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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주일 남짓 후면 필리핀이 남중국해에 분쟁에 관해 신청한 중재재판의 결과가 나온다. 2009년부터 다시 불붙은 영유권 분쟁이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된다. 그런데 정작 현재 남중국해에서 나타나고 있는 실제 갈등에서 영유권 문제는 뒷전이다. 그보다 미국과 중국 사이 전략경쟁이 일종의 치킨게임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런 강대국의 퇴로 없는 갈등 속에 지역 국가들이 가지는 전략적 불안과 고민은 깊어진다.
 

아세안 vs. 중국에서 미국 vs. 중국으로

2009년 이후 지금까지 남중국해 갈등을 큰 틀에서 보면 세 축이 존재한다. 동남아 국가들은 2009이후 한동안 중국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응을 해왔으나 이제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뒤로 물러난 상태다. 필리핀도 지난 아키노 (Aquino) 정부가 시작한 중재재판을 제외하고 중국에 적극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더욱이 새로 두테르테 (Duterte)정부가 이번 달 들어서며 중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그 사이 남중국해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의 문제로 비화되었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행동을 비판해왔다. 남중국해 매립, 미사일 배치 등 중국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이를 ‘군사화’ (militarization)로 비판하면서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주장해왔다. 반면 영토 문제에 대해서 미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국가로서 중립적인 자세를 지킨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대 아시아, 특히 남중국해 문제 개입에 대해서 비난해왔다. 남중국해 갈등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문제이지, 미국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군사화 비판에 대해서도 사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자기주장을 강화한 것은 중국의 선택이 아니라 군사적으로 아시아에 개입하고 중국 주권의 자율성을 해치는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대한 중국의 대응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아세안 국가들은 이제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일전을 벌일지, 아니면 타협을 할지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게 문제 해결, 갈등 관리를 떠 넘긴 형상이다.

 
미-중의 자존심을 건 치킨게임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영유권 문제는 부차적이다. 현재 남중국해 문제의 핵심은 영토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간의 전략적 경쟁이다. 중국은 일대일로의 출발점인 남중국해를 확보하려 한다. 미국의 군사적 감시를 벗어날 수 있는 자율적 공간을 바라고 있다. 나아가 중국이 주장하는 형태의 신형대국관계 (new type of major power relations) 즉, 아태 지역을 미국과 중국의 영향권 (sphere of influence)으로 양분하여 일정한 지분을 미국으로부터 인정 받고자 한다.

반면 미국은 과거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려 한다. 더불어 중국의 성장과 지역 내 헤게모니를 견제하려 한다. 물론 남중국해 해양수송로 (sea line of communication)을 군사적 목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결국 미국의 대 아시아 피봇 (pivot) 정책 혹은 재균형 정책 (rebalancing)으로 나타났다. 아태 지역 국가들에게 미국이 돌아왔음을, 그리고 미국이 아태지역에서 아직 가장 강한 국가임을 증명해야 한다.

결국 미국과 중국은 현재 남중국해에서 국가의 자존심을 건 일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역 국가들 눈에 비친 미-중의 신뢰성 싸움 (credibility war)이다. 여기서 먼저 한발 뒤로 물러서는 국가는 지역 국가들의 신뢰를 상실한다. 중국이 물러선다면 중국의 힘이 아직 미국을 이기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고, 미국이 물러선다면 중국이 이제 적어도 아태지역에서 미국을 넘어서는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물러서는 쪽은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일종의 치킨게임이다.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문제는 강대국을 제외한 지역 국가들이다.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상승곡선을 그릴수록 지역 국가들은 더 큰 전략적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 지역 국가들의 전략적 불안을 줄이고, 미-중간 남중국해에서 파국을 막아야 한다.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을 위한 출구전략(exit strategy)이 필요하다. 두 강대국이 남중국해에서 체면을 구기지 않고 질서있게 퇴각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가지는 핵심이익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고, 체면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한발씩 양보하면서 탈출구를 찾는 묘안이 필요하다.

* 본 블로그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장이며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