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이란 핵 협상, 시리아의 인권 위기, 이집트의 권위주의 회귀로 인해 2014년 세계의 이목이 또다시 중동으로 쏠리고 있다. 이러한 중동 현안에 대해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자 글로벌 중견국가 한국은 핵 확산 금지, 인권 보호, 민주주의 지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해야 한다.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가 핵심인 한반도 의제를 국제무대에서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중견국 외교를 3대 핵심 기조 중 하나로 삼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9일 첫 중동 방문에 나서 아랍에미리트로 떠난다. 우리 기업의 진출 확대와 원전 협력, 안정적인 원유 확보 등이 주된 목적이다. 중견국 외교가 절실한 중동 지역에서 중견국답지 않은 사업 얘기만 나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인도주의와 다자외교를 강조하는 중견국 외교정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장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경제 이익과 상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은 우리 원유 수입의 80%와 해외 수주의 50% 이상이 집중된 곳으로 국제규범에 충실한 중견국 정책을 고집할 경우 단기적이나마 경제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견국 외교는 장기적 국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정책이다. 이란 핵, 시리아의 인권, 이집트의 민주주의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길 때 한반도 문제에서도 세계 여론의 지지와 윤리적 권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우리는 한미 공조를 지나치게 강조하느라 국제무대 입지를 스스로 좁혀왔다. 하지만 우리가 중견국의 역할을 활발히 해낸다고 해서 한미 공조가 약화될 일은 없다. 이제는 동북아를 넘어선 국제무대에서 경제 이익을 넘어선 중견국 어젠다를 실천할 때이다.

이란 시장 재진출과 핵 확산 금지

P5+1(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과 이란이 체결한 임시 핵 협정 ‘공동행동계획(Joint Plan of Action)’이 올해 1월부터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 가동을 일부 제한하는 대신 제재를 6개월간 완화시켜주는 조치이다. 그런데 공동행동계획이 한시적인 조건부 조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이란과 무역 재개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제재 완화가 시작된 직후인 1월 말 강창희 국회의장은 국회 대표단과 함께 이란을 방문했고, 3월 중순에는 대규모의 한-이란 경제포럼이 테헤란에서 열렸다.

물론 이란은 한국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다.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다음으로 원유를 많이 사오는 나라이며, 이란에게 우리 역시 중국, 인도, 일본 다음으로 원유를 많이 사가는 나라이다. 또한 2010년 이란 제재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29호의 채택으로 제재가 한층 강화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란과 활발히 거래하던 우리 중소기업은 2,000여 사에 달했다. 이러한 이란 수출 중소기업은 이제 손실을 만회하고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의 후원 속에 적극적인 활동 재개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란 시장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이란 제재에 참여하지 않았던 중국이 유럽, 일본, 한국의 공백을 메우면서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했고, 우리 제조업은 비교우위를 잃게 됐다. 따라서 이번 이란 시장의 재진출은 꽤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기업의 활발한 재진출 움직임에 대해 이란의 태도가 석연치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우리가 미국 주도의 제재를 열심히 따랐기 때문이다. 한국을 향한 이란 정부의 불만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03년과 2005년 우리가 이란의 핵 확산 금지를 촉구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결의안에 동의했을 때도 경고성 발언이 난무했다. 이후 국제회의에서 마주친 이란 관리들 역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이란 제재에 참여해왔다. 더구나 이란과 북한 사이에 핵 기술과 군사 협력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란 제재 참여는 지극히 당연하다. 물론 이란은 북한과 달리 핵의 평화적 이용을 주장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회원국으로 남아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란 시장의 재진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눈앞의 경제 이익에 급급하여 이란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이란 핵에 대해 비일관적인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 책임 있는 중견국의 위상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 해결에서도 목소리를 높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과 인도적 지원

4년째로 접어든 시리아 내전으로 지금껏 15만 명이 사망했고, 27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13년 8월 아사드(Bashar al-Assad) 정권은 민간인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1,400 여명이 숨졌으며, 올해 4월에도 다마스쿠스 서북부 지역에서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또다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시리아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내전이 장기화 됨에 따라 정부군뿐만 아니라 반군 역시 인권유린과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올해 초 열린 2차 제네바 평화 회담에서도 아사드 정권과 반군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국제사회 역시 양분되어 있다. 러시아와 이란이 아사드 정권을 꾸준히 지원해온 반면 미국, EU,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터키가 주축이 된 반아사드 국제연대의 반군 지원은 체계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가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는 세력 중에는 급진 지하디스트 단체인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와 알 누스라 전선(al-Nusra Front)도 포함되어있어 반군 내 심각한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시리아의 세습 독재 체제가 생각보다 버티기에 능하여 내전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끝날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2013년 초 우리나라는 유엔 안보리에서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에 대한 회의를 조직하고 의장 성명으로 채택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과 민간인 학살을 강력히 비난했다. 이어 12월에는 서울에서 3차 시리아 경제재건 회의(The Meeting of the Working Group on Economic Recovery and Development)를 개최하여 내전이 끝난 후 국가 재건사업에서 전문 지식과 기술 제공을 약속했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가 제공키로 밝힌 시리아 인도적 지원금은 천백만 달러로써 일본의 2억 9천만 달러, 호주의 1억 천만 달러, 중국의 천3백만 달러에 비해 적은 액수이다(그림 1 참조).

그림 1. G-20 국가의 시리아 인도적 지원금 (2012~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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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와 북한은 세계에서 인권을 가장 심각하게 유린하는 국가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이 두 나라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인권보고서를 발간해오고 있다. 2011년에 조직된 시리아 인권조사위원회는 7차례, 2013년에 설립된 북한 인권조사위원회는 한 차례 보고서를 제출하여 아사드와 김정은 정권의 조직적인 인권탄압을 고발해왔다. 이로써 시리아와 북한은 부자세습 체제와 대량살상무기 보유국이라는 공통점 이외에 반인도적 범죄국이라는 불명예까지 함께 안게 됐다. 이들 인권 범죄국에 대한 우리의 정책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있다. 시리아 난민 구호와 인권 보호에 대해 우리가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때 북한의 인권 문제 역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지를 통해 보다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군사정권과 민주주의 지지

2011년 이집트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 혁명은 30년 장기집권 독재자를 물러나게 했으나 순탄한 민주화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첫 민주 선거로 뽑힌 무슬림형제단 소속의 모르시(Mohamed Morsi)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군부에 의해 축출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군부는 형제단 지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여 1,300여 명이 사망했다. 이어 올해 초 군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새 헌법이 국민투표로 통과되면서 공안정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오는 5월 말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면 낮은 참여 속에 군부의 실세 엘 시시(Abdel Fattah el-Sisi) 국방장관이 당선될 것이다.

군부의 재집권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난생처음 정권을 잡은 이슬람 세력은 국정운영에 서툴렀고, 경제난에 정정불안이 더해지면서 민생파탄이라는 말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민들은 혁명 후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시민의 대표를 자유롭게 뽑는 시스템이지 경제를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 기재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명령하달 식의 권위주의 체제보다 빠른 경제성장에 불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새로 뽑힌 정부의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해서 군부가 즉각 개입한다면 민주주의 안착은 결코 기대해볼 수 없다. 다수결 원칙에 기초한 대의 민주주의에서 선거결과에 승복은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나 군부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모르시 정부에 대한 심판은 군부 쿠데타가 아닌 4년 뒤 투표장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국제사회는 이집트 군부를 압박하기 위해 미국과 EU의 원조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4월 말 미국 정부는 이집트에 군사 원조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저지 정책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에서 차지하는 이집트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그렇지만 3년 전 혁명에서도 봤듯이 겉으로 안정적으로 보이는 권위주의 체제는 사소한 충격에도 급작스럽고 쉽게 무너지고 만다. 인위적인 억압이 낳은 안정은 오히려 위기로 이어지기 쉽고 엄청난 충격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견국가인 한국은 국제규범의 준수뿐만 아니라 견고한 외교관계 구축을 위해서라도 이집트의 민주주의 정착을 지지하고 후원해야 한다.

중견국가 한국의 중동 정책

우리는 동북아시아를 제외한 외교 관계에서 경제 이익을 중시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중동 관계이다. 우리는 중동을 에너지 수입원, 제조업 수출과 건설 프로젝트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하지만 중동 지역이야말로 핵 확산 금지, 인권 보호, 민주주의 증진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곳이다.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강화하고 북핵,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대중동 중견국 외교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게다가 비일관적인 외교정책으로 중동 현지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미국 대신 우리가 독자적이고 중립적인 중견국의 역량을 인정받는다면 한미공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중동 정책은 에너지와 원전 협력을 넘어 이란 핵, 시리아 내전, 이집트의 군부에 대해 국제규범의 준수를 강조해야 한다. 이란 시장으로 재진출을 모색할 때에도 핵 확산 금지 원칙을 견지해야 하고, 시리아 인권보고서의 권고 사항이 빠른 시일 내에 이행되도록 촉구해야 한다. 또한 이집트의 민주주의와 법치 회복을 지원해야 한다. 물론 일부 산유 왕정이 인권과 민주주의 논의를 불편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랍의 봄 이후 역내 세력 재편성에서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이들도 사업보다는 중동 현안 논의를 환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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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 중동연구프로그램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 중동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외교부의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국제개발협력 등이 있다. 저서로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Asan Institute 2012, 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혁명의 우발성과 다양성: 2011년 ‘중동의 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산정책연구원 이슈 브리프, 2011), “세계화 시기 자본의 민주적 함의: 이슬람 자본의 성장에 따른 무슬림 포괄 정당의 부상에 대한 이론적 고찰” (국제•지역연구, 2010),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