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1,302 views

 

일본 과거사 둘러싸고
한일 학생 불꽃 토론

12일 아산서원-게이오대학 세미나

인문연구센터 정은경 연구원 jek@asaninst.org

 

* 양국 젊은 세대가 말하는 한-일 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국가 간 관계 역학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로 관계가 경색되어 있는 가운데 지난 9월 12일(금) 아산정책연구원(함재봉 원장)에서 ‘아산서원-게이오 대학 세미나’가 열렸다. 아산서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게이오대 정치 외교학 전공자 33명과 아산 서원생 30명이 한일관계에 관해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이번 세미나는 게이오대학 소에야 야스히데 교수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한일 대학생들 간의 토론을 통해 양국의 역사 문제, 일본의 집단 자위권 문제 등에 대한 양국 젊은이들의 인식을 비교해보고, 양국 관계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이날 토론행사는 오프닝, 집단 토론, 토론 결과 발표 순으로 진행됐다.

아산서원 김석근 부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번 세미나가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이 한데 모여 한일 관계,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에 대해 숙고하고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미나는 ‘한일 관계’라는 큰 틀에서 과거사 문제, 독도 영유권,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다양한 주제로 열렸다. 학생들은 10명씩 6개 조로 나뉘어 아산서원 라운지, 동재ㆍ서재 강의실, 회의실에서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그 가운데 일본의 집단 자위권 관련한 문제는 어느 조에서나 빠지지 않는 주제였다.

세미나에 참가한 아산서원-게이오 대학 학생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존중하면서 격의 없이 열정적인 자세로 난상토론을 벌였다. 민감한 이슈인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양측의 견해가 엇갈리기도 했다.

연구원 3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4조 토론에서는 “협력 이전에 우선 양국의 역사적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한국 측 학생의 발언에 일본 측에서는 “군사, 외교적 협력과 과거사 문제는 별개의 것”이라고 반론을 펴고 한국 측이 다시 “국가 간 충분한 신뢰, 즉 역사적 과오에 대한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 없이는 어떠한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교류도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라고 재반박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역사적 과오를 사과해야 하는지에 대해 게이오 대학 학생들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일부 학생은 “보통 일본 젊은이들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과거사 문제가 별로 중요하거나 현실적이지 않은 이슈”라고 말했지만 다른 일본 학생들은 “양국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사과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도 영유권에서도 한일 간 온도 차가 드러났다. 서원 라운지에서 진행된 2조 토론에서 한 게이오대생은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 비해 독도 문제를 훨씬 예민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일부 일본 학생들도 독도 문제가 한일 관계에 중요한 이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은 독도 영유권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한국 측 학생들은 “독도가 실제 한국의 땅이라는 명백한 역사적 증거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팽팽한 토론을 마친 후, 게이오 대학의 한 학생은 “한국 학생들과 한일 관계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한국인들은 양국의 미래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열쇠를 과거와 역사에서 찾는 반면, 일본인들은 현재에서 찾으려 한다는 차이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날 선 토론 중에도 양국 학생이 모두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생할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공통으로 ‘한일 관계에 대한 우리의 토론이 양국 관계를 둘러싼 많은 문제를 해결할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우리는 양국 학생 간의 서로 확연히 입장 차이를 실감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 모두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소회를 밝혔다. 실제로 각 그룹간 토론 내용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많은 학생은 “오늘과 같은 교류의 자리가 바로 한일 양국의 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하나의 열쇠”라며 자기 세대가 맞을 양국 관계에 대해 긍정적 전망을 하기도 했다.양국 학생들은 ‘아산서원-게이오대학 세미나’와 같은 양국 젊은이들 간 학술적, 문화적 교류의 장이 활발히 지속되고 더 많은 대화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희망했다.

일본 학생들의 지도 교수로 방문한 소에야 야스히데 교수도 “세미나를 통해 하나의 가능성을 본 듯하다”며 “한일 관계가 점점 발전해가고 있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갈등과 반목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해 나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양국의 관계를 더 낫게 만들어갈 진보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감 능력 역시 현재의 한일 관계에 있어 무척 중요한데 나는 현재 젊은 세대들을 통해 이제 막 그런 것이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세미나에서 만난 학생들은 지난 3월, 일본 도쿄 NHK 스튜디오에서 열린 <마이클 샌델의 백열교실-한중일 대학생 역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양국 대표로 한 차례 뜨거운 토론을 벌인 바 있어 두 번째 만남은 더욱 각별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당시 토론에서, 한중일 3국 학생들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 역사 교과서 논란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동아시아 3국 관계를 냉랭하게 만든 현안에 대해 불꽃 튀는 토론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