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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세안 특별외교장관회의 소동

지난 6월 13일부터 14일까지 중국 쿤밍에서 열린 중-아세안 특별외교장관회의로 다시 한번 아세안의 내적 단결 (unity)이 논란이 되고 있다. 아세안이 중국의 압박 앞에 무력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의 압박에 맞서 나름 효과적인 대응을 했다. 손실을 따지자면 아세안 보다는 중국이 더 체면을 구긴 회의였다.

사연은 간단하다. 중국은 이 외교장관회의 말미에 ‘10개항 합의’라는 문서를 아세안 외교장관들에게 제시했고,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아세안은 나름 10개국 외교장관들의 합의를 담은 공동선언문을 준비했다. 정상적으로는 이 두 문건 사이에 줄다리기가 일어나고 타협이 생기고 그 결과로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선언문이 공개되면 된다. 그런데,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중국의 ‘10개항 합의’를 거부했고, 중국은 의장국인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압력을 넣어 아세안 외교장관간 합의된 문서를 취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중-아세안 특별외교장관회의는 공동기자회견이나 선언문 없이 막을 내렸다. 기자회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단독’으로 ‘공동’ 기자회견을 주재했다. 적어도 올해 중-아세안 관계 조정국(coordinator)인 싱가포르 외교장관이 중국 외교장관과 함께해야 했으나,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회의를 마치자 마자 비행기 시간을 핑계로 귀국해버렸다. 말레이시아는 일방적으로 아세안 외교장관이 합의한 선언문을 공개했다가 취소했다. 이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 외교부는 이례적으로 중-아세안 외교장관회의해 단독으로 보도자료를 냈다.

 

중국의 아세안 분열 작전

이 소동이 벌어진 후 아세안의 단결이 중국에 의해서 다시 한번 깨졌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 2012년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아세안외교장관회의에서 중국의 압력을 받은 당시 의장국인 캄보디아의 거부로 공동선언문이 발표되지 못한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중국과 아세안 일부 국가간 남중국해 갈등이 갈수록 아세안의 내적 단결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은 아세안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아세안을 분열시키는 작업을 계속 해왔고 이런 중국의 작업 앞에 아세안은 무력하다는 관찰이다.

지난 4월 중국이 캄보디아, 라오스, 브루나이와 남중국해 문제 해결에 관한 4개항의 합의를 했다는 보도 역시 이렇게 중국 앞에 무력한 아세안 국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이 선호하는 입장을 담은 4개항을 브루나이가 받아들였다는 것이 화제였다. 캄보디아와 라오스 처럼 전통적으로 친중국적인 국가는 몰라도 항상 아세안 공동 입장에 충실했고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인 브루나이의 변절(?)은 충분히 놀랄 만하다.

 

아세안 분열의 내막 – 중국, 의문의 1

2012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있었던 소동은 아세안이 하나의 입장을 모으지 못했고, 중국의 압력 앞에 무력했던 사건이 맞다. 올해 4월 중국-캄보디아-라오스-브루나이 4개항 합의는 사실 왜곡된 바가 있다. 중국은 일방적으로 4개항 합의가 형성되었다고 발표했지만, 나머지 3개국은 누구도 이런 합의가 있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의 일방적 발표만 언론을 타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3개국은 중국 외교부가 자국을 방문했고, 이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는데 까지만 동의한다. 물론 4개국이 한자리에 모여서 논의를 한 것도 아니다. 한자리에 모여 합의한 것도 아니고, 합의 자체도 없었다.

중-아세안특별정상회의 상황은 좀 더 복잡하지만, 아세안의 실패로 보기 더욱 어렵다. 중국은 캄보디아와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라오스를 설득해 아세안 외교장관간 형성된 합의를 취소하게 만드는데 성공을 했다. 그러나 여기 까지다. 문제는 중국 입장에서 중국과 아세안의 우의, 선린관계, 협력을 강조해야 하는 중-아세안 특별외교장관회의가 공동언론발표문도 없이, 왕이 중국외교부장이 단독으로 기자회견을 개최하며 볼썽 사납게 끝을 맺었다는 점이다. 중국이 아세안 국가들을 압박하고 갑작스럽게 ‘10개항 합의’를 들이밀다가 아세안 국가의 반발을 사고 결국 행사 자체를 망쳐버린 셈이다.

표면상으로 아세안 외교장관들 간의 합의가 막판에 깨진 점은 아쉽지만, 오히려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의 압력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중국이 아세안 국가들에게 압력을 가하면 아세안은 판을 엎어 버릴 수 있다는 점을 중국에게 보여줬다. 아세안이 중국에게 가진 불만과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 외교부 성명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공개되었다. 이런 소동 끝에 중국은 무엇을 얻었는가? 아세안외교장관들이 합의한 성명이나 선언 정도는 나오지 않아도 아세안은 큰 문제가 없다. 아세안 국가들이 모두 남중국해 문제 당사국이 아닌데, 합의가 나오는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 본 블로그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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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장이며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