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칼럼

아산정책연구원 7주년 기념 행사

출처: 아산정책연구원 7주년 기념행사(2015.2.11)

지난 여름 언론사 특파원을 비롯해 워싱턴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은 인사 이동에 관한 이메일 몇 통을 받았다. 신미국안보센터(CNAS)에서 근무하던 Ely Ratner가 미국 부통령실의 부안보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아시아정책연구소(NBR)에서 일하던 Abraham Denmark가 국방부의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로 간다는 내용들이다. 다들 싱크탱크에서 근무하면서 한국 관련한 회의에 많이 등장해 친숙해진 사람들이다. 싱크탱크에서 근무하다 정부로 간다는 이런 메일… 한국에서는 받기 어렵다.

미국의 활발한 민간 싱크탱크는 한국 공무원과 언론인들이 꼽는 워싱턴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각종 회의와 다양한 보고서, 정부와의 인사 교류 같은 면에서 활동 폭이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그러면서 한국에서의 싱크탱크 역할에 대한 기대를 품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싱크탱크는 여전히 개념이 모호하다. 싱크탱크라는 용어도 기관의 성격에 관계 없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민간 싱크탱크는 공공성과 독립성을 갖추어야 한다. 특정 고객, 특정 정파, 특정 기업을 위한 연구는 안되며, 운영도 특정 정부나 기업, 개인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 요소다. 공공성과 독립성은 싱크탱크의 필요 조건이다. 이 외에 미국의 싱크탱크 생태계를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만드는 ‘만족 조건’으로 미국의 개방적인 공직 채용 구조와 싱크탱크를 통한 아이디어 경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미국식 모델의 싱크탱크는 가능한가?

우선 싱크탱크의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미국식 모델의 한국 정착이 가능한지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싱크탱크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면서도, 개념을 가장 의미 없게 만드는 곳이 정치권이다. 대통령 출마를 꿈꾸는 정치인들은 저마다 ‘싱크탱크’를 만든다. 보다 정확하게는 비공식 선거 캠프의 정책 자문이 목적인 교수와 전문가들의 모임이라는 것이 맞겠다. 그러나 단어가 근사하게 들려서인지 정치인들은 선거 캠프라는 말 대신 ‘싱크탱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싱크탱크의 원래 의미가 퇴색되는 이유다. 그렇게 만들어진 몇몇 기관이 설립자의 선거 활동과 무관하게 연구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대부분은 설립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당선됐기 때문에, 당선되지 못하면 당선이 못됐기 때문에 곧 사라진다. 이름은 남아 있다 해도 더 이상의 기능은 없다. 애당초 공공성이나 독립적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름을 싱크탱크라고 붙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괘념치 않는다.

여의도 연구소나 민주정책 연구원과 같이 주요 정당들이 운영하는 ‘싱크탱크’들도 있다. 이들 정당 산하 연구기관들은 정치인 개인이 설립한 싱크탱크들에 비해 지속성은 담보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특정 정당을 고객으로 삼고 있어 여전히 공공성과 독립성은 없으며 실제 운영도 정당의 공천 과정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데 비중을 더 둬 싱크탱크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의 연구기관들 역시 추구하는 이념 때문에 정파적이라고 비판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술적 판단이나 분석이 아닌 가치에 바탕을 둔 정책 문제를 다루는 영역에서 비판이 더하다. 예를 들어 AEI나 Heritage같은 곳은 공화당 계열, Brookings같은 곳은 민주당 계열이라는 비판이 있다. 우리 정당 연구소들과의 차이는 이들 기관들에 이념적 지향점이 있다 해도 특정 정당을 위한 연구활동은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기관이 특정 정당과 지향점이 같다 해도 이는 이념의 동반자임을 나타낼 뿐이며 그 정당을 위해, 그 정당의 선거 승리를 위해 연구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또 한국에서 싱크탱크라고 불리는 많은 기관은 정부가 부처의 일부로 운영하거나, 정부 출연 기금으로 만들어지거나, 정부 산하에 있어 정부기관과 다름없이 운영되는 ‘정부 싱크탱크’들이다. 그런 예로 KDI, 국립외교원내의 외교안보연구원, 통일연구원, 국방과학연구원 등이 있다. 개발 시대에 이들 연구기관들이 이룬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겐 정부 및 정부 산하 기관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미국에도 군이 출연한 연구기관이 있지만 독립적인 연구기관으로 크고자 하는 노력이 축적돼 오늘날 이들 기관은 믿을 수 있고 공정한 싱크탱크로 자리매김 했다. 그 점에서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성과 독립성에 비추어 한국의 정부 연구기관을 싱크탱크로 부르고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들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시민단체에서도 싱크탱크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시민단체들 가운데는 스스로 싱크탱크를 자처하거나, 산하에 싱크탱크라고 이름 붙인 연구기관들을 운영하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목적이나 성격은 객관적인 정책 분석보다 특정 정책 방향에 대한 지지, 특정 정책의 법령화에 있기 때문에 이들을 어떤 목적을 위한 이익 단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물론 당장은 특정 목적을 추구하는 이익 단체에 머물러 있어도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해당 분야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실질적 의미의 싱크탱크로 발전할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에 보다 가까운 모습은 우리나라의 대학교 내 연구소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민 연구소, 서울대 평화통일 연구소 등은 아직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들과 규모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 보다 객관적이고 비정파적인 연구를 하며 연구결과에도 공공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들의 공공성과 독립성은 어디에서 확보가 되는가? 재원 확보를 위한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그렇게 마련된 재원이 공공성과 독립성의 배경이 된다.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각종 재단, 정부 및 기업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초기엔 독지가의 뜻에 따라 기금이 출연되고, 기금 수익으로 운영비가 마련되던 경우도 있었지만 싱크탱크의 규모가 커지면서 기금 수익만으로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재단으로부터의 연구비 지원과 각종 기부를 받아야지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미국에는 다양한 목적을 가진 여러 재단들이 있다. 이들 재단들은 공공성과 독립성을 계속 갖춰야 법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활동의 성격이 특정 정파를 지원하는 것이 되면 존립이 위험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재단들이 제공하는 연구비 역시 특정 정파를 위해 사용될 수 없다. 그럴 경우 공공성과 독립성 덕에 누리는 세제 혜택을 못 받게 된다.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면 기부자는 당연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면에 기부하게 된다. 따라서 공공성과 독립성은 자금의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미국 싱크탱크가 활발하게 운영되는 또 다른 이유는 공직 개방성에 있다. 미국은 고시와 같은 시험을 거치지 않아도 공직으로 채용되는 게 다른 국가들에 비해 쉬운 편이다. 또 정부의 인사가 직위 분류에 바탕을 두고 있어 공무원들이 순환 보직 제도에서는 쌓을 수 없는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 퇴직해도 정부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장기적이고 객관적인 정책 분석 및 대안 제시에 나서게 된다. 정부가 발주하는 연구 용역도 정책 분야 전문성이 없는 대학 교수가 부업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고 이에 집중하는 전문가 그룹이 아니면 수행하기 어려운 연구가 요구되기 때문에 싱크탱크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재원 확보의 어려움과 폐쇄적인 공직 제도는 미국식 싱크탱크의 발전을 어렵게 한다. 한국의 많은 연구소들은 이런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들이 현재 규모 이상으로 연구 활동을 하기엔 재원이 부족하다. 또한 민간 싱크탱크와 정부 사이에는 인사 교류가 전혀 없다.

미국식 민간 싱크탱크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려면 재원 확보를 위해 기부 문화를 활성화 하고, 현재의 공무원 임용 방식을 개방적으로 바꾸는 두 가지 큰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 두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의 민간 싱크탱크들은 힘겨운 생존투쟁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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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엽
우정엽

외교안보센터 / 안보정책프로그램

우정엽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외교안보센터 안보정책프로그램 연구위원이다.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Georgetown University) 에서 정책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학교-밀워키 (University of Wisconsin at Milwaukee) 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의 한국학연구소 (Korean Studies Institute) 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여론문제, 제3국의 내전 무력개입에 관한 국제분쟁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