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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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및 학자 25명, ‘선비정신’ 다각도 조명하며 집중 토론 벌여
* 구시대의 진부한 가치 아닌 미래 리더상에 부합하는 현대적 ‘선비’ 모델 탐색

한국학연구센터 정은경

 

“마치 ’선비정신’이라는 잘 차려진 뷔페에 초대 되어, 전문가들이 펼치는 탄탄한 이론과 치열한 토론을 마음껏 음미하고 돌아가는 듯하다.”

지난 9월 26일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 한국학연구센터와 아산서원이 공동 주최한 <아산서원 개원 2주년 학술회의> ‘선비정신과 한국사회: 미래의 리더십을 찾아서’에 참석한 한 노교수는 당일의 토의에 대해 위와 같은 평가를 내렸다.

아산정책연구원 1층 강당에서 개최된 이번 학술회의는 총 2부로 구성됐다. 먼저 <제1부-아산서원과 선비: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산서원 알럼나이들의 젊은 시각으로 참신하게 진행됐다. 오후에 시작된 <제2부-선비정신과 한국사회: 전통과 현대 그리고 미래>에서는 25명의 전문가들이 발표와 토론을 통해 선비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산서원 김석근 부원장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왜 선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며 그러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 갖는 함의는 무엇인지, 아울러 과연 선비정신을 통해 미래에 대한 어떤 전망과 비전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종합적인 토론의 장(場)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김 부원장은 지난 2월 아산정책연구원-중앙Sunday 공동기획 <한국문화대탐사> 프로젝트의 ‘선비’ 시리즈를 통해 이미 한 차례 그에 관련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킨 바 있다. 이하 세션별 발표주제와 토론을 소개한다.

선비 개념 정의보다 선비정신의 본질인 ‘지향성’ 본 받아야

◇제2부 회의 ‘제1세션: 선비란 어떤 사람인가’

발표자 권순철 교수(일본 사이타마대학)와 이형성 교수(전주대학교)는 시대에 따라 변해온 선비 개념과 선비의 현실 대응 양상을 정리했다. 권 교수는 “고려 후기의 선비는 시문(詩文)에 능해 관료로 나아가 국정과 외교에 참여하고자 했고, 조선 초기 이후의 선비는 유학자의 상징으로서 성리학에 의거해 자신의 소임의식을 다하고 공론을 이끌던 자였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선비 개념은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 그리고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거치며 변화”했다. 권 교수는 “전쟁 수행과 전후 복구 및 국가체제 재정비 과정에서 사회가 변동함에 따라 ‘침략자와 싸우는 의병장’으로서의 선비상, 혹은 향촌 사회의 서원을 중심으로 한 ‘공론’과 ‘당쟁’의 담당자라는 새로운 선비상이 등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이 교수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선비 유형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주적 시대의식을 통해 학문과 사상을 전개했고, 현실 대응 측면에서는 유교 정신에 입각해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과 정신적 가치를 올바르게 확립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같은 선비의 개념 정의에 대해 ‘제2세션: 선비와 공공(公共)의 세계’의 발표자 가타오카 류 교수(일본 도호쿠대학)는 “’선비란 ○○이다’와 같은 정의는 선비가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가타오카 교수는 선비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대신 그 본질을 밝히길 역설했다. 그는 “선비는 지향성을 본질로 한다”며 “조선 시대에는 관, 민, 사림에 관계없이 지금의 자신과 사회가 아직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바람직한 생을 실현하도록 현재를 향상시키려는 변혁 의지를 가지고 있고, 이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선비라고 부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명교체기의 풍전등화(風前燈火), 조선 선비의 필연적 몰락 핵심 원인은 ‘빈곤’

◇‘제3세션: 사회변동과 선비정신’

조선 선비와 그들의 몰락에 대한 신랄한 비판 및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신복룡 명예교수(건국대학교)는 조선 후기 선비의 몰락 이유와 그들의 무능한 일면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했다. 신 교수는 “플라톤에서 마키아벨리에 이르기까지 서양사를 관통하며 당대 지식인들에게 요구되었던 자질은 덕성(virtue)과 재산이었다”며 “귀족의 존엄은 토지로부터 온다”고 주장한 몽테스키외를 인용했다. 그에 따르면 자기지탱력, 즉 재산(토지)을 지니지 못한 이데올로그(ideologue)는 본질의 중요도에 관계 없이 도태될 수 밖에 없는데, “한국사에서 선비 문화의 몰락은 바로 ‘빈곤’이 그 중요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조선 선비의 가난은 토지제도의 모순, 곧 ‘공신전’이 아니고서는 선비가 토지를 소유할 수 없는 구조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토지를 갖지 못한 선비들은 조선 초기에 유향소(留鄕所)를 통해 어느 정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으나 그곳이 철폐되자 의지할 곳이 없게 됐다”며 “그런 상황에서 대안으로 등장한 서원(書院)마저 ‘설령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용서할 수 없다’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면서 조선조 선비의 삶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자유토론자 김종록 작가(문화국가연구소)는 “오늘날 회의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선비상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과연 오늘날 젊은이들이 수 백 건의 상소를 올리고 가난을 미덕으로 삼는 선비의 모습을 닮고 싶어할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그에 반해 신 교수가 언급한 서구 신사의 기본 자격으로 열거된 사항, 즉 재산과 지식은 지금의 상황에 비추어봐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산정책연구원 함재봉 원장도 “지식과 재산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확한 지적”이라며 신 교수 의견에 동의했다. 함 원장은 “조선에 주자학을 들여오기 위해 급진적 개혁을 단행했던 세종의 본래 의도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며 “가치와 윤리에 기울어진 송시열 식의 주자학을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 아니고, 강남의 풍요를 가능케 했던 철학적 배경으로써 주자학을 인식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함 원장은 같은 맥락에서 조선에 주자학을 들여온 세종을 참된 선비의 모델로 꼽았다.

신 교수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 역시 구체적인 행위는 없었음을 지적하며, 개화기 실학자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주의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조선 후기 초기산업자본주의의 도입에 따른 사회 구조의 재편으로 선비는(실학자 역시) 실존의 문제에 부딪치게” 됐다. 자본주의 정신이 시대 정신으로 바뀌었을 때 궁핍한 선비의 가치가 급격하게 몰락했다는 설명이다. 지식과 토지(재산)를 함께 갖추지 못한 선비의 주장은 공허했으며 격동하는 시대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잃었다.

아산서원 김 부원장은 선비에 대한 비판과 올바른 현대적 수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예로부터 이어지는 전통 가운데서 계승해야 할 것과 계승할 필요가 없는 것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계승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천명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김 부원장은 청중을 향해 “오늘의 논의는 우리가 선비의 부정적 측면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향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긍정적 측면을 찾으려는 시도라는 점을 유념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개원 2주년 맞은 아산서원, 선비정신의 현대적 재창조 시도가 곧 인문학의 소임

이번 학술회의가 아산서원 개원 2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만큼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제1세션 사회자 정인재 교수(서강대학교)는 “선비정신에 대한 학술회의에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 그리고 아산서원에서 현대적 선비 자질을 갖춘 젊은이들을 양성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으며, 제3세션 발표자 배병삼 교수(영산대학교)는 선비와 상반되는 존재인 ‘향원’을 들어 아산서원의 존재 의의를 설명하기도 했다. 배 교수는 “주희는 향원에 대해 ‘무식자’라는 주석을 달아, 앎은 충분하나 그에 대한 인식이 없음을 지적했다”며 “오늘 한국사회 역시 지적으로 풍부하나 나의 지식에 대한 인식, 즉 나는 왜 공부하는가, 왜 사는가,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감찰하는 인식이 부족하여 혼란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선비는 타인에게 도끼(士)를 겨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 위에 두고(志) 매일 새로워지는 것을 추구하는 존재”라며 “바로 아산서원과 같이 시대가 요구하는 선비들을 양성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의 소임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