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매년 여름 아-태 지역 외교가, 특히 주요 안보 사안을 가진 국가의 외교부는 한차례 홍역 을 치른다. 아세안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이 매년 이즈음 치러지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반도 문제로 남북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가장 심한 홍 역을 치르곤 했다. 지난 7월 2일 제20차 ARF가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브루나이 (Brunei Darussalam)의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Bandar Seri Begawan)에서 총 27개 회원국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최근 몇 년간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 이번 ARF도 남-북간 외교경 쟁으로 인해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이 글에서는 이번 ARF 의장성명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의장성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번 ARF 의장성명, 그리고 여기에 투입된 외교적 노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하려 한다. 아울러 한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ARF가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국의 입장을 잘 반영하 지 못하는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찾아볼 것이다. 이는 한국 외교의 노력 부족, 외교력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ARF, 그리고 ARF의 중심인 아세안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통해 설명하는 것이 맞다. ARF가 가진 구조적 한계는 한국의 외교적 노력 효과가 극대화 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ARF를 향후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본 제20차 ARF

2013년 7월 제20차 ARF 회의 결과와 관련하여 한국의 최고 관심사는 단연 의장성명 이다. 그 중에서도 의장성명에 한반도 문제, 북한 핵문제가 어떻게 언급되었는가가 가장 큰 관심사이다. 이번 ARF 의장성명에는 한 문단에 걸쳐서 다음과 같이 한반도 문제가 언급되었다.

  • 한반도 평화, 안보, 안정의 중요성 강조
  • 한반도 북한은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SC) 결의안의 의무와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을 준수할 것
  •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한반도 비핵화 지지
  • 회원국들이 관련 UNSC 결의안에 담긴 의무사항을 이행할 것
  • 인도적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해소할 것
  • 관련 당사자들 간 신뢰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평화적 대화 지지

이 내용들을 다시 요약해 보자면 다음의 몇 가지로 구성된다. 첫째로 늘 ARF 의장성명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언급 시 따라 붙는 한반도 평화, 안보, 안정의 중요성이 언급되었 다. 또한 당사자 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의례적 문구 역시 이번에도 포함되었다. 두 번째로 최근 몇 년 사이 포함되기 시작한 북한의 인권, 북한 주민의 생존권 등에 관한 인 도적 문제에 대해서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과 이의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세 번째로 UNSC의 결의안과 6자회담 결과로 합의된 9·19 공동성명 이행 에 관해 북한에 촉구하고 지역의 다른 국가들에게도 UNSC의 결의안 준수에 동참하라 는 메시지를 담았다. 네 번째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명확하게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의장성명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언급은 이전에 비해서 진일보한 부분이 있다. 우선 최근 몇 년 사이 ARF 의장성명을 보면 한반도 문제 관련 주요사항 들이 포함되고 제외되고를 반복했다. 이번 의장성명에는 주요사항들이 모두 포함되었다 (부록 1 참조). 예를 들면 2011년 의장성명의 경우 UNSC 결의안 준수와 한반도 안정의 중요성에 관한 언급이 빠져 있고, 2012년의 경우 핵문제 관련 언급이 전혀 없으며, 북한 의 인도적 문제에 관한 언급도 제외되었다. 적어도 2012년 의장성명과 비교해서 이번 2013년 의장성명은 훨씬 한국의 입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UNSC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문구에서는 북한을 명확히 언급한 점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성과는 북한이 의장성명에 반영하려던 바를 효과적으로 차단한 것이 다. 북한은 의장성명에 북한에 대해서 언급이 있을 경우 이를 무력화하거나 아니면 자신 의 반박을 병렬적으로 의장성명에 추가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이번 ARF 의장성명에서 북한의 이런 시도는 효과적으로 차단되었다. 북한은 이번 ARF에서 한반도의 긴장 상황 은 미국의 대북 압박, 호전적인 대북 정책에서 기인했다는 입장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서는 북-미 간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반영하려 했다. 2011년 의장성명에서 는 우리의 주장과 북한의 주장이 함께 언급되었는데, 이와 비교했을 때, 올해 의장성명은 한국의 입장을 보다 잘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2013년 초 북한의 일련의 군 사적, 외교적 도발에 따른 한반도 불안 상황의 여파로 ARF 회원국 사이에서 북한의 행동 에 대한 우려가 확산된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로 한국 입장에 대한 지지가 증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성과와 함께 한계도 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이번 의장성명에서 언급 한 비핵화는‘한반도’비핵화이지‘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다. 이번 의장성명에는 북한 핵 무기 개발에 대한 경고나 핵 포기,‘북한’의 비핵화 등의 표현이 포함되지 않았다.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은 정확하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겨냥한 지적이다. 반면 한반도 비핵 화는 남북한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북한 핵무기 개발, 그에 따른 확산 위협 등은 상대적 으로 모호하게 한반도라는 단어 뒤에 숨게 된다. 더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는 얼마 전 한- 중정상회담의 결과에도 포함된 것처럼, 이를 통해서 중국이 우려하는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동북아의 핵도미노 명분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진다.1 이는 한국보다 중국의 입장에서 최선의 결과이다.

두 번째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UNSC 결의안과 9·19 성명 준수, 북한의 인도적 문제, 평화적 문제 해결과 같은 사항은 이번 의장성명에서 새롭게 포함된 사항은 아니며,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언급되어 왔던 사항으로 새로울 것은 없다. 오히려 2010년에는 한 반도 비핵화를 언급하며, 이번에 우리 정부가 주장했던 불가역적이고 확실한 핵의 폐기 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비록 2010년 성명에서는 북한 입장을 같이 넣었다는 점에서 문제는 있지만, 핵문제에 관한 표현 자체는 보다 강했다고 볼 수 있다(부록 1 참조).

문제는 한국 외교가 아닌 ARF의 태생적 한계

예년의 경험으로 볼 때, 특히 ARF 회의 직후 의장성명이 한국이 원하는 바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이를 한국 외교의 실패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 외교력 이 아닌 ARF 자체이다. ARF와 관련하여 한국의 외교적 실패는 원래 없었다. 오히려 한 국의 입장에서 ARF를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이런 시각이 만들어 낸 ARF에 대한 과도 한 기대가 문제이다. 남북문제는 한국 국내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북한까지 포함된 ARF에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최종 결과물인 의장성명이 나오면 이를 한국 외교의 성 공으로 판단하려는 기준이 국내에서는 작동한다. 한국이 외교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다면 ARF 회원국 전체의 합의 사항이 반영되는 ARF 의장성명을 한국에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팽배해 있다.

그러나 회원국 면면을 보면 ARF는 매우 다양한 안보 이익을 가지는 27개국의 모임이다. 지역 내 주요 강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물론이고 북한도 포함되어 있다. 그 리고 언뜻 생각하기에 아태 지역 안보 문제에 관련이 있는가라고 여길 수 있는 국가들, 즉 방글라데시, 캐나다, EU, 몽골,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 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ARF에서 나오는 의장성명은 27개국의 합의하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의장성명은 27개국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항에 대해서만 언급하게 마련이다. 북한 문제가 아태 지역 주요 안보 이슈인 것은 사실이지만, 27개국 이 모두 찬성하는 합의를 만들어 내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더욱이 ARF 의장을 맡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강대국들의 의사를 일방적으 로 무시하고 의장성명을 작성할 수 없는 한계가 있으며, 이에 따라 대개 의장성명은 적당 한 타협안을 담게 되어 있다. 이렇듯 ARF가 아세안에 의해서 주도된다는 점에서 ARF와 ARF 의장성명은 지역 안보문제를 강력한 바탕 위에서 다루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가 진다. 한반도 문제, 북한과 남한의 외교적 경쟁 사이에서 아세안 국가들이 취할 수 있는 입장에는 한계가 있다. ARF 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한반도 내 불안 상황에 대해서 아세 안 국가들이 취해온 입장을 보면 지속적으로 중립이었다.

이런 아세안의 입장은 몇 가지 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우선 아세안 10개국이 모두 남북 동시수교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아세안 국가들은 남북 사이에 기계적인 중립 자세를 취해왔다. 그리고 이런 기계적인 중립 자세는 ARF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두 번째로 아세안 내의 모든 결정은 협의와 합의에 기초한다. 이는 1967년 아세안이 설립된 이래로 지 금까지 지속적으로 존중되어온 규칙이다. 아세안 의사결정 과정에서 한 국가라도 특정 사 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면 이는 아세안의 공식 입장이나 정책이 될 수 없다. ARF에서 남북이 서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할 경우 아세안 내에는 한국에 우호적인 국가들이 있을 수 있고, 다소 북한에 우호적 국가들이 있을 수 있다. 이들 간에 효과적인 조율이 일어나 지 못하고 합의가 생기지 않으면 ARF에 나타나는 아세안의 입장은 중립적인 자세, 즉 양쪽 의견을 모두 반영하거나, 모두 거부하거나 아니면 적절한 타협을 볼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 아세안 국가들이 가지는 무력감도 하나의 원인이 된다. 동북아의 안보 문제에 대해서 아세안 국가들은 보다 힘이 약한 세력이고 자신들이 직접 이해당사자가 아닌 상 황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를 꺼리게 된다. 한국이 아세안 국가와 중국 사이의 남중국 해 문제에 관해 중립적 입장을 지키는 논리와 같다. 또한 아세안이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 가 아닌 상황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할 때 이런 아세안의 자기주장이 중국 등 보다 강 한 국가로부터 아세안에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 국가들에게 집단적으로 한국 입장을 지지해달라는 요구는 들어 주기 쉽지 않은 사안이다.

북한 문제를 넘어선 ARF 활용 방법

ARF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다자 안보 기구이며, 동시에 지역의 주요 안보 관련 이슈들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기구이므로 당연히 한국 입장에서 향후에도 중시해야 한다. 우리의 입장이 완전히 반영되지 않거나 반 영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여기서 제외되거나 한국 스스로를 고립시킬 이유는 전혀 없다.

최소한 한국은 ARF에서 지켜야 하는 이익과 마지노선이 있다. 한국이 ARF에 대해서 등한시 하거나 관심을 줄인다면, 이는 북한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ARF 내에서 강해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적어도 이 지역에서 북한의 입장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한국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설득하는 다자 안보 협력의 장으로 ARF에 대한 적극 적인 참여는 향후에도 중요한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그리고 ARF 의장성명에 관한 한이 정도의 노력이 바람직할 것이다. ARF 27개 회원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너무 다르고,아세안이 주도하는 ARF의 기본 운영 원리상 모든 회원국, 모든 아세안 국가를 설득해서 한국의 입장만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은 ARF를 통해서 동남아 국가들, 그리고 이를 넘어서 ARF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과 양자적 관계, 혹은 소다자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외교 장관들을 한자리에서 접촉할 수 있다는 점에 서 ARF는 매우 효과적인 양자, 소다자 접촉과 협의의 장을 제공한다. 이번 회의에서도 한국은 한-미-일, 한-중, 한-러, 한-일 외교장관 회담 등 10개국 양자 회담, 한-아세 안, 한-메콩 외교장관 회담 등을 했다. 공식 회의만 해도 ARF를 전후로 한국의 경우 최대4번의 외교장관 회의에 참여한다.2 한-아세안, 한-메콩 외교장관 회담 등 ARF를 계기로 한 양자, 소다자 관계 강화 노력을 바탕으로 한국에 우호적 입장을 가질 수 있는 국가 들을 지속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이렇게 확장된 우호적인 국가들의 네트워크는 결정적 순간 한국의 안보 문제와 관련하여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런 우호적 국가들의 확대는 점차 ARF 의장성명 작성 과정에서 한국에 동조하 는 목소리를 확장시킬 수 있고, 종국에는 의장성명을 한국의 의도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아세안 내에서 큰 목소리를 가지는 인도네시아,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베트남, 인도-퍼시픽(Indo-Pacific)이란 새로운 지역 개념을 통해 아-태 지역 안보문제에 관한 목소리를 높이려는 인도 등이 이런 관계 설정의 좋은 대상이 될 수 있다. 단순히 한해 의 장국 성명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보다 긴 안목에서 지역의 중요한 국가들과 공통의 인식 토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보다 장기적으로 만들어진 국가 간 신뢰관계는 며칠 혹은 한, 두달 간 집중적인 노력에 비해서 보다 지속되는 큰 효과를 만들어 낸다.

뿐만 아니라 지역 내 중견국(middle power), 혹은 유사한 생각을 가진 국가(like-minded states), 지역 민주국가 연대(democracy coalition) 등의 다양한 주제로 한국과 안보 문제에서 협력하고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국가들을 확대하고 접촉면을 확장하는 것도 ARF를 한국이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국은 이제 한반도 문제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서 지역 차원, 그리고 글로벌 차원의 공통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위해서 노력하는 중견국을 자임하고 있다. 중견국은 모든 이슈들에 손을 대지는 않지만, 자신이 전문성을 가지 이슈에 대해서 유사한 전문성과 능력을 가진 다른 중견국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과 글로벌 차원의 문제 해결을 모색한다. 아태 지역에서, 특히 ARF 회원국들중에서 호주, 인도네시아, 캐나다 등은 우리의 좋은 중견국 협력 대상이다. 간단히 말하면 당장 시급한 한반도 문제를 넘어서 보다 장기적 포석으로 ARF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 해야 할 것이다.

ARF에 나타난 남중국해 문제와 미 관계

한반도 문제와 함께 늘 ARF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이슈는 아세안 국가들이 직접 이 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 사이 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 이에 대한 미국의 개입 등으로 남중국해 문제는 초미 의 관심사였다. 오바마 정부 1기 당시에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국무장관이 미국의 아시아 피봇 정책의 하나로 ARF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강력하게 거론했었다. 그 리고 중국은 이런 미국의 남중국해 문제 관여에 대해 비판을 해왔다. 더 나아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온도차로 인해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 내적 분열이 노출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2년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의장국인 캄보디아가 남중국해 관련 문구를 의장성명에 넣기를 거부하면서 45차 회의까지 꾸준히 발표되어온 의장성명에 처음으로 아세안 국가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이번 ARF에서는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싸고 아세안과 중국, 중국과 미국이 큰 갈등을 노 출하지는 않았다. ARF 의장성명에 나타난 남중국해 문제에 관한 언급은 책임공방보다 는 기대에 가까웠다. 의장성명은 올해 9월에 중국에서 열릴 제6차 행동선언(Declaration of Conduct, DOC) 이행에 관한 아세안-중국 고위급 회의와 제9차 DOC 이행에 관한 공동연구반(joint working group)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또한 남중국해 문제에 관한 현인/전문가 그룹(Eminent Persons and Experts Group) 소집을 위한 조치를 환영했다.

전반적인 의장성명의 내용과 최근 중국과 동남아 국가의 움직임을 볼 때 남중국해 문제 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국과 동남아 모두 남중국해 문제에 관한 특별한 해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3중국은 동남아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부담스럽다. 동남아 국가들은 훨씬 강한 중국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 고민이다. 국제법을 준수하는 선에서 경계 획정을 한다 해도 5개국 사이 이해 충돌로 인해 영유권 문제는 결코 해결이 쉽지 않다. 따라서 중국이나 아세안 모두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지금으로서는 갈등이 유발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최선 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아시아 피봇 정책에 따른 남중국해 문제 간섭이나 혹시 있을 수 있는 우발적 충돌이 여전히 남중국해 갈등 관리의 불씨로 남아 있다.

ARF는 지역 국가들이 지역 안보 문제에 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드러나는 장이며, 아태 지역의 전략구도를 파악할 수 있는 잣대 역할을 한다.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인 미국과 중국의 아태지역에서 전략경쟁은 ARF에서 시작되었 다. 2010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ARF를 통해서 미국의 대 아시아 피봇정책을 사실상 선언했다. 이 회의에서 미국이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에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알리며, 남중국해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에 대해 언급을 했다. 올해 ARF에서 미국과 중국은 좀 달라진 모습으로 만났다. 2009년 시작된 오바마 대통령의 1기 가 끝나고 2기가 시작되어 국무장관이 교체되었다. 중국은 새로운 지도부를 맞아 시진핑 체제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지난 6월 미국과 중국은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을 했다.

이번 ARF에 나타난 특징은 미국과 중국 간에 최근 몇 년간 벌어졌던 전략경쟁의 모습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남중국해에서 눈에 띄는 갈등이 약간 줄어든 탓도 있지만, 미국은 이번 ARF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이전과 같이 강도 높게 거론하지 않았다. 의장성명에 담긴 바에 따르면, 중국 역시 원론적인 수준이지만 남중국해 문제에서 이전 보다는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적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려는 모습 혹은 지금 당장 동남아 국가들을 압박하기 보다는 시간을 벌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의장성명에서 남중국해 문 제와 관련하여 갈등 어조보다는 조만간 있을 고위급 회의에 희망 섞인 기대가 표시되었 다는 것은 이런 미국과 중국 간의 남중국해를 둘러싼 전략 경쟁이 다소 완화되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결론

이번 ARF에 드러난 남중국해 문제, 미-중 관계는 전반적으로 지역에서 전략경쟁의 완 화라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이전보다 많은 부분이 지 역 국가 간 합의로 의장성명에 포함된 것도 역내 국가 간 전략 경쟁 완화, 안보 문제에 관한 이견의 약화라는 보다 큰 틀에서 형성된 지역 국가 간 합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지역 전반의 전략적 지형은 올해 한반도 내 긴장 상황이 요동친 것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지역 안보를 논하는 자리인 ARF에서 한반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한국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가 ARF의 전부는 아니다. ARF는 한국 외교가 보다 미래 지향적으로 갈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을 제공한다. ARF를 활용하여 소다자, 양자 관 계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고, 민주국가연대 등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런 관계들을 통해 지역에서 보다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명실상부한 중견국 지위를 공고히 할 수도 있 을 것이다.

부록 1: 최근(2010~2013) ARF 의장성명에 나타난 북한 및 한반도 관련 언급
연도
(의장국)
2010
(베트남)
2011
(인도네시아)
2012
(캄보디아)
2013
(브루나이)
한반도 전반
  • 한반도 평화, 안정 중요
  • 당사자간 평화적 분쟁 해결
  • 한반도 평화, 안정 중요
  • 상호 도발행위 중지 촉구
  • 남북간 신뢰 조성을 위한 평화적 대화 촉구
  • 한반도 평화, 안정 중요
  • 남북간 신뢰 조성과 평화적 대화 재개를 위한 모든 노력 강조
북핵 문제
  •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
  •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한반도의 비핵화
  • 북한의 우라늄 농축 활동 관련 우려 표명
  • 북한에 모든 핵프로그램 포기와 관련 의무 준수 촉구
  • 한반도 평화적 비핵화 지지
UN 관련
  • 2010년 7월 UNSC 의장 성명 지지
  • 관련 UNSC 결의안 중요성 강조
  • 관련 UNSC 결의안 중요성 준수
  • 북한 관련 UNSC 결의안 중요성 및 준수 강조
인도적 문제
  • 인도적 문제 관련 국제 사회의 관심 강조
  • 인도적 문제 관련 국제 사회의 관심과 이산가족 상봉 문제 언급
  • 북한의 인도적 문제 관련 국제 사회의 관심 강조
6자 회담
  • 6자회담 복귀 촉구
  • 남북 6자회담 대표 회동 환영
  • 6자회담 복귀를 위한 긍정적 조치로 환영
  • 6자회담 재개를 위해 ARF가 역할을 할 수 있음
  • 6자회담의 9·19 성명 준수
  • 6자회담의 9·19 성명 준수
북한 주장
  • 우라늄 농축은 주권국가의 권리임을 주장
기타
  • 천안함 폭침 언급

*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 1

    김한권. 2013.“실익을 챙긴 중국과 장기적 포석을 둔 한국: 한-중 정상회담의 평가.”아산정책 연구원 Issue Brief No. 62.

  • 2

    올해의 경우 ARF를 가운데 두고 2일 전부터 ASEAN 외교장관 회의 (ASEAN Ministers’Meeting), 확대외교장관회의(Post Ministerial Conference, PMC–아세안과 아세안대화상대국 외교장관회
    의), ARF, ASEAN+3 외교장관회의, 그리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외교 장관회의가 잇달아 열렸다. 한국은 이 중에서 아세안외교장관회의를 제외한 4개 회의에 참가 자격이 있다.

  • 3

    이재현. 2012.“남중북해 분쟁의 이해와 전망”국립외교원 주요국제문제분석 NO. 20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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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장이며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