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북한 고위급 3인 방문 관련, 6일 긴급 대담

– 대담 패널: 천영우 고문, 함재봉 원장, 최강 부원장 –

 

아산정책연구원은 북한 고위급 3인의 방문과 관련, 6일 연구원 3층 회의실에서 긴급대담을 가졌다. 대담에는 함재봉 원장,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고문, 최강 부원장, 안성규 편집주간이 참석했다.

-북한이 느닷없이 또 이례적으로 고위급 인사를 3인을 보낸 의도가 무엇일까. 언론이 이미 어느 정도 해석을 했지만 보다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천영우 고문(이하 천 고문)=“북한이 세 사람을 보낸 것에 대해 실세니 뭐니 하며 너무 의미를 부여한다. 엄밀히 말하자면(to be exact)그들은 대한민국에 온 게 아니라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라는 국제행사에 온 것이다. 북한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간 것을 미국 방문이라고 과잉 해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 입장에선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선수들이 적지에서 혁혁한 성과를 이룬 게 아주 경사스런 일이 아닌가. 이를 어떻게 국내 정치에 이용할 것인지, 어떻게 김정은의 위업을 과시하고. 어떻게 북한 체육계와 북한 주민들의 사기를 높일 것인지가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물론 한국의 대북정책을 흔들어보고, 변화를 모색해보는 부수적인 효과를 노린 것도 사실이다. 남측에 소위 ‘남남갈등’을 일으켜 대북 정책을 바꾸라는 여론을 일으켜보자. 그런 일석이조를 노린 것이라고 본다. ”

▶최강 부원장(이하 최 부원장)=“동의한다. 첫째, 북한은 김정은 정권 출범한 이래로 스포츠를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아시안 게임의 성과를 홍보해야 할 필요와 의도가 있다. 둘째, 북한이 강석주 조선노동당 비서를 유럽으로, 리수용 외무상을 미국으로 보내면서 외교 고립을 탈피하려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을 통해 고립을 탈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도 좋지 않고, 일본과도 납치자 문제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을 잡은 것이다. 통미봉남이 아니라 ‘통남봉주변국’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을 통해 주변국을 관리하고, 미국이 11월 중간 선거 이후로 강력하게 나오는 상황을 사전 차단한다는 차원이다. 한국과의 관계개선 기회를 만들어 한ㆍ미ㆍ일 삼국 공조를 흔들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 같다.”

▶함재봉 원장(이하 함 원장)=“나도 같은 맥락으로 본다. 전방위 외교전을 펼치고 북한 역사상 이렇게까지 많은 고위직이 동시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적이 없다. 20곳이 넘는 투자유치 특구를 지정하고, 다른 나라들이 북한인권 문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유엔에 가서 나름대로 강변을 하는 등 북한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만큼 외교에 치중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동아시아의 큰 행사인 아시안게임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북한 최고위급을 이런 시기에 보내면서도 가시적 내용은 없이 남측 기대치만 높이는 절묘한 전략의 일환으로 방문한 것 같다.”

▶천 고문=“북한이 통치의 수단으로 스포츠를 얼마나 중시하는지에 대해 우리의 인식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독재 체제일수록 스포츠를 통해서 국민의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데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함 원장, 최 부원장=“구 소련과 동구권도 마찬가지였다.”

▶천 고문=”북한이 아시안게임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기에 고위급 실세를 보내 충분히 활용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북한의 가치 체계에선 충분히 의미가 있다. 최룡해가 맡고 있는 북한 국가체육위원회는 한국의 대한체육회에 해당하며 과거 장성택이 맡았던 조직인데 대단한 실권이 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상당히 중요한 자리다. 우리의 대한체육회장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 자리다.

국내에는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나 숙청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지만 북한에 그만한 실세가 없었다. 맡은 직책이 무엇이든 북한 체제의 대주주 중 한 명이고 오히려 지금의 총정치국장인 황병서와 같은 사람이 고용된 사장이다. 최룡해 같은 이는 실세이기 때문에 실세직책이 아니라도 배후에서 얼마든 영향력이 있다. 그는 북한 건국 공신인 최현의 아들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파워가 있다.”

▶함 원장=“고위급 3인이 인천에 간다는 사실은 북한 매체에서 크게 보도됐지만 정작 평양으로 돌아간 뒤로는 별 보도가 없었다. 결국 한국은 이번 방문을 남북관계 차원에서만 보는 것이고 북한은 이보다 아시안게임에서 일궈낸 성과를 축하하는 일환으로 고위급 방문을 추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만큼 남북관계를 위한 것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남북관계는 부수적인 목적이며 일차 목표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

▶천 고문=“남북관계와 관계없이 고위급 3인을 보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80~90%의 목적은 아시안게임에 있었을 것이다.”

▶함 원장=“그래서 친서도 없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보자고 해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이다. ”

 

-남북관계가 계속 경색돼 있었는데 그런 가운데 북측에서 어쨌든 고위급 인사를 보낸 데는 대화를 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천 고문=“조건이 맞으면 북한도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방문을 그렇게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남한까지 와서 대화를 못하겠다고 하면 북한이 너무 옹졸해 보일 것이고 한국 정부가 고위급 회담을 구걸하니 차마 이를 거절할 수는 없어 크게 선물하고 돌아갔다고 북측은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최 부원장=“황병서도 그렇게 얘기했다. 작은 오솔길에서 큰 길로 조금 나갔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나, 고위급 회담을 10월 말 11월 초 남측이 편하게 생각하는 때 하라고 한 것은 ‘통 크게 베풀고 가는’ 모습처럼 돼버렸다.”

▶천 고문=“대화 자체는 북측에 큰 부담이 없는 것이며, 대화의 전제로 뭔가를 얻고 싶은 것이다. 대화는 지난 2월 1차 고위급 회담 때도 했고 그 전 이명박 정부 때도 수없이 했기 때문에 대담 자체에 북한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이 고위급 회담 개최 자체를 워낙 큰 성과로 보기 때문에 북도 주목하는 것이다. ”

 

-청와대는 북한 고위 방문단에 대통령 면담을 추진했고 북은 거절했다. 이를 놓고 비판이 나온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함 원장=“첫날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북측 인사를 만날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청와대의 올바른 입장이었고 이를 끝까지 견지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다음날 변화는 아쉽다. 북측이 박대통령에 전달할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가지고 왔다거나 어떻게든 만나 보고 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먼저 확실히 표시했다면 모를까. 비록 아시안게임 때문에 왔지만 그래도 온 김에 대통령을 면담하고 가겠다는 북한 메시지를 받은 후에 정부가 주선했으면 됐다. 북측이 아침에 왔다 저녁에 간다고 분명히 했고 아무런 추가 제스처를 보이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먼저 대통령 면담 용의를 묻는 것은 적절치 못했다. 굳이 먼저 얘기를 꺼내 ‘시간이 없어 만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느냐는 것이다.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이 오면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왔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정부가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

▶천 고문=“망신스럽다. 원래 이렇게 촉박하게 통보하고 방문하면 국가원수가 쉽게 만나주지 않는다. 그래도 북측 인사들이 ‘하루 전 요청이 실례되는 것이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대통령을 만나 뵙고 인사라도 하겠다’고 요청하면 정부가 ‘한번 검토는 해보겠다’고 한 뒤 만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북측이 만나자는 언급을 하기도 전에 정부가 나서서 먼저 의사를 물은 것을 어떻게 해석 해야할지 난감하다.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나라의 존엄을 관리하는데 있어 정부는 큰 실수를 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신청하면 만나겠다고 한 것은, 정말 사실이라면 극비에 부쳤어야 할 일이다. 이런 상황을 공개한 정부관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북한이 공개하기 전까지는 극비에 부쳤어야 하는데 정부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라면 여간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이런 양상으로 나가면 정부의 대북정책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최 부원장=“북한은 지금 남한이 남북대화에 목을 매고 있다는 메시지를 갖고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방문했으니 구경 잘하고 잘 먹고 가라는 입장을 취해 오히려 북이 애를 태우게 만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가 급하게 나서고 여야 대표가 모두 나가서 북측 방문단을 만났다. 예전에 김기남, 김영남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일정을 하루 더 연장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로써 주도권이 북한에 갔다. 정부가 이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일각에선 이를 기회로 남북이 오해를 좀 풀고 대화도 적극적으로 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차분히 나갈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너무 서둘러 잃은 것이 많다는 것인가.

▶천 고문=“한국 정부의 마음이 너무 들떴고 성급해서 중심을 제대로 못 잡았다. 북한이 오판하게 만들었다. 한국 정부가 남북 대화에 목 매달고 있으며 안절부절못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북한으로 하여금 시간이 갈수록 남쪽 언론과 여론이 ‘5ㆍ24 조치 해제’를 말하거나 ‘북을 용서하자’는 식으로 나오겠구나 하는 예측을 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면 북이 무리한 조건을 가지고 나오게 돼 남북대화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 사회엔 북한 문제를 둘러싼 좌우 갈등이 심하다. 그런 가운데 보수 정부가 고위급 북한 인사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오히려 갈등 해소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최 부원장=“보수진영의 목소리가 전반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분위기에 편승한 소수 목소리가 다수의 목소리인 것처럼 들릴 수 있다. 일반 대중들이 착시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물론 보수정권이 대화를 하고 주의를 끈다면 효과가 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현 정부 출범시 목표로 삼았던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 문제와 부합되는 것인가.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함 원장=“북한 고위급 방문이 우리 사회내의 갈등을 해소한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하다. 이는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북관계를 활용 해야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지금 북한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가. 북은 핵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북한 문제를 국내정치의 좌우 화해 맥락에서 본다는 것은 큰 일이다. 북한문제는 객관적으로 국가안보 차원에서만 봐야 하며, 국내정치와는 절대로 분리해야 한다.”

▶천 고문=“좌우 대립보다 더 걱정스럽고 위험한 것은 대북정책의 목표와 수단, 방법을 혼동하고 남북관계의 본질과 분위기를 혼동하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대화를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대북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부의 여러 수단 중에 하나일 뿐이다. 목표에 도움이 되면 정상회담도 하고 북한에 돈도 줄 수 있다. 문제는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목표를 저해하는 것이라 해도 무조건 대화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5ㆍ24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무엇을 위해 5ㆍ24조치를 해제하고, 실제로 해제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핵 유지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북한의 병진정책에 우리 정부가 적극 재정지원까지 해줄 것인가, 북한의 억압체제가 강화될 수 있도록 돕는 한이 있어도 대화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방향성과 목적 의식이 없이 무조건 북한과 대화하자는 ‘선교사적 접근’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북한이 오른 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놓고,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시간이 흐르면 용서하고 돕는 관대한 접근이 보기엔 근사하겠지만 국가 안보 측면에선 위험천만한 자세다. 우리를 더 위험에 빠뜨리거나 한반도 평화를 더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그래도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5ㆍ24조치 해제와 같은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천 고문=“인기 영합 정책이다.”

▶최 부원장=“5ㆍ24 조치는 천안함 폭침 때문에 발동한 조치다. 북이 우리가 요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유지해야 한다. 남북 대화를 위해 해제한다면 대북정책은 실종되고 시류에 따라 움직이는 게 된다. 대북정책이 자칫 북한의 병진정책을 돕는 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정부의 대북정책이 오히려 비핵화를 방해하는 게 된다.”

▶함 원장=“일부 언론에 따르면 정부가 5ㆍ24조치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이는 바람직하다. 지금 기존 정책을 바꿀 만한 근본적 변화는 전혀 없다.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다녀간 것만으로 뭔가 바뀌었다고 생각을 하지만 실제론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그렇다면 2차 고위급 회담이 중요하다. 10월 말~11월 초로 잡힌 고위급 회담의 전망은 어떤가.

▶함 원장=“북한 고위인사의 방문이 제스처가 아니고 정말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진정성은 2차 고위급 회담에서 드러날 것이다. 천안함 폭침이나 박왕자 총격 피살 사건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하거나 핵 동결 같은 가시적 조치를 취하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 조치도 없으면서 과거와 같이 회담 대표단 급이 높으니 낮으니 하는 논쟁이나 또 벌인다면 변한 게 없음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서둘러 기대할 것은 없다. 우리는 이미 북이 어떤 조건을 갖고 나오면 어떻게 한다는 것에 대해 수도 없이 천명했다. 그러한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대대적 대북투자를 할 용의까지 있기 때문에 북한은 올바른 태도만 보이면 된다. 그러니 미리 카드를 보일 필요도 없고 구걸할 필요도 없다.”

▶최 부원장=“2차 고위급 회담은 모양은 화려한 회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결과에는 의문이 든다. 확실하게 얻는 게 별로 없고 다음 단계를 위한 아젠다 셋팅 정도만 되어도 다행이다. 다음 대화를 하자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을까 한다. 북은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한국이기 때문에 끈을 놓지는 않으려 할 것이다. ”

▶천 고문=“고위급 회담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가치와 기대를 너무 높여 문제다. 북한이 고위급 회담의 아젠다를 결정하도록 갑의 입장에 놓아 준 것도 문제다. 고위급회담을 하면 5ㆍ24조치 해제를 아젠다로 삼을 수 있다고 우리 스스로 공론화하고 제시했다는 것은 한국 정부가 한 수 접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통일부는 오늘 정례브리핑에서 5.24조치는 북한의 분명한 조치 후에 해제한다고 말했다.

▶천 고문=“그것만 볼 게 아니다. 지금까지 통일부가 고위급 회담 아젠다에 대해 말한 것을 종합해 보라. 고위급 회담을 하면 거기서 5.24조치 해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하거나, 북한이 그렇게 이해하도록 하는 언급을 했다. 말하자면 통일부가 고위급 회담을 애걸하는 구도가 돼 있다. 그런데 북한에 5.24조치 해제보다 더 시급한 아젠다는 우리의 대북전단과 대북심리전이다. 북한의 가치체계에서는 1년에 5억 달러를 버는 것보다 북한의 정치 사상적 기초를 무너뜨릴 수 있는 대북심리전을 막는 게 더 급하다. 5.24조치 해제는 두번째다. 북한의 신정체제를 건들지 말라, 모든 대북 지원은 핵 포기를 하지 않는다는 한계 내에서 병진정책의 돈줄 역할에 충실히 해달라, 이게 북한이 원하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뭔가. 인도적 이산가족 상봉,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을 증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남북 교류 협력이다. 회담은 계속 해야 하고 이루어지겠지만, 우리의 성과를 낙관하기엔 이르다. ”

▶최 부원장=“북은 정말 중요하고 시급한 헤비급 아젠다를 가지고 나오는 데 우리는 경량급 의제를 제시한다. 이산가족 문제가 중요하지만 남북관계에서 볼 때 더 중요한 건 군사문제다. 그런데 여기엔 무게를 덜 둔다. 남북대화를 이런 식으로 추진하면 비핵화는 실종된다. 노무현 정부 때 ‘남북 대화가 계속 진전되고 있으면 핵 문제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이상한 착시현상이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통일부는 향후 고위급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중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 마당에 고위급 회담이 어느만큼 더 본질적인 이슈로 확장해 다룰 수 있을 수 있겠나.

▶천 고문=“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핵문제에 대해 북한은 ‘당신들과 얘기할 사항이 아니다. 미국의 적대정책 때문에 핵 무장했고 따라서 미국과 얘기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비핵화 문제는 고위급 회담의 아젠다에 넣을 수도 없을 거다. 그런데 비핵화 문제를 빼면 우리가 할 건 뭐가 있는가. 인도적인 문제와 인적 교류밖에 없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

 

-북한을 대화에 끌어들이기 위해 소프트한 주제를 먼저 제시하고 이어서 핵문제를 다룰 수도 있다.

▶천 고문=“할 수는 있다. 그런데 북한이 원하는 걸 우리가 ‘소프트한 것’으로 해결할 수 있나. 이산가족 상봉 몇 백 명 한다고 해서 북한이 원하는 연간 5억 달러씩 현금이 들어갈 5.24조치를 해제하고, 천안함 폭침에 대해 아무런 책임 인정과 사과를 안 하는데 그걸 풀어줄 것인가. 북한이 핵을 포기 안 하면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만 이탈해서 국제적인 대북제재를 파괴하는데 앞장 설 것이냐. 이런 문제를 다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비핵화인데 북한은 우리와 얘기 안 하고, 대신 핵과 경제 병진을 위해 우리한테 경제적인 걸 달라고 한다.

▶함 원장=우리는 소프트한 얘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쪽(비핵화)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냐 하는데, 넘어갈 수 있는 고리는 미국이다. 결국 이 사태를 보는 미국의 입장이 무엇이고, 주변국들은 또 어떤지를 알아야한다. 내가 보기에 미국의 대북정책은 지금까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핵 문제 선결이 안 되는 한 대화를 위한 대화는 절대 안 하겠다고 수도 없이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중동 문제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이 이 정도를 놓고 대단한 돌파구가 생겼다고 생각할 리도 관심을 쓸 여지도 없다. 북한이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 문제를 미국과 북한 사이의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한, 남북대화의 한계가 아주 구조적이라는 건 명확하다. 한쪽에서 분위기를 조장하면 은근히 미국에 압력이 들어가거나, 미국이 감동을 받아 기본 입장을 바꿔 핵 동결 정도로 가지 않을까 하는 전혀 근거 없고 무책임한 기대나 환상을 일부에서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수석회의에서 ‘남북이 단발성 대화에 그치지 않고 정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에 대한 우리의 요구, 아젠다의 한계 때문에 고위급 회담의 전망은 썩 긍정적이지 않을 것 같다.

▶최 부원장=“한두 번의 회담은 더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전은 없을 것이고, 성과가 없다면 우리도 언제든 대화를 박차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성과가 생긴다. 회담 자체에 목을 매면 우리가 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천 고문=“고위급 회담에서 대단한 성과를 기대하면 안 된다. 대화는 계속해야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에 큰 양보를 하고 원하는 걸 들어줄 필요도 없다. 대화는 필요에 따라 정기적으로든 부정기적으로든 계속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무엇이 가능하고,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남북 관계의 큰 돌파구를 마련하리라는 과욕은 갖지 말아야 한다.”

 

-좌파 쪽에서는 북한과 대화 없이 대결국면으로 계속 가면 과연 핵 문제가 해결되느냐. 차라리 대화를 해서 어떻게든 변화를 유도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고위급 회담을 잘 활용하면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천 고문=“돈 안 들이고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게 가장 좋다. 그건 무조건 해야 한다. 문제는 남북 대화를 유지하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북한의 핵 능력을 유지하고 비핵화 압력을 버틸 체력을 키워주는 그런 재정지원, 돈벌이를 시켜주는 거다. 이거만 피하면 된다. 사람도 수백만 명이 왔다갔다해도 상관없다. 그걸로 북한의 운명을 바꿀만한 수준의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서 들어가는 돈 정도를 투자해서 남북 인적 교류를 연간 수백만 명으로 확대하면 북한에 변화 기운을 불어넣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핵 미사일 능력을 유지하고 증강하는 데에는 돈이 필요하다. 결국 북한은 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경제발전에 필요한 돈을 구하기 위해 남북대화를 하겠다는 거다.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핵포기를 받아내는 것도 아니며,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북한의 능력을 키워주는 일만 한다면 대화를 안 하느니만 못할 수 있다.”

▶최 부원장=“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부가 얘기했던 것을 그대로 유지하면 별문제가 없다. 비핵화를 하고 군사적 도발을 안 하겠다는 북의 약속이 있으면 우리는 교류해야 한다.”

▶함 원장=“북한과 무조건 대화를 재개하라는 논리는 ‘결국 이렇게 가면 핵 개발을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거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빨리 기억을 상실하는지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집단적 치매를 앓는지 놀랍다. 지난 20여 년의 남북관계의 역사가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아무리 교류하고 대화해도 북은 끊임없이 핵을 개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100% 확실한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핵 개발이 이루어졌던 대부분의 기간은 대화를 많이 하던 때다. 그런데 대화를 끊고 제재하고 강하게 나갔기 때문에 핵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며 다시 대화를 해야한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논리가 나올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

▶천 고문=“어차피 핵은 지금 해결이 안된다. 그러니 여기에 매달려 남북대화도 못하며 지내기보다 악수하고 웃으면서 잘 지내는 게 마음이 편하고, 덜 불안하다. 돈을 좀 주더라도 일시적 평화를 사는 게 맞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임 있는 정부는 그렇게 할 순 없다. 외교안보 문제로 늘 고민하고 살지 않는 민간인들은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정부가 그런다면 큰 일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다녀와서 ‘이제 전쟁은 없다’고 했지만 이후로 북한은 뭘 했나. 그때부터 핵과 미사일 개발할 체력을 키우는 데에 필요한 돈을 남에서 조달하려고 ‘좋은 남북관계’를 이용했다. 우리 안보 현실은 더 엄중해졌다. 미래의 평화를 가불해서 쓴 거다. 평화의 거품 속에서 살았다. 지나고 보니 평화의 기초는 약화되고 북한이 평화를 파괴할 능력은 더 커지고, 우리의 북핵 인질화는 더 심화됐다. 핵무장을 막기는커녕 북한의 핵 능력을 키워주는데 보조금까지 지원한 꼴이 된 거다. 그런 정책으로 다시 돌아갈 건가.

지금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는 사람들이 ‘그 정책으로 돌아가자’고 말은 안 하지만, 그 주장대로 하면 결과적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다. 그들은 결과가 우리 안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지 않다. 북한의 끊임없이 협박하고 어차피 핵도 포기 안 할 것이므로 스트레스라도 좀 덜 받고 살자. 그런 심리에서 나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대북 정책은 자선사업이 아니다”

▶함 원장=“요새 중국을 포함해서 주변국들과 북한의 관계가 최악이다. 모처럼 북한의 돈줄이 끊기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우리가 5ㆍ24 조치를 해제하면 어떻게 되나. 지금 북한은 4차 핵실험을 하려하고 기술도 거의 완성 단계에 도달했다고 알려졌다. 그걸 위한 자금이 부족한데 이때 우리가 조치를 풀어준다면 다음 단계 개발에 돈을 대주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끄덕였다는 보도가 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정상회담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천 고문=“정상회담이 좋으냐, 나쁘냐는 식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목표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해서 잃을 게 아무 것도 없다. 정상회담은 쉽다. 문제는 안 하느니만 못한 정상회담이다. 안 하느니만 못한 정상회담이 제일 쉽다. 그런 회담은 돈만 갖다 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조건의 5분의 1만 충족시켜준다면 다 할 수 있다. 우리한테 도움이 되고 우리의 대북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정상회담이 어려운 거다. 안 하느니만 못한 정상회담보다 더 나은 정상회담을 하기 어려워 이명박 정부는 안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정상회담은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못하고, 북한이 우리를 해칠 흉기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것밖에 안됐다.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체력을 키워주고 국제적 압력을 버틸 힘을 키워주는 것 밖에 안 돼서 북한이 정상회담 하자해도 안했다. ”

▶최 부원장=“우리 언론이나 사회 일각에서 우리 카드를 너무 다 드러낸다. 정상회담 카드를 북에 다 보여준 것은 레버리지를 줘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집착하지 않을수록 정상회담 가능성이 높아지고 집착할수록 성과도 보장할 수 없다. 북한의 요구만 키워준다. 지금 같은 경우에선 북한의 태도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임기 4~5년차엔 정상회담이 안되니 3년 차 말에는 해야된다는 식으로 하면 북한에 주도권이 넘어간다.”

▶천 고문=“우리는 내년까지 정상회담을 안 하면 시간이 없다고 쫓기는 인상을 주고 있다. 임기 3년 반이 넘어가면 정상회담이 안될지 모르니 늦어도 내년까지는 해야 한다고 이미 날짜까지 정해놨다. 스스로 옵션을 제약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정부가 하는 게 아니라 야당과 언론이 그런 식으로 정해놨다. 정상회담 자체가 목표라고 집단착각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함 원장=“국내 정치적 계산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국내정치일정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자꾸 이때까지 안 하면 안 된다는 그런 논의가 나오나. 그러면 안 된다. 주목해야 할 건 중국의 반응이다. 북한 3인방의 방문에 대해 중국은 여태까지 나온 중 제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끌고 가면 중국은 좋아하겠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중국 반응이 어떨지가 중요하다. 고위급 회담을 했지만 진전없이 깨진다거나, 우리가 5.24 조치 안 풀겠다는 주장을 고수할 때 중국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중국이 기존 입장을 유지할 건지, 아니면 김정은이 남한에 성의를 보였지만 안받아 준다고 해석하고 중국 방문을 받아준다든지 하는 변화가 올 수도 있다.”

▶천 고문=“중국은 기본적으로 남북 간에 열심히 대화를 해라, 우리 변방에서 소란 피우는 건 싫다, 우리 골목 앞에서 소란 피우지 마라, 이게 바로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이다. 소란 안 피우고 만나서 소곤소곤 얘기하는 걸 제일 좋아한다. 그런데 그걸 안 한다고 해서 당신들 왜 안 하냐 이러지는 않는다. ”

▶최 부원장=“북한 문제의 열쇠는 중국보다 미국에 있다. 중국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관건은 미국인데, 미국에서는 고통을 느낀 북한이 드디어 변하려는 찰나 한국이 갑자기 숨통을 트여주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한국의 대북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비핵화와 군사도발위협에 대한 우리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려는 한국의 대북정책에 미국은 동의하지 못할 거다. 미국은 박근혜 정부가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해왔다는 점을 높게 보는데 이것이 무너지면 한미관계도 어려워질 수 있다.”

▶천 고문=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포기하면 안 된다.

▶함 원장=“미국에서 대북정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안 변했다. 한 달 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더 강해질 개연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훨씬 더 강경한 대북정책을 요구할 것이다. 이점이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어떻게 달성하느냐를 놓고 한미가 흔들리면 안된다. 김정은이 들어선 이후 국제사회엔 북한을 어떻게든 비핵화시켜야한다는 합의가 생겼고 북한 인권문제까지 논의가 되고 있는 상태에서 북한의 가시적 변화가 전혀 없는데도 우리가 상황을 풀어준다면 미국에 부정적 기류가 생길 것이다. ”

▶천 고문=“내가 알기론 미국도 새로운 대북제재 수단을 물색하고 있다. 의회도 ‘Iran Sanctions Act’ 같은 것을 추진하려고 한다. 동력이 좀 떨어져 진전이 안 되긴 하지만…그러나 북한이 핵 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하고 안보리에서 중국이 발목 잡으면 미국은 단독으로 대북제재 특별법을 만들 것이다. 미국의 방향과 우리가 가려하는 방향이 정면충돌할 수 있다.

우리가 나서서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력을 방해하는 역할까지 하면 안 된다. 미국,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효과 없는 부분제재만 할 것이 아니라 포괄적이며 고강도의 제재로 북한 비핵화를 위한 마지막 시도를 하려는 움직임을 우리가 나서서 방해해서는 안된다. 국제 대북제재 공조체제에서 우리가 이탈해 ‘북핵부정’ 입장에서 ‘북핵용인’으로 정책을 변화시킨다면 국제사회의 ‘북핵부정’ 과는 정면대치하는 꼴이 된다. ”

 

대담정리=김보아 연구원, 권은율 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