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칼럼

Ahn Young-joon ⓒREUTERS (JAPAN)

Ahn Young-joon ⓒREUTERS

2014년 4월 8일 청와대에서 한-호주 정상회담이 열려 ‘한국과 호주의 안전하며 평화롭고 번영된 미래를 위한 비전 성명(Vision Statement on a Securer, Peaceful and Prosperous Future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Australia)’이 발표됐다. 5년 전만 해도 한국과 호주는 서로에게 크게 기대를 안 거는 사이였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정상들이 모두 일곱 차례 만나 회담을 할 만큼 가까워졌다. 그전에도 정상들은 만났지만 의례적 수준이었고 성명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 만큼 4월의 ‘한-호 비전 성명’은 양국 관계의 진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발전된 관계를 바탕으로 양국은 성명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업을 모색해 왔으며 우선 국방, 안보 분야의 협력 청사진((Australia-Korea Defense and Security Blueprint)을 만들고 있다. 이 청사진은 2013년 1차에 이어 2015년 9월 11일 열릴 2차 한-호주 외교국방장관회의(한-호 2+2회의)에서 발표되며, 향후 한-호 외교, 안보, 국방 분야 협력의 근간이 될 것이다.

 

왜 한-호인가?

그런데 ‘한-호주 2+2 회의’라는 구조가 의아하다. 한국과 호주 사이에 무슨 크고 긴급한 국방, 안보 관련 이슈가 있어 한-미 2+2 회의 같은 틀을 만드는가? 한-미 2+2 회의와 비교해 보자. 미국은 한국의 외교, 국방, 안보에 가장 중요한 파트너다. 누구도 한-미 2+2 회의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긴급 현안이 많은 한-미 대화의 초점은 주로 북한 문제를 포함, 시급한 공통 외교 안보 관심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국-호주는 보다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외교, 안보, 국방 사안을 논의하는데 초점을 두게 된다. 그래서 2+2 회의가 양국 관계에 비해 ‘너무 큰 옷’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한-호 2+2 회의는 한-미 2+2 회의보다 영역을 훨씬 넓혀 더 많은 협력 어젠다를 논의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양국 사이에는 지역 전략 공유, 비전통 안보 협력, 국방 협력을 통한 개도국 지원 등 꽤 많은 새로운 협력 이슈가 있기 때문이다. 이 회의를 통해 한국은 한반도와 주변 지역을 넘어, 보다 크게 지역 전체의 사안을 다룰 수 있고, 긴급 안보 현안에 머물렀던 한국의 외교 안보가 다른 국가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한-호 외교, 국방 안보 협력은 한국의 외교, 안보, 국방이 미래 지향적으로 한 걸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한국과 호주는 모두 중견국이다. 한국 외교는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강대국 안보 외교에 치우쳐 왔으며, 약소국 외교는 공적 원조를 하거나 개발 경험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왔다. 반면 중견국과 대등하게 협력하면서 글로벌, 지역 차원의 공공재를 만들어 내는 큰 경험은 아직 없다. 호주와의 협력은 이런 차원에서 한국 외교가 나아갈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 양국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을 중시해야 하는 유사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와 관련된 한-호 전략적 협의와 협력도 중요한 어젠다이다. 미-중 관계가 갈등과 경쟁이 아닌 협력적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한국과 호주에게 중요하다. 2+2 대화를 통해서 한국과 호주는 미-중 관계에 전략적 입장을 공유해야 한다. 미-중 관계에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합의점이 찾아 진다면 미-중 관계를 한국∙호주에 유리하게 끌고 가는 공동 노력을 할 수 있다.

한국과 호주는 각각 양 강대국과 맺은 동맹,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활용해야 한다. 이 채널을 통해 양국의 일치된 입장을 제시할 수 있다. 미-중이 협력할 때 한-호 양국은 이 채널을 통해 긍정의 메시지를, 미-중이 갈등할 경우 자제의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호가 미-중 관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행사하게 되면 유사한 딜레마를 안은 지역 국가들도 여기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참여국이 늘어날수록 미-중이 무시할 수 없는 견제세력이 될 수 있다.

 

지역 공공선을 위한 한-호 파트너십

호주는 그간 한국보다 활발하게 지역 외교를 펴왔고, 아세안 지역과 남태평양 도서국과의 관계에서 나름의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이 지역에서 한국의 외교적 지평을 확장하려면 호주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기능면에서 호주는 사이버, 해양, 인도적 지원, 평화유지 및 건설 부문에 경험을 지속적으로 쌓아왔다.

한-호 국방 안보 협력을 통해 비전통 안보 부문에서 우리가 배울 점도 있다. 양국 협력에는 당연히 긴급한 외교, 안보, 국방 이익이 포함되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보다 큰 틀에서 양국이 지역을 위해 외교, 안보, 국방 분야의 공공재를 창출하고 기여하는 방향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중견국인 한국과 호주에 기대되는 지역적, 글로벌 차원의 역할을 양자 협력에 반영해야 한다.

이 지역에 산재한 다양한 비전통, 인간 안보 문제의 해결에도 두 나라가 협력해야 한다. 기후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그에 따른 인도적 지원, 구조-구난, 해상 안전 및 해양 안보, 인신매매, 마약∙소형무기 불법거래(trafficking), 사이버 안보 및 안전 문제 등이 이 지역이 직면한 대표적인 비전통 안보, 인간 안보 현안들이다. 이를 해결하는 데는 특히 군의 참여가 필요하다. 인도적 목적의 대규모 인적∙물적 지원, 국경을 넘나드는 트래피킹 문제 해결, 해양 안보 등에서 군, 특히 해군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크다.

나아가 국지적 분쟁의 관리 및 해결에서 한국과 호주가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양국 모두 평화 유지 및 건설(peace keeping and making)에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동티모르에서 펼친 한국군의 역할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아직도 높다. 호주 역시 참전 경험이 많고 남태평양 등에서 다양한 평화 유지 및 건설 활동에 참여해 왔다.

지역의 개도국들은 이런 비전통, 인간 안보 문제에 매우 취약하다. 한국과 호주가 공동으로 이들 나라가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능력배양(capacity building)을 해주는 것도 국방 안보 및 외교 분야 협력의 중요한 요소다. 트래피킹, 인도적 지원, 구조-구난, 사이버 안보 문제 해결 능력이 취약한 동남아 국가의 군을 위해 한국과 호주가 상호 협의해 교육 프로그램, 연합 훈련(joint exercise) 등을 마련할 수 있다. 일종의 ‘다자적 국방 공적원조(Defense ODA)’를 하자는 것이다.

지역 다자안보협력도 바람직하다. 아세안안보포럼(ARF), 확대 아세안국방장관회의(ADMM+), 샹그릴라대화(SLD), 서울안보대화(SDD) 같은 다양한 장에서 한국과 호주가 상호 합의를 바탕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주권에 민감한 지역 국가들이 본격적인 안보∙국방 협력을 꺼리는 상황에서, 능력은 뛰어나지만 위협적이지 않은 한국과 호주 같은 중견국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내실 있는 다자안보국방협력을 위해 기존 다자협력 틀에 새로운 비전과 동력을 제공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역할을 두 나라가 할 수 있다.

한국과 호주의 외교, 안보, 국방 협력을 지역 전체를 위한 공공재 공급이란 방향으로 돌리는 것은 미래지향적일 뿐만 아니라 한-호 국방 안보 협력에 대해 지역 강대국들이 가질 의심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호주가 국방 안보 분야에서 협력할 때 반대편에 선 국가들은 자연스럽게 부담을 느끼고,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거나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호 국방 안보 협력이 ‘지역 전체를 위한 공공재 공급’이라는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면 누구도 반대할 명분을 찾을 수 없다.

이런 모든 노력은 결국 한반도 문제 관리와 한국 입장 강화에 도움이 된다. 한국과 호주의 외교, 안보, 국방 협력이 지역의 비전통 안보 문제 해결, 개도국 능력 배양을 위한 군의 지원, 지역 다자 안보 협력의 활성화와 같은 실질적 결실을 거두게 되면 한국의 지역적 위상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높아진 위상은 지역 국가들이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우리가 이들 나라들에게 한국이 옳으니 지지해 달라고 애써 호소하는 것보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인 외교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호주 외교 및 국방 안보 분야 협력은 당장의 양국 현안에 대한 협력만큼 미래에도 눈을 두고 있어야 한다. 한국으로선 처음으로 다른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를 벗어나 지역 문제로까지 우리의 외교, 안보, 국방 역량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긴급 현안을 사이에 두고 무엇을 주고 받을 것인가 보다 두 국가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중견국으로 올라선 한국이 창조적 외교와 창조적 국방을 할 수 있는 출발대가 여기에 있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장이며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