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KOTRA 해외비지니스정보포털] 2014-03-20

장지향 [KOTRA] 이집트의 권위주의 회귀와 군부의 경제 살리기

DSC00003

이집트의 권위주의 회귀와 군부의 경제 살리기

 

장지향(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반독재 시민혁명 아랍의 봄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났다. 하지만 혁명의 출발지 튀니지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민주화 이행이 순조롭지 않다. 특히 이집트는 튀니지와 함께 민주화에 성공할 나라로 점쳐졌기에 최근 일어난 군부 쿠데타와 권위주의 회귀는 실망과 당혹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집트는 신흥 민주주의가 주는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채 군부에게 권력을 다시 내주었다. 독재자 축출이 민주주의의 안착으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는다는 명제가 중동에서도 증명된 셈이다.

군사정권하의 이집트는 단기적인 안정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강압기구의 공포정치가 만들어 낸 안정은 장기적이지 못하다. 혁명을 통해 분출되었던 열린사회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억누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시나이 반도에서 일어난 한국인 관광객 테러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위적 안정은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기도 하다. 군부가 진정한 안정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를 살려야 하고 이를 위해선 현재의 정실 자본주의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 아랍의 봄 이후 3년, 혼돈의 이집트

 2011년 봄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을 축출한 재스민 혁명이 이웃 이집트로 급속히 확산됐다. 이집트의 대규모 반독재 시위 역시 한 달여 만에 30년 장기집권 무바라크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이집트의 민주화는 대혼란을 겪게 됐다. 2012년 첫 민주 대선에서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르시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군부에 축출되면서이다. 그 과정에서 군부는 형제단 지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여 1000여 명이 사망했다.

2013년 7월 군부가 세운 과도정부는 무슬림형제단을 완전히 해산시켰고, 2014년 1월 군부의 권한을 확대하고 이슬람 정치조직의 영향력을 축소한 새 헌법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됐다. 새 헌법에는 민간인도 군사법정에 세울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공안정치의 시작을 알렸다. 이미 새 헌법에 반대했던 시민운동가들이 대거 체포됐다. 오는 4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면 낮은 투표율 속에 군부의 실세 엘 시시 국방장관이 당선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집트의 군부 재집권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견해도 있다.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의 집권기간에 경제와 치안이 악화됐고 이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거셌기 때문이다. 외환 보유고가 고갈되고 재정적자가 악화되면서 물가는 급등했으며 실업률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난생 처음 정권을 잡은 이슬람 세력은 국정운영에 미숙했고 정정불안이 더해지면서 민생파탄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혁명 후 민주화 과정은 시민의 기대심리를 한껏 높인다. 무바라크 정권하에서 오랜 경제난에 지쳤던 시민들은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결선투표에서 51.7% 득표율로 가까스로 당선된 무르시는 투표에 참가하지 않거나 구정권 세력을 지지했던 수천만의 마음을 돌보지 않는 큰 실수를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시민의 대표를 자유롭고 공정하게 뽑는 정치적 기재이지 경제를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또한 민주주의는 명령하달 식의 권위주의 체제보다 경기 부흥에 취약하다. 특히 신흥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기대감에 부푼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새로 선출된 정부의 운영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해서 군부가 개입하여 대통령을 축출하고 다수당을 해산한다면 민주주의 실습의 기회는 결코 가져볼 수 없다. 다수결 원칙에 기반 한 민주주의에서 선거결과에 승복은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다. 군부는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를 새로운 게임의 규칙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무르시 정부는 경제를 살리지 못했고 국정운영에서 이슬람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까지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평가와 처벌은 군부 쿠데타가 아닌 4년 뒤 투표장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 군부의 숙제, 경제 살리기

민주주의 건설은 혁명보다 훨씬 어렵다. 혁명은 빈곤, 청년 실업,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확산 등의 촉발 요소가 합해지면서 극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민주화는 다르다. 민주화 이행에는 전문 직업주의 군부, 정권에 독립적인 비즈니스 계층, 현실정치 경험이 풍부한 시민사회 조직이라는 구조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튀니지와 이집트에는 비슷한 수준의 비즈니스 계층과 재야 단체가 존재했다.

하지만 튀니지 군부는 이집트 군부와 달리 정치 개입을 멀리하고 경제 이권을 장악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차이가 튀니지에 순조로운 민주주의 이행을 가져왔다. 반면 이집트 군부는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으로서 60년간 누려온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았고 정치 전면에 다시 등장했다.

혁명 직후 군부가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을 때부터 군부에 의한 민주주의 후퇴의 우려는 높았다. 당시 군사최고위원회는 임시 헌법 곳곳에 군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뒀다. 군부는 2011년 말 첫 민주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이 47%를 얻으며 다수 의석을 차지하자 6개월 후 의회에 해산명령을 내렸다. 또한 2012년 무르시가 당선된 대선의 결과를 열흘이 지나서야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 형제단이 해체됨에 따라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군부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마저 사라졌다. 이집트의 형제단은 중동 이슬람 세계의 최대 이슬람 정치조직으로서 조직의 규모, 지지기반, 영향력 면에서 군부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다.

무슬림형제단이 정치무대에서 사라짐에 따라 이슬람 극단 강경주의 세력에 방어막이 되어 줄 온건 이슬람 세력도 없어졌다. 형제단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이슬람 국가 건설의 목표를 폐기하고 현실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형제단의 지도부는 자유 민주주의를 통한 이슬람식 개혁을 주장했고 테러행위를 비난했다. 형제단 내부에서 젊은 세대의 개혁파가 부상하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형제단은 아랍의 봄 시기 군부에게 임시로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을 다른 혁명 참여 세력과 함께 평화적으로 이끌었다. 혁명 후 다수당으로 부상한 무슬림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터키의 정의발전당과 비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3년 군부 쿠데타로 형제단의 주류 온건파가 대거 체포되자 이슬람 커뮤니티에서는 급진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무력저항의 주장마저 퍼지는 추세이다. 또한 형제단의 실용 중도 노선이 이슬람 사상에 어긋난다며 비난해왔던 극보수 강경 이슬람주의 살라피 세력은 군부의 형제단 해산을 환영했다.

‘아랍의 겨울’을 맞이한 이집트에서 군부는 과연 안정과 성장을 가져올 수 있을까? 군부 동조 세력과 형제단 지지자 간의 갈등으로 인한 사회 분열은 무바라크 치하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이 군사정권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주요 인사와 관광객을 겨냥한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주요 수입원인 관광산업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군부가 사회를 통합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뿌리 깊은 정실 자본주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이는 무바라크 시절부터 절실했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선 현 경제의 40~45%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군부가 기득권을 포기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구조를 만드는 길밖에 없다.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로부터 받는 막대한 군사, 경제 원조 역시 기존 시장의 구조조정에 쏟아 부어야 한다. 만성적인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다. 그래야 국가의 부름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 군부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