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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문제에 관한 국제중재재판 판결 이후 처음으로 7월 21일부터 남중국해 문제에 직, 간접으로 관련된 국가의 외교장관이 한자리에 모인다. 7월 21일부터 26일까지 라오스 비엔티엔 (Vientiane)에서 제 23차 아세안안보포럼 (ARF), 제 49차 아세안외교장관회의 및 확대장관회의 (AMM/PMC), 제 17차 아세안+3 외교장관회의 및 제 7차 EAS 외교장관회의가 연이어 열린다. 무엇보다 이번 잇단 장관회의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남중국해 문제다. 이번 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는 가에 따라서 향후 이 지역에서 미-중 경쟁의 양상이 결정될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매년 ARF에서 펼쳐지던 남북한 대결이 관심 대상이다. 의장국 성명에 남북문제, 한반도 문제가 어떻게 언급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번 ARF에서 남중국해, THAAD, 그리고 한반도 문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미-중이 남중국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룰 경우 상대적으로 중국은 THAAD 문제에 초점을 두기 어렵다. 남중국해 문제에 대응이 THAAD를 문제 삼는 것에 우선할 것이다. 반면 미-중이 의례적으로 남중국해 문제 관련 의제를 주고 받은 이후 더 크게 확전이 되지 않는 경우 중국이 THAAD를 꺼내 들 수 있다. 중국이 THAAD를 강하게 의제화 할 경우 이는 북한의 발언권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연장선상에서 북한 문제를 의장국 성명에서 강하게 다루는데 중국의 협조가 어려워지고, 북한의 태도는 강경해질 것이다.

ARF 회원국은 미국, 중국, 아세안 국가를 비롯해서 남중국해 문제에 직, 간접으로 관심 및 이해관계를 가지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포함된다. 먼저 회원국 전체적인 지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국가들을 남중국해 문제 전반에 대해서, 그리고 보다 좁게는 지난 7월 12일 발표된 국제중재재판 결과에 대해서 크게 세가지 정도의 입장으로 묶어 낼 수 있다. 첫번째 국가는 대체로 중국에 비판적인 국가들로 미국, 일본, 인도, 호주, EU, 캐나다, 뉴질랜드와 한국 등이 여기 포함될 수 있다. 이들 국가들은 각론에서는 차이를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미국이 주장하는 항행의 자유와 국제법 준수라는 부분에서는 대체로 일치된 입장을 보인다.

반면 중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이 또 하나의 그룹을 이룬다. 이들은 첫번째 그룹과는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포괄적으로 친중적 국가들이 사안에 따라서 포함될 수 있는데, 특히 파키스탄, 북한, 러시아 등이 사안에 따라 중국과 연대할 수 있다. 세번째로 동남아 그룹이 있는데, 아세안 10국 중 명백히 친중적 입장을 보이는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아세안 그룹이라 할 수 있다.[1] 나머지 스리랑카, 동티모르, 파푸아뉴기니, 몽골, 방글라데시 등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 뚜렷한 입장이 없는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회의별 참석 자격>

국가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AMM) 확대외교장관회의(PMC) A+3외교장관회의 EAS외교장관회의 아세안안보포럼(ARF)

아세안

10개국

0 0 0 0

0

한, 중, 일

x 0 0 0

0

미국,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 인도

x 0 x 0

0

EU, 캐나다

x 0 x x

0

기타* x x x x

0

* 북한, 몽골, 동티모르,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파푸아뉴기니 (7개국)

국제중재재판 이후 각 국가들은 각자 논평을 내어 중재재판 결과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직접 외교장관들이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은 이번 회의가 처음이다. 또 아세안 국가들도 49차 아세안외교장관회의(AMM)을 통해서 남중국해 관련 판결이 난 이후 처음으로 회동한다. 이미 아세안 국가들은 내부적으로 이번 외교장관회의를 통해서 중재재판결과에 관한 공동입장을 내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2] 문제는 중국과 미국이 남중국해 문제, 그리고 중재재판 결과를 놓고 이번 ARF 회의에서 어디까지 긴장을 고조 시킬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이번 ARF를 계기로 남중국해 문제가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 수도 있고, 아니면 더욱 확전으로 갈 수도 있다.

미국과 일본은 국제중재재판 결과를 등에 업고 일단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 중국이 반응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이다. 일차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공격에 대한 대응을 하겠지만, 신중한 단어 선택을 통해 더욱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할 수 있다. 중재재판 결과를 가지고 논쟁을 지속하는 것은 중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중국이 논란 확대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후 미국과 중국간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은 다소 관리모드로 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남중국해 문제를 더욱 확대시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서로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지금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더 확대된다면 남은 방법은 군사적 충돌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강한 입장 표명이 중국을 자극하고, 중국이 이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응할 경우 남중국해에서 긴장 국면은 지속될 것이다. 이 경우 ARF는 지역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장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키는 장으로 작용한다. ARF 이후 미국은 지속적으로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겨냥한 항행의 자유 작전 (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을 펼 것이고 이에 대해서 중국 역시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이나 미국이 모두 더 이상의 갈등 지속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경우 군사적 긴장의 확대를 막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행동들을 보면 꼭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특히 중국이 2009년 이후 남중국해에서 취한 행동들이 중국에게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합리적 선택을 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미국이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대통령 선거 모드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오히려 중국은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남중국해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번 ARF와 일련의 외교장관 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가지고 미국과 중국이 어떤 전략적 움직임을 주고 받는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ARF에서 미국과 중국이 보이는 행동과 말들이 2016년 하반기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강대국 경쟁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미국과 중국 사이 남중국해 문제에 관한 경쟁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가에 따라서 한반도 문제, THAAD를 비롯한 동북아의 전략 경쟁 역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 중 강대국 입장에서 남중국해 문제와 THAAD는 전략 경쟁을 위한 하나의 패키지 이지만, 두개 모두로 전선을 확대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이런 차원에서 남중국해 문제와 THAAD는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다.

* 본 블로그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1] 물론 이런 구분은 매우 포괄적인 것이고, 남중국해 문제의 구체적 사항, 즉 영토 문제, 국제중재재판 판결 결과, 일반적 국제법 준수의 문제, 아세안 국가내 단결의 문제, 아세안의 공동 입장 등 각론으로 들어갈 경우 이런 분류는 더욱 세분되어야 한다.

[2] Bangkok Post. “Asean abandons joint statement on ruling” 14 July 2016.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