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2014년 3월 자카르타에서 국제 국방 대화(Jakarta International Defence Dialogue 2014)가 열렸다. 첫 세션 발표자로 참가한 David Johnston 전 호주 국방장관은 로위연구소(Lowy Institute)의 로리 메카프(Rory Medcalf)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인도-퍼시픽 개념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향후 해양 협력과 안보 문제가 이 지역 국가들의 가장 주된 안보 관심사가 될 것이고 따라서 해양을 매개로 묶인 인도-퍼시픽 개념이 기존의 지역 개념을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발표자로 참여한 필자는 당시 인도-퍼시픽 개념에 다소 부정적이었으며 그래서 이 개념이 앞으로 마주칠 도전과 한계들을 주로 언급했다. 그러나 1년 반이 흐른 지금 인도-퍼시픽 개념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활발히 논쟁을 벌이고 있다.1

 

아태와 동아시아 개념을 계승하는 인도-퍼시픽

‘인도-퍼시픽’이란 개념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지역 전략 수준을 넘어선다. 이 개념이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과 동맹국들의 연합만을 의미한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지역의 지정학적(geopolitical) 사고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간단히 말해 탈냉전기 아시아를 규정해 왔던 ‘전략적 지역’ 개념들을 인도-퍼시픽이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2 지리적으로 아시아는 비교적 명확하게 규정된다. 반면 전략적 범주나 개념은 지역 국가들의 전략적, 경제적,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인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자로 잰 듯 명확하지는 않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주변 지역에 냉전 이후 현재까지 몇 개의 서로 다른 전략적 지역 개념이 적용돼 왔다. 시기적으로 명확히 나뉘지는 않으며 상당 부분 겹친다. 겹치는 시기는 과거 개념이 퇴장 혹은 약화되고 새로 등장한 개념이 강화되는 이행기라고 할 수 있다. 냉전 시기에 이 지역은 비교적 명확하게 대립하는 동(공산주의)-서(자유주의)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여기에 일부 국가들이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지역의 냉전 구도는 1980년대 들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그런 변화를 담은 지역 개념이 아시아-태평양(아태)이었다.

아태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전략적, 지정학적, 지경학적(geoeconomic)으로 이 지역을 규정했던 개념이다. 군사보다 경제적 고려가 우선됐다. 1970년대 무역적자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진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국가의 시장 개방을 통해 경제적 활로를 모색했다.3 그 결과가 아태 지역이란 개념으로 나타났다. 이 개념 하에 지역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낸 다자틀이 아태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다. 아태에는 동으로는 동북아, 동남아 국가들이, 서로는 미국, 캐나다, 중남미 국가들이, 남으로는 오세아니아가 들어갔다. 서남아와 인도양 지역은 배제됐다.

이 개념은 1990년대 초, 중반 두 가지 도전으로 약화된다. 지지부진한 우루과이 라운드와 북미와 유럽의 경제 블록화는 미국이 APEC을 통해 추진하던 자유무역을 위협했다. 두 번째로 냉전이 해체되고 안보 위협이 사라진 상황에서 지역 국가들은 보다 큰 자율성을 추구하려 했다. 그 결과 지역 국가들이 미국을 배제한 지역협력을 구상하면서 ‘동아시아 개념’이 성장하고 아태 지역 개념은 형해화 되어 갔다.

 

<그림 1> APEC과 아세안+3로 표상된 ’아시아-태평양’과 ‘동아시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Asia-Pacific_Economic_Cooperation,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1-12_East_Asia_Green-Grey.png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Asia-Pacific_Economic_Cooperation,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1-12_East_Asia_Green-Grey.png

동아시아 개념은 1990년대 초, 마하티르(Mahathir Mohamad)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제안한 동아시아경제그룹(East Asia Economic Group, EAEG)에서 유래하여4 2000년대 말까지 이 지역을 규정했다. 이 개념이 결정적으로 아-태 개념을 넘어선 것은 1990년대 후반, ‘중국의 부상’과 아시아 금융위기 때문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아세안+3(ASEAN+3)에 추동력을 부여했고, 중국-동북아-동남아를 묶는 동아시아 국가들만의 경제 협력으로 이어졌다.

아시아 경제위기 때 보여준 중국의 태도는 위기에 직면한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경제적으로 강해진 중국이 주변부, 특히 동남아에 경제적 지원을 집중하던 시기는 바로 이 동아시아 개념이 강화되던 시기와 일치한다. 동아시아 개념은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아태 범주에 포함되었던 국가들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2005년 동아시아정상회의(EAS, East Asia Summit)가 출범하며 호주, 뉴질랜드 등이 포함되고 미국도 가입했지만, 이들 국가의 동아시아적 정체성은 늘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5

지정학적, 지전략적(geostrategic) 지역으로서 동아시아는 핵심인 두 가지 요소, 즉 지역협력 제도와 중국이라는 변수 때문에 약화되었다. 동아시아 개념의 가장 큰 특징은 아세안+3와 EAS로 대표되는 지역 협력 제도들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제도들의 효과성 저하, 기능 중복, 리더십 결여가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6 동아시아 개념을 떠받치던 중국도 2000년대 후반 들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남중국해에서의 영토 주장 강화였다. 이로 인한 안보 불안이 지역으로 확산되고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이 주도하는 인도-퍼시픽 개념이 확산되면서 동아시아 개념은 약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인도-퍼시픽 개념 기원과 전개

전략적 지역 단위나 지정학적 측면에서 인도-퍼시픽은 아직 새로운 개념이다.7 지리적으로 이 개념은 동으로는 미국, 서로는 인도까지 포함한다. 중동에서 에너지 자원이 수송되는 해상 항로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아프리카 서해안과 인도 동쪽 인도양까지 포함하는 광역 설정도 가능하다. 이렇게 설정된 인도-퍼시픽은 지정학적으로 과거 아태나 동아시아 개념과는 다른 중심축을 설정하게 된다. 동아시아 개념에 비해 중심축이 보다 남쪽과 서쪽으로 이동하여 사실상 중심축은 동남아와 오세아니아를 잇는 선이 된다.

인도-퍼시픽이 지정학적, 전략적 의미를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전 미 국무장관의 연설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10년 하와이에서 한 연설에서 태평양으로부터 인도에 이르는 지역을 하나로 묶어 인도-퍼시픽이라 칭했다.8 이런 연유로 전략적, 지정학적 의미에서 인도-퍼시픽은 미국의 대 아시아 피봇(pivot to Asia) 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 이후 미국의 대 아시아 피봇 정책이 강화되고 확장되면서 인도-퍼시픽 개념 역시 점차 확산되었다.

 

<그림 2> 인도-퍼시픽의 지리적 범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Indo-Pacific#/media/File:Indo-Pacific_biogeographic_region_map-en.png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Indo-Pacific#/media/File:Indo-Pacific_biogeographic_region_map-en.png

미국의 아시아 피봇 정책은 초기에 ‘경제적 관여’와 ‘새로운 다자주의’라는 구호 아래 펼쳐졌다. 미국의 EAS 참여와 환태평양경제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추진이 이 두 가지 구호를 실천한 사례다. 아태 개념의 등장 이후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감소되어 갔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만의 협력이 나타났다는 점이 한 예이다. 대신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크게 확장했다. 미국은 확대되는 중국의 세력을 제어하고 이 지역에 대한 관여를 확대하기 위해 피봇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피봇은 보다 군사적인 성격을 띠게 되고, 부상하는 중국의 군사력을 봉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의 강력한 자기 주장으로 지역 국가들의 안보 불안이 커지자 군사 문제에 더 적극 개입하기 위해 이를 주로 공략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힘에 부치게 된 미국은 지역 국가들로부터 필요한 자원을 보충하려 했다. 그 결과 피봇 정책은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동맹 세력을 규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본, 호주 등 전통적으로 미국의 대 아시아-태평양 정책의 근간을 구성하는 국가들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했다. 나아가 동맹은 아니지만, 모디(Modi) 정부하에서 보다 큰 지역적 역할을 추구하던 인도까지 끌어 들여 사실상 중국에 대항한 4자 연합을 결성하는 데까지 나아갔다.9 결국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잇는 선이 상정되고, 이 선이 인도-퍼시픽 개념의 골격을 이루게 된다.

인도-퍼시픽 개념의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국가는 호주다. 인도-퍼시픽 개념이 확산 되던 초기인 2010년부터 2014년 호주 정부의 외교, 국방의 수장이던 Stephen Smith와 David Johnston은10 모두 서호주(Western Australia)의 퍼스(Perth) 출신으로 인도-퍼시픽 개념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호주의 인도-퍼시픽 개념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지역이 바로 인도양에 접한 서호주의 퍼스다.11 호주 연방 정부 입장에서도 인도-퍼시픽은 구미가 당기는 개념이다. 지도를 놓고 볼 때 인도-퍼시픽의 지리적 중심에 호주가 있다. 호주 입장에서 역내에서 자기 목소리와 지위를 높이고, 미국의 피봇 정책을 수행하는데 인도-퍼시픽만큼 훌륭한 지역 개념이 없다.

인도가 포함된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인도-퍼시픽이라는 이름에서 인도는 보다 정확하게는 인도양(Indian Ocean)을 의미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피봇 정책에 인도가 힘을 보탬으로써 비로소 인도-퍼시픽 개념은 틀을 갖추게 된다.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인 일본과 호주는 상대적으로 태평양에 치우친 국가들이다. 반면 인도는 상징적으로 인도양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서남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이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힘이 잘 투사되지 못하는 인도양에서 중국을 견제할 군사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인도와 인도양이 이 전략적 지역 개념에 포함이 된 것은 미국이 추진하는 이 지역 해양 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 육지의 지정학과 달리 해상의 지정학은 경계 개념이 모호하다. 군사 전략 측면에서나 무역, 에너지 수송 등 다양한 경제적 측면에서 인도양과 태평양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바닷길(route)로 이어져 있다. 이런 해양의 연속성이라는 전략적 특성을 반영하고 중국의 인도양 진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인도양 담당인 제 6함대와 태평양을 맡는 제 7함대 간의 연계를 높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인도 해군과 미 해군의 공동 보조는 인도양에서 중국의 확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데 필수적이다.

인도-퍼시픽은 해양 중심적인 지역 개념이다. 해양과 대륙이라는 변수를 고려할 때 아태 는 해양에, 동아시아는 대륙에 초점을 둔다. 인도-퍼시픽은 다시 해양에 초점을 두는 구도를 상정한다. 명칭 자체가 인도양과 태평양이라는 두 개의 대양에서 유래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및 미국의 동맹국과 중국의 경쟁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나타나고 있는 점도 해양이 재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일본-호주-인도로 이어지는 축은 육지가 아닌 바다로 연결되는 선이다. 아시아-태평양 개념이 약화되고 전략적 무게 중심과 사고의 방향이 육지로 재설정된 지 20여 년 만에 다시 해양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인도-퍼시픽 개념에 대한 도전

요약하면 아태 지역 개념은 탈냉전 질서의 등장과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를 계기로 동아시아 지역 개념에 자리를 내주었다.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지역협력의 약화, 그리고 중국의 자기 주장 강화로 인해 인도-퍼시픽이라는 강력한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인도-퍼시픽 개념이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개념을 대체하고 이 지역의 지배적인 지정학적 인식틀로 자리잡을지는 미지수다. 도전과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인도-퍼시픽은 앞선 두 개의 전략적 지역 개념과 비교해 훨씬 더 큰 지역을 상정한다. 광의의 인도-퍼시픽은 전 세계의 거의 2/3를 포괄한다. 실질적으로 유럽을 제외한 모든 대륙, 그리고 대서양을 제외한 모든 해양을 포함할 수 있다. 이런 광역적 지역 개념은 역설적으로 지역 개념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할 수 있다. 지정학적, 지전략적 지역 개념으로서 엄밀성과 특수성이 사라지고 인도-퍼시픽은 글로벌(global)과 등치될 수 있다. 굳이 인도-퍼시픽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쓰지 않아도 된다.

실천적 차원에서의 도전도 있다. 이미 이 지역에는 아태, 동아시아 개념 하에 다양한 협력 혹은 대화의 제도들이 가동 중이다. 너무 많은 다자제도로 인한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지역개념에 대해 지역 국가들이 경계심을 표출할 수도 있다. 지역 국가들의 동의를 얻는 지난한 과정도 과제다. 이미 하토야마(鳩山 由紀夫) 일본 전 총리가 제시했던 동아시아공동체(East Asia community, EAc), 케빈 러드(Kevin Rudd) 호주 전 총리가 제시했던 아시아-태평양 공동체(Asia-Pacific community, APc)같은 개념들이 지역 국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사라진 경험이 있다.

실천적 차원에서 인도-퍼시픽이 직면한 보다 중요한 도전은 중국으로부터 나온다. 동아시아라는 개념이 아태 개념을 극복하고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과정은 비교적 단순했다. 동아시아 개념에 대항하는 새로운 힘의 부상은 없었다. 반면 인도-퍼시픽에는 두 개의 복합 과제가 있다. 우선 인도-퍼시픽은 기존의 관점인 동아시아를 극복해야 한다. 약해지는 동아시아 개념을 극복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다만 중국의 저항은 완강할 수 있다. 인도-퍼시픽 개념은 중국의 서진(going West)과 경쟁해야 한다. 중국의 부상과 자기주장 강화는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ck, AIIB)과 같은 중국의 새로운 이니셔티브들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중국은 동아시아를 벗어나 서쪽의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일부) 중동을 거쳐 유럽에까지 이르는 영향권(sphere of influence)을 개척 중이다.12 기존의 동아시아 개념에 중국의 이런 서진 정책이 더해지면, 동북아-동남아-중앙아-서남아-중동-유럽으로 이어지는 지역 개념이 생성될 수 있다.

중국은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라는 두 축으로 서진(西進)중이다. 인도-퍼시픽 개념과 중국의 서진은 해양에서 만나고 충돌한다.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는 이미 이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이 육상을 통해 서남아에 이르고 이어 인도양으로 진출하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인도양에서 인도-퍼시픽과 중국의 서진이 만나는 지점이 생긴다. 인도-퍼시픽은 따라서 기존의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극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서진과도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그림 3>중국의 서진, 일대일로

출처: http://carltonmansfield.com/strategy-of-one-belt-one-road-in-china/

출처: http://carltonmansfield.com/strategy-of-one-belt-one-road-in-china/


 

새로운 지정학 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간 한국 외교는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이를 주도하기보다는 ‘전략적 모호성’이란 표현이 함축적으로 보여주듯 소극적으로, 수동적으로 변화에 반응해 왔다. 한국 외교의 시야 역시 국력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와 동북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이런 관성을 버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다.

인도-퍼시픽 개념의 등장과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은 강대국들의 전략적 맵핑(mapping)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냉전 이후 약화되었던 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다시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면서 지역의 동맹국들을 규합하고 해양 세력(sea power)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인도-퍼시픽을 들고 나왔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서 서쪽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며 자신의 영향권을 확대하고 있다. 대륙 세력(continental power)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일대일로를 통해서 해양으로의 진출까지 함께 고려하고 있다.

강대국들이 지역, 글로벌 차원의 헤게모니를 강화 혹은 구축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때 한국은 이 맵핑 위에서 스스로를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어떤 전략적 지역 개념하에 있느냐에 따라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상대적으로 변한다. 지정학적 위치가 변화하게 되면 한국이 가진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도 따라서 변한다. 전략적 지역 개념의 변화에 따른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향후 한국의 대외 전략 수립과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 극대화에 필요하다.

한국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 인도-퍼시픽이 궁극적으로 아시아-태평양, 동아시아에 이어 이 지역을 규정하는 새로운 틀로 자리잡을 것인가? 그렇다면 이 개념은 우리 국익에 어떻게 작용하며 어떤 전략으로 이 새 개념을 활용할 것인가? 냉전시대와 달리 탈냉전시대에는 안보와 경제의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이 심화되어 왔다. 인도-퍼시픽이라는 전략적 지역 개념하에서 이 안보와 경제의 탈동조화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가? 인도-퍼시픽 개념의 등장은 기존의 지역 경제협력, 특히 무역, 투자의 흐름 및 지역 시장통합에 어떤 함의를 가지며, 나아가 동아시아-아태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던 기존의 다자 지역협력체에 어떤 방향으로 작용할 것인가?

지정학적 판의 변화는 한국에게 새로운 전략적 공간의 등장을 의미한다. 새 공간의 효과적 활용은 한국이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가능하다. 한국도 이제 지역의 다양한 이슈들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외전략과 외교는 중견국 한국에 쏟아지는 찬사는 누리면서 이에 따른 의무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하는 식으로 전개돼 왔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 외의 지역 안보, 경제에 관련된 중요하고 논란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 언급해야 할 때에 개도국의 태도를 취해왔다. 주변부에 남아서 혹은 주변부인 척 위장하고 지역 질서에 무임승차하면서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개도국적 사고는 더 이상 곤란하다.

두 번째로 지역의 다양한 국가, 단위들과 보다 강한 네트워크를 건설해야 한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그리고 아세안 내 주요 국가들과의 네트워크가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 국가들과 활발히 상호작용하고 있지만 어떤 장기적 비전과 전략적 방향 하에 상호작용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 관계들을 단순한 경제 관계나 의례적 외교 관계를 넘어 보다 장기적 비전과 전략 아래 가꾸어 가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국가들의 전략적 사고 속에 한국이라는 변수가 늘 포함되고 지역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치가 확보될 수 있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은 새로운 경제적, 안보적 기회를 찾아야 한다. 안보와 경제문제를 강대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한국은 강대국 전략의 종속변수가 된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기대는 한국은 미-중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 큰 경제적 혹은 안보적 불확실성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런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지역 국가와 보다 긴밀한 경제, 안보 네트워크를 건설하면 이는 지역의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독립변수로서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는 기제로 활용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 1

    예를 들면, Rory Medcalf. 2012. “Indo-Pacific: What’s in a name?” The American Interest. 16 August; Rory Medcalf. 2012. “A Term Whose Time Has Come: The Indo-Pacific” The Diplomat. 04 December; D. Gnanagurunathan. 2012. “India and the idea of the ‘Indo-Pacific’” East Asia Forum. 20 October; Zhao Minghao. 2013. “The Emerging Strategic Triangle in Indo-Pacific Asia” The Diplomat. June 04; Saloni Salil. 2013. “India and the Emerging Indo-Pacific Strategic Arc” Future Direction International. 15 March; Melissa Conley Tyler and Samantha Shearman. 2013. “Australia’s new region: the Indo-Pacific” East Asia Forum. 21 May; Mark Beeson. 2014. “The rise of the Indo-Pacific” The Conversation. May 3.

  • 2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전략적 지역 개념 혹은 범주는 지리적 지역 개념에 대비해서 한 국가 혹은 개인이 지역의 전략적 지형도를 그릴 때 상상하게 되는 지역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지리적으로 미국은 아시아가 될 수 없지만, 아시아의 전략적 상황을 이야기 할 때 미국을 제외하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지역의 지정학, 지경학, 전략적 상황을 논할 때 미국 변수는 반드시 포함된다. 이처럼 한 지역의 지정학, 지경학, 전략적 상황을 논할 때는 지리적으로 나뉜 지역 개념이 아닌 다른 지역 개념을 상정하고 그 속에서 사고 하게 된다.

  • 3

    1980년대 중반의 Plaza Accord, 1990대 초반의 Washington Consensus가 모두 이런 노력의 하나이다.

  • 4

    물론 이보다 훨씬 앞선 개념으로 동아시아공영권 등에 등장한 동아시아 개념도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동아시아 지역 협력에 나타난 동아시아 지역의 지리적 범위는 동북아와 동남아를 합치한 범주를 설정한다. 1990년대 초 마하티르가 제시한 EAEG는 당시 6개의 아세안 회원국(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브루나이)과 홍콩, 대만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을 포함한 범위를 설정했다. 이후 1997년 경제위기를 거치며 등장한 아세안+3는 대만을 제외하고 정확히 이 지리적 범주와 일치한다.

  • 5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아세안+3 등 동아시아 지역 협력 제도의 건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말레이시아 전 총리 마하티르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동아시아적 정체성을 의심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2005년 EAS가 출범할 당시 EAS를 “East Asia Australasian Summit”이라고 비꼬면서 “호주의 관점은 동아시아의 견해가 아닌 미국의 견해를 대변한다… 나는 이번 정상회의의 목적이 (호주의 포함으로 인해) 달성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한 바 있다.

  • 6

    이재현. 2013. “기로에 놓인 동아시아 지역협력: 아세안+3와 EAS를 중심으로” 이슈브리프. No. 52. 아산정책연구원.

  • 7

    인도-퍼시픽이라는 개념은 일부 과학자들에게는 친숙한 개념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해양 생물학, 해양 환경학, 그리고 해양 지질학 등에서는 호주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동쪽으로는 미국의 서해안에 이르는 지역을 서부, 중부, 그리고 동부로 나누어 인도-퍼시픽이라는 개념으로 다루어왔다. 서부는 아프리카 해안으로부터 인도 해안까지, 중부는 남중국해 등 동남아, 오세아니아를 거치는 해양, 그리고 동부는 하와이(Hawaii)에서 폴리네시아(Polynesia)에 이르는 해양을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 8

    Hillary Clinton’s Speech on America’s Engagement in the Asia-Pacific at Honolulu, Hawaii on 28 October 2010.

  • 9

    이재현. 2014. “남중국해 갈등과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통해 본 아태 지역의 전략 상황” 이슈브리프. No. 2014-08. 아산정책연구원; 이재현. 2015. “오바마의 인도 방문이 가져올 나비효과” 아산포커스. 1월 23일. 아산정책연구원.

  • 10

    Stephen Smith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외교장관을, 그리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국방장관을 지냈으며, 바뀐 정권에서 David Johnston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국방장관을 지냈다. 이들의 인도-퍼시픽에 관한 관심을 반영하듯, 호주의 국방백서 2013(2013 Defence White Paper)은 총 127쪽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Indo-Pacific이란 표현이 무려 58회나 등장한다. 거의 2쪽당 1번이 언급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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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광석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서호주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얻어진 재정자원을 전략적으로 투자했다. 즉, 서호주는 지역의 국제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기 위해 인도-퍼시픽 개념을 전략적으로 확산시켜왔다. 서호주 정부의 이런 노력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Murdoch Commission과 Perth USAsia Centre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설립된 Murdoch Commission은 서호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Murdoch University에 설립되었는데, “(서호주) 주의 아시아 및 아시아 외 국가들과의 관계를 심화하고 가치를 배가하는”것을 목적으로 한다. Murdoch Commission 홈페이지 (http://www.murdoch.edu.au/Murdoch-Commission) 참조. Perth USAsia Centre는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에 자리잡고 있는데, 미국과 호주 연방정부, 서호주 정부, 그리고 호주의 대표적인 광산회사인 Rio Tinto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 센터 역시 서호주와 인도-퍼시픽의 관련성을 언급하고 이는데, 웹사이트 소개글에 보면 “인도-퍼시픽에서 펼쳐지고 있는 국제관계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서호주의 지리적 위치로 인해 퍼스는 매우 흥미롭고 전략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호주의 어떤 지역도 퍼스만큼 부상하는 아시아의 핵심 국가인 인도네시아, 중국 그리고 인도와 심도 있고 의미 있는 연관성을 가지지 못한다”라고 서호주와 퍼스가 인도-퍼시픽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Perth USAsia Centre 홈페이지 (http://www.perthusasia.edu.au/about)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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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현. 2015.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이슈브리프. No. 2015-10. 아산정책연구원; 이재현. 2015. “미국의 허브-스포크 따라 하는 중국” 아산칼럼. 6월 18일. 아산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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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장이며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