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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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에너지 협력
난이도 낮은 분야부터”

-아산정책연구원 에너지 워크숍

한민정 연구원 (미국연구프로그램) mjhan@asanist.org

동북아시아의 경제성장이 지정학적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고 있다. 국력이 향상하면서 ‘주권’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와 상관 없던 경제도 이제는 정치의 영향권 내로 들어갔다. 경제 협력이 갑자기 와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동북아 3국 모두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성장과 국익에 절대적으로 필요함에도 에너지 분야는 지정학적 갈등 때문에 협력을 위한 논의조차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3국은 안전한 미래 에너지 확보를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본격 협력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4년 7월 2일 아산정책연구원은 ‘동북아 에너지 협력: 기회와 과제’를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하고, 역내 에너지 안보 협력이 어려운 이유와 실질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경쟁재로 인식되는 동북아 에너지

참가자들은 동북아 에너지 안보를 위해 협력할 유인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먼저, 동북아의 높은 천연가스 가격 문제다. 에너지 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분야로, 협력을 통해 시장 규모를 키우면 3국은 에너지 경제성과 정책적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됐다. 3국의 기술과 자원 보유 상황이 상호보완적이라는 점도 꼽혔다. 중국은 석탄 등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 비해 에너지 효율성, 새로운 에너지 개발 기술 분야에서 뒤진다. 반대로, 한국과 일본엔 기술 분야나 에너지 시장에서의 경험이 축적돼 있다. 이런 구조만 보면 이상적 협력이 가능해보인다. 그럼에도 왜 에너지 분야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협력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참가자들은 동북아에서 에너지는 정치적 요소에 강한 영향을 받는 분야로, 안보의 한 영역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역사 문제, 영토 문제 등으로 얽혀 있는 동북아 3국은 다자협력보다 양자동맹을 통해 안보를 확보한다. 에너지도 ‘다자 협력을 통해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보다는 ‘한 국가가 에너지를 활용해 지나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분야를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2000년대 초 러시아의 동시베리아 파이프라인을 두고, 중국과 일본이 경합한 것을 극단적인 예로 제시했다. 전쟁 중인 아프리카도 가스 수송관을 공동 운영하는데, 동북아엔 아직도 공동 운영되는 파이프라인이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공공재로서의 에너지와 동북아 협력

한 참가자는 공공재 개념을 에너지 안보에 적용하면서 협력이 필요한 분야를 난이도별로 제시했다. 난이도는 다자협력일 수록, 별도의 투자가 많이 요구될수록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동북아 현실을 고려하면 처음부터 다자협력을 추구하기보다 쉽게 성공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협력 난이도가 가장 낮은 분야로는 ‘공해저감, 비상저장고 구축, 출자, 데이터 공유 및 분석, 공동 조사 및 개발, 조기경보체제 구축’이 제시됐다. 양자 협력만으로도 실현 가능하고, 각국이 별도의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합동 자원개발, 수송관 건설, 비상저장고 공유, 수송관 공동 운영’은 난이도가 훨씬 높은 과제다. 양자협력으로도 실현 가능하지만 다자협력이 보다 이상적이고, 별도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감축, 산성비 저감, 역내 네트워크 및 허브 건설’은 난이도가 가장 높은 분야로 분류됐다. 다자협력이 필수적이고, 상당한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 참가자는 “동북아는 에너지 안보 협력 분야에서 한번이라도 성공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성공 경험이 협력 의지를 고취시켜, 협력 수준을 계속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난이도가 가장 높은 ‘탄소배출감축, 산성비 저감, 역내 네트워크 및 허브 건설’에서부터 협력을 시작하는 것은 가장 피해야할 선택이라는 것이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하면서, 동북아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중-러 가스관이 완공돼도 한국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수송관이 없으면 가격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미의 셰일가스, 타이트 오일 같은 비전통적 에너지원이 개발돼도 동북아의 가스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도 높은 수송비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동북아에서 에너지는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협력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안정적 에너지 공급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협력은 불가피하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는 협력이 불가피한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다. 에너지는 안보와 직결된 경쟁재라는 인식이 한순간에 바뀌기 어렵다. 이를 고려할 때, 한중일 3국은 협력이 보다 용이한 부분을 찾아내 협력을 시작해야 한다. 이번 워크숍은 협력이 어려운 동북아의 현실을 인정하고, 실질적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