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1. 들어가며

북한의 제4차 핵 실험 이후 북핵 저지를 위해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016년 3월 3일 미국 국무부 대변인 존 커비(John Kirby)는 일간 브리핑 시 “He [the Secretary] wouldn’t rule out the possibility that there could be discussions about a peace resolution of the armistice”라고 언급하였다. 물론 이러한 언급은 한반도 비핵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비핵화의 수단이든 비핵화의 대가이든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 고려될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지난 2005년 제4차 6자회담의 결과물인 ‘9 ∙ 19 공동성명’ 제4항1은 직접적으로 관련된 당사국들이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체제를 논의할 것을 선언했는데, 이 또한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북한은 1974년 3월 25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3차 회의 이후 미국에 대하여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해 왔는데, 이는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2 이러한 북한의 전략에 휘말리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 개발을 포기시키기 위해 평화협정 체결에 응할 수도 있다는 태도는 평화협정 체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해본다면, ‘평화협정’이 과연 필요한지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북한의 주장이 반영되지 않은 평화협정이라 할지라도 과연 필요한지의 여부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은 국제법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제이다. 본 이슈브리프는 개전 및 종전 개념에 대한 국제법 체계 고찰 및 현 UN 체제 분석을 통해 평화협정 자체가 필요 없는 개념임을 살펴보는 동시에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가 위험한 발상임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2. 개전(開戰) 및 종전(終戰)과 관련한 국제법 체계의 변화

현재의 국제법 질서, 즉 국가들 간의 주권평등을 전제로 한 국제법 질서는 신교 국가들과 구교 국가들 간 30년 전쟁의 결과인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Peace of Westphalia)’ 체결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1648년 이전에는 전쟁의 목적 또는 전쟁의 정당성을 기준으로 그 전쟁이 ‘정전(just war)’3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전 이론은 로마 시대 키케로의 저작 및 성 어거스틴의 저술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중세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구체적으로 집대성 되었다.4 정전 이론에 의하면 정당하지 않은 전쟁을 일으킨 국가는 그 당시에는 합법적인 권리였던 전리품을 획득하거나 정복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할 수 없었다.5

주권평등이 확립되면서 교황과 같이 전쟁이 정당한(just)지의 여부를 판단할 주체가 세속정치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이는 국가 간의 관계가 전쟁의 정당성 여부와 관련 없이 법적으로 ‘전쟁’관계와 ‘평화’관계 두 가지로 나뉘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제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그로티우스(Hugo Grotius)는 (비록 1648년 이전이기는 하지만) 1625년 ‘전쟁과 평화의 법(De Jure Belli ac Pacis)’이라는 유명한 책을 출간하였는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들 간의 관계에는 ‘전쟁’과 ‘평화’라는 두 가지가 존재함을 설파하였다.

따라서 1648년 이후 국가들은 국가의 ‘정책수단’으로 전쟁을 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스페인과 프랑스의 관계가 전쟁관계일 때도 있고, 평화관계일 때도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국가들은 전쟁 수행을 위해 정부 부처의 하나로 [오늘날의 국방부(Ministry of Defence)에 해당하는] ‘전쟁부(Ministry of War)’를 운영하였다. 그리고 평화관계에 있는 두 국가들 간의 관계가 법적으로 전쟁관계로 전환되는 시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선전포고(declaration of war)’를 하였다.6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가 상상할 수 없었던 전쟁을 겪은 이후 전쟁과 관련된 국제법 체계는 조금씩 국가들의 무력사용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는데, 이 당시 이러한 변화의 정점은 1928년 ‘부전조약(Pact of Paris 또는 Kellogg-Briand Pact)’ 체결이었다. 이 조약 제1조는 국제분쟁의 해결을 위해 전쟁에 호소하는 것을 비난하고 다른 국가들 간의 관계에서 국가의 정책수단 중 하나로 전쟁을 택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였다.7 하지만 ‘Pact of Paris’ 제1조는 전쟁을 정책수단 중 하나로 선택하지 않을 의무를 부과하였지 국가들의 무력사용 자체를 불법화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전쟁 자체가 금지되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현 UN 체제에서는 불법이지만) ‘Pact of Paris’ 체제에서는 전쟁관계가 아닌 평화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타국의 국제법 위반에 대하여 무력으로 보복하는 ‘복구(reprisals)’가 제한적으로 합법이었기 때문에 국가들이 노골적으로 전쟁을 자신의 정책수단으로 택하지 않는 한 복구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8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욱 충격을 주었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UN 체제가 성립되었고, UN헌장 제2조 제4항9은 국가들의 무력사용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UN헌장은 국가들의 무력사용과 관련하여 ‘UN안보리 결의에 의한 군사적 조치’와 무력공격을 받은 국가의 ‘자위권 행사’라는 두 가지 예외만을 허용하고 있다.10 이에 따라 1945년 이전에는 지켜야만 했던 합법적인 전쟁발발 순서[즉, 최후통첩(ultimatum) → 선전포고 → 개전]에 관한 논의 자체가 사라졌다. 개전을 위한 선전포고(또는 선전포고 이전의 최후통첩)는 현 UN 체제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현 UN 체제하에서 전쟁은 UN안보리 결의에 의한 군사적 조치의 이행 또는 불법적인 무력공격에 대한 자위권 행사로 발발할 뿐이다. 현 국제법 체계에서 전쟁이라는 용어 자체의 사용도 지양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만약 무력사용 사태가 발생한 경우 ‘국제무력충돌(international armed conflict)’과 같이 현재의 사태를 전쟁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자 하는 용어가 선택되고 있다.11

합법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었던 1945년 이전에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방법으로 평화협정(Treaty of Peace) 체결이 자주 이용되었다. 평화협정 체결은 국가들 간의 관계를 ‘전쟁’에서 ‘평화’로 전환시키기 위한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나 평화협정에 대응하는 선전포고가 존재하지 않는 현 UN 체제하에서 평화협정 개념은 급속도로 원용되지 않게 되었다. 현 국제법 체계에서 전쟁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피하고 있는 점도 전쟁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회피하게 하고 있다.12 2003년 이라크 전쟁 종전 이후에도 평화협정은 체결되지 않았으며 오로지 이라크의 안정과 안보를 위해 2003년 5월 22일 채택된 UN안보리 결의 1483이 전후 이라크 체제를 규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처럼 UN 체제하에서는 UN안보리 결의를 통한 평화 체제의 건설이 촉진되고 있는데, 또 다른 좋은 예로는 1999년 코소보 공습 이후 같은 해 6월 10일 채택된 UN안보리 결의 1244를 들 수 있다.
 

3. 정전협정 및 평화협정 개념 분석

(1) 정전협정(또는 휴전협정)

가. 정전을 위한 수단들

합법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특히 1928년 체결된 ‘Pact of Paris’와 같은 제한도 없었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국가들 간의 관계가 전쟁 중일 때 일시적으로 ‘정전(또는 휴전)’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력사용의 중단(suspension of arms)’, ‘일반 정전(general armistice)’, ‘부분 정전(partial armistice)’ 등 세 가지 정도가 있었다.13

‘무력사용의 중단’이라는 개념은 특정 전장에서 부상병 후송, 전사자 매장 등을 이유로 매우 짧은 시간 동안 무력사용을 잠시 멈추는 것을 말한다. ‘일반 정전’은 특정 기간 동안 ‘전(whole)’ 군대 간에 그리고 ‘전(whole)’ 전선에서 적대행위(hostilities)를 중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프러시아 간의 1871년 1월 28일 정전협정은 1871년 2월 19일(이후 2월 26일로 연장)까지 양국 간의 적대행위를 중지시켰다. ‘부분 정전’은 해전(海戰)의 중지와 같이 부분적인 차원에서 적대행위를 중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나. 1949년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 간의 정전협정

이스라엘의 건국과 관련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1948년 4월 23일 채택된 UN안보리 결의 48은 ‘팔레스타인휴전위원회(Truce Commission)’를 만들었고, 1948년 11월 16일 채택된 UN안보리 결의 62는 정전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이 결의 62에 기초하여 1949년 2월 24일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정전협정을 체결하였고, 이어서 이스라엘은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와도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다.

194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정전협정은 정전협정임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면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전의 정전협정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정전을 유지해야 하는 특정 기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정전협정 제12조 제2항14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이 정전협정은 양국 간 평화 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유효했다. 둘째,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정전협정 제9조는 전쟁포로 교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이러한 내용은 정전협정보다는 평화협정에 들어갈 내용이었다. 따라서 1945년 이후의 정전협정은 UN의 틀 내에서 평화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는 “정전협정은 적대행위를 잠정적으로 중지하기 위해 체결한 것이므로 이론적으로 종전을 의미하는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갈 수도 있고 역으로 전쟁의 재개를 의미하는 적대행위로 회귀할 수도 있다”는 고전적 논리에서의 이탈을 예고하였다.

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1953년 3월 5일 전쟁을 지속하고자 했던 스탈린이 사망하자 한반도에서 적대행위를 중지시키기 위한 정전협정 체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15 하지만 대한민국 내에서는 정전협정 체결 반대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1953년 4월 21일 대한민국 국회는 통일을 막는 정전안을 미국이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을 촉구했고, 5월 25일에는 송환을 원하지 않는 북한군 포로들을 인도군이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관리한다는 안에 대한 반대의 표시로 한국군 대표 최덕신이 정전협정 협상 참석을 거부했다.16 이런 상황에서 1953년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 석방을 명하였고, 이는 오히려 송환을 원하지 않는 북한군 포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같은 해 7월 27일 UN군 총사령관을 일방당사자 그리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타방당사자로 하는 정전협정이 발효되도록 한 촉매가 되었다.17

대한민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닌 이유는 일반적으로 “이승만은 단독북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국내적으로는 통일에 대한 열망에 부응하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전쟁을 도발했던 공산주의자들을 상대로 한 정전협정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만들어내는 협상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되고 있다.18 즉,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의 원인인 공산주의자들이 제거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정전을 반대하는 국내 여론에 부합한다는 ‘명분’과 정전협정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라는 ‘실리’ 모두를 취하기 위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19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도 194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정전협정과 마찬가지로 한정된 정전 기간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군사분계선 및 비무장지대, 군사정전위원회, 중립국감독위원회 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2) 평화협정(또는 평화조약)

가. 종전을 위한 대표적인 방법인 평화협정 체결

합법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1945년 이전에는 국가들 간의 관계를 전쟁에서 평화로 전환하기 위한 종전의 방법으로 세 가지가 논의되었다. 바로 적대행위의 단순한 중지, 전멸(subjugation), 평화협정 체결이다. ‘적대행위의 단순한 중지(simple cessation of hostilities)’는 종전으로 판단하기에 다소 불확실한 면이 있었지만 1720년 스페인과 프랑스 간의 종전, 1867년 프랑스와 멕시코 간의 종전 등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전멸’은 단순히 상대국의 영토를 정복한 것을 넘어 상대국 전력을 완전히 제거한 것을 의미하는데, 이후 상대국의 운명은 승전국의 의사에 달려 있었다. 즉,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패전국의 국가성을 유지시킬 수도 있었고, 승전국에 병합시킬 수도 있었다. 1854년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독립국가가 되었던 ‘오렌지자유국(Orange Free State)’은 보어 전쟁 이후 영국에 병합되었는데 이는 전멸의 결과이다.

평화협정 체결은 1945년 이전에는 가장 흔한 종전의 방법이었다.20 아편전쟁의 종전을 알린 1842년 난징조약, 청일전쟁의 종전을 확인한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체결된 1919년 베르사이유조약은 모두 평화협정의 예이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체결 이후 1945년까지 국가들은 ‘합법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쟁관계를 평화관계로 전환시킬 ‘법적’ 수단으로 주로 평화협정을 이용하였다. 일반적으로 평화협정 제1조는 국가들 간의 관계가 이제 평화관계임을 선포하였는데, 1842년 난징조약 제1조21가 대표적인 예이다. 평화협정 체결 이후의 승전국의 목표를 평화협정 제1조에 담기도 하였는데,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 제1조22는 조선이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었으며 자주국가임을 천명함으로써 향후 일본의 조선(대한제국) 침략에 대한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1919년 베르사이유조약 제1부는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창설을 규정함으로써 집단안보체제의 틀을 마련하였다.

나. 평화협정의 특징 및 내용

평화협정은 종전을 위한 한 방법으로 특정 기간 동안 적대행위를 중지시키기 위한 정전협정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정전협정은 평화협정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을 위해 1918년 11월 11일 체결된 정전협정이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이유조약 체결로 이어진 것이다.

평화협정에는 승전국 또는 패전국의 영토의 범위, 사면, 전쟁포로 교환, (평화관계 시 체결한) 기존 조약들의 효력 재개, 배상금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평화협정 체결 관행의 소멸

1945년 이후의 현 UN 체제하에서는 기본적으로 국가들의 무력사용 자체가 불법화 되었기 때문에 평화협정 체결 관행이 급격히 사라졌다. 현 UN 체제하에서는 제재(sanctions)의 일환으로 ‘UN안보리 결의에 의한 군사적 조치’ 시 또는 불법적인 무력공격에 대응하는 ‘자위권 행사’ 시 전쟁이 발발하므로 국가의 정책수단으로서의 전쟁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종전을 위해 평화협정이 체결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1973년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 간에 체결된 ‘파리 평화협정(Paris Peace Accords)’과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에 체결된 평화협정은 매우 특이한 예이다.

‘UN안보리 결의에 의한 군사적 조치’는 UN헌장 제7장 제39조에 따라 UN안보리가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침략행위가 존재한다고 결정했을 때 취해질 수 있는데, 이 경우 UN안보리 결의에 의한 군사적 조치의 원인을 제공한 국가와는 종전 시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는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에 대해 같은 날 UN안보리는 UN안보리 결의 660을 통해 평화의 파괴가 존재함을 인정했고, 1990년 11월 29일 결의 678은 이라크가 1991년 1월 15일까지 관련 결의들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쿠웨이트와 협력하는 회원국들에게 모든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며 군사적 조치를 예고하였다. 1991년 1월 17일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은 이라크의 관련 UN안보리 결의 불이행에 대하여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을 전개하였고, 1991년 2월 27일 이라크 부총리와 외교장관이 모든 관련 결의들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걸프 전쟁은 종결되었다. 그리고 UN안보리는 1991년 3월 2일 결의 686을 통해 종전을 확인하고 전쟁포로 석방, 각종 지뢰 및 폭발물의 위치 제공과 같은 이라크의 의무 등을 부과하였다. 즉, UN안보리의 군사적 조치 권한 부여를 통해 시작된 걸프 전쟁은 평화협정 체결 없이 종전 확인을 내용으로 하는 UN안보리 결의를 통해 끝을 맺게 되었다.

9 ∙ 11 직후인 2001년 9월 12일 채택된 UN안보리 결의 1368은 테러행위를 ‘무력공격’으로 간주하여 테러행위에 대하여 미국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확인하였고, 이어서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영국은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 및 알 카에다의 축출을 거부한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을 시작하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2003년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가하였다. 2014년 5월 27일이 되어서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철군 선언을 하였고, NATO는 2014년 12월 28일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료를 선언하였다. 즉, 불법적인 무력공격에 대한 합법적인 대응인 자위권 행사는 자위권 행사 종료가 종전을 의미하는 것이지 별도의 평화협정 체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4.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논의의 위험성

1950년 6월 25일 채택된 UN안보리 결의 82가 북한군의 38선 이북으로의 즉각적인 후퇴를 언급하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마찬가지로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이어서 1950년 7월 7일 채택된 UN안보리 결의 84는 무력공격을 받은 대한민국을 위한 회원국들의 군사적 원조를 결정하였다. 즉, 한국전쟁의 원인이 ‘불법적인’ 북한의 침략이었기 때문에 현 UN 체제하에서 한국전쟁은 종전을 위해 평화협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쟁이 합법일 수 있었던 1945년 이전의 국제법적 사고에 불과하다.

1945년 이후의 평화협정의 대표적인 예로 많은 이들은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1973년 1월 27일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 간에 체결된 ‘Paris Peace Accords’를 들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의 성격을 미국 및 남베트남의 자위권 행사로 보았을 때 종전을 위해 평화협정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은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는데, 이는 불필요한 평화협정 체결이 오히려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평화협정 체결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평화협정에 들어가는 내용이 역으로 평화를 해칠 수 있다는 1973년 ‘Paris Peace Accords’의 교훈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남베트남의 소멸을 초래한 1973년 ‘Paris Peace Accords’에는 몇몇 독소조항들이 있었다. 이 조약 제4조23 및 제6조24는 미국이 남베트남에 군대를 주둔시킬 근거를 상실시켰다. 그리고 제9조25는 남베트남에서의 ‘민족자결권(people’s right to self-determination)’ 행사를 강조함으로써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병합되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즉, 미국이 철군한 상황에서 1973년 ‘Paris Peace Accords’의 민족자결권 개념이 강조되었을 때 남베트남의 병합을 민족자결권 행사로 호도할 수 있었다.

1973년 ‘Paris Peace Accords’의 예에서 보듯 만약 1953년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된다면 평화협정에 북한의 핵 개발 포기 또는 한반도 비핵화가 명시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주한미군 철수 또는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민족자결권 존중 등이 포함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국가들의 무력사용이 불법화 된 현 UN 체제하에서 한반도가 기술적으로 여전히 전쟁상태에 있고 따라서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 70여년 간 유지되어온 국제법 질서에 대한 중대한 오해다. 국가들의 무력사용에 관한 국제법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요람 딘스타인(Yoram Dinstein)도 “만약 정전협정 체제가 비정상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경우에 적대행위가 재개된다면 이는 ‘새로운’ 전쟁의 시작일 뿐”이라고 언급했다.26 한반도는 법적으로 별도의 평화협정 체결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 포기 등을 통해 대한민국과 북한 간에 ‘실질적인’ 평화 상태가 존재한다면 자연스럽게 미국은 북한을 국제법적으로 국가로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정상화 할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평화협정 체결이 평화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 포기 등 ‘현상의 변화’가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 문제는 북한이 의도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 대 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대 북한의 문제이며, 북한은 국제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무’인 핵 포기를 대가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평화협정도 조약이고 이에 대한 위반은 국제법 위반이 되므로 굳이 미국 또는 대한민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반도 평화를 법적 틀 안에 놓을 이유가 없다. 만약 주한미군 철수 또는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등이 국제법상 의무가 된다면 평화협정 체결이 우리에게 더 큰 안보 부담을 가져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5. 나가며

현 UN 체제하에서 국가들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예외인 ‘UN안보리 결의에 의한 군사적 조치’와 ‘자위권 행사’는 무력을 먼저 사용한 국가의 불법적인 무력사용을 상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들의 관계를 법적으로 전쟁에서 평화로 전환시켰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종전은 현 UN 체제와 합치하지 않는다. 1945년 이후의 관행도 전쟁이라는 용어의 사용 또는 평화협정 체결을 최대한 회피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1945년 이후 체결된 평화협정의 대표적인 예인 1973년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 간에 체결된 ‘Paris Peace Accords’는 평화협정이 오히려 법적 틀 안에 현상의 하나인 평화를 가두어 놓음으로 평화가 궁극적으로 구축될 수 없음을 증명하였다. 현 UN 체제하에서 법적으로 필요가 없는 평화협정을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법적 수단이라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 국제법 체계를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평화협정에 들어가는 내용이 오히려 평화를 해칠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북한의 핵 포기 등을 통해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가 조성된다면 이는 북한이 UN안보리 결의 1718, 1874, 2094, 2270 등 관련 UN안보리 결의들을 충실히 이행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질적인 한반도 평화가 구축되었을 때 UN안보리는 한반도에 이미 평화가 구축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새로운 UN안보리 결의를 채택할 수 있다. 이것이 현 UN 체제에서 법적으로 한반도가 평화 상태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법적 행위인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 1.

    “The directly related parties will negotiate a permanent 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 at an appropriate separate forum.”

  • 2.

    통일연구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 1995, 6면.

  • 3.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유책 당사자가 배상을 거부했을 때 피해에 대한 ‘복수’의 관점에서 정전을 논하였다. See Malcolm N. Shaw, International Law, 7th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 p.812.

  • 4.

    Randall Lesaffer, “Too Much History: from War as Sanction to the Sanctioning of War”, in Marc Weller (ed.), The Oxford Handbook of the Use of Force in International Law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p.37.

  • 5.

    Ibid., p.38.

  • 6.

    Lassa Oppenheim, International Law: A Treatise, Volume II (War and Neutrality), 2nd ed. (London: Longmans, Green and Co., 1912), §94.

  • 7.

    “The High Contracting Parties solemnly declare in the names of their respective peoples that they condemn recourse to war for the solution of international controversies, and renounce it, as an instrument of national policy in their relations with one another.”

  • 8.

    Mohammad Taghi Karoubi, Just or Unjust War?: International Law and Unilateral Use of Armed Force by States at the Turn of the 20th Century (Aldershot: Ashgate, 2004), p.103.

  • 9.

    “All Members shall refrain in their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the threat or use of force against the territorial integrity or political independence of any state, or in any other manner inconsistent with the Purposes of the United Nations.”

  • 10.

    조약인 UN헌장이 아닌 ‘국제관습법(customary international law)’상 무력사용이 가능한 경우로 ‘인도적 간섭(humanitarian intervention)’이 제시되고 있으나 이 개념의 합법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상당하다.

  • 11.

    Yoram Dinstein, War, Aggression and Self-Defence, 4th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p.32.

  • 12.

    Ibid., p.36.

  • 13.

    Oppenheim, supra note 6, §§290-293.

  • 14.

    “This Agreement, having been negotiated and concluded in pursuance of the resolution of the Security Council of 16 November 1948 calling for the establishment of an armistice in order to eliminate the threat to the peace in Palestine and to facilitate the transition from the present truce to permanent peace in Palestine, shall remain in force until a peaceful settlement between the Parties is achieved, except as provided in paragraph 3 of this Article.”

  • 15.

    김명섭, 『전쟁과 평화: 6.25 전쟁과 정전체제의 탄생』 (서울: 서강대학교출판부, 2015), 576면.

  • 16.

    상게서, 582-589면.

  • 17.

    상게서, 595-599면.

  • 18.

    김명섭, “한국군은 6.25 전쟁 정전협정의 당사자인가?”, 『국방연구』, 제56권 제3호 (2013), 121면.

  • 19.

    상게논문, 117-119면.

  • 20.

    Oppenheim, supra note 6, §266.

  • 21.

    “There shall henceforward be Peace and Friendship between Her Majesty the Queen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and His Majesty the Emperor of China, and between their respective Subjects, who shall enjoy full security and protection for their persons and property within the Dominions of the other.”

  • 22.

    “China recognises definitively the full and complete independence and autonomy of Korea, and, in consequence, the payment of tribute and the performance of ceremonies and formalities by Korea to China, in derogation of such independence and autonomy, shall wholly cease for the future.”

  • 23.

    “The United States will not continue its military involvement or intervene in the internal affairs of South Vietnam.”

  • 24.

    “The dismantlement of all military bases in South Vietnam of the United States and of the other foreign countries mentioned in Article 3 (a) shall be completed within sixty days of the signing of this Agreement.”

  • 25.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Government of the 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 undertake to respect the following principles for the exercise of the South Vietnamese people’s right to self-determination:
    (a) The South Vietnamese people’s right to self-determination is sacred, inalienable, and shall be respected by all countries.
    (b) The South Vietnamese people shall decide themselves the political future of South Vietnam through genuinely free and democratic general elections under international supervision.
    (c) Foreign countries shall not impose any political tendency or personality on the South Vietnamese people.”

  • 26.

    Dinstein, supra note 11,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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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글로벌 거버넌스센터 / 국제법 및 분쟁해결프로그램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글로벌 거버넌스센터 국제법 및 분쟁해결프로그램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