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 한국학연구센터는 5월 13일(수), 제 2회 <아산서평모임>을 개최했다. 2회 모임은 정명교 교수(연세대학교 국문학과)의 저서 『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 내가 사랑한 시인들, 두 번째』(문학과지성사, 2014)를 주제로 진행됐다. 정수복 작가의 사회로 저자인 정명교 교수가 발표하고 김기봉 교수(경기대학교 사학과), 김홍중 교수(서울대학교 사회학과)가 지정 토론을 맡았다. 아산정책연구원 1층 갤러리에서 진행된 이날 모임에는 윤정로(KAIST 인문사회과학과), 이영림(수원대학교 사학과), 한형조(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 25명이 참석했다.

◈ 정명교 교수 발제=“문학비평이 하는 일”

– 1987년을 기점, 한국인의 보편적 심성 ‘설움’과 ‘우울’로 구분할 수 있어
– 새롭게 호출된 이성복 시인의 ‘설움’을 통해 타인과의 ‘공존’의 삶 고민해야

정명교 교수는 “문학 비평을 한다는 것은 텍스트를 꼼꼼히 읽는 데서 나아가, 텍스트에 담긴 사회적 문제를 징후적으로 느끼고 그 징후가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데까지 같이 가보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저서 중 ‘서러움의 정치학 –시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과/어떻게 싸우는가에 대한 사색’ 부분을 소개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기점으로 한국인의 보편적 감정은 ‘설움’에서 ‘우울’로 변화했다. 그는 “자기 삶의 불행 요인을 타자에게서 찾는 ‘설움’의 감정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내내 외세의 지배를 받은 한국인의 보편적 심성이었다”며 “그러나 87년 이후의 민주화와 90년대 이후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및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 또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한국인들은 점차 개인화되었고, ’민족’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제 설움이 아닌 ‘우울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우울은 ‘자신의 무력한 삶에 대한 한탄, 현실에 대한 푸념’에 가깝다.

이어 그는 “그렇게 영영 사라진 줄 알았던 ‘설움’의 감정은 이성복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 2013)에서 새롭게 호출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때의 설움은 ’타자의 고통에 대해 연민을 느끼지만 그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어 서러운 마음’이다. 정 교수는 “이성복의 ‘설움’은 나와 타자 사이의 ‘공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울’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김기봉 교수=“역사의 종말과 문학의 부활: 역사와 문학의 관계의 재구성”

– 80년대와 그 시대의 문학을 역사화하고 오늘날 갖는 의미 성찰해야
– ‘계급, 민족’의 거대담론으로부터 빠져 나와 ‘나’와 ‘너’의 소통의 공간인 ‘일상’에 주목

김기봉 교수는 “이 책은 80년대 사회적 지평을 향해 문학적 탐구를 했던 시들을 역사화 함으로써 문학의 당면과제, 즉 ‘우리 시대 문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라며 “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문학의 뿌리가 80년대에 닿아 있음을 밝힌 듯 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역사를 위하여 문학이라는 무기를 들었던 사람들에게 문학은 역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오늘날엔 역사의 진보에 관한 거대담론이 희미해진 만큼 현대 문학은 이전의 문학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일어난다”며 “80년대에는 역사가 문학을 규정했다면 이제는 문학적 상상력이 질곡에 빠진 역사적 사실을 구해 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세계를 휩쓸면서 개인들간의 구체적 차이를 은폐하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공식은 해체되었고, 이제는 ‘나’와 ‘너’의 일상적 연대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일상은 ‘나’와 ‘너’의 관계가 맺어지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다. ‘우리’∙‘도래할 미래’를 강조하는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소통의 공간인 일상으로 회귀해 ‘지금 이 시간’을 잡는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의 삶을 사는 게 오늘날 문학을 통해 사회적 지평을 열어가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김홍중 교수=”사회적인 것과 시적인 것의 희한한 만남”

– 90년대 이후, 사회적 연대의 붕괴와 함께 문학에서도 ‘사회적 지평’ 사라져
– 80년대 시는 문학과 사회과학이 한 몸이던 시기의 상징

김홍중 교수는 “80년대 문학을 80년대 문학으로 만든 것은 문학의 사회적 지평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라며 “사회적 지평이라는 관점 자체가 더 이상 문단에서 문제로 제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오랫동안 상실되어 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구에서 ‘사회’의 개념이 가장 꽃 핀 때는 ‘영광의 30년’으로 불리는 1945~1975년인데 이 시기는 자본주의가 정점에 도달했고, 중산층의 꿈을 꿀 수 있었으며, 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영원할 것 같던 시기였다”고 설명하며 “복지제도,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타인에 대한 연대가 가능했던 시기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서구와 같은 사회적 연대의 경험이 없는 한국은 90년대 이후 더욱 빠른 속도로 사회가 붕괴하는 것을 목격했고,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뿐인 경쟁적 정글이 되었다.
또 김 교수는 “사회적 지평을 향한 문학적 탐구는 사회과학과 문학이 희비극적으로 결별하기 이전, 즉 70~80년대 학번이 공부하던 시절의 ‘인문사회학’을 떠올리게 한다”며 “90년대 이후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공학에 더 가까운 모델을 지향하며 인문학과의 연결성을 거의 상실한 듯 보인다. 서로의 작업을 읽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까지 한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80년대 한국 시를 ‘사회가 살아있었고 문학사회학이 가능했던 시절의 상징’, ‘사회적인 것과 시적인 것의 희한한 만남에 뿌리내리고 있는, 모방 불가능한 아우라’라고 평가했다.

※ 제 2회 <아산서평모임> 세부일정표, 발제자료 및 토론문 (첨부파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