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칼럼

NORTH KOREAN FARMERS IRRIGATE A FIELD ON THE OUTSKIRTS OF KAESONG CITY.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요즘 10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에 시달린다. 벼 파종기인 1-5월 강우량은 평년의 75%에 그쳐 30%의 논이 메마른 상태라고 한다. 주요 곡창지대인 평안도와 황해도에 가뭄이 집중돼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100년 만의 가뭄’으로 인해 올해 쌀 수확량이 15-20%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1990년대 최소 수 십 만, 최대 수 백 만 명 아사자가 나왔다고 관측되는 북한이라 벌써 국제사회의 대규모 지원 없이는 대규모 아사사태가 재현될 것이란 말이 나온다. 과연 그럴까?

흔히 90년대 북한의 대기근이 홍수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95년, 96년의 잇단 대홍수 이후 북한 농업의 양대 생산물인 쌀과 옥수수 수확량이 반토막 나면서 천재지변과 대기근을 연결시키는 인식이 대중에 퍼졌다. 이러한 인상은 90년대 대규모 아사사태가 정권의 실패가 아닌 천재지변에 따른 불가항력적 사태라는 북한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90년대 북한 아사사태의 원인은 홍수나 가뭄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철저한 정책 실패였다. 오늘날 북한의 경제상황은 90년대에 비해 많이 나아졌으며, 북한 주민들은 무능한 정권에 기대기 보다는 장마당에 의존하는 자구책을 강구한지 오래이다. 이번 가뭄이 대기근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

90년대 북한 기아사태의 원인: 잘못된 경제정책

하지만 대부분 북한 전문가들은 90년대 아사사태의 원인을 소련 붕괴에 제대로 대응 못한 북한 정권의 정책적 실패에서 찾는다. 석유를 비롯한 거의 모든 원자재를 해외에 의존했던 북한은 식량만이라도 자급하기 위해 산간오지를 농토로 개발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덜 비옥한 땅에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비료를 대거 투입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국가들의 시장 개혁으로 북한은 더 이상 국내 생산품을 비싼 값에 해외에 팔고 해외 공산품이나 비료를 싼 값에 들여오지 못하게 됐다.

넓지도 않은 농토에서 최대한 많은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투입되던 비료 도입이 어려워지자 즉각 수확량 폭락 사태가 발생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바로 ‘시장의 부재’였다. 시장과 사유재산을 배척하는 북한은 생산과 분배를 아주 비효율적으로 만들었다. 집단농장 중심으로 운영되는 농업 분야에서 생산요소 투입량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시장이 없어 농산물 유통도 큰 문제였다. 북한에선 주로 철도로 곡창지대의 농산물을 기타 지역으로 수송하는데, 철도망이 전력난으로 마비되자 농산물은 그대로 산지에서 썩어 나갔다고 한다. 만약 시장이 존재하였다면 철도가 아닌 대체 운송수단을 찾아내었을 것이다.

2015년: 개선된 경제 상황

지표상으로 2015년 북한의 경제는 20여 년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무역량은 최소 4배 이상 증가하였고, 유니세프가 90년대부터 실시해 온 영양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식량 취약 지역이던 양강도와 함경도의 영∙유아 영양 상태가 많이 개선되었다. 대외경제 부분에서도 원자재 수출로 외화를 두둑이 벌어 놓았다. 북한은 2011년부터 중국에 석탄을 수출해 매년 10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리고 있다. 세계농업기구(FAO)가 추산한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곡물 약 40만t이다. 세계 최대 쌀 생산국의 하나인 태국의 쌀 수출가가 t당 약 380달러이므로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을 해결하기 위한 곡물 수입액은 운송비를 제외하고 1억 5000만 달러가 조금 넘는다. 북한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지불할 만한 금액이다.

장마당도 식량부족 사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중요한 기제다. 주민들의 식량 자구책의 일환으로 등장한 장마당은 오늘날 북한 경제의 낮은 효율성과 만성적인 식량 부족을 그나마 메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장마당은 주민들이 자기 텃밭에서 생산한 잉여농작물을 내다 팔고, 국영농장의 생산물도 유통돼 식량의 가용성을 높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울러 양강도와 함경도처럼 식량 사정이 안 좋은 접경 지역에서는 중국에서 농수산물을 ‘수입’하기도 한다. 쌀과 돼지고기의 가격이 중국 가격과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는 점에서 북한사회가 얼마나 중국 시장과 동기화/연동(Synchronization)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북한으로 중국의 잉여생산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북한의 식량 구성이 한국과 일본보다 다변화 되어 있다는 점도 가뭄의 충격을 완화해주는 요소다. 북한의 주식은 쌀과 옥수수인데, 키우는데 물이 많이 필요한 쌀과 덜 필요한 옥수수가 전체 곡물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50%, 40% 수준이다. 쌀이 한국과 일본의 전체 곡물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76%, 66%이며, 옥수수는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국내 생산량은 미미하다.

가뭄이 옥수수 재배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쌀이 식량 생산의 중심에 있는 한국보다 북한에 훨씬 영향을 덜 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북한이 가뭄에 취약한지도 의심스럽다. 사실 북한은 홍수에 더 취약하고 또 더 두려워한다. 90년대 초반 소련의 붕괴로 휘청거리던 북한 경제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95년, 96년의 대홍수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014년과 2012년에도 북한에 가뭄이 있었지만 북한이 국제기구에 보고한 해당년도 식량 생산량은 그 이전 해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그러나 큰 홍수가 닥친 2007년은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식량 생산량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보고 되었다. 북한 농업분야가 그만큼 가뭄에 대해선 나름 자구책을 갖고 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실제 세계농업기구에 보고된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기후와 관계없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4년에 보고된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5백만t에 육박한다. 현재 예상되는 것처럼 가뭄으로 총 생산량이 작년에 비해 15%~20% 낮아지면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4백만t에서 4백25만t사이가 되는데 이는 10년 전인 2005년 생산량과 비슷한 수치이다.

그렇다면 2005년도 북한의 식량 상태는 과연 어땠는가? 2005년 10월 6일자 뉴욕타임즈 기사에서 답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더 이상 식량원조가 필요 없다며 국제 식량 지원 단체들을 추방하려고 했다. 이는 현재 북한이 겪고 있는 가뭄이 일부 주장처럼 심각하다 해도 상황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10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올해 가뭄이 북한경제에 큰 피해를 주거나 심지어는 대대적인 탈북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일부의 예측은 과장이라고 봐야 한다.

대규모 기아사태를 장기간 연구한 업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기근으로 인한 아사사태는 민주주의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대규모 아사사태는 절대적인 식량 부족보다 분배, 즉 정책의 문제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만약 올해 가뭄으로 북한에서 대규모 아사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는 취약지역과 취약계층을 살피지 않는 북한 정권의 정책 실패이지 자연재해로 인한 불가항력적 사태가 아니라는 점을 한국과 국제사회는 분명히 해야 한다.

About Experts

고명현
고명현

여론・계량분석센터 / 사회정보관리연구프로그램

고명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여론·계량분석센터 사회정보관리연구프로그램 연구위원이다. 컬럼비아대학교 (Columbia University)에서 경제학 학사, 통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Pardee RAND Graduate School에서 정책분석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UCLA의 Neuropsychiatry Institute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사회 네트워크, 복잡계 사회적 상호작용, 질병의 지리공간 모델링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