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물

서문

국제 질서는 기본적으로 무정부 상태다. 전쟁과 갈등은 국제 정치의 상수(constant)이자 표준, 즉 ‘놈(norm)’이다. 국제 관계에서는 무질서가 가장 ‘노멀(normal)’한 상태라는 뜻이다. ‘약육강식’의 상태를 ‘자연의 상태(state of nature)’라고 부르는 이유다. 인간은 이러한 ‘정상 상태’를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강자생존(强者生存)’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도, 최소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처럼 현실주의적인 대안에서부터 UN과 WTO 등 전지구적인 질서를 수립해 보려는 이상주의적인 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무질서와 부단히 싸워왔다.

전반기에는 세계를 파멸 직전까지 끌고 간 전쟁들을 치르고 후반기에는 지구 멸망을 담보로 끝 모를 군비 경쟁과 이념 전쟁을 치른 20세기가 냉전 종식으로 막을 내리면서 인류는 새로운 미래를 꿈꿨다. 세계는 바야흐로 하나의 질서로 수렴되는 듯 했다. 이 당시의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책이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이었다. 그 후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세계 경제가 거듭 불황에 빠지고 국제 금융시장이 붕괴 직전까지 갔어도, 언젠가는 보다 합리적이고 포괄적인 국제 질서가 수립될 것이고 세계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낙관자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수많은 ‘위기’와 ‘사태’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미국이, 한때는 일본이나 유럽이, 최근에는 중국이 ‘기관차’ 역할을 해주면서 세계 경제는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자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유럽은 EU라는 초국가적인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설립·확산시키면서 말 그대로 ‘포스트모던(post-modern)’한 질서를 수립하는 듯이 보였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적었지만 그래도 평화를 위한 다양한 형태의 해결책들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었다. 이란-이라크 갈등,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립, 다양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이 갈등과 혼란을 끊임없이 조장했지만 이 역시 지역에 국한된 문제라고 생각했다. 한때는 ‘아랍의 봄’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이 지역에도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IT 혁명은 독재와 폐쇄적인 권위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받아들여졌다. 동북아시아에서는 과거사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경제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문화·사회·정치적인 통합도 가능할 것으로 간주되었다. 비록 북한의 핵 문제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6자회담, 다른 한편으로는 한중 간의 협력 등을 통해서 언젠가는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사람은 없다. 중국 경제가 성장률이 7% 이하로 떨어지는 ‘신창타이(新常態)’에 들어가고, 미국 경제는 2%대의 성장에 머물고, EU와 일본의 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안 보이면서 세계 경제는 당분간 저성장이 일상화 되는 ‘뉴 노멀(New Normal)’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세계화는 지속되겠지만 그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가운데 세계가 하나의 표준, 체제로 수렴되어 갈 것이라는 전망 역시 빛이 바랬다. 포스트모던한 EU는 러시아라는 지극히 모던(modern)한 국가와 충돌하면서 팽창을 멈췄다. 중동의 난민들이 급속히 유입되고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의 공포에 휩싸이면서 EU의 기본적인 가치와 제도들이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더 이상 중동을 대표하는 분쟁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잔인하고 처절한 내전과 종교 분쟁이 중동의 질서를 붕괴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분쟁들의 여파는 중동의 경계를 넘어 유럽을 강타하고 있다. ‘아랍의 봄’은 ‘아랍의 겨울’로 바뀐 지 오래다. 창의력과 개방성의 대명사였던 IT 혁명은 극단주의와 테러, 폐쇄적인 사고와 권위주의 정권의 도구, 강대국 간 사이버 전쟁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북한의 핵 문제가 자칫 장기적인 미제로 남을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이 팽배하지만 대안이나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6자회담은 수명을 다했고, 북한 문제를 다루기 위한 한중 간의 협력은 기대치에 못 미치고 있고 한일, 중일 관계는 더 악화되지도 않겠지만 더 좋아질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 질서가 마치 국제 관계 이론에서 말하는 전쟁과 갈등, 무질서와 혼란이 일상화된 ‘노멀’한 상태로 되돌아 가고 있는 형상이다. 말 그대로 ‘뉴 노멀’이다.

관건은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 지도자의 출현이다. 그러나 그럴 조짐 역시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현상유지 모드로 들어갔다. 시진핑 주석은 급속히 성장한 중국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몽(中國夢)’을 꾸지만 ‘중국의 꿈’이 과연 주변국들의 꿈도 염두에 둔 것인지, 지역의 화합과 공동 번영을 염두에 둔 것인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무너진 구소련 제국의 영화를 재건하겠다는 꿈을 꾸면서 무력 사용마저 불사하고 있지만 러시아 국수주의 이상의 가치를 대변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 역시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지도자일 수는 있어도 동북아의 통합과는 거리가 먼 지도자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EU를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우크라이나 사태, 그리스 위기와 난민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십을 보였지만 유럽 내부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만 하는 처지다.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자국의 지도자로 남아있을 인물들이다. 뉴 노멀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뉴 노멀이 일상이 되는 상황에서는 일상의 위기 관리가 최우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경제가 나쁘더라도 외교에서 돌파구가 생기거나 안보 상황이 나쁘더라도 경제 성장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뉴 노멀에서는 이러한 돌파구들이 안 보인다. 모든 분야가 침체되어 있고 비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이를 인내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주고 분열하고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지도자들의 의무다. 중요한 것은 뉴 노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본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아산정책연구원 원장
함재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