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한-독 청년통일마당 취재 기사 시리즈 4>

서독엔 통일비용 부담 없어
전체 독일이 통일로 혜택

리하르트 슈뢰더 전 동독 사민당 원내총무(현 한독통일자문위원회 위원)

 

“서독은 통일비용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통일비용으로 혜택을 본 것은 동독만이 아닌 전체 독일이다.”

지난 8월11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헨리포드바우 컨퍼런스룸에서 리하르트 슈뢰더 전 동독 사민당 원내총무는 ‘널리 퍼진 견해’와는 다른 주장을 했다. 아산 정책연구원 알럼나이와의 독일 통일을 주제로 한 토론에서였다.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989년 동독 사회민주당(SDP)에 입당해 1990년 동독인민회의 의원이 된 슈뢰더 의원은 통독조약 협상에 동독 관계자로 참석해 당시 통일비용 분위기에 정통해 있다. 그는 통일 뒤 2001년부터 민주사회당에 몸담았다. 2001~2007년에는 국가윤리위원회에서 근무했다.

이날 토론엔 베를린 자유대학교 한국학과 학과장 이은정 교수와 윤일숙 통역사, 아산정책연구원 함재봉 원장과 봉영식 박사, 서원 졸업원생 7명 및 조선일보 유라시아 자전거 원정대원 4명 등이 함께했다. 진행은 봉영식 박사가 맡았다. 다음은 토론에 나온 질의 응답.

 

-남북한 통일이 라이프치히 시위와 유사한 시위를 겪고 민주화 단계도 거친 이후가 좋겠나, 아니면 북한이 현 상태를 유지할 경우 그냥 바로 통일을 하는 것이 좋겠나.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서는 야당의 구분도 없고 예전의 동독처럼 시민의 움직임도 조짐조차 없는데 희망을 갖는다 해도 이를 계산에 넣어봐야 소용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노력은 북한 정권과의 협상과 합의다. 그러나 통일 뒤 범죄자들을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일 경우 북한 지도층은 통일을 향해 한발도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잘 살 수 있는데 왜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나. 북한과 동독의 문화가 다르다 해도 ‘너희가 무슨 일을 저질렀어도 감옥에 보내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주지 않으면 절대 진전이 있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싶고 한편으로는 통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만약 동독으로부터 장벽이 붕괴되지 않았다면 서독은 계속 동독과 협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치범들을 계속 돈 주고 풀어주며 동독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동독의 경제를 성장시키는 등 여러 가지 일을 지속하는 것이다. 왜 한국이나 일본에는 이런 기본적인 의지가 보이지 않는 건가.”

 

-라이프치히 시위가 일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시위가 있기 오래 전부터 라이프치히의 교회 ‘니콜라이’에서는 통합기도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에 사람이 많아지면서 월요일마다 기도모임을 했는데 그게 몇 년간 지속됐다. 라이프치히는 화학시설, 기계중심의 산업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퇴근한 노동자들의 집결지가 되기도 했다. 모임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동독정권은 동독정권 수립 40주년을 계기로 월요임 모임을 파산시키기로 했는데 이에 1989년 가을 시민들의 불만이 터진 거다. 압력 탱크 밸브를 조금씩 열다 보면 갑자기 터져버리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9월9일 러예스터포럼이라는 야당단체가 탄생했는데 이를 동독 내무부가 불허하자 시민들은 ‘포럼을 인정하라’는 구호로 시위를 시작하게 된다. 정권은 이 시위에 손을 쓸 수 없었다. 폭력시위를 벌였다면 진압 명분이 있지만 평화시위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규모 면에서도 힘들었다. 7만 명이 시위하는데 경찰은 70명 밖에 안됐다.”

 

-라운드테이블에서 시민세력 중 한 명으로서 새로운 독일을 꿈꾸며 많은 토론을 하셨다는 점이 인상 깊다.

“라운드테이블에서 위원회 자리에 같이 참관했었는데 그렇게 구조적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나를 영웅으로 만들지 말라. 본래 라운드테이블은 기득권 세력인 독재층이 처벌을 받지 않고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폴란드에서 넘어온 방식이다. 구성원은 선거로 정해지지 않고, 기득권층과 시민운동가 반반으로 이루어진다. 1989년에 게라 지역의 비밀경찰 총장과 관련된 라운드테이블이 열렸었다. 시민들이 비밀경찰 사무소를 하나 둘 점령하면서 게라의 비밀경찰 책임자가 다른 구역 책임자들에게 ‘시민운동을 탄압하라’고 지시한 내부문서가 유출되는 일이 있었다. 문서 내용은 ‘잘못하면 시민운동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니까 너희가 조심하고 이런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방지하라’는 것이었다. 분노한 시민들은 해당 문서를 라운드테이블에 제출하면서 ‘이게 뭐냐, 비밀경찰이 쿠데타를 지금 시도한 거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동독정권에서는 ‘자기들끼리 벌인 일이다,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부정했다.”

 

-통일 직후인 1991년에 신나치주의 범죄가 6배나 증가한 것이 흥미롭다. 통일 초기 서독의 극우정당 지지율이 높았다가 98년부터 현재까지는 서독의 지지가 떨어지고 동독의 지지는 높아졌다. 이것이 서독의 통일비용부담이나 동독의 실업률 등과 연관이 있나.

“언급한 폭력사태는 통일 가장 초기의 것인데, 주목해야 할 점은 이것이 외국인에 대한 폭력사태였다는 거다. 외국인에 대한 시민의 반대가 시작된 것이다. 91년 이후 망명신청이 급증하면서 그 수가 포화상태를 넘어섰다. 그러면서 이들이 공원에서 노숙하는 상태까지 발생했다. 시민들은 질서에 침해를 받는다고 느꼈지만 시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는데 정신이 없었고, 결국 시민들이 망명자들을 폭행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처음부터 신나치주의자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시민폭력에 신나치주의자들이 동참을 하는 형태였다. 동독 비밀경찰에는 신나치주의자들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었는데, 통일이 되면서 수감돼있던 신나치주의자들이 모두 석방됐다.

내가 알기론 극우파들이 선거를 통해 어떤 권력을 잡은 것은 동독이 아니라 서독뿐이다. 극우파 7천 명 중 3~4천 명 정도가 서독인이었다. 그리고 서독의 통일비용 부담이 이런 갈등 사태에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는데, 그렇지는 않다. 사실 서독에서는 통일비용에 대한 점진적 부담을 실감하지 않았다. 소득의 5%를 소득세로 냈는데, 이는 동서독인을 막론하고 똑같이 낸 것이다. 동독의 인프라 구축이 우선되면서 서독인들의 불만이 있기는 했지만 이것이 정치적 불만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동독의 경우, 실업자가 모두 극우파인 것은 아니다. 다만 실업자들은 자신의 방향을 정하지 못했고 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순히 이데올로기를 따라가는 경우가 있던 것이다. 그 집단에 소속되면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극우를 지지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동독에 있던 극우주의 테러집단 구성원들도 어렸을 때부터 세뇌교육을 받은 경우다. 이들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직접 거리에 나가서 소셜 워커들이 이런 청소년들을 보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아까 ‘소득세의 5%’라고 했는데, 그러면 우리가 늘 말하는 ‘엄청난 통일비용’은 무엇인가.

“2006년까지의 통계를 근거로 했을 때 연간 통일비용은 천 억 마르크다. 이중 대부분은 사회복지비용이었다. 그런데 사회복지비용은 거주지만 옮기면 더 이상 통일비용이 아닐 수 있다. 두 번째는 비용은 인프라 구축비다. 도로 건설이나 도로공간 확보 등을 위한 것이 그 중 약 16%가 된다. 경제 방면은 6%고 그 다음이 기타인데, 기타는 조금 우습다. 동독에 파견된 서독 군인의 임금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런데 동독으로 파견되지 않고 서독에 주둔하고 있으면 임금은 그냥 나가는 건데 그걸 왜 ‘통일비용’으로 계산하나. 모순적이다. 연금을 지급받은 동독인들은 그 돈을 어디에 쓰나. 서독제품을 구매하는데 쓴다. 이 사람들에게 연금을 주지 않으면 서독제품을 살 수 없고, 그러면 서독경제는 오히려 악영향을 받는다. 경제는 항상 순환적인 개념으로 봐야 한다. 또 인프라를 구축할 때는 서독의 건설자재가 소비되고 서독의 건설회사가 돈을 벌지 않나. 이것을 통일비용으로 봐야 하는가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거다.

그러면 비용은 어디서 조달하느냐. 첫 째는 세금이고 두 번째는 납부금, 세 번째는 연간예산이다. 조세를 받을 때 부유한 주와 가난한 주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서독에 가난한 주가 많다. 서독 주들이 이런 제도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이 외에 예산재분배 시스템에 신 연방주에 대한 추가예산이 있지만, 이건 2019년이면 끝이다. 그때까지다. 이 예산재분배 시스템은 독일 전국을 고르게 발전시키기 위한 것으로 헌법에 규정돼있다.”

 

-결론은 독일 시민들은 통일 비용이 과도하게 부담됐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건가.

“시민들이 그걸 어떻게 느끼냐고 물어보시는데, 그러면 그러지 않을 방법이 무엇인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통일 이후에도 그 규정을 그대로 유지해서 동서독 간의 생활수준 격차를 유지하는 거다. 사실 세계 어느 시장도 예산이 충분하냐고 물으면 더 필요하다고 대답한다. 동독사람들은 우리는 너무 덜 받는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서독에서도 내 앞에 있는 도로부터 수리해야 할 판에 왜 동독부터 먼저 하느냐는 불만이 있지만, 이것도 어차피 2019년이면 지원이 끝난다.

오히려 동서 간의 격차보다는 독일 내 남북 간의 격차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 남쪽이 부유하다. 바이에른지방이나 쾰른지방 등 남쪽 부유층들이 본인들 예산을 북쪽에 퍼줬다. 그래서 불만이 많다.

독일은 장벽이 무너지고 국경이 완전히 개방되면서 통일이 됐지만, 한국은 인구비율을 고려해야 한다. 서독주민이 6000만 명, 동독주민이 1600만 명이었다. 인구비율이 4:1이었으니 4명의 서독인들이 한 명의 동독인을 자신의 생활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했던 셈이다. 그런데 남한 대 북한은 2:1이다. 그래서 독일의 통일 모델을 절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독일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연간 비용이 들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독일의 경우 동쪽의 임금수준이 서독의 40%였던 반면에 북한은 남한의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래서 한국은 독일 같은 갑작스런 통일이 아니라, 단계별 통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단계별 통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려면 이제부터 가열이 시작돼야 할 것이다.”

 

-남북 통일이 되면 이주가 활발해질 텐데 어떻게 이를 다뤄야 하는가.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대거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주신청 조건을 만들었다. 서독에서 주민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집이 있어야 하고, 근로를 증명해야 했다. 북한 주민이 남한으로 주거지를 이동할 때 이런 조건들을 붙이는 것을 고려해보는 것은 어떤가.”

 

정리=권은율 편집실 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