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 박사)은 2015년 9월 18일(금) 연구원 1층 강당에서 전환기정의워킹그룹, 휴먼아시아 그리고 SSK인권포럼과 함께 ‘전환기 정의 구현과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아시아지역협력’을 주제로 2015 아시아인권포럼을 개최했다. 총 3개 회의로 구성된 이 날 포럼은 UN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이자 휴먼아시아•SSK인권포럼 대표인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개회사와 이양희 UN미얀마인권특별보고관의 축사로 시작됐다. 서창록 교수는 축사에서 “아시아인권포럼이 올해로 열 번째 개최되는 동안 북한 인권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는 처음”이라며 “전환기 정의의 구현과 북한인권 개선 방안에 관한 활발한 논의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양희 특보관은 UN인권이사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이 12년 연속 채택된 것에 주목하며 지난 6월 서울에 문을 연 UN북한인권 현장사무소의 역할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1회의: ‘전환기 정의에 대한 국제적 접근’

첫 번째 발표자 시네 폴슨 서울 UN인권사무소장은 ‘전환기 정의 실현을 위한 유엔의 접근법과 노력’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UN이 그 동안 전환기 정의 구현을 통해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 시도를 해왔다”고 설명하며 “과거에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대량 인권 침해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단일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인의 존엄성을 회복•보호하고 나아가 개인과 국가 사이의 신뢰를 되찾기 위하여 전국 단위 조사, 위반자 기소, 진실 폭로 등의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며 “이 과정은 국제적 규범과 기준에 부합해야 하고 무엇보다 피해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슨 소장은 이외에도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전환기 정의 적용 시도가 주로 취약하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그는 “지금 세대가 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문제들을 직시해야 다가올 미래에 다음 세대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서울UN인권사무소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북한의 대량 인권침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 발표자로 무대에 오른 안냐 미어 네덜란드 유트레흐트대 교수는 ‘전환기 정의 정책의 실행과 영향에 관한 다국간 비교’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고통스러운 과거의 문제를 현재 세대가 직시해야 미래에 국가와 사회가 위기를 맞았을 때 필요한 탄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어 교수는 “전환기 정의 구현 과정을 거쳤거나 현재 적용 중인 사회들은 전문가들의 기존 주장들과 달리 각기 유일무이한 사례들이 아니다. 해결 과정에서 사용된 정책 처방전과 도구들은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환기 정의 구현에 동원되는 수단들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이해당사자들의 행동을 바꾸어 민주적 기관들이 관련 법률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만들 수 있다. 둘째, 폭력, 부패, 인권침해 문제들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미어 교수는 자신이 연구한 몇 가지 국가 케이스 중 우간다를 실패 사례로 언급하며 “국가보다 국제사회로부터 더 많은 보상을 받은 것이 결국 사회적 신뢰의 재구축 및 회복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한편 그는 한국을 세계적 성공 사례로 꼽았다. “1970-80년대에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 신호”라고 평가한 미어 교수는 “한국•독일•폴란드의 체제 전환 후 25년의 모습을 각각 비교하면 한국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전환기 정의 구현의 성공을 위해서 정부기관의 반응성에 기반한 책임 소재 파악,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보고와 재판 과정을 통한 투명성 확보, 그리고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가 혼합된 처방이 필요하며, 최종 목표는 포괄적인 사회 건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표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아산정책연구원의 레이프-에릭 이슬리 연구위원은 미어 교수가 언급한 미래지향적 기구와 과거지향적 기구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해주길 요청했다. 이에 미어 교수는 “과거지향적 기구는 사회에 과거의 사건을 각종 재판과 추도식을 통해 계속해서 상기시키는데 집중하며 배타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미래지향적인 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 세대를 위한 권고사항과 보상책을 함께 마련한다”고 답했다.

 

2회의: ‘북한의 반인도범죄에 대한 전환기 정의 접근법의 적용’

새라 손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연구팀장은 ‘북한인권과 전환기 정의: 피해자들의 입장과 견해’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전환기 정의는 이론에 머무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남북한이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라고 정의했다. 그는 한국의 상황에 대하여 “남북한 주민 모두가 한반도의 독특한 역학에 기초한 실용적인 이해도를 갖고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한국에서는 전환기 정의 문제를 통일에 국한 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통일이 유일한 경로가 아니다.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가능성을 염두하고 대비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새라 팀장은 “북한에 전환기 정의 프로세스를 성공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국제 전문가들의 참여와 공조가 필수적”이라며 “또한 남한 사회로 온 탈북민들이 소외감과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중부유럽 각 국의 전환기 경험과 정책 시사점’을 발표한 김규남 폴란드 바르샤바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유럽국가들(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은 체제 전환과 전환기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각기 다른 동기와 한계점을 갖는다. 이 점은 우리가 북한의 전환기 정의를 준비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라고 역설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중부 유럽 국가들은 전환기 당시 준비 부족으로 전환주체의 모호성, 국가재정 부족, 정의에 대한 올바른 개념 인식의 부족 등의 문제를 겪었다. 그는 “북한의 성공적인 전환기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남한 국민들이 스스로 북한 내 개혁세력으로 인식하고 주체의식을 갖고 시민의식을 함양하여 체제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며 “UN허브와 지역링크를 연대해 전환기 정의와 관련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북한의 인권 감시와 신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3회의: ‘전환기 정의 구현을 위한 아시아지역협력의 모색’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의 박사과정 수료생 까를로스 페르난데즈 토르네는 ‘’진실을 알 권리’의 대두와 전환기 정의 프로세스의 난관-네팔 사례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진실을 알 권리’가 어떻게 국제인권법으로 자리잡았는지 설명하고 여러 나라의 진실위원회 사례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본래 ‘실종 또는 사망한 친척들의 운명에 대해 알고자 하는 가족의 권리 조항’은 무력충돌의 경우에만 적용됐다. 그러나 1970년대 아르헨티나 전쟁 중 정부 요원들이 젊은이들을 납치하자 아르헨티나 ‘광장 어머니회’ 등이 강제납치 및 실종에 대해서도 진실을 알 권리를 주장하면서 차츰 이 논의는 비사법적 처형과 고문 등 심각한 인권침해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유엔인권위원회는 1997년 ‘모든 사람은 일정한 양태로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심각한 인권침해행위에서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범죄행위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사건들과 상황, 이유에 대한 진실을 알 양도불가의 권리를 갖는다’고 처음 공표했다.

이후 진실을 알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각 국에서 진실위원회가 설립된다. 페루에서는 진실위원회가 직접 증거를 확보해 가해자 12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게 지원했고, 엘살바도르의 진실위원회는 정책 권고를 통해 가해자들을 공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진실위원회의와 비정부단체들의 반대로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청문회가 TV로 실시간 중계되기도 했다. 토르네는 “진실위원회는 피해자를 지원하고 개인의 책임을 추궁하여 기소 또는 파면하는 데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재발을 방지하는 법적 제도적 개혁을 주도하기도 한다”며 “전환기 정의에는 시민사회의 참여가 특히 중요한데 진실위원회는 시민에게 개방적인 메커니즘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네팔에서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이어진 내전 중에 발생한 인권침해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토르네는 “인권침해 가해자들의 사면 조항을 두고 2014년까지 8년간 논란이 계속됐다”며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에 기반해 여러 사면 조항들이 도입되려는 움직임이 네팔 국내외 인권운동그룹들과 피해자단체들의 반대에 직면한 과정을 소개했다. 이어 그는 “2015년 2월, 네팔 대법원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는 어떤 사면도 있어서는 안되고, 심각한 인권범죄에 대해서는 사면이 이뤄질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현재는 정치적 지지가 약한 두 개의 위원회를 가동하는 시나리오가 진행중”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토르네는 ‘가장 중요한 점은 밝혀내는 것’이라는 네팔 실종자 아내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먼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다라 반단 사무국장은 ‘크메르루즈 정권의 잔학행위에 대한 캄보디아의 정의 구현 노력과 교훈’을 주제로 발표했다. ‘크메르루즈’는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이 반대파를 지칭한 용어로, 1970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시아누크 왕자를 축출하고 권력을 잡았다. 그들은 집권기간 동안 화폐, 자유시장, 공교육, 사유재산, 외래 풍조, 종교의식을 폐지하고 전통 크메르 문화를 말살시켰으며 농업 집단화를 목적으로 2백 만 도시거주민을 시골로 강제이주 시켰다. 집권 4년 동안 2백만 국민이 사망했다. 크메르루즈 정권은 1979년 1월에 붕괴됐다.

다라 반단 사무국장은 “1995년 크메르루즈의 잔학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캄보디아 기록보존센터를 만들었으며 1997년 6월에는 책임자들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유엔에 지원요청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중국이 국제특별재판소 설립을 반대하여 최종합의를 이루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2006년 2월 5일 전범재판소 위원장 미셸 리가 취임하면서 크메르루즈전범재판소(ECCC)의 공식활동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재판소에서는 관련자 모두를 재판하진 않았으며 최고위급 지도자들과 반인류범죄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만 재판했다. 내전이 재발할 위험성을 고려한 것이다. 2만 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S-21 비밀감옥의 책임자 카잉 궥 에아브는 2011년 2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다라 국장은 “어떻게 피해자와 가해자가 섞여서 살아갈 수 있었냐”는 질문에 “실제로 그들은 한 마을에 섞여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의 화해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종교 기관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 갈등을 조정해 나가기도 한다”고 답했다.

다라 사무국장은 “크메르루즈 정권으로 인해 캄보디아는 그 동안 이뤘던 자랑스러운 업적들을 모두 잃었고 국가를 처음부터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우리는 재판소 설립 협약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했고 공정한 재판과 적법한 절차, 정의의 실현을 위해 많은 요소를 고려했다”며 “캄보디아는 정의를 향한 긴 길을 걸어왔고 그 길은 어려웠지만 결국 지도자들을 재판하고 피의자들에게 정의를 구현할 수 있었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