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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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발생한 시민혁명과 주변국으로의 급속한 확산에 대한 원인으로서 빈곤과 청년 실업, 정부의 부정부패, 사회 네트워크(Social Network Service)의 활성화 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혁명 발발 당시의 우발성(contingency)과 이후 국가별 다양한 전개 양상 간의 인과관계를 체계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왜 20~30여 년간 안정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해 왔던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와 무바라크(Muhammad Hosni Sayyid Mubarak)는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지 한 달도 못되어 부와 권력을 순순히 포기했는지, 왜 아무도 장기 독재정권의 갑작스런 붕괴를 예측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시민혁명 이후 비교적 평화로운 정권 퇴진이 이루어진 반면 시리아와 예멘에서는 정권의 무자비한 시위대 탄압이 계속되며 리비아에서는 친 카다피(Muammar Muhammad al-Gaddafi) 세력과 반군 간의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지, 또한 요르단, 바레인, 알제리, 모로코, 오만, 이란에서 발생한 시위는 정권의 즉각적인 내각 총사퇴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비교 분석 역시 부족하다. 따라서 본 글은 최근 중동 혁명에서 나타난 우발성과 다양성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이의 정책적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중동 시민혁명의 우발성을 설명하기 위해 단시간에 변화한 미시적 인센티브(micro incentives)와 새로운 가능성에 반응하는 행위자의 전략적 행보에 주목한다. ‘왜 지극히 안정적으로 보이던 정권이 사소한 충격으로 순식간에 무너지는가’라는 질문은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를 가져온 ‘1989년 혁명’ 직후 학계에서 새로운 논의를 생산했다.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와 쿠란(Timur Kuran)에 따르면 혁명이란 우연한 계기를 통해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사회 정치 현상이며 그 배후에는 새로운 기회를 포착한 행위자의 손익 계산과 합리적 선택이 있다. 위압적 권위주의 정권이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여론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순간 시민의 공적 거짓말(public lies)은 폭발력을 갖고 돌변하며 정권에 대한 깊은 불만이 공공연하게 표출되기 시작한다. 짧은 시간 행위자는 주변의 대다수 시민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적 진실(private truths)을 오랫동안 숨겨왔다는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적극적으로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시위대에 참여하고 정권에 반대하여 얻을 수 있는 혜택이 그 비용을 크게 뛰어넘기 때문이다. 즉 권위주의 정권에 충격을 가하는 ‘사소하고 우연한’ 계기가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일단 변화가 시작되면 그 파급력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지며 정권의 붕괴라는 극적인 변화로 이어진다. 이번 중동의 시민혁명 이후 무엇보다도 자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문화적 선행조건을 내세우는 중동, 아랍, 이슬람 예외주의 접근법은 설명력을 크게 상실했다. 또한, 사후적 인과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거시적 구조(macro foundations)의 점진적인 변화와 이의 축적에 따른 정치변동에 주목하는 역사적 제도주의 역시 혁명의 예측 불가능성을 둘러싼 정치적 논리와 배경을 설명해내지 못했다.

한편 우발성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중동 혁명은 전개 과정에서 국가별 다양성 역시 드러내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의 성공적 혁명과 사실상의(de facto) 정권 퇴진, 시리아, 예멘, 리비아의 권위주의 정권과 반정부 세력 간의 장기적 대치 국면, 요르단, 바레인, 알제리, 모로코, 오만, 이란에서 목격된 정부 주도의 명목상의(de jure) 개각,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UAE, 카타르 등 산유 왕정에서 나타난 비교적 조용한 반응은 이번 정치변동의 다양한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개별 국가 내 서로 다른 권력지형이 혁명의 파급력과 속도를 제한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혁명은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포섭된 자본가층이 얇고 자생적인 반정부 재야 조직의 현실정치 경험이 많고 정부의 복지정책이 미흡할 경우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빈곤과 실업, 정부의 무능,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사용자 증가도 혁명 발생의 배경이 될 수는 있으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와 이로 인한 경제 위기는 오히려 시리아와 예멘에서 가장 두드러지며 사회 네트워크의 활성화 역시 산유 왕정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중동의 국가들은 국내 권력의 배분관계와 국가-사회 간의 상호작용 면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우선 튀니지, 이집트는 시리아, 예멘, 리비아보다 비교적 개방적인 체제를 갖고 있는 권위주의 국가이다. 이들은 정권의 주도하에 정치 자유화 과정을 겪었고 따라서 권위주의로의 잦은 회귀를 경험해왔다. 최근 세계화의 압력과 국내 시민사회의 요구가 맞물리면서 정부는 제한적이나마 자유 경쟁 체제를 도입하게 되었고 개혁의 성과로서 다원주의가 점진적으로 소개되었다. 또한, 이들 국가의 정부는 사회 통제의 방법으로서 회유와 협박 전략 모두에 의존해왔다.

한편 시리아, 예멘, 리비아는 매우 폐쇄적인 독재 체제를 바탕으로 한 약탈국가(predatory state)이다. 소수 부족과 종파 출신의 엘리트가 장악하고 있는 정권이 재산 소유권의 대부분을 직접 통제 관리하기 때문에 국가 내 독립적인 사적 영역이 부재하다. 시민사회는 정부의 지속적인 탄압과 배제로 인해 제도권 활동의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매우 급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정부는 임의적이고 과도한 세금 징수를 통해 재정을 충당하며 감시, 통제, 처벌을 통한 공포의 통치 방식을 고수한다.

반면 산유 왕정은 종교와 혈연에 기초한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소수 왕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오일머니에 기반한 무차별적 사회보장 제도를 실시하여 시민의 정치참여 요구를 사전에 봉쇄한다.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 “풍요의 역설(plenty paradox)”로 설명되는 이러한 현상은 “세금 없이는 대표도 없다(no taxation, no representation.)”의 논리하에 왕족의 세습 네트워크를 강화시킨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지극히 국가 의존적이며 건전한 견제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들 산유 왕정의 풍부한 재정은 국내의 억압기구를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이웃 비산유 군주국에게도 원조 형식의 지대로 제공되어 비밀경찰과 군을 포함한 강권기구의 확장에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분석에 기초하여 중동의 시민혁명 이후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와 이의 정책적 함의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아랍 내 최대 반정부 조직인 이슬람 운동 세력의 온건화 양상이다. 이집트의 시민혁명 과정에서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hood)은 자유 민주주의와 법치 질서의 준수를 강조하며 군부로의 임시적 권력 이양을 평화적으로 이끌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이슬람 운동의 탈 급진화는 향후 중동에서 이슬람과 자유 민주주의의 양립 가능성을 높여주는 동시에 알 카에다(Al-Qaeda)와 같은 급진 이슬람 세력의 쇠퇴를 촉진시킬 것이다.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은 이미 1990년대 중반 이후 이슬람 국가 건설의 목표를 폐기한 후 이슬람의 역할을 개혁적이고 자유주의적 시각으로 해석하면서 현실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번 혁명 직후 무슬림 형제단은 자유정의당(Freedom and Justice Party)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재정비하고 대의제 하의 민주적 선거경쟁, 평화로운 정권교체, 다원주의 보장 등을 강조하며 올가을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자유정의당의 새로운 당수는 무슬림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터키의 온건 이슬람 정의발전당(the Justice and Development Party)을 모델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튀니지의 최대 이슬람 정치조직인 부흥당(Renaissance Party) 역시 온건 실용 노선의 입장을 견지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둘째, 미국의 충실한 우방인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으로 인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구조와 중동 지역 질서의 재편성 문제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첨예한 대립 구도에서 이집트는 미국의 우방으로서 이스라엘의 입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이번 혁명 이후 중동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해 증진을 위해 가자 지구 내 하마스(Hamas)와 반미 시아파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견제해 줄 국가가 사라진 것이다. 다만 시리아의 아사드(Bashar al-Assad) 정권이 민주화 세력의 오랜 시위와 이를 지지하는 국제 압력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처함에 따라 시리아 정부의 후원을 받는 레바논 내 헤즈볼라(Hezbollah)는 잠시 위축될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국가적, 지역적, 국제적 수준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갈등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아랍 세계는 사회주의 공화국과 보수 군주국으로 양분되어 있었고 이집트는 아랍 사회주의 공화국 세력의 대표 주자였다. 그러나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후 이집트가 대이스라엘 온건 국가로 급선회하면서 기존의 갈등 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이집트의 사다트(Muhammad Anwar al-Sadat) 대통령은 미국의 중재 하에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고 4차 중동전쟁에서 빼앗긴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았다. 이후 사다트는 이집트 우선주의와 친 서구주의를 선언했고 형제 아랍국으로부터 집단적인 단교 조치를 당했다. 1980년대 말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강경 사회주의 공화국의 반이스라엘 입장은 반미와 이슬람주의의 기치 아래 더욱 강고해졌다. 당시 이집트만이 유일하게 미국 공화당 정부의 지원을 받았던 이라크를 옹호했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셋째, 신진 민주주의가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불안정성의 문제 역시 주목해야 할 쟁점이다. 튀니지와 이집트는 시민혁명을 통해 장기 독재정권의 즉각적이고 평화로운 퇴진에 성공했다. 이러한 자생적 민주화는 이라크의 이식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사례로서 미국이나 외부 세력의 역할이 민주화의 결정적 요소가 아님을 증명했다. 그러나 높은 정당성을 갖고 있는 자생 민주주의 역시 신진 민주주의의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인 이행기를 거치게 될 것이다. 1989년 동유럽 혁명과 민주화의 사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 체제는 반드시 경제적, 행정적으로 효율적이지 않다. 다만 민주주의의 열린 시스템은 결국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발전의 선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