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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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 원장은 2월 3일 (화) 인촌기념회•동아일보사•채널A•고려대학교가 공동주최한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심포지엄 (총 4회) 중 제 3 심포지엄 “남북한 평화의 길을 찾아서”에서 기조강연을 했습니다.

강연문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진정한 평화와 안정의 길을 찾자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긴장과 대결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나라는 없다. 평화와 안정을 싫어하는 사람이나 나라도 없다.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했을 때 평화와 안정 대신 긴장과 대결을 택할 사람이나 나라는 없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자명한 것은 긴장과 대결이 없는 인간관계나 국제관계는 없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이승에서는. “긴장과 대결이냐, 아니면 평화와 안정이냐”라는 이분법은 허구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긴장과 대결을 최소화하고 평화와 안정을 극대화시키고자 할 뿐이다. 이를 일컬어 ‘전략적 사고’라고 한다.

그런데 통일은 이보다 더 고차원의 전략적 사고를 요한다. 긴장과 대결을 최소화시키고 평화와 안정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적 사고는 모든 정상국가들이 해야 하는 것이고, 이미 다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이 가까운 이웃 사이에도 긴장과 대결은 있기 마련이고 서로를 상대하는데 있어서 전략적으로 사고한다.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원하는 나라들 사이에도 전략적 사고는 기본이다.

하지만 통일은 평화공존이나 공동번영이 아니다.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통일과 평화공존은 양립 불가능하다. 통일과 평화공존이야 말로 양자택일의 문제다. 통일은 제로섬 게임이다. 최소한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우리는 그 동안 이 자명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얼버무려 왔다. 그러나 진정 통일을 말하고 싶다면 평화공존이나 공동번영을 도모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과거의 햇볕정책이나 대북포용정책은 통일을 전제로 한 것들이 아니었다.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이 일차적인 목표였다. 통일은 먼 훗날로 미뤘다. 통일은 남북간에 서로 언급조차 안 하기로 하였다. ‘공동번영을 모색하면서 통일이라니?’ ‘통일을 한다면 결국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흡수한다는 말이 아닌가?’ 이때부터 남한의 진보진영에서 통일이란 단어는 금기시되었다. 북한도 이때부터 통일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곧 남한주도의 흡수통일을 원하는 불순한 의도를 내비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평화공존정책은 실패하였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북한포용정책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시작되었을 때 북한은 고립무원의 상태였다. 냉전이 끝나면서 북한의 후원자였던 소련이 붕괴하고 또 다른 후원자였던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서 공산체제를 자체적으로 해체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소련과 중국으로부터의 원조가 끊기면서 배급시스템이 작동을 멈췄다.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많게는 3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보여주듯이 우리 집이 아무리 비좁고 누추하더라도 의지할 곳 없는 가족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개발과 민주화에 성공해 번영을 누리고 있는 남한이 헐벗고 굶주리고 갈데 없는 북한을 도와주는 것은 민족애를 운운할 것도 없이 인지상정상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액수와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북한을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 없이 도와줬다는 사실에 대한 이견은 없다. 진보진영에서는 우리가 이렇게 진정으로 북한을 지원해 주면 북한도 최소한의 고마움을 느끼고 작은 것이라도 양보하면서 평화와 공존을 같이 모색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보수진영도 마찬가지였다. 반공만 외치고 북한정권 타도만 외쳐 왔던 사람들도 북한동포들의 참상을 목도하면서 ‘그래, 한번 도와줘 보자. 설마 조금은 바뀌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핵폭탄과 장거리미사일 개발, 1• 2차 연평해전이었다. 남한에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서서 대북지원을 중단하기 전의 일이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훨씬 이전의 일들이다.

이제 공동번영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북한은 우리의 투자와 지원 자체를 꺼린다. 체제의 연장을 위해서 남한을 포함한 모든 주변국들로부터의 투자와 원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체제의 성격상 자유시장의 형성이나 개인기업들의 확산을 방치할 수도 없다. 북한은 이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 유치를 위해서 해외로 사절단을 파견하고 설명회를 개최하고 ‘자유경제특구’를 지정하면서도 투자자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투자보호와 보장을 위한 개혁을 못하고 있다. 투자가 안 들어와도 문제, 너무 많이 들어와도 문제다. 특히 남한의 기업들이 대거 대북투자를 시작하여 북한 시장을 잠식해 가는 모습을 북한정권이 방관할 수는 없다.

또 한가지 증명된 것이 있다. 북한은 결코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4자 회담, 6자 회담을 통해서 우리가 끊임없이 북한과 협상을 진행해 온 유일한 이유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남한을 포함한 외부세계가 북한의 안보불안을 불식시키고 북한이 국제사회에 합류할 수 있도록 대규모 경제적 지원만 해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조건만 맞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보다 큰 반대급부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카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미군사훈련의 규모도 축소해보고 보류도 해 보았다. 동맹국인 미국이 의아해 하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불쾌해 하더라도 우리는 한번만 더 기회를 주면 북한이 변할 수도 있다는 희망의 끈을 참으로 오랫동안 놓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가 손을 내밀 때 우리의 손을 잡고 공동번영을 모색하는 대신 우리가 형제애로 제공해준 모든 것들을 우리를 겨누는 가공할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 무기를 완성해가고 있는 단계에서 북한은 우리와 다시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한다. 핵무기를 버릴 생각은 물론 없다면서. 이제 오히려 대화를 안 해주면 그 동안 우리의 지원으로 만든 핵무기를 우리에게 사용하겠다고 협박한다.

햇볕정책과 평화공존정책은 실패하였다. 통일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다. 북한과의 평화공존과 공동번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체제의 성격상 바깥세상과의 전면적인 교류를 위한 개혁개방을 할 수 없다. 고립은 북한체제 생존의 전제조건이다. 북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조건이 안 맞아서가 아니다. 고립되고 시대착오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은 외부세계로부터의 위협을 과장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대량살상무기를 갖는 것이다.

이는 우리만 깨닫게 된 사실이 아니다. 20년간 북한과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하면서 미국과 일본, 심지어는 북한에 동정적이었던 중국과 러시아도 다 함께 깨달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다시 통일을 얘기하기 시작하였다. 통일정책은 평화공존 정책이 아니다. 될 수도 없다. 분단극복과 공동번영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다면 통일은 어떻게 이루나?

그 동안 우리는 독일통일모델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이는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독일 통일은 냉전종식의 부산물일 뿐이다. 우리는 독일이 어떻게 통일되었나 보다 냉전이 어떻게 해서 끝났는가를 알아야 한다.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은 초기에는 남북대치와 흡사하게 전개되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소련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위성국들을 세우면서 공산권을 구축해 나가자 미국은 마샬플랜으로 서유럽의 경제를 일으키고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를 결성하여 서구와 군사동맹을 맺고 핵무장을 하면서 소련에 맞섰다. 미국과 소련이 “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즉 서로를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는 전략무기들을 갖추게 되면서 팽팽한 전략적 긴장이 10년간 지속되었다. 이때부터 소련의 경제는 멍들기 시작하였다. 공산독재와 계획경제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소련은 더 이상 미국을 상대로 군비경쟁을 벌일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1960년대 말 미국이 ‘데탕트’를 제안하자 소련은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양국관계의 해빙과 군축협상이 시작되었다. 여기까지는 냉전기간 동안의 남북관계와 유사한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미소간의 냉전과 남북간의 냉전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을 적극 지원하면서 소련군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한편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 하는 등 소련에 대한 전방위적인 제재를 전개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월등한 경제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별들의 전쟁’과 같이 기존의 전략무기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전략무기들을 개발하면서 군비경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체재내부의 모순으로 경제가 한계에 도달한 소련은 결국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즉 개혁개방을 시도하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소련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동구권이 공산주의로부터 해방되었고 이 과정에서 동독도 무너지면서 독일 통일이 이루어졌다.

미국은 소련이 도발을 할 때면 강력하게 응징하는 한편 군비경쟁에 적극 나섬으로써 월등한 경제력을 소련을 압박하는 전략적 무기로 활용하였다. 소련이 대화와 협상을 원할 때는 적극 나서면서도 헬싱키프로세스를 통하여 소련이 그토록 싫어하는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미소간의 의제에 포함시켰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소련의 지도자들을 수 없이 만나서 웃으면서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일방적인 양보는 결코 하지 않았다. “믿지만 확인하라” (Trust, but verify!) 라는 레이건 대통령의 유명한 말은 미국의 대소련 협상자세를 압축적으로 표현해준다.

냉전은 그렇게 끝났고 전세계를 양분했던 이념의 벽은 그렇게 무너졌다. 전세계는 하나의 경제권이 되면서 말 그대로 ‘지구화’ (globalization) 를 통하여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미국이 소련을 상대로 하였듯이 월등한 경제력을 이용하여 북한이 군사경쟁을 원한다면 이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가지면 우리는 그 핵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모든 재래식, 첨단무기를 개발하고 도입해야 한다. 또한 북한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자금줄을 철저하게 차단하기 위하여 국제사회와 공조해야 한다. 북한이 아무리 신형무기를 개발한다 하더라도 경제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반면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면 이 역시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 그 대신 미국이 소련을 상대로 하였듯이 우리의 가치관과 원칙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싫어할 것이라고 해서 인권문제를 애써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한미군사훈련 중단, 5.24 조치 해제 등 북한이 억지를 부리면서 요구하는 대화의 전제조건들을 받아들이면서까지 그저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원칙과 가치관, 실력을 바탕으로 한 대화와 협상만이 북한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냉전의 교훈이다.

남북간의 체제경쟁은 끝났다. 이제 남은 일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는 한편 개혁개방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만 남았다. 북의 핵개발에는 철저한 제재와 군사적 준비태세로 대응하면서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하여 우리는 물론 주변 모든 나라들과 진정한 의미의 ‘동질성 회복’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다행히 이제 주변국들 역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최근 북한이 자행한 소니영화사의 해킹을 9.11 테러 못지 않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9.11은 역사상 미국의 본토가 처음으로 공격 당한 경우다. 소니영화사의 해킹과 영화 ‘인터뷰’의 배급에 대한 테러위협은 미국인들이 신성시하는 표현의 자유와 일상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었다. 북한은 또 지난달에는 오바마 대통령을 ‘열대 숲속의 원숭이’라고 부르며 조롱하였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더라도 인종적 편견과 조롱이 담긴 표현만큼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미국과 그 국가원수에 대한 최대한의 모욕이었다.

며칠 전 오바마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계속 [북한에] 압력을 가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이 북한에 점점 더 깊이 침투해 들어갈 것이란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체제는 붕괴하기 마련이다.”라고 하였다. 갈수록 강도 높은 대북제제 안을 내 놓고 있는 미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이 아니라 미국이 수십 년간 봉쇄하던 공산국가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전격적으로 선언할 정도로 진보적인 오바마 대통령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체제붕괴’라는 말이 나왔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 역시 급변하고 있다. 최근 왕홍광 전 남경군구 부사령관은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12월 1일자) 에 기고한 글에서 “만약에 한 정권이 인민의 옹호를 받지 못하면 붕괴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이다….중국의 대북관계를 역사상의 조공관계로 간주하면 안 된다. 중국은 구세군이 아니다. 북한이 정말로 붕괴되면 중국도 구하지 못한다.” 고 했다.

통일정책은 통일을 위한 것이어야지 평화공존과 공동번영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통일의 날까지 한반도의 평화는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과 군비경쟁을 하면서 항상 군사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사회에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전파하기 위한 각종 교류도 기회만 있다면 추진해야 한다. 물론 북한주민들의 궁핍한 삶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인도적 지원은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 목표가 통일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통일, 주변국들이 원하는 통일은 남한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체제 하의 통일이라는 점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설령 ‘협상을 통한 점진적 통일’이라 하더라도 협상을 통하여 북한을 점진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로 이끄는 통일이어야 한다. 그토록 어렵게 가꾸어온 우리의 체제와 가치를 양보하는 통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분단 70년. 우리는 어떤 통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눈을 부릅뜨고 주변 정세를 살피고 주변국들을 적극 설득하면서 통일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About Experts

함재봉
함재봉

이사장 겸 원장

함재봉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이사장 겸 원장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1992-2005)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사회과학국장(2003-2005)을 역임했다.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한국학연구소 소장 겸 국제관계학부 및 정치학과 교수(2005-2007)와 RAND 연구소 선임정치학자(2007-2010)로 재직했다. 미국 Carlton College에서 경제학 학사학위(1980)를, Johns Hopkins 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학위(1992)를 취득하였고 International Forum for Democratic Studies 방문연구원(1999-2000), Duke, Princeton, Georgetown 대학교 교환교수(2002-2003)를 역임했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1994-1997)을 역임하였고 현재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2010-현재)으로 활동 중이다. 저술로는 “South Korea’s Miraculous Democracy”(2008, Journal of Democracy), “The Two South Koreas: A House Divided”(2005, The Washington Quarterly), Confucianism for the Modern World (Daniel A. Bell과 공저, 2003, Cambridge University Press),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2000, 전통과 현대), 『탈근대와 유교: 한국적 정치담론의 모색』(1998, 나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