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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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3일 남북한 양측은 추석 이산가족 상봉의 기본 원칙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별다른 돌발변수가 없는 한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남북방 100명씩의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금강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2010년 10월 이후 3년 만의 일이며, 남북한 대화 무드 복원의 맥락에서는 금년 8월 14일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가 통과된 데 이은 또 하나의 쾌거라 할 수 있다. 이로써 7월 개성공단 재 가동을 위한 실무회담이 개시된 이후 국면의 재경색과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이라는 두 가 지의 가능성 속에서 조마조마한 줄타기를 하던 남북한 관계는 당분간은 대화국면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그러나 앞으로의 남북 대화나 협상 과정에서도 다시 흐름을 되돌릴 만한 변수들은 얼마 든지 존재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가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남북 실무회담의 우리 측 수석대표인 김기웅 남북협력지구 지원 단장이 말하였듯이 “합의서가 타결됐지만, 이번 합의서가 끝이 아니고 시작”이며, 개성 공단의 본격 재가동과 회생 여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끝난 이후에 시작하기로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회담 역시 이견 조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고 대규모 현금 지급을 금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과 같은 외부적 장애요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2013년 초반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정국의 급랭 원인이었던 북한의 핵개발 문제는 앞으로도 언제든 다시 돌출될 수 있다. 한마디로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남북한의 수 싸움도 이제부터가 본 게임에 들어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금년 초부터 지금까지 전개되어 온 전반적 추세의 맥락을 짚어보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안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마주 선 상태에서의 눈싸움에서 잠시 벗어나 거시적인 안목에서 남북한 관계를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 접근하고 다루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우리는 무엇을 얻었나?

2월부터 시작된 북한과의 줄다리기를 이끌어온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분명 현시점까지는 후한 점수를 주어도 무리가 없다. 특히, 경색국면으로 시작된 남북관계를 비교적 매끄럽게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남북관계의 주도적 운영 여건 확보, 일관된 원칙 견지를 통한 정책 신뢰도 제고, 주변국의 협력 기반 확대라는 세 가지 중요한 성과를 거 두었다고 평가된다.

1) 남북관계의 주도적 운영 여건 확보

2월 이후의 남북한 관계 운영에서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성과의 하나는 북한을 다루는 자신감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한 간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투지를 보임으로써 대화의 단절과 재개전술을 자신들의 임의대로 구사하는 북한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았다. 즉 박근혜 정부는 대화 모멘텀의 단절이나 부재를 우려하는 저자세를 보이지 않음과 동시에, 북한이 돌발적인 대화 제의를 해오더라도 당황함이나 흔들림 없이 차분히 逆제의로 대응함으로써 융통성 있게 정국을 운영해 왔다. 예를 들어, 금년 6월 남북 장관 급회담이 무산된 이후 개성공단 폐쇄의 우려가 짙게 드리웠던 상황에서 7월 초 북한은 개성공단 내 기업인들의 ‘긴급대책 수립을 위한 공단방문’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측이 북한의 수에 수동적·수세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대응을 함으로써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가능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북한과의 기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최소한 균형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남북대화의 결렬이 한반도 긴장의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나아가 이로 인해 자칫 조성될 수 있었던 일부 주변국들의 남북한 양비론(兩非論) 역시 성공적으로 예방하였다. 지난 7개월여 동안 북한을 다루어 오면서 축적된 경험은 향후에도 남북한 관계를 우리 주도로 운영해 나가는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 일관된 원칙의 견지

둘째, 우리 입장에서 기 싸움에서의 우위 이상으로 중요한 소득은 이러한 결과가 정부 스스로가 내세운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출범 이후 남북한 관계에 있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변함없는 추진을 일관되게 천명해왔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핵심은 한반도의 정치·안보상황에 있어 가장 중요한 현안인 한반도 비핵화를 여전히 최우선적 과제로 지향하면서도, 이를 남북한 간의 화해·협력 및 신뢰구축과 기계적으로 연계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의 긴장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시기에도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 추진 의지는 변함없이 표명되었다. 반면, 이 ‘신뢰’가 실질적으로 작동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북한 측에 전달하는 작업도 꾸준히 추진되었다. 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에 있어 ‘대화를 위한 대화’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견지하였고, 이는 6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대화를 위한 대화가 되면 그 사이에 북한 이 핵무기를 더 고도화하는데 시간만 벌어줄 뿐” 이라고 언급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일관된 입장은 북한에 대해 원칙있는 접근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그 의미를 훼손했던 과거의 일부 사례와는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일부 분야의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모든 대북지원을 중단한다는 ‘5.24조치’를 발표 하였으면서도, 이후의 과정은 북한에 자칫 그릇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는 접근들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2010년 9월 북한 내 대규모 수해 당시 비록 적십자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지원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라든지, 그해 겨울 북한의 신종 인플루엔자 발생 소식에 별다른 분배 투명성 조치에 대한 논의 없이 백신을 지원한 조치 등은 모두 한국의 진정한 대북정책 의지에 대한 북한 측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반면, 금년의 정국 운영에서 정부는 이러한 논리적 일관성의 결여문제를 노출하지는 않았다.

3) 대주변국 협력기반의 확대

셋째, 미국 등 주요 주변국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의 추진을 통해 이들 국가가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원·지지를 강화할 수 있는 여건을 확대하였다. 사실, 금년 초부터 한반도에서 전개된 상황들은 주변국들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개발은 국제 비확산체제의 근간을 뒤흔든 중대 사안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높은 정책적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도전이다. 단, 미국의 입장에서는 군사력 동원까지를 필요로 하는 급격한 갈등의 증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오바마 2기의 아시아 지역에 대한 정책적 기조나 관심은 1기의 그것과 비교할 때에는 동력이 다소 떨어진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존 케리(John Kerry) 국무장관의 전문성이나 핵심 참모진 역시 미국이 당분간은 중동지역이나 북아프리카의 정세 재편에 더 관심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높은 중동 지역에서도 시리아에서의 화학무기 사용 의혹을 놓고도 신중론을 견지할 정도로 미국이 현재 전 세계적인 이슈에 적극적·주도적으로 관여할 의지와 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상황이 더 큰 긴장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대화국면으로의 성공적 전환을 이끌어낸 정부의 정책은 미국과의 협력 강화 면에서도 상당한 추진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전례 없이 강경한 대북입장을 표명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략적 차원에서 북한(북한 정권)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이다. 중국이 금년 상반기의 한반도 경색 및 대화 교착 국면에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의 특사방문(5월)과 군 고위대표단 방문(6월 초), 김계관 방문(6월 중순)을 잇달아 수용한 것은 북한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러 한 북한 딜레마의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즉, 중국의 입장에서도 한반도 정국이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은 북·중 관계의 더 이상의 악화를 방지하면서도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북한, 정말 주도권을 빼앗겼는가?

대화국면으로서의 전환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과정을 낙관 일변도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북한이 왜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에 동의 (혹은 부응)했는가에 대한 판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부에서는 우리 정부의 일관성 있고 단호한 자세에 결국 북한이 입장을 바꿈으로써 현재 국면의 조성이 가능했다고 진단 한다. 즉, 현재의 대화국면은 우리의 완전한 전리품이며, 북한은 사실상 백기투항 했다는 증거로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물론 이러한 해석이 성립하는 것이 최선의 경우이며, 실제로 그렇다면 앞으로도 남북한 관계의 주도권은 우리가 쥐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화국면이 북한 역시 충분히 계산에 넣고 있었던, 아니 어쩌면 오히려 유도하고자 했던 국면의 하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또 의도한 바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국면전환을 통해 자신들도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 역시 향후 정국을 낙관할 수 만은 없는 경우의 수에 포함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서도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1‘) 원칙’의 실제 견지 여부

앞서도 밝힌 바와 같이,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은 일단 상징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원칙을 견지하면서 일정한 성과를 이끌어내었다는 함축성이 있다. 그러나 과연 실질적인 측면에서도 우리가 애초에 내건 원칙들이 견지되었는가는 좀 더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다. 무엇보다 대화국면 전환의 중요한 계기가 된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의 내용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7월 6일 1차 실무회담이 개최되기 이전부터 우리 정부가 일관 되게 제시한 것은 “개성공단의 돌발 중단에 따른 북한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조치의 약속”이었다. 합의서 제1항은 “남과 북은 통행제한 및 근로자 철수 등에 의한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 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들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긍정적인 해석을 내리는 분석가들은 동 합의서 1항에 명시된 ‘남측인원의 안정적 통행’과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등을 지적하면서, 결국 북한의 통행제한 조치와 일방적 북한 근로자 철수로 인해 공단 가동중단이 이루어 졌다는 점을 암시함으로써 우회적으로 북한 책임론을 관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는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문맥 자체만을 보면, 사실상 재발 방지의 주체는 남북한 모두이지 북한이 아니다. 즉,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에는 남과 북이 모두 ‘정세에 영향을 받아’ 정상적 운영을 보장하지 못한 책임이 있으며, 향후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 1항이 시사하는 바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북한의 사과 여부와도 연결된다. 북한의 사과를 요구하는 일이 사실상 먼저 판을 깨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예상된 바였다. 따라서 합의문에서 이것이 빠진 점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다만, 그 이전까지 사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우리의 입장을 감안하면, 합의서 내용은 사실적 내용에서는 원칙의 고수·반영으로 보기 어려운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2항의 피해보상 방안, 4항의 남북공동위원회 구성과 관련해서도 이에 대한 약속 위반 시의 대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직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성격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이런 정도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1개월 이상을 끌었는가의 비판론도 제기될 수 있다.

2) 북한에게도 불리할 것이 없는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역시 우리만의 성과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이러한 평가는 북한이 애초에 경색국면만을 추구해 왔으며, 이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힘으로 누르고 핵국으로 서의 지위 획득 및 자신에게 유리한 개성공단 재편만을 고집했다는 전제가 성립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역시 이미 5월에 들어서면서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모색 하기 시작하였다. 개성공단 재개와 관련해서도 비록 진정성이 의심된다고는 하지만, 공단 내 시설과 물자의 안전 확보를 위한 실무급 회담을 제의하였으며, 6월 남북 장관급 회담이 무산된 이후에도 기업인 방북을 허용하는 등 한국사회와 주변국들에 대해 대화 의지가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특히, 6월의 미·북 회담 제의가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개월도 지나지 않은 기간 내에 북한이 남북 대화에 응했다는 것은 전례에 비추어 북한 역시 파격적인 대화 무드로의 전환을 시도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더욱이 특기할만한 것은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가 발표된 이후 실시된 한·미 간의 ‘2013 을지 프리덤가디언(Ulchi-Freedom Guardian, UFG)훈련’에 대해 북한이 전례 없이 조용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 간 5년 동안의 미결 현안이었던 금강산 관광 재개 협의 역시 들고 나왔다. 이 정도면 북한도 작정하고 대화 무드로의 전환을 추구하고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이 대외적인 고립과 대내적 경제모순에 견디지 못하고 백기투항 했을 경우에도 똑같은 행태가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7차에 걸친 실무회담의 밀고 당기기, 우리 측의 이산가족 상봉 후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협의에 대한 수용 등의 정황을 감안하면, 북한으로서도 반드시 시간과 외부 환경에 몰려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고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즉, 북한으로서도 기왕에 대화 무드로 전환하기로 한 바에야 자신의 내부체제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초래하지 않는 이상, 실질적으로 남북대화를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현실적 경제적 이익, 중국과의 관계, 미국과의 직거래 관계 개설을 위한 징검다리의 확보 등 모든 면에서 이익이라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3) 이미지 전환의 기회

북한이 대화 무드로의 전환을 결심한 주된 이유는 또 다른 방향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13년 초반 형성된 일방적 북한 책임론 그리고 국제적 압박의 가시화로부터의 탈피가 바로 그것이다. 오랜 방파제였던 중국까지도 대북 비난에 동조하고, 중국 내 일부 북한 계좌의 동결에 동의한 상황에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우선 이러한 비난 일변도의 분위기로 벗어나는 일이었을 것이며, 대화국면으로의 선회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우선, 적당한 기간의 대화 시도를 통해서도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이 실패할 경우, 한반도
에서의 경색국면에 대한 남북한 양비론(兩非論)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었다. 북한 책임론을 양비론 정도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략적 수세에서의 탈피를 위한 디딤돌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실제 현재와 같이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역전 불가능한 추가적인 약속(현재의 합의서 내용이 그렇다)을 하지 않고 기존 수준의 조치만을 반복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북한으로서는 환영일 것이다. 7월과 8월 이후 대화 무드에 대한 주변국의 입장을 되돌아보자.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현재의 국면 전환을 환영하는 논조가 강하지만, 동시에 금년 초의 경색국면에 대해 북한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UN 결의안 2087(장거리 미사일 규탄)과 2094(3차 핵실험 비난)는 분명 아직도 유효하지만, 현재로서는 이에 따른 추가 제재가 논의될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중국이 현재의 남북한 관계 진전에 부응하여 결의안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북한과의 교역을 늘려도 현재로서는 이상할 것이 별로 없는 분위기다. 실제로,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직후인 8월 26일 우다웨이(武大偉)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북·중 간에도 일정한 관계 복원 무드가 진행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은 이러한 국면전환 카드를 통해 북한 내에 강·온의 정치파벌이 존재하며(수령제 정치체제를 취하는 북한에서 실제로 이러한 파벌이 존재한다는 시각 자 체가 난센스이다),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은 온건파의 목소리가 커진 결과라는 외부의 분 석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즉, 온건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너무 심하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주변국 내에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북한이 대화에 수세적으로 끌려 나온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 신경 써야 할 앞으로의 수 싸움

이러한 점들을 종합할 때, 현재의 대화국면은 우리 대북정책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동시 에 북한의 고도의 수 읽기 결과일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하면서 자만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적지 않은 성과를 얻었지만, 북한 역시 어느 정도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따라서 향후에도 우리의 페이스대로 남북한 관계를 주도해나가기 위해서는 특정한 이슈나 분야에서의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 큰 밑그림을 그려 나가기 위한 노력과 이를 추진하기 위한 여건과 틀을 만드는 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중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상태가 과연 무엇인지를 보다 정교화하고 세련화하는 것이다. 즉,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 국면별로 남북한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우리 자체의 방안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전체적인 통일비전의 맥락에서 기존과는 어떤 차이점을 지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국민과 대외적인 청중(주변국 및 국제사회)의 눈높이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왜 현재의 시대상황 에서 필수적인지를 납득시키고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진전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는 북한 비핵화 과정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의 비전과 로드맵 역시 제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그랜드 바겐’식의 접근을 지속할 것인지 혹은 일단 현재와 미래 핵의 위협을 차단하는 일에 주력하고 과거 핵문제는 비핵화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의 구상을 분명히 해야 주변국과의 공조 혹은 정책조정을 실효성 있게 이끌어낼 수 있다.

남북대화국면이 본격화되면 그동안 누적되었던 현안에 대한 우리의 입장 역시 정립하여 적절한 메시지를 북한 측에 보내야 한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서는 우선 북한 측의 사과 및 재발방지 조치의 수준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결정되어야 한다. 즉, 현재 개성공단 재가동 합의서에 나타난 정도의 모호한 추상성을 유지할 것인지 혹은 보다 강화되고 구체적인 조치를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천안함 폭침과 관련된 ‘5.24조치’를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것인지, 유효하다면 이의 해제를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인지도 우리 내부의 조율이 이루어져야 한다. 9월 말의 이산 가족 상봉이 끝나면 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적 조치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우리 구상도 발표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조치가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치밀한 논리적 일관성을 지녀야 함은 물론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다시 한반도 정세가 긴장국면으로 들어서고, 4차 핵실험 등과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때 우리의 전략은 어떻게 추진되어야 할지도 현재부터 논의하고 대비 해야 한다. 특히, 이러한 부정적 시나리오가 전개될 경우 미·중 간의 정책적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곳은 어딜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미·중이 동시에 받아 들일 수 있는 대응정책의 영역에 우리의 정책을 조율시켜야 효과적인 대북정책의 구사가 가능하며, 이들과의 공조가 원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대화국면으로의 선회는 더 많은 고려와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대화국면을 진전·발전시켜 신뢰프로세스를 불가역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 지금까지 정부가 강조해 왔듯 이 남북관계의 기본 틀을 다시 짜기 위해서는 단기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 시간이 걸리 더라도 근본적 해결 모색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지금까지의 성과에 도취되거나 자만감에 빠지지 않도록 항시 다양한 변수들에 대한 관찰과 고려를 늦추지 말고, 상황이 역전될 경우에 대해서도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About Experts

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