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세월호 사건 불구 연고는 오래 계속’

권은율 편집실 RA(yuldbf@naver.com)ㆍ황인길 인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관피아 문제를 척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비공식 네트워크 연구자인 St. John‘s University의 스벤 호락 교수는 “참사가 연고로 인해 발생했다면 끔찍한 일”이라면서도 “한국의 연고주의는 단시간에 사라지지 않고 오랜 시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7일, 아산정책연구원 컨퍼런스룸에선 ‘동아시아의 다양한 비공식적 관계-연고(緣故)와 관시(关系)의 공통점과 차이점(Variteties of Informal Relation-based Networks in East Asia – Similarities and Fundamental Diffrences of Yongo and Guanxi)’을 주제로 스벤 호락 교수의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됐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미국에서 교수를 하고 일본, 한국에서 근무한 그는 “혈연과 학연을 기반으로 한 비슷한 유형의 인간관계는 전 세계 어느 국가에나 있지만 한국만큼 연고를 중요시하는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학자들의 관심이 중국의 관시에만 집중되면서 한국이나 일본의 비공식적 네트워크도 관시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의 연고는 관시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뒤르켐에 따르면 사회가 발전할수록 집단은 가족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더 개방적이고 복합적인 모습으로 변한다”며 “관시의 대표적 연구자인 펑(Peng)은 중국 사회가 성장하고 중국인들이 부유해질수록 명문화된 제도가 자리 잡아 관시의 영향력은 줄어든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펑의 연구는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관시가 차선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호락 교수는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며 “이미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이뤘음에도 연고는 약해지지 않으며 비공식적 네트워크로 살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한국이 매우 현대화됐다고 스스로 말하며 삼성은 공채시험의 비중을 높이고 기업들이 지방대고용할당제를 시행하는 등 공식적인 체제를 갖추고 있다”면서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연고주의는 더 중요해진다는 주장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살아남기 위해 연고를 연줄로 발전시켜 정당치 못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연구를 통해 찾아낸 것은 어쨌든 연고는 지속된다는 것”이라며 “연고가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호락 교수는 원하면 나이ㆍ배경이 달라도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관시와 달리 연고는 ‘동일한 그룹에 소속될 것’이 전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해외의 한국 교포들은 국내에 연고를 만들기 위해 방학이면 한국 명문대의 썸머스쿨에 다니는 것으로 알고있다”며 “중국에서는 같이 저녁을 먹거나 스포츠를 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관시를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연고는 입학 선택권이 있는 일부 대학을 제외하면 혈연, 출생지와 같은 태생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면서 “명문대 등 고급 연고 집단은 그들끼리만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지방 출신, 보통 대학 졸업생은 고급 연고의 혜택을 받을 기회가 없다 ”고 꼬집었다.

호락 교수는 연고의 뿌리를 조선시대 양반의 역사에서 찾았다. 조선의 상위계층이었던 양반이 그 안에서 학연, 지연에 따라 나뉘어지며 이 점이 바로 연고의 뿌리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 제도에 기반을 두는 관시와 달리 연고는 전통과 문화에 뿌리가 있다고 본다. 특히 유교 문화의 장유유서가 연고에 강력히 반영된다고 했다. 호락 교수는 “머리가 좋고 능력이 뛰어나지만 나이가 어린 사원이 회사에 큰 공을 세울 경우 이 사람을 이사로 세우겠는가?”라고 묻고 “나이에 기반한 호칭과 직급에 기반한 호칭을 모두 사용하는 한국에서는 어려운 문제다. 실제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 문제로 한국에서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고의 한 예로 회사정보의 외부 유출 문제를 들었다. 한국에서는 대학동창이 다니는 회사의 정보를 스스럼없이 묻기도 하는데 이는 독일과 같은 나라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회사에서는 내가 더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당연히 내 말이 맞지 않겠냐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며 “직장에서 이미 지나간 과거(대학)를 근거로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면 협력이 안 된다” 고 충고했다.

그는 “이미 현재의 삶과 결합돼있는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문화적 개념인 연고는 한국 사회에서 오래 유지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연고가 사라져야 할 필요는 없으며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연고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느냐다. 나쁜 면을 지양하고 좋은 면을 부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호락 교수는 “연고를 기반으로 한 정경유착 등은 효율적이지 못하고 좋지 않다”며 “사회학자와 언론인들의 연구가 그런 일들이 더 발생하지 않게끔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그는 “연고가 태생적 기반에서 출발한다면 여기엔 경로사상 같은 것도 포함되는데 이를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있느냐”는 참석자의 질문에 “연고는 실제론 중립적인 가치”라면서도 “연줄을 근간으로 하는 연고는 관시보다 목적지향적이므로 부정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