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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代 벗어나 홀로서기하겠다는 김정은

김정은의 2016년 신년사는 형식과 구성에선 이전 신년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내용에는 선대의 후광을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겠다는 태도가 강하게 시사돼 있다. 이는 김정은이 할아버지(김일성)와 아버지(김정일) 시대의 표현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시대에 걸맞은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정통성의 기반을 ‘백두혈통’에 두기는 하지만, 선대의 후광이나 유훈에만 기대지 않는 완전한 ‘수령’을 선포했다. 아래 표에서 보듯 김정은 시대 개막 이후 신년사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언급은 필수 콘텐트였다.

그러다 2015년 김일성과 김정일 이름이 직접 언급되는 대신 ‘수령님’이나 ‘장군님’이란 표현으로 간접 등장했고 횟수도 대폭 줄었다. 2016년에도 이런 현상이 이어졌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에둘러 표현하고, 그것도 ‘김일성-김정일 군사전략전술’, ‘김일성-김정일 노동계급’과 같이 간접 방식이었으며, 언급 횟수도 각각 4회에 그쳤다.
 

표 1. 최근 5년간의 북한 신년사(공동사설) 내용 비교

* 2012년은 육성신년사가 아닌, 신년 공동사설 형식으로 발표(괄호 안 숫자는 김일성, 김정일의 간접 언급까지를 합한 횟수)

* 2012년은 육성신년사가 아닌, 신년 공동사설 형식으로 발표(괄호 안 숫자는 김일성, 김정일의 간접 언급까지를 합한 횟수)

 

‘선군’, ‘당의 영도’보다 앞서는 ‘수령’

‘선군정치’ 혹은 ‘선군사상’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는 김정일 시대 후반부터 있었지만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더욱 뚜렷해졌다. 2013년과 2014년부터 현격히 줄기 시작한 ‘선군’이라는 단어는 2016년 신년사에서 두 차례만 언급됐다. 조선인민군을 북한을 이끄는 중요한 동원 세력이자 조직적 무력으로 인식하지만 군 수뇌부(고위장교단)의 과도한 정치력 행사는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제 ‘선군’은 단합을 상징하는 단어일 뿐 더 이상 군의 우월적 지위를 보장하는 권력의 단어는 아니다.

그렇지만 ‘당의 영도’가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하지도 않았다. 김정은 시대의 신년사에서 ‘당의 영도’는 전체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지만 특별히 부각되지는 않아 왔으며, 제7차 노동당 대회를 앞둔 2016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는…우리 혁명의 최후승리를 앞당겨나가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 것입니다”라고 언급, 5월 당 대회를 기점으로 당을 중심으로 한 단결을 더욱 강조할 것임을 암시했다. 그럼에도 신년사에서 당의 영도를 크게 부각시키지 않은 데는 ‘김정은이 노동당의 수위(首位)’라는 원칙을 당 대회를 통해 재확인하고 강화한다는 전략이 반영돼 있다. 따라서 김정은은 7차 노동당 대회를 기점으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같은 새로운 직위를 ‘정권’ 부분이 아닌 당에 신설, ‘제1비서’를 뛰어넘는 자리에 취임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을 통치하는 주체는 ‘제도’로서의 조선노동당이 아니라 제1비서로 당을 이끄는 자신이며, 고도의 권력집중을 통해 ‘수령’의 시대를 열어나가겠다는 김정은 의지의 표현이다.

 

국방 분야 성취에 대한 이중적 해석 가능성

북한 신년사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일상적인 치하와 인사, 두 번째는 전년도 업적 소개, 세 번째는 당해 연도의 대내적 도전과제와 극복방향 제시, 네 번째는 대외적 도전과제와 응전방향 제시, 마지막은 전체적인 정리 및 인사다. 이번 신년사에는 두 번째 항목인 업적 나열 순서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 2015년엔 ‘국방→경제→체육’이었지만 2016년엔 ‘경제→체육→국방’으로 바뀌었다. 세 항목은 늘 신년사의 주요 내용이었지만 변화된 순서는 전 해의 성취에 대한 북한 당국의 인식을 드러낸다.

2016년 경제 분야의 성취가 가장 먼저 언급된 대목에서, 공식 성장률은 1% 내외지만 겉보기와 달리 안정화 돼 있는 북한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김정은이 관심사인 체육 분야에서 ‘여자축구’를 특별히 언급한 것은 2015년 U-19대회 준우승, U-16 대회 우승을 중요한 성취로 보고 있음을 반증한다.

국방 분야가 맨 뒤로 언급된 데 대해 북한이 2015년 핵 능력의 ‘소형화ㆍ다종화’를 주장했지만 이를 대외에 과시할 만한 조치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방 부문 후순위 배치가 이 분야의 중요도가 떨어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신년사의 언급 때문이다. “10월의 경축광장에 펼쳐진 격동적인 화폭들은 핵폭탄을 터뜨리고 인공지구위성을 쏴 올린 것보다 더 큰 위력으로 누리를 진감하였으며…” 이는 군사 퍼레이드에서 선보인 개량형 KN-08 미사일과 KN-09 다연장 로켓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대외적 환경이나 남북 관계 변화에 따라, 필요하다면 2015년의 ‘자제’에서 벗어나 2016년 언제라도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북한은 1월 6일 자신들이 수폭이라고 주장하는 핵 실험을 했다.

 

경제적 성취에 대한 자신감: ‘명품’을 생산한다?

경제 분야의 강조점은 김정은 시대 개막 이후 매년 대동소이하며, 농수산에서 광업, 경공업, 중화학공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과제들이 압축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다만 내수 경제 부분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명제품, 명상품들을 더 많이 내놓아야 합니다”라고 한 부분이 주목된다. 2015년 신년사에서 “모든 공장, 기업소들이 수입병을 없애고 원료, 자재, 설비의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이며…”라고 한 데 비해 중요한 변화다. 이런 표현이 ‘허세 과시’일 수 있고, 달성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2016년 신년사 경제 분야는 전반적으로 독자적인 경제 운용의 성과에 대해 김정은의 자신감을 반영하고 있다.

문제는 식량이다. 신년사에는 2015년 식량 생산 부족(FAO는 예년 대비 40만t 내외가 모자랄 것으로 전망)에 따른 2016년 식량난에 대한 우려가 암시돼 있는데 그 수준이 작년보다 심각해 보인다. 2015년 김정은은 농업생산 부분의 생산목표 초과달성을 독려했으나, 금년 신년사에선 “알곡생산계획을 반드시 수행하여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는 2016년 목표가 ‘목표치의 초과달성’이 아니라 ‘최소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향 조정됐음을 의미하며 이는 식량공급의 문제점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스타일’의 통치 구상

2016년 신년사에서는 2015년 고위 권력엘리트들을 흔든 ‘공포정치’와는 다른 통치 스타일이 언급되고 있다. 김정은은 ‘강성국가’를 완결한 통치자로서 자신을 부각하면서 동시에 인민에게 혜택을 주는 자애로운 지도자상도 부각하려는 듯하다. ‘강성국가(강성대국)’를 언급한 횟수가 2015년에 비해 늘면서(2013년 수준) 동시에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비전이 제시됐다.

젊은 세대들에 어필하는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구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과 같이 ‘후대사랑’이란 단어를 쓰진 않았지만 유사한 언급은 늘었다. “수령님들과 당의 품속에서 교양 육성된 우리 청년”, “수 백 만 청년들이…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 억세게 자라난 것…”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노동당 시대’라는 조어도 새로 등장했는데 이는 ‘선군’의 퇴조와 당의 영도 강조 그리고 당의 수위인 김정은의 위상을 감안할 때 사실상 ‘김정은 시대’의 선언과 동일하게 해석된다. “인민들이 최상의 문명을 최고의 수준에서 누리게 하여야 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은 김정은의 對 인민 공약으로 봐도 무방하다.

 

여전히 못 믿을 중국, 미국에 대한 집착

2016년 신년사에는 ‘자강력’이 강조됐다. “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에서 자강력 제일주의를 높이 들고나가야 합니다. 사대와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이며 자강의 길만이 우리 조국, 우리 민족의 존엄을 살리고 혁명과 건설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길입니다.” 최근의 북ㆍ중 관계를 감안하면 이는 은근히 베이징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5년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식에 류윈산(劉雲山)이 파견 되는 등 북ㆍ중 관계에 나름 진전을 상징하는 조치가 있었지만, 12월에 벌어진 ‘모란봉 악단’ 베이징 공연 무산 사태는 ‘서로 필요하면서도 여전히 의구심을 떨치기 힘든’ 양국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북한이 ‘자강력’을 강조한 배경엔 이런 인식이 작용했다고 해석된다.

반면, 미국에겐 거부감과 아쉬움을 함께 암시하고 있다. 2016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현재 한반도 및 동아시아 대결의 주요 원천으로 미국을 지목했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조선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 환경을 마련한 데 대한 우리의 공명정대한 요구를 한사코 외면하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에 계속 매여달리면서 정세를 긴장격화에로 몰아갔으며 추종세력들을 내세워 반공화국 ‘인권’ 모략소동에 미쳐 날뛰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상적인 대미 비난이면서도 동시에 대미 직거래에 대한 북한의 집착도 드러낸다. 대미 비난 강도를 높이면서도 거래의 전제조건을 우회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미국의 입장 변화를 촉구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상회담’ 제스처 거둔 북한, 절치부심 암시하나

일부 매체의 분석과 달리 신년사에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적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2015년엔 정상회담(최고위급 회담)까지 언급했지만 2016년 신년사엔 전체적으로 한국 태도의 변화 필요성과 그럴 경우의 대화 가능성만 암시할 뿐 적극적인 대화 제스처가 없다. 장황히 설명된『8.25 합의』전후 상황에서 이와 관련된 북한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은 2015년 8월 목함지뢰 사건으로 인한 남북 긴장의 원인에 대해 “조국통일과 북남 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 反통일세력들은 전쟁책동에 광분하면서 교전 직전의 위험천만한 사태까지 몰아와…”라고 주장했다. 또 남북 관계가 부진한 원인에 대해선 “남조선당국은 북남 대화와 관계 개선의 흐름에 역행하여 우리의 ‘체제 변화’와 일방적인 ‘제도 통일’을 로골적으로 추구하면서 북남 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격화시켰습니다”라고 했다. 통일과 관련된 한국의 주변국 외교에 대해서도 “남조선당국은 민족내부문제를 외부에 들고 다니며 ‘공조’를 구걸하는 수치스러운 행위를 그만두어야 합니다”라고 언급했다. 대화보다 파국 원인을 더 거론한 것은 그만큼 관계 개선에 뜻이 없음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았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진실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대화하겠다“며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려는 뜻을 보이긴 했다. 그러나 전제조건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도 통일의 포기, 한ㆍ미 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여전히 요구했다. 2016년 남북한의 기싸움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2016년 북한은 어떤 선택을 할까?

2016년 신년사에서 암시되는 정책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일단 대내적으로 김정은은 ‘선대’의 후광에서 벗어나 자신의 언어와 수사로 인민들에게 어필해 나가는 ‘김정은 스타일’을 과시하고 ‘노동당 시대의 문명개화기(김정은의 표현)‘를 연 지도자의 위상을 정립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광범위한 세대교체를 통해 주로 젊은 층을 대상으로 애민(愛民) 정책을 적극 펼 가능성이 있다. 대남 관계에서는 일정 수준의 대화 가능성은 열어놓지만 선제 양보는 하지 않고 한국의 초조감을 유발하는 전략을 쓰려 들 가능성이 있다.

2016년 북한은 중국에 대한 정치ㆍ경제적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어느 정도의 지원은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모순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 대북 정책의 우선순위를 낮게 두고 있는 미국도 다뤄야 한다. 북한은 이를 위해 몸을 낮출 것인가 아니면 더 크게 일탈할 것인가.

신년사의 언급은 ‘몸을 낮추는’ 조치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2015년 신년사에 등장했던 ‘병진 정책’이나 ‘핵 억제력’이란 단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비핵화 문제에 대한 양보 시사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단어는 북한이 3차 핵 실험을 한 2013년에도 등장하지 않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신년 초부터 남북 간에, 또 대외적으로 대결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내치와 외교 분야의 업적 쌓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년사에서 강력한 조치를 일거에 거론하면 향후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가능성이 있다. 필요할 때 취하면 되는 조치를 미리 공언하면 대중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안 되고, 국제 사회의 경고 혹은 압력만 가중되기 때문에 빌미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고려가 작용했을 수 있다.

‘핵 억제력’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 정보를 감추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김정은의 육성 신년사가 우리 시간으로 낮 12시 30분(평양시 기준 12시)으로 예고됐는데 실제론 3시간 이상 지연 발표됐다는 점을 이와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이번의 신년사 발표 지연은 2015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당시의 군사 퍼레이드 지연 상황을 연상시킨다. 당시엔 기상 문제가 이유로 제시됐지만 2016년엔 별 다른 이유를 발견하기 힘들다. 일부에서는 김양건 사망을 한 이유로 꼽지만 신년사 어디에도 그에 대한 애도가 없었다.

김정은이 막판에 즉흥적으로 신년사 내용을 수정했으며 이로 인해 발표가 늦어졌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김정은의 리더십이 충동적이고 격정적이라는 일부 평가를 고려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런 스타일이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도 있으며, 이는 김정은 시대의 돌발변수(오판이나 착란)에 의한 한반도 긴장 격화 가능성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김정은이 자신의 정보나 동정이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리는 심리가 발동된 데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니콜라스 에버스탓 박사가 말한 ‘전략적 기만(strategic deception)’이 ‘김정은 스타일’에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종합적으론 최소한 2016년에 북한의 극단적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점을 시사한다. 전반적으로 김정은의 신년사는 2015년에 비해 더 큰 자신감과 나름의 포부를 보여준다. 북한의 고질적 약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경제난 징후도 최소한 신년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부에서는 김정은이 예년보다 빠르게 서두르듯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간 것을 들어 ‘북한 체제에 모종의 문제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과거와 비슷한 내용의 경제 과제가 되풀이 된 점을 북한이 변하지 않았고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반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건강이상이나 대흉작은 일종의 돌발변수로 한 해의 일관된 정책을 구상하는 데 있어 주요한 고려사항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종의 가정실패(assumption failure, 평상적인 상황이 아닌 ‘급변 사태’와 같은 돌발상황)에 집착하면 정책이 난삽해지고 임시방편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분명한 방향성과 이와 관련된 명쾌한 대북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성이다. 우리의 전제조건인 비핵화 진정성, 도발적 대남 정책 포기 등에 진전이 없으면 양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면 이를 분명히 각인시키고 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입장이 남북 관계를 단기적으로 냉각시킬 수 있지만 오히려 북한이 보다 탄력적인 대남전략을 구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중기적으로는 북한과의 공존을 위한 청사진과 이 청사진이 왜 김정은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

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