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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6일 터키 군부의 쿠데타가 6시간 만에 끝났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자뿐 만 아니라 그의 권위주의 통치에 반대했던 시민들까지 거리에 나와 탱크에 맞섰다. 정치개입 군부에 대한 성숙한 민주 시민의 승리였다. 그런데 쿠데타 자체도 꽤나 허술하게 조직된 듯 보였다. 15일 밤 쿠데타 군이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다리와 공항, 앙카라의 방송국과 국회의사당을 장악한 지 2시간도 못돼 진압군이 출동했고 쿠데타 반대 시위대는 점차 늘어났으며 동이 틀 무렵 상황이 종료됐다. 1960년대 이후 10년 주기로 네 차례나 쿠데타를 성공시킨 터키 군부인데 이번엔 왜 이토록 허망하게 진압됐을까?

 

세속주의자가 아닌 귤렌 종단의 장교들이 주도한 쿠데타

이번 쿠데타는 군부 내 소수 세력인 친 이슬람 성향의 장교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 페툴라 귤렌(Fethullah Gulen)이 이끄는 온건 수니 이슬람 종단 소속이다. 물론 일부 세속주의자 군인들도 쿠데타에 동조했다. 하지만 이번 쿠데타에는 ‘이슬람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세속주의 군부의 제동’이란 등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쿠데타 가담자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부정부패와 권력 사유화로 인해 사회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고 나머지 군부와 시민 다수의 전폭적인 쿠데타 지지를 기대했을 것이다. 지난 1년간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 ISIS와 쿠르드 분리주리자 테러가 10여 차례나 일어나 민심은 크게 흔들렸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테러 전담 인력을 정적 관리를 위한 공안 부서로 대거 이동시켰고 이때 생긴 치안 공백으로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5월 신망 받던 다부토울루(Ahmet Davutoglu) 총리가 대통령과 알력 끝에 갑자기 사퇴했고, 6월 새로운 총리가 시리아의 독재자 아사드와 관계 개선을 표명하자 민심은 최악으로 치달은 듯 했다. 그러나 이슬람 권위주의 정권을 전복하려던 소수 장교들은 주변 동료의 의중과 성숙한 민의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터키 군부는 공화국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강경 세속주의 세력이며 이슬람주의와 쿠르드 민족주의 세력을 국가 통합의 가장 큰 적으로 여긴다. 이들은 정국 불안정을 빌미로 1960년, 1971년, 1980년, 1997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치 질서를 재편했다. 특히 터키 이슬람 정당은 1970년 처음 결성된 이래 1971년, 1980년, 1998년, 2001년 군부에 의해 네 차례 해산됐다.

하지만 2003년 에르도안의 이슬람 정의개발당(AKP) 정부가 출범하면서 세속주의 군부는 급격히 약화됐다. 에르도안 정부는 국가전복 혐의로 전·현직 군 거물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에르게네콘(Ergenekon)이란 급진 세속주의 비밀 결사체가 쿠데타를 모의하다 적발되면서 군부의 정통성이 크게 훼손됐다. 다수의 군 장성이 포함된 관련자들은 시민 운동가를 암살하고 정부기관을 폭파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후 군 개입을 유도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군부 내 반대 세력이 제거되고 남은 자리를 친 이슬람 성향의 군인들이 조금씩 메워갔는데 대부분 귤렌 종단을 따르는 이들이었다.

 

과거의 동지에서 오늘의 적으로: 에르도안과 귤렌

귤렌은 원래 에르도안의 후원자였다. 2001년 이스탄불 시장 출신 에르도안이 정의개발당을 창당해 시장 경제와 전통 가치의 조화를 강조하자 귤렌은 적극 지지했다. 두 사람은 동병상련을 겪은 터였다. 1997년 쿠데타 직후 군부가 이슬람 세력 탄압을 본격화하자 1998년 당시 이스탄불 시장이던 에르도안은 이슬람을 고취하는 시를 낭송했다는 이유로 4개월 간 투옥됐고, 1999년 귤렌은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귤렌은 1970년대 말 자신의 이름을 딴 종단을 세워 이슬람 교육의 확산을 목표로 ‘귤렌 운동’을 이끌고 있다. 귤렌의 교육기관을 거친 인재들은 검·경찰과 언론 분야에 진출해 ‘귤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귤렌은 1980년대 외잘(Turgut Ozal) 대통령의 중도우파 모국당(ANAP)을 후원하면서 정치인과 교류를 시작했다. 터키에는 이 외에도 누르(Nur), 낙쉬벤디(Naksibendi)와 같은 수니 이슬람 종단이 있으며 지방의 중소 규모 사업가나 상공인 계층이 주된 신도 층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도 에르도안과 귤렌은 세속주의 세력에 맞서는 동지였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와 귤렌이 권력에 집착하는 에르도안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갈등이 불거졌다. 2013년 에르도안 정부는 귤렌과 가까운 검·경찰 간부를 해고하거나 구속했고 귤렌 종단 산하의 언론사와 교육 기관을 폐쇄했다. 2016년 1월 터키 당국은 귤렌을 국가전복 혐의로 기소했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선거주의 오류

1994년 이스탄불 시장으로 선출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에르도안은 깨끗한 시정 운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이슬람주의자이지만 반서구화 대신 민영화, 시장화, 세계화를 지지하고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작은 국가, 법치, 다원주의를 강조했다. 2002년 총선 압승 후 이슬람 정당 단일정부를 이끌면서 군부의 정치개입 금지, 사형제와 고문 폐지, 쿠르드어 방송허용 등의 개혁을 이뤄냈고 터키를 무슬림 민주주의의 모델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총리를 3차례 연임하고 10년 넘게 장기 권력을 누리자 점차 권위주의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4년 터키 역사상 처음 실시된 직선제 대선에서 5년 임기로 선출된 에르도안 대통령은 현재 터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장본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2016년 7월 실패한 쿠데타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6000여명의 숙청을 진행하면서 자신을 52%로 당선시킨 국민이 원하는 바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다수결 원칙에 따른 선거결과 승복은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다. 하지만 과반수 득표로 당선이 됐다고 해서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주장은 대의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오류이다. 민주주의란 당선자를 선택하지 않은 소수의 의견을 보호하고 이들과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주의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란 걸 놓치고 있다.

* 본 블로그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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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 중동연구프로그램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 중동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외교부의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국제개발협력 등이 있다. 저서로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Asan Institute 2012, 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혁명의 우발성과 다양성: 2011년 ‘중동의 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산정책연구원 이슈 브리프, 2011), “세계화 시기 자본의 민주적 함의: 이슬람 자본의 성장에 따른 무슬림 포괄 정당의 부상에 대한 이론적 고찰” (국제•지역연구, 2010),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