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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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3년에 이어 세 번째의 육성 신년사를 발표했다. 금년의 신년사가 다른 때에 비해 유난히 세간의 주의가 집중된 것은 김정일 삼년상이 끝나고 노동당 창건 70돌이 되는 시점에서 완전한 김정은 시대의 선언이 이뤄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또 정치 상황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인지, 그리고 광복 70년이 되는 해를 맞아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입장이 표명될 것인가 하는 점도 주요 관심사였다.

결론적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유훈 통치가 종결됐으며, 자신의 시대가 열렸음을 공식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역학적 측면에서 군이 아닌 당 중심의 체제 운영이 강조됐다.

남북관계와 관련해 남한의 전향적 입장변화를 전제로 관계개선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남한에 외세 공조를 포기하고 민족 공조로 나가자는 제의를 한 것으로써 2014년 신년사의 내용과 유사한 것이며 전향적 정책 변화는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남남갈등을 촉발하고 대북정책에 관한 국제공조를 약화하기 위한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잘 고려하여 남북관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김정은 시대, 김정은 스타일의 선언

먼저 김정은은 금년 신년사를 통해 이제 더 이상 그가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후광과 유훈에 기댄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과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선대(先代)에 대한 호칭과 언급 빈도의 면에서 살펴보자.

2013년 처음 육성 신년사가 발표될 당시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11회, ‘김정일’이라는 이름은 14회가 언급됐다. 여기에 ‘수령’ 혹은 ‘장군’이라는 이름으로 간접 호칭된 경우(이름 아래에 부수적으로 붙는 경우나 지도자 전체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 사례는 제외)를 보면 김일성 4회, 김정일 11회였다. ‘대원수’라는 명칭으로 둘 모두를 언급한 경우는 6회였다. 즉, 포괄적으로 보면 김일성을 언급한 것은 21회, 김정일을 언급한 것은 31회였다. 이렇듯 김정일의 이름에 대한 언급이 많은 것은 아무래도 2013년이 김정일 사망에서 1년이 겨우 지난 추모시기였던 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주목되는 점은 2014년에 들어 이 언급이 줄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14년 김일성은 이름을 기준으로 6회, 김정일은 5회가 언급됐다. 또, ‘수령’으로 언급된 김일성의 사례는 5회, ‘장군’으로 언급된 김정일의 사례 역시 5회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대원수’로 언급된 사례는 아예 사라졌다. 포괄적으로 봐도 김일성 11회, 김정일 10회가 언급된 것이다.

2015년에는 이러한 추세가 더욱 뚜렷해진다. 김일성의 이름은 아예 직접 언급이 되지 않았으며, 김정일도 ‘김정일애국교양사상’이라는 경우를 통해 딱 1차례 언급됐다. 대신 ‘수령님’과 ‘장군님’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이 각각 6회 언급됐다. (김정일 애국교양사상을 합할 경우 김정일은 7회다.) 이는 김정은이 김정일의 유훈 통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할아버지를 단순 모방하는 데에서도 진일보하여 자기 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물론 일부 언론에서 예상했던 ‘김정은 조선’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는 자기가 발표하는 육성 신년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껄끄럽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금년도 신년사 전반을 관철하는 숨은 키워드가 ‘김정은 조선’이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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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화된 선군과 군의 정치적 영향력 및 지위

더 흥미 있는 것은 김정은을 소개하는 북한 매체의 호칭이다. 2014년 신년사 발표 당시에는 ‘조선노동당 제1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금년도 신년사에서는 ‘김정은 원수님’ 대신 ‘김정은 동지’라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2014년부터 사라진, 선대를 지칭하는 ‘대원수’라는 명칭 역시 금년도 신년사에서는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김정은 시대’가 선언된 이상 굳이 김정은이 선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묘사될 수 있는 ‘대원수’와 ‘원수’라는 칭호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 즉, 이 칭호 자체가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에 비해서는 여전히 한 수 아래이며 그 그림자에 기댄 존재라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호칭 변화는 어쩌면 ‘선군정치’로부터의 점진적 탈피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즉, 이제 김정은은 단순한 인민군의 수위(首位)로서 북한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당과 국가기구의 최고 지도자로서 그 위엄을 가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란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부터 시작된 ‘선군’ 구호의 퇴조는 금번 신년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2011년의 공동사설에서는 14차례, 2012년에는 17차례나 등장했던 ‘선군’의 구호는 2013년 김정은의 첫 번째 육성 신년사에서는 6차례 등장했으며 2014년 신년사에는 단 3차례 나오는 데 그쳤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선군’은 4회 언급에 그쳤고 그것도 ‘선군혁명위업’, ‘선군혁명투사’ 등의 간접 언급을 2회 포함한 것이다.

‘선군’ 기조가 퇴색하면 당연히 ‘당의 군대’로서 인민군의 역할 역시 강조될 수밖에 없다. 금년도 신년사에서 “인민군대는 당의 부강조국 건설구상을 받들어 앞으로도 당의 사상관철전, 당정책옹위전에서 선구자,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한 것은 결국 군의 정치적 영향력은 축소하면서도 사회동원의 기제로 군을 활용하는 기조는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봐야 한다.

동시에 김정은은 북한군의 준비태세와 관련해 “그 어떤 정황과 조건에서도 작전전투임무를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는 무적의 강군으로 준비되었다.”라고 평가하면서 “우리식의 다양한 군사적 타격수단들을 개발 완성하여 혁명무력의 질적 강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라고 했는데 이는 2014년 과시한 단거리 미사일과 개량된 방사포에 대한 자신감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선군 대신 당 강조… ‘제2의 장성택’도 경계

‘선군’의 구호를 당의 역할 강조가 대체했다. 특히 금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당의 위력한 무기인 사상을 틀어쥐고 ‘사상사업’을 공세적으로 벌여 우리 혁명의 사상진지를 철통같이 다져나가야 합니다.”라고 강조함으로써 체제 전반의 통제를 위한 이념적 중추로서 당의 존재를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당조직과 당일꾼들은 세도와 관료주의를 철저히 극복하며…”라고 했는데, 여기서 ‘세도’는 결국 ‘종파주의’를 의미한다. 이는 당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당 내 김정은의 대리인이 과거 장성택과 같은 위치에 오르는 것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경고로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은 주체사상 재해석해 새로운 직위에 오를까?

이와 관련 금년 중 북한이 또 한 번의 헌법개정을 통해 새로운 직위에 오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북한은 1998년 헌법개정을 통해 기존의 ‘국가주석’직을 폐지하고 ‘국방위원회 위원장’(현재의 제1위원장)직을 북한을 대표하는 최고직위로 설정했다. 이는 1997년부터 등장한 ‘선군정치’를 실질적인 정치공간에서 실현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됐으며 그 이후 최고지도자는 당의 수위인 동시에 국방의 수위로서 북한을 통치해왔다. ‘선군’ 구호가 퇴조하는 마당에 이 직위가 그대로 유지될지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2009년의 헌법개정에서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지칭한 이상 그 제도나 명칭이 반드시 ‘국가주석’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직위의 신설은 결국 통치이데올로기의 재해석과도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수령제’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김정은 스타일’에 걸맞은 통치행태를 제도상으로 보장할 수 있게 ‘주체사상의 김정은식 재해석’이 시도될 가능성이 있다.

남북대화 강조했지만 전제조건 붙여놔

국내 언론들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남북대화와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은 “우리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 그리고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정상회담)도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를 말 그대로 해석할 수만은 없다. 김정은은 2014년 신년사에서도 남북대화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그 대화란 철저히 우리의 양보와 입장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김정은이 2014년을 ‘북남관계는 도리어 악화의 길로 줄달음쳤다’고 규정한 것은 유념할 만한 사항이다. 김정은은 북한의 성실한 대화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화 분위기를 경색시킨 것은 한국의 ‘대규모 전쟁연습’ 그리고 ‘침략적인 외세와의 야합’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남조선 당국은 외세와 함께 벌이는 무모한 군사연습을 비롯한 모든 전쟁책동을 그만두어야 하며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는 길로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라고 주장한 것 역시 이러한 상황인식에 따른 것이다. “남조선 당국은 북남 사이 불신과 갈등을 부추기는 제도통일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며 상대방의 체제를 모독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동족을 모해하는 불순한 청탁놀음을 그만두어야 합니다.”라는 언급은 우리의 ‘통일준비’와 대북인권결의안의 UN 안보리 회부를 겨냥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거론하는 대화의 복원은 한국의 입장 변화와 기존에 북한이 주장한 바의 수용(한ㆍ미 군사훈련 중단, 한반도 평화체제 등 포괄적 안보문제 논의 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또한 기존 남북정상회담(특히 2007년 10.4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경협확대 및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합의’ 등을 이행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이 말하는 ‘최고위급 회담 분위기와 환경’은 바로 이를 거론하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 정부가 내심 대북정책상의 성과에 초조해하고 있으며 정상회담도 은근히 바란다는 인식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김정은의 발언이 ‘해방 7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에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한국의 강박관념을 유도해 내기 위한 일종의 ‘유인’ 성격이 강하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김정은이 2015년은 ‘조국 해방 70돌’이며 ‘분단 70년’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대화 제의는 한국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남북대화를 미ㆍ북 직거래로 가는 분위기 조성용 징검다리로 간주해 왔다. 이와 관련 김정은이 남북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우리 민족을 둘로 갈라놓고 장장 70년간 민족분열의 고통을 들씌워온 기본 장본인인 미국은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무분별한 침략책동에 매달리지 말고 대담하게 정책전환을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주장한 것 역시 미국에 대해 던지는 일종의 메시지로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라는 주장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금년도 신년사에서 2015년 중 4차 핵실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 시사된 것이다. 김정은은 “미국과 추종세력들이 비열한 인권소동에 매달리고 있다.”라고 규정하고, “국제무대에서 힘에 의한 강권이 판을 치고 정의와 진리가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선군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핵 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억척같이 다지고 나라의 생명인 국권을 튼튼히 지켜온 것이 얼마나 정당하였는가 하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2015년 대화국면을 시도해 보기는 하되 이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또 한 번의 핵실험도 시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시사한 것이다.

김정은 스타일의 키워드… 젊은층과 ‘문화’ 공략

금번 신년사를 통해 시사된 ‘김정은 스타일’의 핵심 컨셉은 이전 세대와는 달라진, 변화된 젊은 층과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삶의 질에 대한 강조에 있다. 이와 관련 김정은이 금년도 육성 신년사에서 등장시킨 새로운 두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문명국을 건설하겠다’는 구호다. 전체 맥락상 이 ‘문명국’은 과학기술이 발전된 체제를 의미하지만, 전반적으로 인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된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후대사랑’ 역시 새롭게 나타난 단어로 미래의 여론주도층이 될 젊은 세대를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체육강국’의 강조는 그 이전부터의 기조이기도 하지만, 할아버지 김일성이 유난히 부각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오랜 부진을 극복하고 10위권 내에 재진입했다. “우리 체육인들은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와 세계선수권 대회들에서 우리식의 전법으로 굴함 없이 싸워 조국의 영예를 빛내이었으며 사회주의 수호전에 떨쳐나선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을 크게 고무해 주었습니다.”라는 바로 이러한 기조에 대한 김정은의 나름의 자부심을 반영하는 것일 것이며 새로운 스타일의 업적을 인민들에게 과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전히 강조하고 있는 경제… 그러나 늘어난 자신감

경제분야의 강조점은 예년과 비슷하다. 다만 경제발전의 핵심 요인으로 ‘과학’을 강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의 발전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과학연구부문에서 최첨단 돌파전을 힘있게 벌여 경제발전과 국방력 강화, 인민생활 향상에 이바지하는 가치 있는 연구성과들을 많이 내놓아야 합니다.”라는 언급에서 시사된 바와 같이 김정은에게 과학은 경제 강국, 군사 강국으로 가는 데 필요한 핵심역량이다.

반면 경제 분야에 대한 자신감도 시사됐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북한경제 분석가들이 지난 2~3년간 북한경제가 완만한 회복세 혹은 최소한 기존 경제 규모를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지속가능성 여부와는 별개로). 김정은은 이 실적에 나름 고무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신년사에서 그는 경제분야에서 절약과 내핍(耐乏)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금년도 신년사에서는 전기 절약이나 물 절약 같은 부분적 구호는 등장하지만, 경제 전반에서 내핍을 강조한 구절은 등장하지 않는다.

경제 분야에서 당의 영도를 강조하면서도 전문관료들의 역할을 독려한 것 역시 눈에 띈다. 김정은은 경제관리와 관련, “내각을 비롯한 국가경제지도기관들에서 현실적 요구에 맞는 우리 식 경제관리 방법을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내밀어”라고 말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위한 내각의 역할에도 일정 부분 힘을 실어 줬다.

자신감 넘치는 신년사… 자신감이 중ㆍ장기적으로 유지될지 관건

‘통일대전’과 같은 전투적 구호는 이번 신년사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금년도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보인 태도는 대남ㆍ대외관계에 있어 자신들도 ‘한방’을 지니고 있으며 대화나 지원에 목매지 않고 자신들의 노선을 고수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년사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이 자신감의 기원은 이제 나름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했다는 김정은의 개인적 성취감, 강화된 핵 능력,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유지가 가능한 경제력일 것이다.

다만 이것이 중ㆍ장기적으로도 지속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다.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은 ‘세도’ 배제 등을 통해 2인자 그룹을 어떻게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나름의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통치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달리 이를 해 본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2015년 중 북한이 당당한 ‘경제 강국, 군사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명국’으로서의 북한을 건설해 나가는 ‘김정은 스타일’과 함께 말이다. 신년사는 일종의 단기 비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의 공언이 지켜질 것인지가 금년의 관전 포인트다.

결론

김정은의 신년사에 나타난 2015년 북한의 정책 방향을 분석해 볼 때 정부의 희망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전향적 입장 변화와 남북관계에서 획기적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내정의 안정을 달성한 김정은은 더욱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자신의 정책적 성과를 거두려는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남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조급함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이용하려는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며 통일문제를 매개로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대북국제공조를 약화하려는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북한이 매체를 통해 미국과는 각을 세우면서도 대남비방을 자제하는 것은 평양 정권이 조건 없는 남북대화 복원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한ㆍ미 공조를 우회적으로 교란하려는 성격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즉, 북한은 이를 통해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을 타진하는 한편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남북대화에 대한 양보를 이끌어내려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년사에 나타난 내용을 통해서는 우리가 바라는 진정성 있는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단기성과에 집착하거나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원칙에 충실한 대북정책을 구사함으로써 북한의 전략적 계산을 변화시키는 것에 목표를 두고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About Experts

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