

2009년 이후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보인 행동은 1차로 외교정책의 방향 전환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돼야 한다. 이 시기를 전후로 중국의 외교정책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전환한다. 다소 복잡한 두 개의 흐름, 즉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중첩되며 발생한 상황이 이런 전환의 큰 배경이 된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는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진행되어 왔다. 중국이 자유주의 없는 자본주의적 성장을 빠르게 이루며, 중국식 사회주의 혹은 중국식의 국가자본주의가 경제성장의 효율성 면에서 시장자본주의에 비해 우월한 것이 아닌가라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6

경제성장뿐 아니라 종합적인 국력 차원에서 중국과 미국이 대등한 정도로 발전했다는 관찰이 2000년대 중반부터 나왔다. 2005년부터 회자된 G2라는 담론이 그것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2000년대 후반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지역의 경쟁 상대인 일본의 경제력을 곧 앞설 것이라고 전망됐고 이는 2010년 현실화되었다. 2015년 중국의 구매력 기준 GDP는 미국을 앞서기도 했다. 군사력 측면에서도 중국의 군비 상승폭은 미국보다 훨씬 컸고 머지 않아 미국의 군사력을 앞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2000년대에 지속적으로 제기됐었다.

<표 1. 2000년 이후 미-중 군비 지출과 증감률 비교>7

단위: USD 백만 달러, %

표1. 2000년 이후 미중 군비지출과 증감률 비교

2009년 중-미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핵심 이익(core interes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8

이는 미국으로부터 중국의 핵심 이익을 보장받고, 확보된 이익을 바탕으로 아태 지역에서 미-중 간 세력 분할을 추구한다는 개념이었다. 2012년 중국의 외교정책 방향은 더 구체화 돼 신형 대국 관계(New Type of Major Powers Relations)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9

그리고 시진핑 주석은 2013년 중-미 정상회담에서 “거대한 태평양은 세계 두 강대국, 즉 미국과 중국의 발전을 수용할 충분한 공간이 있다(the vast Pacific Ocean has enough room to accommodate the development of the two great powers in the world, namely China and the United States)”는 말로 신형 대국 관계의 구체적 모습을 표현한 바 있다.10

2007년 결정된 대강의 외교정책 방향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스스로의 힘뿐만 아니라 미국의 상대적인 힘도 고려에 넣게 된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는 ‘글로벌 유일의 강대국, 미국’이라는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힌다. 미국의 쇠퇴(US in Decline)라는 전망까지 나왔다.11 미국의 경제적 곤경, 글로벌 차원의 영향력 쇠퇴에 관한 전망은 상대적으로 중국 힘의 상승을 의미했다.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매우 중요한데, 이는 중국으로 하여금 자신의 힘에 대한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했다. 그리고 이런 착시현상은 갑작스럽게 중국이 공세적인 대외 정책과 주변부 정책을 추진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미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2000년대 초부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의심은 시작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의 전쟁이 지지부진하면서 미국의 군사력뿐 아니라 종합적인 힘에 대한 의문이 증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적 일방주의로 인한 도덕적 타격까지 더해졌다.12

테러와의 전쟁이 특히 아시아 방면에 대해서 갖는 함의는 미국이 아시아 방면에서 중국의 부상을 적절히 견제할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중동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던 시기이다. 한번 중동에 발을 넣은 미국은 중동 지역을 쉽게 빠져 나오지 못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Arab Spring)은 지속적으로 미국의 관심과 역량을 중동지역에 붙잡아 두게 했다. 이렇게 미국이 중동지역에 많은 자원과 시간을 투입하는 사이 중국은 아시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했다. 미국의 힘에 대한 의심이 증대되고, 상대적으로 중국이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성장하는 두 가지 현상이 맞물리면서 자신의 힘에 대한 중국의 과신이 나타났다. 결국 이는 미국을 누르고 아태지역에서 헤게모니를 빨리 성취하려는 중국의 공세적 대외 정책을 가져왔다.
 

중국의 남중국해 대차대조표

갑작스럽게 자기주장을 강화하는 것이 과연 중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자기주장 강화가 2009년 이후 초래한 손실은 이익에 비해 훨씬 직접적이고 크다. 남중국해와 관련한 중국의 이익은 거의 다 장기적으로나 실현될 이익이다. 그에 비해서 손실은 매우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장기적 이익

중국이 남중국해에 9단선을 설정하고 그 대부분을 영토로 주장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정학적∙지경학적 국가이익을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중국해의 지배와 통제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남중국해는 거의 유일하게 중국에게 허락된 해양 출구이다. 중국은 경제성장으로 강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대륙 세력(land power)에서 확장하여 해양 세력(sea power)까지 추구하고 있다. 의도대로 된다면 중국은 대륙 세력인 동시에 해양 세력인 최초의 강대국이 될 수도 있다. 해군력을 강화하고 대양해군(blue water navy)을 추진하는 최근의 움직임은 이런 의도를 반영한다.13

두 번째, 중국은 안보를 위해 남중국해에서 자율적 공간을 확보하려 한다. 군사력, 특히 해군력이 약했던 시기 중국은 남중국해를 통제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없었다. 반면 미국은 남중국해는 물론 전 세계 바다를 연결해 미국의 전략적 해양 수송로(Sea Lane of Communication, SLOC)를 만들고 이를 통해 전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남중국해 바다와 상공에서 미국은 자유롭게 정찰하며 해양 수송로를 유지, 강화해 왔다. 군사적, 경제적으로 성장한 중국에게 이 같은 미국의 군사적 행동은 점차 위협으로 간주됐다.

중국은 이에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해안에서 최대한 멀리 밀어내고 전략적 공간을 확장하려 해 왔다. 미국의 공해전(Air-Sea Battle) 전략이 등장한 배경도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 Area-Denial: A2AD)전략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14 중국의 군사적∙전략적 이익은 적어도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자유로운 행동을 제약하는 동시에 미국의 감시에서 벗어난 공간을 확보하며 나아가 남중국해 전체를 중국의 공간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지경학적 측면에서도 남중국해에 걸린 중국의 이익은 크다.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에 필요한 에너지 자원을 중국은 상당 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이는 향후 심각한 에너지 안보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15 이런 가운데 남중국해 해저에는 상당한 에너지 자원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에너지 정보국(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에 의하면 약 110억 배럴의 원유와 190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이 보고서가 인용한 다른 수치들을 보면 미국지질연구소(US Geological Survey)는 남중국해의 자원 매장량을 원유 50~220억 배럴, 천연가스 70조~220조 입방피트로 추정한다. 반면 중국국영석유회사(Chinese National Offshore Oil Company)는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을 더 크게 보고 있는데, 각각 1,250억 배럴, 500조 입방피트가 매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16

어업 문제도 있다. 중국 남부를 포함, 남중국해를 둘러싼 해안에는 약 2억 7천만 명이 살며 이들의 상당수가 생계를 어업에 의존한다. 저소득층에게 어업은 주 소득원이자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그런데 무분별한 어획으로 근해의 수산 자원이 줄어들자 어선들은 점차 먼 바다로 진출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국가 간 갈등은 국적이 다른 어선 간에 어장을 놓고 벌이는 경쟁과 그에 따른 충돌에서 시작돼 왔다.17

지경학적 이익에는 전략적 이익도 포함된다. 남중국해를 장악하거나 통제함으로써 주변국, 나아가 글로벌 경제에 중국은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남중국해는 연간 5조3천억 달러에 달하는 물동량이 통과하는 세계 무역의 가장 중요한 항로 중 하나다.18 전 세계 석유 수송의 1/3, 천연가스의 절반 이상, 일본과 한국으로 들어오는 석유의 90%, 천연가스의 33%뿐 아니라 중국이 수입하는 석유의 75%가 이 항로를 지난다.19 남중국해를 중국이 장악한다고 이들 국가들이 즉각 무역 및 에너지 수입에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유사시에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에너지 자원과 상품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통제할 수 있으며 이는 주변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기로 활용될 수도 있다.

<그림 1. 남중국해에 걸린 중국의 이익>

그림 1. 남중국해에 걸린 중국의 이익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직접적인 손해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해양 영토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난제다. 두 국가 간 영토 갈등은 양자 관계가 우호적이라고 해도 매우 민감하고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남중국해 갈등은 양자 문제가 아니라 다자간 문제라는 점이 해결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남중국해 곳곳에서 두 개 국가 이상의 영토 주장 혹은 배타적 경제수역 같은 해양영역에 대한 권리 주장이 겹친다. 가장 심한 남사군도의 경우 남서쪽 끝 부분에는 중국과 필리핀뿐만 아니라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대만의 주장까지 겹친다. 어렵게 두 국가 사이에 양자 간 영토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그 타협안을 놓고 나머지 국가들과 또 협상을 해야 해 해결이 쉽지 않다.

중국의 경제적 이익인 해저 에너지 자원 통제도 영유권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중국의 해양세력화, 대양해군 건설,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영향력 차단이라는 과제도 한두 해 사이에 효과를 보고 확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 영토 경계 획정처럼 눈에 보이거나 숫자로 증명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중국이 자기 주장을 강화한다 해도 실제로 중국이 실현할 수 있는 이익은 이처럼 먼 훗날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이에 반해 중국이 자기 주장을 강화하는 데 따르는 손실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발생한다. 2009년 이후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자 글로벌 차원에서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다. 중국의 미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가운데 등장한 강한 자기주장, 군사적 행동은 글로벌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겠다는 중국 스스로의 약속에 배치되고 중국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남중국해 영토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는 모습은 무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합병한 러시아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이런 이미지는 시진핑 주석이 2014년 아시아교류와 신뢰구축 회의(Conference on Interac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in Asia, CICA)에서 밝힌 ‘아시아 신안보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20

중국의 강한 자기주장, 군사적 행동은 영토 분쟁 당사국인 아세안 몇몇 나라를 비롯해 주변국의 안보 불안도 가중시킨다. 1990년대 이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천안문 사태와 같이 중국이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했을 때 편을 들어 준 아세안 국가들과 중국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중국은 아세안 국가들의 지지와 신뢰를 얻기 위해 1990년대 이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21 주변부의 안정이 중국의 안정과 성장에 직결된다는 입장을 취해 왔으며, 중국의 지역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도 주변 국가들을 반드시 우호 세력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2009년 이후 중국이 보여준 남중국해에서의 공세적 행동은 지난 20여 년간 엄청난 자원을 투입한 대 아세안 외교를 무위로 돌리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나아가 시진핑이 2014년 CICA회의 연설에서 간접적으로 비판한 미국의 아시아 개입에 오히려 정당성을 제공한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개입, 특히 피봇 정책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남중국해 주장을 강화하고 군사력을 늘릴수록 지역 국가들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강력한 지역 균형자를 원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필리핀, 베트남과 미국의 깊어지는 군사협력, 미국 피봇 정책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우호적 태도 등은 중국의 위협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자구책이다. 중국의 군사적 주장이 강화될수록 일본, 호주, 멀리는 인도까지 미국의 균형자 역할을 지지하게 된다. 미국의 개입 강화와 이에 대한 지역 국가들의 긍정적 반응은 결국 중국이 지역에서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 달성에 큰 차질을 빚는다.
더욱이 남중국해는 중국이 추구하는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一帶一路) 이니셔티브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일대일로의 한 부분인 해양 실크로드는 남중국해에서 출발해 바로 동남아시아로 이어진다. 따라서 중국이 이들 국가와 협력하지 않고 군사적 움직임을 강화한다면 이는 해양 실크로드를 통한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 공동 번영, 지역 평화라는 이상을 심각하게 퇴색시키게 된다. 중국이 2009년 이후 남중국해에서 보여 온 모습은 중국의 일대일로, 더 정확하게는 해양 실크로드의 건설이라는 비전과 양립되지 않는 모순이다. 중국발 남중국해 갈등, 군사적 행동 강화로 해양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동남아 국가와의 관계부터 단추를 잘못 끼우는 셈이다.
 

2009년 이후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실패

2009년 이후 남중국해에서 펼친 중국의 군사적 행동은 잘 짜인 계획에 따른 일련의 계산된 행동이라고 보기 힘들다. 중국에게 큰 목표는 있었지만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 전략은 없었다. 중국은 남중국해 상황이 변하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해 왔다. 이런 대응은 효과적이지도 않았고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았다. 2009년 이후 세 장면, 즉 남중국해 대륙붕 한계 설정, 미국의 군사적 재균형 정책 강화, 그리고 국제중재재판의 중국 9단선에 관한 판결에서 이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륙붕한계설정과 국제중재판에 나타난 중국의 오판

유엔해양법협약 당사국총회는 2008년 유엔해양법협약(UN Conventions on the Law of the Sea) 76조에 따라 조약 가입 국가들에게 자국 대륙붕이 배타적 경제수역의 한계인 200해리 밖으로 자연적으로 연장되는 경우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정보를 2009년 5월까지 제출할 것을 권고하도록 결정했다. 이에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는 공동으로 2009년 5월 6일 남중국해에서의 자국의 대륙붕 한계에 관한 정보를 대륙붕한계위원회에 제출했다.22 반면 중국은 남중국해와 관련된 자국 정보를 제출하지 않았다. 2009년 5월 11일 일본, 한국에 면한 동중국해(East China Sea)와 관련한 중국의 대륙붕한계에 대한 예비정보(preliminary information)만 제출했을 뿐이다.23

중국은 말레이시아-베트남이 제출한 정보에 크게 반발했다. 제출 바로 다음 날인 2009년 5월 7일 유엔 주재 중국대표부는 대륙붕한계위원회에 제출한 서한을 통해 “중국은 남중국해의 섬들과 인접 수역에는 명백한(indisputable) 주권을 갖고 있으며 관련 해역과 해저 및 그 하층토에는 주권적 권리와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이런 입장을 꾸준히 견지해왔으며, 이는 국제사회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24 서한에는 남중국해 지도가 첨부돼 있었으며 중국은 이를 통해 처음 공식적으로9단선을 국제사회에 주장하기 시작했다. 2011년 4월에 제출한 필리핀의 의견서에 대한 반박 서한에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주권과 관할권은 매우 많은 역사적, 법적 증거에 의해서 뒷받침된다”는 견해를 추가했다.25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동남아 국가들과 벌이는 경쟁 상황에 대해서 다소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동중국해에 대해서는 예비 정보를 제출했지만 남중국해 방면에 대해서는 전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두 해역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는 중국의 실수다. 또한 중국이 국제법적 문제나 전체적인 남중국해 전략에 있어 치밀한 계획이 없었고 상황 판단 역시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이 이후 남중국해에서 갑작스럽게 공격적인 정책을 펴게 된 출발점이 된다.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우선 중국은 남중국해가 중국의 당연한 영해이므로 대륙붕 한계에 관한 논의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남중국해를 중국의 주권적 공간으로 선포해 온 만큼 동남아 국가들이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고 국제 무대에서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대 이래로 중국이 동남아 국가와 구축해 온 신뢰 관계, 그리고 중국이 동남아에 대해 가진 영향력을 감안할 때 동남아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이런 계산을 바탕으로 중국은 남중국해 방면 대륙붕한계 정보 제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베트남과 말레이시아가 계산과 다르게 나오자 중국은 크게 당황했다. 이는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던 기존의 태도를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2009년을 기점으로 남중국해에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중국의 행동과 이에 기반한 충돌이 급격히 증가했다. 당시까지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에게 경고 정도만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들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해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태도변화는 뜻하지 않게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초래했고 중국은 구체적 전략이나 계산 없이 끌려가게 되었다.

국제중재재판의 남중국해 판결

2013년 1월 필리핀 정부는 남중국해 분쟁을 국제중재재판으로 끌고 갔다. 그간 필리핀은 스카보로 숄 등에서 중국과 직접 충돌했다. 중국 해양 경비대도 필리핀 어선의 어로 행위를 방해해 왔다.26 그러자 필리핀은 중국이 주장하는 9단선의 국제법적 지위와 중국이 설치한 해상 구조물의 성격, 필리핀이 어업을 지속할 수 있는 권리 등에 관한 국제 법정의 해석을 구한 것이다. 중국은 필리핀의 주장을 거부하면서 중재재판이 이 문제에 관한 결정권이 없으며 재판 과정에 참여하지도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예상대로 2016년 7월 12일 중재재판은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27 판결은 우선 9단선의 역사적 근거가 국제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남사군도에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할 수 있는 어떤 구조물도 없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중국이 필리핀의 전통적 어업 권리에 가한 일방적 제한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되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건설하면서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판결이 나오자 중국은 국제중재재판은 아무 근거가 없는 제도이며 따라서 판결은 무효라는 입장을 다시 밝혔다. 중국 정부는 외교부 성명을 통해 “[국제중재재판의] 판결은 무효이며, 아무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중국은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고 했다.28 반면 당사국인 필리핀은 물론 미국, 일본, 호주는 중재재판 결과를 옹호하고 중국에게 이를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29 이번 판결로 중국이 남중국해 영토 주장을 그만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중국은 판결 직후 중재재판은 영토 문제에 대한 관할권이 없음을 주장하며 중재재판의 판결에 구애 되지 않고 향후 동남아 국가들과 양자적으로 영토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30 중국은 9단선 주장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자 지난 수개월간 논란의 초점이 되었던 9단선, 항행의 자유라는 남중국해 프레임을 벗어나 다시 영토 분쟁으로 돌아가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중국은 2013년 제소부터 2016년 최종 판결까지 남중국해 문제에서 정교하고 잘 계산된 전략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국제법과 국제법의 근거인 현 국제 관계 질서와 국제사회 여론에 대한 심각한 상황 판단 오류도 드러낸다. 중국은 아세안 내 분쟁 당사국이 아닌 국가들을 규합해 중국을 지지하게 만들어 아세안을 분열시키고 아세안의 내적 단결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취해 왔다.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아세안 내에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해 내적 분열을 일으키는데 앞장섰다. 또한 자신의 힘을 과신한 중국은 소송 시작 이후 재판 무력화를 목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지지 세력을 규합하려 했다.31

중국의 오판은 쉽게 증명된다. 중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부록 1). 중재재판 판결 이전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여 중재재판이 불법적이라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국가는 10여 개국에 지나지 않는다. 입장을 공개하지 않은 국가가51개, 중국의 입장 지지를 거부한 국가가 4개, 그리고 중국의 입장과 반대로 중재재판이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다는 견해를 보인 국가가 40개에 이른다. 단순하게 보면 중재재판 전에 중국은 44:10으로 패한 셈이다.32

<그림 2. 국제중재재판에 대한 각국의 입장>33

그림 2. 국제중재재판에 대한 각국의 입장

중재재판 결과가 나온 후 이 판결에 관한 각 국의 반응을 봐도 마찬가지다. 8월 2일 현재 이 판결을 적극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국가가 7개, 판결을 준수하라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논평한 국가가 33개, 그리고 중립적 입장을 보인 국가가 9개, 마지막으로 판결 결과에 반대하는 국가가 중국을 포함해 5개이다. 결국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는 4개에 지나지 않고, 이번 판결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국가는 40개에 달한다 (부록2).34

<그림 3. 국제중재재판 판결 이후 각 국가의 논평>35

그림 3. 국제중재재판 판결 이후 각 국가의 논평

이번 판결을 두고 국제사회가 보인 반응은 지금까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취했던 강력한 자기주장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아직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국가들이 기존의 국제 질서와 제도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현 질서가 자신의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아직은 중국의 힘이 법과 제도에 기반한 현 질서를 넘어서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2009년 이후 남중국해에서 보여진 중국의 행동은 중국의 힘을 보여주었다기 보다는 중국이라는 큰 국가가 현존하는 질서를 깨뜨리고 그 밖에서 행동하려 한다는 우려만 만들어 냈다.

중국이 중재재판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9단선을 계속 고수하는 등 자기 주장을 강화하는 행동을 지속할 경우 더 큰 비난을 받게 된다. 이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제도와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며 글로벌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이미지 실추를 막을 수 없다. 이미지가 악화되면 향후 중국이 좋은 의도로 국제사회에 제안을 해도 의심을 받게 된다. 당장 일대일로, AIIB 등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계획들의 의도를 의심하는 국제사회 시각이 증대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009년 이후 중국의 자기주장 강화, 특히 남중국해에서의 힘의 과시는 중국이 의도하는 목표 달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자기주장 강화가 초래한 미국의 군사적 재균형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자기주장과 군사행동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나 중국의 주장처럼 미국의 재균형 정책이 남중국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하기는 곤란하다. 오히려 중국이 동남아와 남중국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것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성격을 군사적 개입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는 해석이 타당하다. 2009년부터 자기주장을 강화하기 시작한 중국은 이제 미국의 대 아시아 재균형 정책 때문에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중국이 동남아 국가들에게 적절히 힘을 과시해 자제시킨 뒤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명분 혹은 퇴로가 미국의 재균형 정책에 의해 차단된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2009년 아시아 피봇 정책이란 형태로 등장했다. ‘첫 번째 아시아-태평양 대통령’을 선언한 오바마는 새로운 다자주의와 경제적 관여를 피봇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다.36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009년 일련의 연설에서 이를 보다 구체화했다. 특히 오랫동안 미뤄왔던 아세안우호협력조약(ASEAN 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을 2009년 서명한 데서 동남아에 대한 피봇 정책의 구체성이 드러난다. 이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미국은 아세안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에 가입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었고, 2011년 러시아와 함께 EAS 회원국이 되었다.

경제적 관여 정책의 일환으로 환태평양경제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환태평양경제협정은 이전 부시(G. W. Bush) 행정부 말기에 시작된 것이지만, 부시 행정부는 공을 오바마 행정부로 넘겼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 환태평양경제협정을 경제적 관여의 핵심적인 도구로 채용했다. 특히 환태평양경제협정은 중국이 본격적으로 일대일로와 AIIB 등 경제적으로 아시아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전개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안보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의 초기 피봇 정책은 동맹 강화나 군사적 관여보다 지역의 다자 무대에서 안보와 전략적 이슈를 논의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2010년 7월 힐러리 클린턴 장관의 발언에는 미국이 EAS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치‧안보 제도(political-security institution)’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 있다. 이런 표현은 2010년 EAS 직전 장관의 하와이 연설에서도 확인된다. EAS본회의에서 “EAS를 ‘정상들이 친밀하고 비공식적으로 주요한 정치, 전략 이슈를 논의할 수 있는(leaders can have intimate and informal discussions on important political and strategic issues) 장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했다.37 직접적인 대중 견제, 군사적 관여 강화보다 다자 협력의 장을 활용한 견제에 무게를 둔 것이다.

그러나 피봇 정책은 2010년을 고비로 점차 군사적 관여, 남중국해 문제 제기를 통한 견제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한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 남중국해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시 불거진 지 1년 여 지난 시점이다. 2010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은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했고, 이에 중국은 강력히 반발했다. 2011년 이후 미국은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과 대립하는 국가를 지원하고, 지역 동맹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본격화 했다. 2011년 당시 베니뇨 아키노(Benigno Aquino III) 필리핀 대통령의 지원 요청을 받은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공식석상에서 남중국해를 서필리핀해(West Philippines Sea)로 부르며 직접 미 해군 함정에 올라 남중국해를 시찰하고 경비정 2척도 필리핀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중국을 ‘드러나게’ 견제하고 나섰다.38

2011년, 미국은 베트남과 정치, 안보, 국방 대화를 개최한 데 이어 첫 군사 협력 조치로 군사 의약품 연구 및 교류를 내용으로 하는 군사협정서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2015년 미-베트남 국방 관계 공동 비전 성명(US-Vietnam Joint Vision Statement on Defense Relations)으로 구체화 되면서 본격적으로 해양 안보 협력을 다루기 시작했다. 명백하게 중국과 베트남의 남중국해 갈등을 염두에 둔 국방 협력이다. 그리고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무기수출 금지 조치가 해제되었다.

2011년 EAS 참가 직전 호주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호주 다윈(Darwin)기지에 미 해병 250명 파병 방침을 밝히고 향후 4년간 2,500명까지 증원하는 동시에 미 공군기의 호주 방문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국방 예산의 삭감이 아태지역에 대한 국방 예산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Defense cuts will not —I repeat, will not —come at the expense of the Asia—Pacific)”이라고 언급했다.39 이런 계획은 미국의 4개년국방검토보고서 2014 (Quadrennial Defense Review 2014, QDR 2014)에서 더욱 구체화 되었는데, 이 보고서는 향후 2020년까지 미 해군력의 60%를 아태지역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40

이처럼 미국은 지난 2~3년간 동맹 국가와의 관계 강화를 넘어 지역에 대한 군사적 관여까지 나아가는 더 큰 그림을 그려왔다. 구체적인 모습은 인도-퍼시픽(Indo-Pacific)이라는 새로운 지역 개념으로 나타난다. 이 개념을 군사, 전략적으로 해석하면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잇는 네 국가들의 협력, 나아가 연합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인도-퍼시픽은 부상하는 중국의 힘, 그리고 남중국해 및 인도양에서 늘어나는 중국의 자기주장과 해군력 강화에 대응하여 지역에서 실질적인 힘과 대 중국 봉쇄 의지를 갖춘 세 국가를 미국이 전략적으로 연합하는 형태의 지역 구상이다.

미국의 아태 지역에 대한 군사적 관여, 보다 정확하게는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자기주장 강화와 늘어나는 군사적 행동에 대한 대응이 점차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작은2012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남중국해에 파견한 조치다. 미국의 항모와 전함들이 아태지역 해양에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중국과 동남아 국가 사이의 마찰이 고조된 이 시기에 미 항모가 남중국해를 항해한 것은 명확히 중국에 보내는 경고다. 이어 2015년 미국은 다시 구축함 라센(Lassen)호를 당시 논란이 된 수비 리프 (Subi Reef) 근해로 진입시켜 정찰 작전을 수행하면서 이의 성격을 항행의 자유를 확인하기 위한 작전으로 규정했다.41

가장 최근인 2016년 4월에는 미 해군의 항공모함인 스테니스호(USS John C. Stennis)가 남중국해에서 작전했고, 애쉬 카터(Ash Carter) 미 국방장관은 필리핀에서 스테니스호로 날아가 직접 승선 하기도 했다.42 미국이 간접적인 군사 관여를 넘어 군사력을 동원해 직접 남중국해에서 작전하면서 중국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2009년 이후 동남아 국가들에게 경고하는 중국의 군사력 시위로 시작된 남중국해의 긴장은 이제 미국과 중국의 직접 대결 양상으로 발전했다. 중국의 군사력 시위는 미국이 아시아 피봇 정책을 통해 남중국해 문제에 보다 더 깊이 관여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퇴로가 차단된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주권을 더욱 강화하려는 행동, 즉 미사일 배치, 영토 확장을 위한 간척 사업 등을 전개했고, 이는 미국의 직접적 군사 행동을 초래하는 상황으로 악화됐다. 쉽게 생각했던 동남아국가들에 대한 경고가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결론

2009년 이후 남중국해 문제에 관한 중국의 자기주장 강화 공세와 군사적 행동은 중국의 전략적 오판과 치밀하지 못한 대응을 잘 보여준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취하는 전략은 중국에게 득보다는 큰 손실을 안긴다. 2009년 유엔대륙붕한계위원회에 제출된 동남아 국가들의 정보에 놀란 중국은 갑작스럽게 군사력을 동원하여 공세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동남아 국가들에게 경고를 주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세적 대응은 미국의 피봇 정책을 군사적 관여로 방향을 크게 선회케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중국의 공세적 대응은 미국이 남중국해를 놓고 중국과 전략적 경쟁을 벌이는 상황을 촉발했고 결국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에 적당히 경고하는 선에서 문제를 조용히 끌고 갈 수 없게 되었다. 나아가 필리핀이 남중국해 문제를 국제중재법정으로 끌고 간 건에 대한 오판과 허술한 전략이 더해져 중국은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전략적 오판과 그에 따른 대응이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남중국해 상황은 중국의 대전략이나 구상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대일로, 아시아 신안보관 등 중국이 주장하는 비전이나 구상들은 큰 틀에서는 그럴 듯하다. 관찰자들은 중국이 잘 짜놓은 ‘새로운 국제 질서’라는 각본을 상상하곤 한다. 중국이 빠르게 경제적, 군사적으로 부상했고, 여기에 제국이었던 중국의 과거가 겹쳐지면서 신비로운 중국이란 이미지가 형성돼 왔다. 지금 당장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중국이 자신의 비전과 구상, 국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대전략, 그리고 이 대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치밀한 전술 아래 계획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다는 이미지다.

하지만 이런 큰 그림이 체계적으로 수행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나 전략들이 탄탄하게 뒷받침되는지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목표는 있지만 이를 달성해 내는 구체적이고 잘 기획된 전략 없이 주어진 상황에 그때그때 대응하며 이에 따라 불필요한 마찰과 충돌, 의심이 야기되는 것이 아닌지도 질문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이런 탄탄하고 구체적인 전략이 없었던 것이 중국이 현재 남중국해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로 보인다.

중국이 현재 남중국해에서 처한 상황은 더 강경한 대응을 하는 방향으로 중국을 끌고 갈 수 있다. 중국 입장에 대해 국제적으로 지지 세력이 별로 없다. 중국은 국내에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도 겪고 있다. 국제중재법정의 판결 이후 이미 이를 전면적으로 거부한 상태에서 적절한 퇴로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시간이 가면서 문제가 약화되고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남중국해 영토 문제는 지속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이 남중국해 중재재판 이후 남중국해에서 보다 공세적으로 나올 경우 중국의 강경한 대응 가능성은 그에 비례하여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 일본, 호주는 미국과 함께 아세안안보포럼 시기에 남중국해에 관한 국제중재재판 결과를 옹호하는 강력한 성명을 발표하는 등 중국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43 이런 점을 감안하면 향후 중국의 대응은 보다 강경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벌어지는 미-중 대결은 신뢰성의 전쟁(War of Credibility)이란 형태를 띠고 있다. 미국과 중국 누구도 현재의 대결에서 먼저 물러설 수 없다. 중국은 의도와 다르게 미국이 남중국해 문제에 깊이 개입할 빌미를 제공해 놓고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역시 피봇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했지만 얼마나 깊이 관여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안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는 기회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극구 부인하는 군사적 중국 봉쇄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두 국가 모두 전쟁을 할 의사는 없지만, 그렇다고 손을 들고 물러설 여유도 없다. 먼저 발을 빼는 국가는 큰 전략적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이 먼저 물러선다면 피봇 정책과 대 아시아 정책이 큰 상처를 입고 지역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신뢰도 큰 손상을 입게 된다. 중국이 먼저 물러선다면 아무리 빠르게 부상했더라도 아직 미국과 대결할 힘은 없다는 인식을 주게 되고, 그에 대한 국내적 반향 역시 현 지도부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지금 남중국해 갈등, 그리고 미-중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두 강대국이 이 난제에서 질서 있게 퇴각(orderly retreat)할 것인가, 어떻게 체면을 유지하면서 발을 뺄 것인가, 어떻게 출구전략 (exit strategy)을 마련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다. 이런 문제들이 미-중 양국이나 미-중 대결로 인해 전략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처한 지역국가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미-중이 남중국해에서 갈등을 고조시키고 충돌을 일으킨다면 지역 어느 국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미-중을 제외한 다른 지역 국가들에게는 지금이 미국과 중국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다. 지역국가들이 지혜를 모아 남중국해 출구 전략을 마련하고 두 나라를 설득해 남중국해의 긴장을 낮추는 방법을 생각해 볼 때다.
 

부록 1. 국제중재재판 판결 이전 중국 입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반응 중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국가
중국에 의해 지지를 호소 받았으나 입장 공개를 거부한 국가들 중국의 지지 요청을 거부한 국가들 중재재판의 권위를
인정하고 판결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가진 국가들
국가 Afghanistan, Gambia, Kenya, Lesotho, Liberia, Niger, Papua New Guinea, Sudan, Togo, Vanuatu Algeria*, Angola, Bahrain*, Bangladesh, Belarus, Brunei, Burundi, Cameroon, Comoros*, Djibouti*, Egypt*, Eritrea, Ethiopia, Gabon, India, Iraq*, Jordan*, Kuwait*, Kazakhstan, Kyrgyzstan, Laos, Lebanon*, Libya*, Malawi, Madagascar, Mauritania*, Morocco*, Mozambique, Oman*, Pakistan, Palestine*, Qatar*, Republic of the Congo, Russia, Saudi Arabia*, Serbia, Sierra Leone, South Africa, Somalia*, Sri Lanka, Syria*, Tanzania, Tajikistan, Tunisia*, Uganda, United Arab Emirates*,Uzbekistan, Venezuela, Yemen*, Zambia, Zimbabwe Cambodia, Fiji, Poland, Slovenia Albania, Australia, Austria*, Belgium*, Bosnia & Herzegovina, Botswana, Bulgaria*, Canada, Croatia*, Cyprus*, Czech Republic*, Denmark*, Estonia*, Finland*, France, Germany, Greece*, Hungary*, Ireland*, Italy, Japan, Latvia*, Liechtenstein, Lithuania*, Luxembourg*, Malta*, Moldova, Montenegro, Netherlands*, New Zealand, Poland*, Portugal*, Romania*, Slovakia*, Slovenia*, Spain*, Sweden*, United Kingdom, United States, Vietnam,
국가수 10 5144 4 4045

 

부록 2. 중재재판 판결 이후 판결 내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반응 중재재판 결과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국가들
중재재판 판결에 대한
긍정적 논평을 한 국가들
중립적 입장 중재재판 판결 무효를 주장한 국가들
국가 Australia, Japan, Philippines, U.S., Vietnam, New Zealand, Canada Belgium*, Bosnia & Herzegovina, Bulgaria*, Croatia*, Cyprus*, Czech Republic*, Denmark*, Estonia*, Finland*, France*, Germany*, Greece*, Hungary*, Ireland*, India, Italy*, Latvia*, Lithuania*, Luxembourg*, Malaysia, Malta*, Myanmar, The Netherlands*, Poland*, Portugal*, Romania*, Singapore, Slovakia*, Slovenia*, South Korea, Spain*, Sweden*, United Kingdom* Algeria, Brunei, Cambodia, Indonesia, Laos, Russia, Serbia, Syria, Thailand China, Taiwan, Pakistan, Sudan, Montenegro

 

국가수 7 3346 9 5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장이며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