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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렉시트(Regrexit)의 물결

2016년 6월 23일 이후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안보 등 모든 이슈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의 늪에 빠져 있다. 이제 브렉시트는 되돌릴 수 없다는 전제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놓고 영국 내부는 물론 유럽, 더 나아가 국제사회 전체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리그렉시트'(Regrexit)라는 조어가 만들어져 온라인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면 리그렉시트는 자신들이 어떤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를 이제서야 깨달은 영국 국민의 후회를 표현하는 단어로 그쳐야 하는가 아니면 실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국민투표 결과를 2016년 6월 23일 이전으로 되돌리는 동력이 되어야 하는가?

모든 국가의 국민투표는 같은 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국민투표 결과라는 국민의 의사 표현에 가장 큰 정치적 그리고 법적 무게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에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만 영국의 주권은 (왕, 상원, 하원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 ‘의회’에게 있다. 즉, 대한민국은 국민주권(popular sovereignty) 국가이지만 영국은 ‘의회주권'(parliamentary sovereignty) 국가이다. 어색한 말로 들리겠지만 영국 국민은 법적으로 주권자가 아니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것과 같은 국민투표가 있었다면 이 국민투표의 결과는 주권자의 의사 표현이자 법적 구속력 있는 결정이므로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영국의 주권자인 의회는 법적으로 이번 브렉시트를 찬성한 국민투표 결과를 수용하지 않아도 된다. 엄밀히 말하면 영국의 경우에는 국민투표 자체가 법적 의미를 가지는 절차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와 같은 국민주권 국가의 정치인들은 자국의 국민투표와 법적 무게가 다른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를 보고 영국을 향하여 최대한 빨리 유럽연합 탈퇴 절차를 완료하라는 등 흥분된 언사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법적 절차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국민투표 자체가 법적 절차의 한 모습이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에는 국민이 아니라 의회가 주권자이기 때문에 영국 의회의 입장에서는 국민투표가 법적 절차가 아닐 뿐더러 국민투표 결과는 의회가 정치적으로 참고할 만한 하나의 ‘사실'(fact)에 불과하다. 즉, 영국 국내적으로 브렉시트에 관한 법적 절차는 시작된 적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회원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규정하고 있는 리스본 조약(정확하게는 리스본 조약에 의해 개정된 유럽연합에 관한 조약) 제50조가 “1. 회원국은 자국의 헌법적 요건에 따라 유럽연합으로부터 탈퇴를 결정할 수 있다. 2. 탈퇴를 결정한 회원국은 이사회(Council)에게 탈퇴 의사를 통보해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리스본 조약 제50조를 잘 분석하면 이번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만으로는 브렉시트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영국은 아직 자국의 헌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국의 주권자는 의회인데 유럽연합 탈퇴라는 의회의 의사는 법적으로 구체화 되지 않았고, 이는 아직 영국의 헌법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둘째, 탈퇴 의사는 회원국 정부에 의해 이사회로 전달되어야 하는데, 현재 영국 정부는 차기 총리가 만들 새로운 정부가 탈퇴 의사를 이사회에 표명할 것을 원하고 있다. 즉, 유럽연합 탈퇴라는 영국 정부의 공식적인 의사는 아직 이사회를 향하여 표명된 적이 없는 것이다. 리스본 조약 제50조의 요건이 충족되지도 않았고 절차가 개시되지도 않았다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아직 아무런 행위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정치인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국내법적으로 또는 국제법적으로 아직 어떤 절차도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이 정치적으로만 이번 브렉시트 결정 국민투표 결과를 처리할 수 있다면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 결정은 하나의 소동으로 끝날 수 있다.

우선 브렉시트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영국 정치인들의 용기 있는 선택과 영국 국민의 현명한 선거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 의회, 즉 하원은 조기총선을 선택하고, 영국 국민은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보수당 내의 의원들을 대거 낙선시키거나 (기본적으로 브렉시트에 반대 입장이었던) 노동당 또는 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연정이 하원 내 다수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선거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구성된 영국 의회 다수당 대표, 즉 새로운 총리는 브렉시트 여부를 다시 한번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하여 브렉시트 부결이라는 결과를 얻어내야 할 것이다.

비록 의회가 주권자라 할지라도 2016년 6월 23일 벌어진 정치적인 소동을 수습하기 위해 영국 정치인들과 영국 국민은 다소 복잡한 국내적 절차를 취해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 탈퇴에 관한 규정인 리스본 조약 제50조가 원용되기 전에만 이러한 국내적 절차가 완료된다면 이번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 결정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잘 마무리될 수 있다.

영국의 정치 전통은 오랜 역사를 통해 훌륭하게 형성되어 왔다. 브렉시트로 인한 공포와 동요 속에서, 국제사회는 영국 정치인들의 (낙선 또는 정권 교체를 감수한) 용기 있는 선택과 이에 대한 영국 국민의 현명한 화답을 제언한다.

* 본 블로그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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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글로벌 거버넌스센터 / 국제법 및 분쟁해결프로그램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글로벌 거버넌스센터 국제법 및 분쟁해결프로그램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