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지난 36년간 수많은 도전과 대외적 난국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해 왔고, 이제 그 분수령에 서 있다. 우리는 젊은 수령 김정은의 영도 아래 그 과업을 완결해 나갈 것이다.’

지난 5월 6~9일 나흘간에 걸쳐 개최되었던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북한은 다양한 수사와 정치적 제스처를 쏟아 냈지만, 내외를 향해 던지고자 한 메시지는 이렇게 집약될 수 있다.

1980년 제6차 당대회 이후 무려 36년 만에 열린 당대회를 통해 평양은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자축하는 동시에 UN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북한의 모습을 보여주려 부심하였다. 그런 점에서 사업총결보고(총화)와 당대회 결정서에 담긴 장광설(長廣舌)은 북한의 의욕과 자부심, 딜레마와 약점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의 총화1는 기존의 업적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과 미래의 포부를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 혁명의 최후 승리를 앞당겨 나가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 것”이라고 했던 그의 당대회 직전 발언(《로동신문》 5월 6일자)에 비하면 너무 개괄적이고 비전도 빈약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주요 키워드와 그 함축성

1. 김일성-김정일주의: 김정은판 주체사상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별다른 비전을 내놓지 못했다는 비판은 김정은 나름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전문가들이 기대한 만큼 부각되지 못한 점에서 비롯된다. 김정은은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주창한 것 이외에는 기존의 주체사상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이념을 정립하지 못 했다. 그러나 이는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주체사상’에 입각한 ‘수령론’과 ‘혁명가계론’은 혈연에 의한 3대째의 부자승계에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하는 핵심 논리다. 따라서 주체사상의 섣부른 개작(改作)은 김정은이 자칫 자기 부정의 우를 범하게 만들 수 있다. 더욱이, 현재로서는 개작의 필요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은의 카리스마와 통치력이 부족해 권력분점이 불가피한 상황이 된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주체사상에 입각한 1인 지배구조를 손보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2014년 이후 본격화된 ‘공포정치’를 통해 그 나름대로 수령의 위상을 확보한 김정은으로선 굳이 선대(先代)와 차별화된 노선을 추구할 이유가 없었다.

이러한 의도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언급한 빈도에 그대로 나타난다. 2015년 이후 김정은 육성신년사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현격히 줄어들었지만, 제7차 당대회의 총화에서는 기존의 신년사보다 2~3배 늘어났다. 이는 신년사가 지난 1년간에 대한 회고를 반영하지만 총결보고는 36년을 결산한다는 차이와, 선대의 업적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김정은의 의도가 혼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김정은은 선대의 업적을 희석하기보다는 계승하는 한편, 이를 완결할 최적임자로서 현재의 ‘수령’인 자신을 부각시키는 방안을 선택한 것이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이러한 면에서 과거(김일성·김정일)와 현재(김정은)의 접점을 최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김정은판 주체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주체사상의 이론적 측면과 현실적 실천이 결합된 이념이 ‘김일성-김정일주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정은은 총화에서 “김일성-김정일 주의는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창시하시고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 심화발전 시키신 주체사상과 그에 의하여 밝혀진 혁명과 건설에 대한 리론과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라고 해석했다. 현재 진행형인 주체사상의 실천 과정을 완결할 인물은 다름 아닌 자신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단순한 계승자라는 위치에 만족하고 있다고만 볼 수는 없다. 2016년 들어 ‘김정은의 당’, ‘김정은 조선’, ‘김정은 강성대국’ 등의 표현은 이미 북한 매체에서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으며, 이는 이미 김정은이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같은 동등한 ‘수령’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의미한다.2

또한, 김정은은 전체적으로 주체사상을 기초로 한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틀을 유지하면서도 세대 변화를 강조하는 자신만의 키워드를 추가해 변화를 꾀했다. 2016년 신년사에서도 언급된 문화예술ㆍ체육ㆍ교육 기능의 강화를 지향하는 ‘문명강국’, 젊은 세대의 역할을 부각하는 ‘청년강국’3등의 표현이 바로 이런 키워드들이다.

‘선군정치’의 자리 매김 역시 분명해졌다. 김정은은 2014년의 신년사 이후 ‘선군’의 언급 횟수를 점차 줄여왔는데, 이는 여전히 사회의 동원기제로서 군의 역할을 중시하면서도 군의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포석의 일환으로 해석되어 왔다. “선군은 조선혁명의 영광스러운 전통이며 선군정치는 주체의 기치 밑에 총대로 개척되고 전진하여 온 우리 혁명의 력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라는 김정은의 총화 내용은 주체와 선군의 관계를 명확히 정의한다. 즉, 주체 없는 선군, 수령의 령도가 배제된 선군은 그 자체가 무의미함을 강조하고 있다.

2012년 리영호, 2015년 현영철의 충격적 숙청과 김정은 시대 4년 동안 벌어진 군수뇌부의 잦은 교체에는 바로 이러한 의중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군부를 억압만 하면 잠재적 권력불안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

2. 사회주의 강국: 분수령에 선 최종 목표

제7차 당대회의 총화를 통해 김정은은 북한이 지향해야 할 최종 목표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였다. 총화에 의하면 사회주의 강국은 정치군사강국, 과학기술강국, 경제강국, 문명강국을 의미한다. “총결기간 동안 조선로동당은 전대미문의 엄혹한 시련과 난관 속에서 사회주의 위업을 전진시키기 위한 위업을 벌리였습니다”라는 언급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향한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사회주의 강국의 완성을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한다.4 이를 위해서는 대내외 다양한 도전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김정은의 총화와 당대회 결정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최대의 대외적 위협은 (미국을 필두로 한) “제국주의자들과 그 추종세력들의 정치군사적 압력과 전쟁 도발 책동, 경제적 봉쇄“이다. 이에 못지않은 대내적 과제도 있는데, 당 내 세도 및 관료주의와 부정부패의 척결, 그리고 경제 문제의 해결이다. 김정은은 총화를 통해 당내의 종파주의, 부패 등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였으며, 이는 당 결정서에서도 그대로 반복돼 있다.

경제 분야에서 김정은 정권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불안한 공존을 해결하고, 중앙집중적 계획경제의 통제력을 회복해야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있다. 경제문제에 대한 김정은의 관심은 총화에서 언급된 2016년~2020년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서 잘 나타난다. 북한의 다개년 경제계획은 1987년~1993년의 《제3차 7개년 계획》 이후 처음으로 등장했다. 여러 해에 걸친 경제계획은 자원배분과 관련된 재원의 조달과 정확한 통계자료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수립될 수 있다. 김정은이 김정일 시대에는 시도하지 못 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북한 경제 운용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과, 어떻게든 계획경제의 기초를 강화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총화 내용 중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가 실현되었습니다”라는 부분은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지만, 에너지 생산 특히 전력 부문에 대한 강조는 잠재적 불안감의 반증이라 할 수 있다.

3. 조국의 자주적 통일: 통일의 최종 상태로서 ‘연방제’의 강조

7차 당대회 과정에서 또 하나 특기할 키워드는 통일 문제에서의 ‘자주성’과 ‘연방제’의 강조다. 김정은은 “조선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복잡하고 첨예한 때일수록 민족 문제, 통일 문제 해결에서 자주의 원칙을 확고히 견지해나가야 합니다”라면서, “외세는 우리 민족이 하나로 통일되어 강대해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남북 간의 《6.15 공동선언》이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에 기초한다고 해석하면서 《10.4 선언》을 실천 강령으로 정의하였다. 북한의 ‘련방제(연방제)’는 《6.15 공동선언》에서 언급된 ‘낮은 단계 연방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김일성이 1991년 주장한 ‘1민족 1국가 2체제 2제도’ 통일방안과 궤를 같이 한다.

남북에 서로 다른 제도를 보장하되, 주권은 단일국가(연방정부)에 귀속되는 ‘일국양제(一國兩制)‘적 통일 방안을 강조하는 것은 김일성/김정일의 노선을 계승하는 동시에 한국 주도의 통일분위기 조성에 맞불을 놓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김정은은 “남조선 당국은…언제가도 실현될 수 없는 허황한 [제도통일]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습니다…상대방의 사상과 제도를 부정하고 일방의 사상과 제도에 의한 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전쟁을 하자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라고 거칠게 비판하였다.

이와 함께, 김정은은 우리 정부의 국제적 대북정책 공조와 대북 제재 국면에 대해서도 날 선 공격을 했다. 예를 들면, “민족내부문제 통일문제를 여기저기 들고 다니며 외세에 구걸하는 것은 민족의 존엄과 리익(이익)을 팔아먹는 매국배족행위이며 반통일행위입니다”라거나, “남조선당국은 친미사대근성을 버리고 굴욕적인 대미추종정책과 결별할 용단을 내려야 하며 동족을 모해하는 수치스러운 외세공조놀음을 그만두어야 합니다”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경색된 현정국에 대한 책임 미루기도 등장했다. 김정은은 총화를 통해 한국이 “우리의 병진로선과 그에 따른 정당한 조치들을 [도발]과 [위협]으로 걸고 들면서 위험천만한 군사적 도박에 뛰어들고 있으며”라고 주장하였다. 동시에 현재의 정국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유화 제스처도 취했다. “북남관계의 현 파국상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얼마든지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라든지, “북과 남은 여러 분야에서 각이한 급의 대화와 협상을 적극 발전시켜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고 조국통일과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출로를 함께 열어나가야 합니다”라는 주장이 대표적 예다. 북한은 이의 연장선상에서 남북 군사당국자 회담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하였다.

4. 동방의 핵대국: 양수겸장(兩手兼將)의 포석 깔기

UN 안보리 결의 2270호에 따른 대북 제재가 진행 중인 분위기를 반영하여 당대회 기간 중 대미 비판은 어느 때보다 날이 서 있었다. 《로동신문》은 당대회 이전인 5월 5일자 기사를 통해 “미국은 조선반도에 최악의 전쟁국면을 조성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김정은은 총화에서는 과거 자주 등장하였으나, 최근에는 드물었던 ‘철천지 원쑤(원수)‘라는 표현까지 동원됐다. 총화를 통해 김정은은 미국을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대세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의 자주화를 가로막는 핵심 걸림돌로 지목하였다. “미국이 감행하는 [반테로전]은 반미적인 나라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테로행위이며 새로운 변종의 침략전쟁책동입니다”라는 표현은 어떤 면에서 미국의 세계 전략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 동시에, 그 동안 테러를 비판해 온 북한의 기존 입장도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제국주의자들은 [인권옹호]의 기만적인 간판을 들고 주권국가들의 내정에 횡포하게 간섭하면서 나른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유린말살하고 있습니다”라고 공박하면서 인권 문제에 대한 압박에 불편한 심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에 대한 논리적 귀결이 핵보유 정당화다. 김정은의 총화에는 ‘핵강국’이라는 표현이 도처에서 등장하였으며, 당대회 결정서에서는 ‘동방의 핵대국’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였다. 결정서는 또 “핵무기의 소형화ㆍ다종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고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하여 우리 조국을 ‘동방의 핵대국’으로 빛내어나갈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강성 대미 기조의 표출과 ‘핵강국’의 강조는 양수겸장의 포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현재 한반도의 긴장 국면을 ‘북한 대(對) 미국’의 대결 구도로 상정하면서 스스로를 세계적인 세력으로 여기는 태도를 드러냈다고 보는 해석이다. 북한이 실질적 핵보유국의 반열에 올라선 만큼, 이에 상응하는 위상을 인정해야 향후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우리 당은…핵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군사력을 마련하고 미국의 전쟁도발책동을 걸음마다 짓부셔버림으로써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믿음직하게 수호하였습니다”라는 김정은의 주장은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다.

다른 하나는 이를 대화를 통한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높이려는 사전 포석으로 보는 해석이다. 강경한 대립 국면으로 위기 의식을 고취한 다음 전격적인 평화공세와 대화 제의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북한의 전통적 대외 전략의 연장선에서 보는 입장이다. 사실 “미국은 핵강국의 전렬에 들어선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여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군대와 전쟁장비들을 철수시켜야 합니다”라는 김정은의 주장도 주한미군 철수 못지않게 평화 체제 논의와 대화 재개 부분에도 방점을 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이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미 천명한대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국제사회 앞에 지닌 핵전파의무방지(비확산)를 성실히 이행하고…”라고 주장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즉, 기존 핵 능력을 일정기간 보유한 상태에서 현재 핵 개발의 동결에서부터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북에겐 생존전략이지만 우리에겐 기만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이중해석이 가능한 언급들이 곳곳에 있다.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한다는 표현은 일단 북한이 핵개발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국내 언론들이 ‘항구적 핵보유’로 해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 로선을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라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항구적’이라는 표현 앞에는 “제국주의 핵위협과 전횡이 계속되는 한”이라는 전제가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무기를 앞으로도 가질 것이며 양을 늘려가고 성능을 향상시키겠다는 점을 전면에서 강조하면서도, 미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이 ’항구적 노선‘이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질량적인 강화’의 범위를 핵탄두에 국한하지 않고 탄도미사일과 같은 운반수단까지를 포함시킬 경우, 향후에 있을 수 있는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과 같은 조치가 이와 반드시 배치되는 것으로 보기도 힘들다. 핵탄두의 수를 늘리지 않고 핵실험도 자제한 가운데 일부 미사일 기술을 세련화 하는 카드로 대미 협상을 시도할 수도 있어서다.

“비록 지난날에는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는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해 나갈 것”이라는 김정은의 표현이 대미 언급의 말미에 등장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 가치가 있다. 강력한 비난 용어를 사용했지만 내심 미국의 대북 정책이 전환된다면 그들 역시 정책을 바꿀 것임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5. 자강력 제일주의: 그 속에 담긴 대내외적 메시지

김정은의 총화보고와 당대회 결정서에서 공히 강조된 또 하나의 키워드는 ‘자강력’이다. 김정은은 “조선혁명의 력사(역사)는 자강력으로 개척되고 승리하여온 력사입니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자강력 제일주의를 높이 들고 나가야 합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자강력’은 김정은의 금년도 육성 신년사에서도 강조된 단어였다. 이는 자립경제를 강조하고, 경제제재 국면에서 자체 생존능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대내용 메시지로도 볼 수 있지만, 그 못지않게 중국을 직접 겨냥한 수사로도 볼 수 있다.

“오늘 우리가 믿을 것은 오직 자기의 힘밖에 없습니다”라는 김정은의 총화 내용도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을 우회적으로 비난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분렬(분열)에 관련 있는 나라들과 주변국들은 북남 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부추기지 말고 조선의 통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라는 언급 역시 최근의 북ㆍ중 관계를 함축적으로 반영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당대회 후 《조선중앙통신》이 시진핑의 축전 전달 사실을 보도하기는 하였으나, 각국으로부터 온 축전과 축하편지를 소개하는 《로동신문》 5월 8일자 지면에 중국의 비중은 예전과도 달랐고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사실도 북ㆍ중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6. 당 위원장 김정은: 최종적 선택지인가?

당대회 마지막 날인 5월 9일, 김정은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이미 7차 당대회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김정은을 ‘당의 최고수위’에 추대하는 것이었고(이는 당대회 당일 《조선중앙TV》에서도 방송된 바 있다), 이는 당대회 결정문에서도 그대로 반영돼 있으므로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당대회 이전 많은 분석가들은 김정은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비해 다소 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제1비서’ 대신 다른 직위를 가질 것이라고 관측했었다. 다만 이미 2012년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규정한 만큼, 총비서직에 추대할 수는 없고, 서기장이나 여타 직위를 신설하는 것 역시 뚜렷이 차별화된 대안이 아니라는 문제가 있었다.

‘당 위원장’직은 이러한 고민을 해소하기 위한 김정은 나름의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아버지의 직위를 빼앗았다는 인상을 피하고 과거 할아버지의5 것과 유사한 직위에 취임함으로써 ‘당의 최고수위’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하려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이 직위가 기존의 ‘제1비서’에 비해 얼마나 더 권능이 있는 직위인지 불분명하다. 또 김정은이 추대된 ‘당 위원장’이 과거와 같이 당대회 휴회기간동안 노동당 최고결정기구 역할을 한 당 중앙위원회의 위원장인지,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당 최고수위를 의미하는 것인지 역시 불투명하다. 향후 북한 매체의 보도를 지켜보아야 할 부분이다.

김정은의 당위원장 취임과 함께 새로 신설된 ‘정무국’6의 위상과 기능 역시 아직은 확실한 평가를 내리기 이르다. 일각에서는 향후 노동당 정무국의 권능이 대폭 강화될 것이며, 김정은의 ‘당 위원장’은 그 수위로서의 기능을 행사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하지만, 이는 그나마 형식적으로라도 노동당 내에서 존재하던 역할분담 및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리는 악수(惡手)가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의 신설직위 못지않게 분석가들이 주목한 부분은 북한 권력엘리트의 세대교체 여부다. 30대인 김정은과 60대~70대로 구성된 당 최고위 엘리트들과의 세대차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이렇게 구세대에 비중을 두는 ‘노인 정치’는 광범위한 인사적체에 따른 불만의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 역시 금년도 신년사에서부터 ‘후대 중시’ 등의 표현을 통해 세대교체를 암시하였고, 당대회에서는 ‘청년강국’ 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노동당 대회 폐회와 동시에 발표된 정치국 상무위원 및 정치국원 명단에서는 의미 있는 최소한의 세대교체 특성을 발견하기 힘들다. 김정은과 함께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김영남, 황병서 이외에 박봉주(총리)와 최룡해(당 비서)가 선임되었으나 이들은 기존의 엘리트들이고, 19명의 정치국원 명단 역시 특별히 젊어진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의 권력구조 특성상 여러 단계를 건너뛰고 단숨에 권력핵심부에 진입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 중앙위원회의 정의원이나 후보위원 명단에서는 일부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이는 추후의 분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최고인민회의나 지방 당조직의 인선도 마찬가지로 기존 주류 세대에 비해 10세 정도가 젊어진 50대의 약진이 이루어질 수 있다. 분명한 점은, 김정은이 문화ㆍ예술의 진흥과 아울러 폭은 제한되지만 정보 공개의 확대를 통해 ‘생물학적 청년’의 대중적 기반을 확대하는 한편, 과거에 비해 보다 젊어진 ‘정치적 청년(50대)‘을 자기의 친위세력으로 삼는 시도를 지속하리라는 것이다.
 

무엇을 향한 분수령인가?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제7차 당대회에는 김정은의 또 한 번의 ‘등극행사’라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주체혁명위업의 력사적 분수령’을 강조하면서 영도할 당의 최고수위로서의 김정은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우리 혁명이 가장 어려운 난관과 시련에 직면했던 시기를…현대판종파분자들을 제때에 단호히 적발숙청함으로써…”(이는 장성택 숙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라는 총화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단기적으로는 김정은에게 도전할 세력을 찾아보기는 힘들다는 현실은 제7차 당대회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과연 제7차 당대회가 북한의 ‘강성대국 완성’을 향한 분수령이 될지, 중ㆍ장기적 몰락을 향한 분기점이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표 1. 역대 북한 당대회 특성 비교

표1. 역대 북한 당대회 특성 비교

현 시점에서 김정은의 가장 큰 과제는 내부적으론 정치 체제의 정비, 대외적으론 핵 국면의 타결이다. 김정은의 ‘조선로동당 위원장’ 취임은 이러한 잠재적 불안정성을 짐작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라 할 수 있다. ‘당 위원장’직은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당의 최고수위이며 김일성이 과거 보유했던 자리다. 그런데, 이를 획득하는 맥락은 정반대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김일성의 경우, 전통적인 구(舊)소련식 당-최고회의 병립형 구조 하에서 보유했던 당 위원장 직위를 1966년 ‘총비서’로 바꾸었고7, 5차 당대회에서는 사실상 1인 독재 체제를 확립했다. 이러한 ‘수령’으로서의 지위는 1972년의 ‘사회주의 헌법’(주석제) 개정을 통해 뒷받침되었다. 반면, 김정은의 ‘당 위원장’의 역할과 권한은 여전히 불분명하며, 2009년의 《김일성 헌법》상 북한의 최고직위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제1위원장)‘과의 관계 역시 확실히 정리되지 않았다. 김정은이 두 직위를 겸임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럼에도, 당 기구와 정권 기구의 위상 사이에 잠재된 불확실성이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은 향후 또 한 번의 헌법개정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크다. 김일성과 김정일과 같은 ‘수령’이자 ‘위인’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자신의 권력기반을 확보하고 신뢰할 만한 2인자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는 김정은의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핵과 관련해서도 당 대회 이후 김정은의 딜레마는 계속될 것이다. 일단 당대회를 통해 양수겸장의 포석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이는 동시에 그의 고민을 반영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안이 당대회 이전부터 징후를 노출하였던 5차 핵 실험의 강행 여부다. 많은 관측가들이 당대회 이전 ‘축포’로서의 핵 실험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사실 4차 핵 실험과 6차 장거리 미사일 발사만으로도 이미 내부적 ‘축포’는 완성되어 있었다. 지하시설이라는 풍계리의 특성상 기존의 6Kt을 넘는 폭발력을 시현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자칫 지반이 무너져 핵 실험 시설 자체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스스로 ‘핵강국’을 자처했지만, 이를 인정할지 여부에는 북한의 ‘능력’보다는 주변국의 ‘의지’가 더 강력히 작용하며, 이미 미국ㆍ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핵보유국 인정이 불가능함을 수차례에 걸쳐 천명했다.

이러한 점에서 이미 금년 초 4차 핵 실험 직후부터 준비된 5차 핵 실험을 언제, 어떤 조건하에서 감행하느냐 하는 것은 김정은의 최대 고민일 수밖에 없다. 만약 김정은이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모색한다면 일단 모라토리엄 및 핵동결과 같은 상징적 조치를 선언하는 평화공세를 앞세우고, 북한은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반응을 본 이후 핵 실험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과연 북한의 상징적 조치를 한ㆍ미가 받아들일지 불투명하다. ‘핵강국’의 위신을 내세우기 위해 5월 중 5차 핵 실험을 강행한다 해도 획기적으로 상황이 바뀌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5월 말 혹은 6월 초 UN안보리의 제재 이행보고서가 검토된 이후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를 완화할 수 있는 명분을 막아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5차 핵 실험은 김정은의 ‘회심의 카드’라기보다는 딜레마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제7차 당대회 이후의 대북정책방향을 위한 제언

제7차 당대회는 어떤 면에서 국제 공조를 바탕으로 한 우리의 대북 압력이 효과가 있다는 반증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김정은이 총화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해 남북 대화의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은 기존의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에서 ‘통미통남’(通美通南)으로의 전술적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7 미국과의 직거래 관계 개설을 위해 한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에서 벗어나, 북ㆍ미 대화의 재개를 위해 최소한의 징검다리로서 한국의 입지를 인정하려는 방향으로의 변화다. 이는 국제 대북 제재 공조네트워크에서 우리의 적극적 역할이 현재로서는 주효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금번 노동당대회에서 나타난 북한의 메시지는 향후 진정한 평양의 변화를 유도하려면 보다 정교한 대안과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포석을 구사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분명 북한의 ‘연방제’ 강조나 남북 군사회담의 제의는 기만적이며, 현재로서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 병진노선을 항구적 전략노선으로 추구하겠다는 북한을 ‘항구적 비핵화’ 의도라고 받아 치는 것 역시 국제 제재를 통한 압력 강화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북한이 5차 핵 실험을 강행한다면 우리의 입장은 오히려 편해질 수도 있다. 제재 강도가 높아지면 한국에게는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면서 적극적 평화공세를 펼치는 경우에도 대비하는 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혹은 국방위원회 명의 성명을 통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한반도 평화 체제 문제를 거론하거나, 남북 군사당국자 회담의 조기 개최를 주장할 경우, 이런 제안들이 ‘왜’ 받아들일 수 없는 기만적 제스처인지 설득력 있는 논리를 대내외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남북 군사회담을 주장할 경우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전술적 도발뿐만 아니라 모든 전략적 도발(핵ㆍ미사일 실험 등)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우선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 논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왜 현 단계에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조미평화협정》이 아무 의미가 없는지, 북한이 강력히 비난하는 한ㆍ미 군사훈련(이는 8월의 UFG 훈련을 겨냥하여 다시 가열될 가능성이 있다)의 중단이 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지, 한국이 생각하는 한반도 평화 체제 논의의 전제조건과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내외 메시지도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한국과 주변국의 대북 공조 연대가 이완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 차원의 노력 역시 지금 당장 시작되어야 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 1.

    총화는 ①‘주체사상, 선군정치의 위대한 승리’, ②‘사회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③‘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 ④‘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⑤‘당의 강화발전을 위하여’라는 소제목으로 구분돼 구성되었다.

  • 2.

    《로동신문》은 당대회가 개최된 5월 6일, 기사를 통해 김정은을 김일성 및 김정일과 함께 ‘백두산 천출위인’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 3.

    “조선로동당은 혁명령도의 전 기간 청년중시를 전략적 로선으로 틀어쥐고 청년들을 주체의 혈통을 이어나가는 혁명의 계승자로 튼튼히 키움으로써 세상에 둘도 없는 청년강국을 건설하였습니다”라는 김정은의 총화 내용은 좋은 사례이다.

  • 4.

    5월 6일자 《로동신문》 사설의 제목도 ‘우리가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이룩하려면 아직도 멀고도 험난한 길을 헤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 5.

    북한은 1966년 당 직제개정을 통해 총비서직을 신설하고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직을 폐지하였다. 물론, 북한은 당대회 이후 보도를 통해 신설된 ‘당 위원장’직과 과거의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직이 다른 것처럼 보도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차이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 6.

    제7차 대회 마지막 날 새로운 조직으로 정무국이 등장하는 대신, 기존의 비서국 인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무국은 비서국을 대체하는 조직으로 평가된다.

  • 7.

    이 직후 갑산파 내부의 권력투쟁을 통해 리효순과 박금철을 숙청하였다.

  • 8.

    혹자는 ‘통남봉미’를 언급하고 있으나, 이는 일종의 이간책으로 사용될 수 있을 뿐, 북한의 궁극적 지향점이 되기는 어렵다.

 

About Experts

차두현
차두현

경기도 외교정책특별자문관

차두현 박사는 북핵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국가위기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현재는 경기도지사 외교정책특별자문관으로 있으면서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