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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이스트(Look East)에서 액트이스트(Act East)로 :
인도 동방 정책의 전환

라울 미쉬라, 인도세계문제협의회 Indian Council of World Affairs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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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룩이스트(Look East)에서 액트이스트(Act East)로 새롭게 명명한 동방정책은 지난 2년간의 정책 중 가장 성공적인 대외정책 구상으로 찬사 받았다. 모디 총리는 룩이스트 정책의 1단계와 2단계가 성공적이기는 했지만 더 큰 잠재력을 발현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정책의 범위와 주제를 확장했다. 인도는 액트이스트 정책을 통해 아세안 회원국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더 많은 국가들과 정치, 전략, 문화 및 경제 영역에서도 관계를 맺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호주, 일본, 한국과 맺은 관계를 견고히 하려는 노력에서 잘 드러나고 모디 총리의 일본, 호주 방문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아•태 지역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진 안보 역학구도의 변화는 이 지역 국가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쳤고, 인도는 이런 양상에 관심을 보였다. 중국의 세계적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미국, 일본과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아•태 지역 정세에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towards Asia), 일본의 민주주의에 기초한 다이아몬드 전략(Democratic Security Diamond, 2007년 아베 총리가 제시한 군사전략으로 미국(하와이),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을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연결해 가상의 군사 방어망을 형성함으로써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해상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4국 준 군사협력이다. ‘민주주의에 기초한’이란 수식어가 다이아몬드 전략 앞에 붙은 것은 공산당 1당 독재국인 중국을 겨냥한 집단방어망임을 의미한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구상으로 집단적 자위권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다이아몬드권내에 들어가지 않는다. –편집자주), 그리고 중국의 해상 실크로드(Maritime Silk Road)정책은 모두 각각의 방식으로 지역 구도를 형상화하려는 큰 정치적, 전략적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인도가 아∙태 지역의 안정적인 안보 설계에 더욱 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위급 방문과 강력한 발표

2014년 5월 모디 총리는 취임 후 반년도 지나지 않아 전국민주연합(NDA) 정부의 주요 대외정책을 소개하기 위해 신속히 해외 순방에 나섰다. 모디 총리의 미국 방문과 오바마 대통령과의 만남, 일본, 미얀마, 호주, 피지 방문, 그리고 토니 애벗 호주 총리, 시진핑 주석의 인도 방문은 모디 총리의 아•태 지역 대외정책에서 중대한 사안으로 간주된다.

토니 애벗 총리가 인도를 방문하고, 모디 총리가 G-20 정상회담 참석차 호주 브리즈번을 방문한 것은 인도•호주 관계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인도는 G-20 정상회담에서 경제 정상회담에도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애벗 총리는 2014년 9월 4-5일 이틀간 인도를 방문했다. 이에 답하여 모디 총리는 11월 14일 호주를 방문했고, 이로써 그는 28년 만에 처음으로 호주를 방문한 인도 총리가 됐다(1986년 라지브 간디 전 총리 이후 처음-편집자 주). 호주 방문 기간 동안 많은 논의가 오간 후 체결된 민간 핵 협력 협정은 인도가 오래 기다렸던 것으로, 앞으로 수년 간 인도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든든한 뒷받침이 될 것이다.

9월에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인도와 호주 양측은 이 합의를 양자 관계를 확고히 해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민간 핵 협력 협정은 2015년까지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와 별개로 인도 기업은 호주에서 채탄, 원유와 천연가스 탐사를 중심으로 하는 합작 에너지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2008년 11월 관련 부처와 합의한 전력, 석탄, 석유, 천연가스, 탄광, 신에너지, 재생에너지 분야의 다섯 가지 사업 계획은 에너지 분야에서 양국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모디 총리의 호주 방문 동안 양측은 ‘인도•호주 간 안보협력을 위한 체제’에 합의했다. 이는 상당히 획기적인 것으로 7개 분야에 걸쳐 32개의 실행 가능한 요소로 구성됐다. 양국은 총리 및 장관급 연례 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 또한 정기적인 해군 합동 훈련을 실시하고 대 테러 문제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으며 여기엔 일본과의 연대도 포함된다. 이런 의미에서 2015년 실시될 인도•호주 양국 최초 합동 해군 훈련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양국은 이 군사훈련을 비전통적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훈련으로 분류했고, 호주 언론은 이를 ‘중국의 군사력 성장에 대한 대비책’으로 받아들였다.

호주 일간지 <디 에이지(The Age)>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냈다. “이 안보 체제는 호주가 일본과 맺은 준 동맹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일본은 인도와 신속하게 군사동맹을 강화했으며, 세 나라는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인도는 미국 중심의 ‘다이아몬드 안보 동맹(6년 전 일본이 중국의 압력에 맞서다 물러섰을 때 사용했던 표현이지만 적절하게 다시 사용되었다)’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가입국이 됐다.”

하지만 최근 부각된 인도•호주, 인도•일본 관계가 제3국을 겨냥한 것이거나, 중국의 위협에 대항하고자 합동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엔 아직 시기상조다.

미얀마는 인도의 ‘동남아 관문’으로 인도의 대외정책에서 항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당연히 모디 정부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4년 8월 수쉬마 스와라지 외무장관이 3개의 다자회담(아세안 외무장관 회담,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 동아시아 정상 외무장관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미얀마를 방문했고, 이를 통해 인도가 아•태 지역에서 유대관계를 긴밀히 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모디 총리는 11월 12일 아세안 회의 개최국인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담(EAS)에 참석했다. 이는 그가 총리로서 처음 참석한 아세안 다자회담일 뿐만 아니라 최초의 아세안 국가 방문이었다. 모디 총리는 테인 세인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했고 테인 대통령은 인도와 미얀마를 ‘형제국’이라 칭했다.

과거 8888 민주화 항쟁 때 잔혹한 진압 때문에 미얀마가 국제사회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됐을 때 당시 중국 고위층이 지원차 미얀마를 방문했는데 이 때에도 양국 관계에 비슷한 용어인 형제(PaukPhaw)가 사용됐다.

미얀마는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3중 교차지역에 위치하고, 특히 인도와는 1600km가 넘는 국경을 맞대고 있어 인도에게 미얀마와의 유대 강화는 아주 중요하다. 모디 정부는 인도•미얀마•태국 3국 간 고속도로(아시안 하이웨이 1의 일부) 건설을 빠르게 진척시키고자 하는데, 이것은 메콩강 유역의 민간 접촉을 용이하게 하고 무역과 투자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임팔-만달레이 버스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델리-보드가야-양곤 직항도 곧 취항할 예정이다. 델리에서 출발하는 뭄바이 항공의 호치민 직항편은 최근 베트남과의 관계에서 돌파구가 됐다. 하지만 여러 동남아 국가의 수도는 아직도 인도 주요 도시와 직접 연결돼 있지 않다.

인도 북동부 주에서는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도 미얀마와의 친밀한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진행 중인 정치적 전환과, 2015년 총선과 관련된 불확실한 국내 정세는 미얀마뿐만 아니라 인도와 태국 같은 주변국에서도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미얀마의 불안정성이 인접한 인도의 여러 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전 대책이 필요하다. 인도의 북동부 주들은 미얀마의 카친주, 사가잉주, 친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모디 총리와 테인 세인 대통령, 아웅산 수지 여사의 만남은 야당에게 ‘인도가 세인 정부와 민족주의연맹(NLD) 사이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줄 대책을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줬다. 인도의 이런 균형 잡힌 접근은 평화 지향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미래를 위한 외교적 자산을 축적할 가능성이 크다. 전임자 마모한 싱 전 총리와 다르게 모디 총리는 친 민주주의 지도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를 만났고, 미얀마를 민주주의로 되돌리려는 그녀의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9월 초 모디 총리는 수상으로서는 처음으로 인도 아대륙을 벗어나 일본을 4일 간 방문하며 중대한 발표를 했고 다양한 합의를 이뤄냈다(모디 총리의 일본 방문은 시진핑 주석의 인도 방문보다 앞선다). 인도•일본의 관계는 전략적 파트너십에서 전략적 글로벌파트너십으로 격상됐고, 인도는 34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모디 총리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관한 논평도 했다. 다른 나라의 영유권을 침해하는 팽창주의 경향을 언급하고 더욱 강력하게 영유권 주장을 펼치면서 일본과 분쟁 중인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취임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모디 총리는 룩이스트 정책을 재정비하기 시작해 이전 정책의 성과를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액트이스트 정책으로 전환했다. 그는 인도•아세안 정상회담 연설에서 ‘인도의 경제개발, 산업화 및 무역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대외적으로는 인도의 룩이스트 정책이 액트이스트 정책으로 변화했다’고 언급했다. 그와 관련해 2014년 8월 26일 수쉬마 스와라지 외무장관의 베트남 방문 때 발언도 주목할 만하다. 스와라지 장관은 ‘인도가 동방의 다른 나라를 주시만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외무장관에 취임한 후 동남아시아 국가 중 세 번째로 베트남을 방문했는데 이는 모디 정부가 그 지역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스와라지 장관은 ‘동남아시아 지역안보 구조에서 인도가 더 큰 역할을 하려면 모디 총리의 구상인 ‘5T’가 필수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5T는 전통, 재능, 관광, 무역 및 기술(Tradition, Talent, Tourism, Trade, Technology)을 의미한다. 그녀는 또 기관 간 대화 및 민간 유대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 간의 육로, 해상, 항로 연결도 강조했다. 장관은 하노이에서 열린 제3차 아세안•인도 싱크탱크 네트워크 원탁회의 개회사에서 인도와 아세안 회원국 간의 더욱 돈독한 무역, 투자 관계의 부각을 강조했고, 진행 중인 경제공간의 통합도 촉진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와 안보문제를 더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은 인도에게 매우 중요하다.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공동 해상 순찰은 양국 합동 군사훈련으로 발전했고, 앞서 언급했듯 인도와 호주는 2015년 최초의 합동 해상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스와라지 장관이 베트남을 방문해서 정상급 지도자들과 긴밀한 안보협력을 주제로 토론했고, 이어 프라납 무커지 대통령은 9월 베트남을 방문했다.

베트남은 인도와 러시아가 공동 개발한 브라모스 순항미사일 구매에 큰 관심을 보인다. 인도는 인근 지역에서 중요한 안보 책임자로서의 위치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으며, 인도가 베트남에 브라모스 미사일을 제공한다면 이는 그 같은 역할을 견고히 해주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안보 분야에서 모디 총리의 강력한 R&D 비전, 방위산업의 국산화, 국방분야에 더 많은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 및 인도, 이스라엘, 싱가포르, 미국, 베트남과의 협력으로 인해 인도는 동남아 지역의 주요 군사력 경쟁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도가 베트남에 제공한 1억 달러 차관은 방위분야에서 또 다른 중요한 진전으로 볼 수 있다.

스와라지 장관과 무커지 대통령은 방문 기간 동안, 2013년 11월 베트남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이 인도 방문 중에 제공한 베트남 오일광구와 관련해 깊게 논의했다. 계획대로 잘 진행된다면 인도 국영 OVL사가 인도 정부에 타당성 조사보고서를 제출한 뒤 양국 에너지 협력사업이 진행될 것이다. 베트남이 남중국해 소재 두 오일광구 임대 기간을 1년 더 연장함으로써 인도•베트남 에너지 협력은 더 구체화된다.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과 동아시아 정상회의 기간 동안, 남중국해 문제에 관한 모디 정부의 정책 변화도 강조되었다. 인도는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입장을 좀 더 명확히 하려는 듯하다. 베트남 해안에서 더 많은 오일광구를 확보하면서, 남중국해는 공동 해역이고 동남아시아의 에너지 외교가 현명한 이기심(enlightened self-interest, 사회 공헌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가 긴 안목으로 보면 이익이 된다고 하는 생각-편집자 주)에 따라 공평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인도는 파키스탄령 아자드카슈미르(PoK)에서 진행되는 중국의 기반시설 구축사업을 지적했는데 이는 중국에게 ‘인도의 베트남 오일광구 사업에 관여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보다 분쟁지역에 대한 제3자 불간섭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인도는 중국과 아세안 회원국에게 영유권 분쟁의 평화적 해결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과, 분쟁은 충돌이나 전쟁이 아닌 평화적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제9차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모디 총리는 ‘상호의존적이며 세계화된 사회에서는 국제법과 국제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 이는 해상안보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런 이유로 국제법과 국제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요하다. 1982년 체결된 UN 해양법 협약도 준수해야 하며 이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기초가 돼야 한다. 더불어 합의를 통해 남중국해 행동강령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의 발언은 인도가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국제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국제 체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필리핀과 베트남 등 영유권 분쟁의 주요 관련국들은 인도를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세력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인도는 다방면에서 강대국으로 간주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안보역학구도에서 중요한 이해당사국 중 하나로 부상할 것이며, 이는 진화하는 액트이스트 정책을 잘 보완해줄 것이다. 미국도 인도가 동아시아 안보역학구도에 좀더 적극적으로 관여할 것을 촉구해왔다.

룩이스트에서 액트이스트로

인도는 룩이스트 정책을 통해 동남아 지역에 포괄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지만, 구두와 서면으로 남아있는 역사적 증거들이 지난 2000년 동안 인도가 동방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도는 이 기간 동안 비록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동방에 개입해왔다. 독립 투쟁을 하는 동안에도, 인도 지도자는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결속했다. 인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 전 총리는 1945년 10월 24일 러크나우에서 ‘동남아시아의 날’을 제정하고 기념했으며 인도네시아와의 결속을 표명했다. 그 후 네루 전 총리가 아시아의 유대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면서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하지만 지리적 근접성과 문화적 결합만으로 국제 정치의 직‧간접적 압력을 버텨낼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로 식민지 시대 직후의 강력한 상호연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화됐고, 수십 년 간의 상호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인도와 아세안은 서로의 전략적 정보를 많이 공유하지 못했다.

냉전 종식은 국제 정치에서 세계화 및 지역주의의 대두와 연결돼 전 세계 대외정책에 영향을 줬다. 인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도가 동남아 국가들과 유대를 회복하는 동안 동남아 국가들은 그 과정에서 역사적 앙금을 털어버리며 큰 공동체를 형성했다. 1992년 인도가 룩이스트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을 때 인도•캄보디아 사태와 냉전 정치에서 발생한 외교적 마찰도 극복했다. 인도가 룩이스트 정책을 통해 아세안 지역으로 다가가기 시작했을 때를 ‘이것은 한낱 대외정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도의 세계 전망과, 진화하는 세계 경제 속 인도 위상의 전략적 이동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이것은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이웃 국가들을 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아세안도 다양한 포럼을 통해 다각적인 기회를 제공했고 이것은 아시아 지역 국가들 간의 상호 이해와 대화를 보강했으며, 동남아 지역의 관계 유지도 용이하게 해줬다. 인도는 1992년 부분별 대화관계에서 1999년 12월 완전한 대화관계로 격상됐다. 그 관계는 2002년 프놈펜에서 열린 인도와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더욱 향상됐으며, 2005년 인도는 중국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 정상회의에 가입했다. 2012년 인도•아세안 정상회담 10주년을 기념해 양측이 전략적 동반자협정에 서명했고 이는 관계를 더욱 결속시켰다.

인도와 아세안 간 무역은 2013년 790억 달러 수준이었고, 2020년까지 2000억 달러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도•아세안 FTA 상품 부문 협정의 최종 승인은 인도가 아세안 지역 경제로 통합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2014년 9월 8일 여러 차례 협상 끝에 인도와 아세안 10개 회원국은 서비스와 투자부문 FTA에 서명했다. 이것이 이행되면 무역과 투자 관계에서 꼭 필요한 자극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에 통일진보연합(UPA) 정부는 불완전한 FTA(서비스 부문이 아닌 상품 부문만) 협상에 서명한 것 때문에 비난 받았다. 이 협상이 인도의 사업 이익에 손해가 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지난 몇 년 간 인도의 수출이 여전히 신통치 않았던 반면 아세안 국가들에서의 수입은 상당히 증가했다.

FTA 서비스 부문 협정에서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은 국내 사정을 바로잡는 데 수 개월이 걸렸다. 사실상 필리핀은 인도의 서비스 부문이 아세안을 장악하게 될까 두려워 아직 협정에 승인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이것이 이행되면 전체 무역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 것이고 인도•아세안 FTA는 양측 모두에게 이익을 줄 것이다. 인도로서는 서비스 부문 FTA에 자연인(법이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자연적 생활체로서의 인간-편집자 주) 또는 노동력의 이동이 부가적으로 포함되기 때문에 특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부가항목은 사업상 방문과 계약상 서비스 공급에 국한되지만 인도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협정의 다른 중요 사안으로는 국내법, 사업승인, 시장접근, 내국민 대우, 투명성, 개발도상국의 참여, 서비스분야 공동위원회 구성, 분쟁해결, 혜택의 거부(특정 서비스가 어느 회원국 역내에서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거나 서비스 공급 기업이 회원국의 국적을 가지지 않는 경우 혜택을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편집자 주) 등이 포함돼 있다.

인도•아세안 FTA 타결은 아세안 회원국과 6개의 우방국을 포함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실현되면 인도는 15개 국가에 대해 시장접근 우선권을 갖고 가격 경쟁력을 얻을 것이다. 인도에게 RCEP는 일본과 호주의 넓은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얻고, 동아시아 경제와 통합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 이것은 인도가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의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RCEP는 인도가 중국과 일본 및 지역 내 국가들과의 무역 규모를 늘리도록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인도의 서비스 부문, 정보기술, 전기통신, 사업진행 아웃소싱(BPOs) 및 지식프로세스 아웃소싱(KPOs) 등과, 금융업 같은 다른 숙련된 서비스는 특히 RCEP를 통해 이익을 축적할 가능성이 크다.

아세안은 상승세를 타는 인도의 경기 추세와 지역 내의 전략적 위치, 중국과 균형을 맞추려는 잠재된 움직임을 고려하여 인도를 점차 동반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역내 국가들에 대한 인도의 외교적 행보와 중국이 야기한 역내 불안정성을 나란히 놓고 본다면 이는 인도 정부가 동남아시아를 보는 전략적 관점과 미국, 아세안이 지역 내 안보 환경을 보는 바라보는 입장과 일치한다. 이것은 지역 내 잠재적인 강대국으로서 인도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한다.

인도에게 더 이상 부차적 대상이 아닌 아세안

인도에게 아세안 지역은 수년간 최우선 순위가 아니었다. 특히 캄보디아 사태 이후 두드러졌고 인도는 대부분 수동적인 반응만 보였다. 아세안 지역에서 인도 역시 부차적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인도가 깊이 관여하고 있어서 동남아 지역은 더 이상 비주류 무대가 아니다. 중국이 동아시아 국가들에 더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인도가 동남아시아 국가를 자국의 주요 무대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의 해상 실크로드는 인도가 동남아 국가들과 경제적, 군사적으로 관계를 맺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아세안에게 인도는 더 이상 먼 나라가 아니다. 다웨이 경제특구와 심해항구 개발프로젝트(Dawei Deep Sea Port and Industrial Project), 인도•미얀마•태국 3국 고속도로 건설, 칼라단 다목적 환승 운송프로젝트(Kaladan Multi-Modal Transit Transport Project) 등의 연계성 사업은 룩이스트 정책에서 액트이스트 정책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다. 이러한 사업들은 본질적으로 인도의 룩이스트 정책과 태국(사실상 아세안 국가 대부분을 포함)의 룩웨스트(Look West) 정책이 융합한 결과다. 아세안 지역은 더 이상 인도의 부차적 무대가 아니고, 인도는 더 이상 지역 내에서 잉여세력이 아니다.

전환의 이해

전통적으로 아세안 국가들에게 강대국으로 인식된 중국과 달리, 인도의 세력은 온건했다. 인도는 룩이스트 정책을 통해 지역 내에서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액트이스트 정책은 인도의 그런 잠재력을 키워줬다. 중국의 위상은 스트래틀리 제도와 파라셀 제도에서 발생한 베트남과의 충돌, 1960년대 인도네시아의 국내 정치 개입, 필리핀과의 간헐적인 다툼, 남중국해 해역의 긴장감 고조로 인해 필리핀에 가해졌던 경제 제재 개입 등을 통해 강대국으로 입증됐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경이적인 군사력 향상은 지역 내 미국과의 주도권 다툼에서 우월성을 갖게 해줬다. 반면 아세안과 회원국들은 인도의 평화 지향적 이미지를 지지했다. 인도의 문화적 상호연계, 다른 국가들의 국내 문제에 대한 불간섭 정책, 아세안 회원국과의 무(無)충돌 기록이 이러한 이미지를 얻게 해줬지만, 이것은 인도가 주요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쌓는 데 방해가 된다.

인도 정부는 대외정책 형성기에 비동맹주의 정책과 아시아 국가 간 결속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으며 당시 지역 내에서 이념적으로나마 리더십을 발휘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세안이 미국과 가까워지면서 퇴색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도 인도의 국내 중심 경제구조와 아대륙에 대한 집착은 아세안이 인도의 대외정책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한편 인도가 탈냉전 시대에 경제를 개방하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수용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아세안이 가장 매력적인 지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아세안은 호의적이기는 했지만, 아직 인도에 많은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예를 들어, 중국의 부흥에서 야기된 불확실성에 제도적으로 맞서고자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을 출범시켰을 때 인도의 가입은 고려되지 않았다. 인도는 ARF에 가입하기 위해 1994년 첫 번째 회의에서 지원했지만 지역 안보 유지에 기여할 것이 별로 없다고 여겨져 거절당했다.

인도가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이 불공평하고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했을 때 다른 나라들과 달리 아세안 국가들은 크게 항의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1998년 인도가 일련의 핵실험을 실행했을 때도 아세안은 전 세계를 통틀어 비핵지대를 위해 애쓴 최초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관대한 반응을 보였다. 지나고 보니, 아세안 지역의 많은 국가가 인도의 핵무기 보유를 긍정적인 발전으로 받아들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인도가 어떤 경우에도 아세안 국가를 향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아세안 회원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과 마찰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인도가 지역 내 유일한 핵무장국가인 중국과의 균형 유지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도 암암리에 작용했다.

하지만 1997년 인도가 APEC 회원국 가입에 지원했을 당시 거부당했듯이 핵 보유능력만으로 주요 강대국 대열에 오르기는 충분치 않았다. 흥미롭게도 인도 경제가 지역 경제권에서 핵심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때 러시아와 베트남은 이 기구에 가입됐다. 인도는 여전히 APEC 회원국이 아니다. 아시아에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중국과 달리 인도는 동정을 표하기는 했지만 위기를 맞은 아세안 회원국에 많은 지원을 할 수는 없었다. 인도의 무능이 인도•아세안 관계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세안+3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아세안과 중국의 관계가 상당히 발전했음을 입증했다.

비슷한 시기에 인도는 대외정책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제개혁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인도는 미국 및 주요 강대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다지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아세안 국가들과 더 원활하게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싱가포르와 베트남은 지역 내에서 인도가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인도를 대하는 태도 변화는 2005년 동남아시아 정상회의(EAS)가 출범했을 때 더욱 분명해졌다. 인도, 호주, 뉴질랜드는 창설 회원국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생각이 달랐고 그 국가들 대신 아세안+3 국가만 회원국이 되기를 바랐다. 또한 중국 정부는 EAS 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중국이 EAS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의도에 놀란 아세안과 일본은 중국의 제의를 거절하고 아세안의 계획대로 EAS를 추진했으며 예상대로 아세안이 EAS의 주축이 됐다.

인도의 EAS 가입은 대외 이미지 차원에서 큰 성과로 드러났다. 눈부신 경제 성장과 막강한 군사력은 회원국으로서의 입지도 견고히 해줬다. 또한 남중국해에서 쓰나미 발생 이후 즉각적으로 보여준 인도적 지원 및 재난구조(HADR) 활동은 인도 해군의 능력을 증명했다. 또한 이 활동은 인도가 지역 내에서 비전통적인 안보위협과 맞설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인도는 사이클론 나르기스 이후 HADR 활동 기간 동안 미얀마를 대대적으로 원조했다.

공해상 약탈행위에 맞선 인도의 두드러진 활약은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 회의(ADMM Plus)에서 의석을 차지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2004년 말라카 해협 인근 국가들은 테러리즘, 해적행위 등과 싸워 지역 내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미 해군의 제안에 거세게 반발한 반면, 해협의 해상 안전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인도의 지원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태국 및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지역 내에서 인도의 역할을 반겼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2001년과 2002년에 말라카 해협에서 실시한 인•미 해군 호송작전에 반대하지 않기로 했던 결정은 인도가 지역 내에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인도는 아•태 지역에서 더욱 광범위하게 재개된 실천주의와,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룩이스트 정책을 통해 동남아 해상 안보에 점점 더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인도는 여러 아세안 국가에서 강력한 안보 제공 국가로 인식된다.

우주 강국으로서 인도는 일본(SEEDS, CUTE 1.7, PROITERES), 인도네시아(LAPAN-TUBAT), 싱가포르(VELOX- I, VELOX- PIII, TeLEOS-1, X-SAT)가 위성을 발사할 때 적절한 금액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했다. 미국 이오새트EOSAT사는 오클라호마주 노먼에 인도의 첫 국외설치 지구국을 주문했다. 1993년 10월 인도는 이오새트사와 인도 독자수 조사(IRS) 데이터 수신 및 세계적 분포를 알아보기 위해 중요한 계약을 맺었으며 이는 태국, 독일, 브라질 및 여러 나라에 18개가 넘는 IRS 데이터 수신센터 설치로 이어졌다. 인도양 인근에서 안다만 수마트라 섭입대(subduction zone, 해양판이 대륙 아래로 가라앉는, 대륙 연변의 해구지역 –편집자 주)인 벵골 만은 이 지역의 지진해일 발생지 중 한 곳이다. 인도양 지진해일 조기경보센터(ITEWC)는 지속적으로 해양을 관찰하여 지진해일 피해를 막기 위한 경보를 발령한다. 또한 ITEWC는 지역 내 인도양 지진해일 주의보 서비스 공급자 중 한 곳으로 활동한다. 베트남 같은 나라는 인도의 기후 관측과 재난 경보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인도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에 사이클론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결론

정책의 전환은 장시간에 걸친 여러 변화의 축적에서 기인한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로 인도의 룩이스트 정책 1단계에서 2단계로의 전환과, 잇따른 액트이스트 정책으로의 전환을 들 수 있다. 인도가 액트이스트 정책에 박차를 가하면 외적, 내적으로 여러 징후를 보이며 정책 전환의 시기를 겪을 것이다. 책임감 있는 평화 지향적 강대국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인도가 아직 중국, 일본, 미국과 같은 다른 강대국에 뒤쳐져있기 때문에 지역 내 다른 국가와 모든 단계에서 주도적, 체계적, 포괄적으로 관계 맺는 것을 포함한다. 인도의 아대륙에 대한 지속적인 집착은 국가의 대외 관계에 큰 지장을 초래했다. 인도는 지역 내에서 가장 좋은 패를 가졌을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수를 잘못 두고 있다. 인도와 지역 국가의 포괄적인 경제적, 전략적 유대 부족은 국가의 세력을 확산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여러 협정이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총 무역량은 최저 수준이며, 이로 인해 역내 정치 구도에서 인도의 진보는 저해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상품과 서비스 부문 인도•아세안 FTA와 RECP는 모두 인도의 세력확장을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모디 정부는 인도에서 만들자(Make in India) 캠페인을 펼치며 새로운 추진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모디 총리의 능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액트이스트 정책이 신뢰를 얻기 위해 인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많다(좀 더 친기업적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국경을 초월한 사업을 더욱 빨리 이행하는 것까지, 또한 비자를 자유화하는 것에서부터 방위협력을 확장하는 것까지). 인도는 평화 지향적 강대국이 되기 위해 공표한 것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액트이스트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 선결돼야 할 문제들이 있다. 첫째, 인도는 국내 즉 북동지역에서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인도 북동부와 다른 지역의 연결성은 아직도 불완전하다. 미얀마가 동남아로 통하는 인도의 관문 역할을 하지만 인도 북동부는 인도에서 미얀마로 가는 관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주요 장애물은 인도 북동부 주 주요도시의 도로, 철도, 항로가 서로 완전히 연결돼 있진 않다는 점이고 이는 인도 나머지 지역과도 마찬가지다. 가우하티와 콜카타가 북동부 도시로 연결되는 유일한 일반 통로다. 인도가 국내에서 그런 요소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동남아 국가와의 연결고리 부족은 한층 더 어려운 문제가 됐다. 동남아 국가와의 유대 강화는 인도 내부에서 지역 내 유대가 보장된 후에야 실현될 수 있다.

둘째, 기반시설 개발은 액트이스트 정책에서 중요한 요소다. 이와 관련해 인도와 동남아 국가들은 여러 가지 사업에 착수했지만 이행이 지지부진하다. 첸나이-다웨이항 연결 프로젝트Chennai-Dawei Sea Port Project)는 아직도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다. 인도‧미얀마‧태국 3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사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인도 정부는 사업 기한을 2016년에서 2018년으로 연장했다. 인도와 동남아 국가의 유대 강화를 목표로 한 또 다른 주요 사업에는 칼라단 다목적 환승 운송 프로젝트가 있다. 일단 완벽하게 작동하면 이것은 인도 콜카타주와 미얀마 시트웨 항을 연결하고, 인도 미조람주까지 연장될 것이다. 인도네시아와의 해상 유대관계는 인도의 연계성 도모에 한층 더 이바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도의 최남단 섬에서 인도네시아 아체주까지의 거리가 약 140k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운송 프로젝트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셋째, 민간인 유대는 액트이스트 정책의 핵심이다. 나렌다 국제대학과 모디 총리의 요가의 날 구상, 불교 성지순례 등의 사업이 확실하게 시행되면 액트이스트 정책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국제 수준에서 경제적 위상이 향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지속적으로 APEC 회원 가입에 거부당하는데 이는 좋은 징조가 아니다. 인도의 입장에서는 아세안 회원국이 마닐라에서 열리는 다음 APEC 정상회담에서 인도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인도는 새로 설립된 브릭스 개발은행(BRICS Bank)에서 핵심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

액트이스트 정책이 인도의 동방개입에 필요한 추진력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인도는 지역 내에서 전략상 중요한 문제의 가장자리에 머물기만 하는 행보를 멈춰야 한다. 공동 방위물자 생산과 방위 R&D분야의 협동은 인도가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에서 지속적인 동반자 관계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은 그런 면에서 잠재적인 동반자다. 지역 내에서 활발한 민간 접촉, 더 강력한 군사력 및 경제적 유대관계는 인도가 목표로 하는 평화 지향적 강대국이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액트이스트 정책은 갈등을 야기하고 대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평화와 번영을 가능하게 해주는 환경 조성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