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Pax Europaea1의 위기: 주권과 통합 간의 갈등

서론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은 지역 통합에 있어서 교과서 같은 체제이다. 냉전이 끝난 직후인 1993년 마스트리흐트(Maastricht) 조약과 함께 출범한 유럽연합은 초국가적 정치-경제 연합으로, 인류사상 최악의 전란을 20세기에 두 번이나 겪은 전후 유럽을 안정화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번영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결과 먼저 낮은 단계의 통합인 단일 경제시장을 이룬 다음 이를 바탕으로 더 높은 단계의 정치 통합을 지향하는 유럽연합의 로드맵은 지역 통합을 고려하는 여타 국가들에게 귀감이 되어 왔다.

동북아의 지역 통합 모델로는 한국이 제안한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Northeast Asia Peace and Cooperation Initiative)과,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2009년 제안한 동아시아공동체(East Asian Community)가 있다. 지역 통합은 안보 정책과 대외 경제 정책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요소이며, 한국에겐 특히 통일 후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안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안이기도 하다2.

그러나 현재 유럽연합의 위기는 이러한 지역 통합 모델이 과연 우리가 따를만한 것인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2009년 시작된 유로존(Eurozone)3 경제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2014년 일어난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슬람 테러 공격으로 인한 안보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기에 대규모 난민 유입까지 겹쳐 유럽연합은 힘겨워하고 있다.

언젠가는 유럽연합이 이 위기를 극복하겠지만 그 때 유럽연합의 모습은 지금과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역설적으로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연합이 추구하는 ‘더 긴밀한 통합(an ever closer union)’의 반작용에서 비롯된다. 더 긴밀한 통합은 회원국들의 주권을 제한하고 분담 비용을 늘림으로써 유럽연합에 회의적이고 무슬림과 난민에게 적대적인 극우세력이 부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줬다. 특히 진보적인 북유럽국가들에서 일어나는 극우세력의 제도권 진입은 유럽연합의 개방성과 자유주의 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6월에는 사상 초유의 유럽연합 탈퇴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영국의 탈퇴 움직임과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는 유럽연합 회원국 모두가 더 긴밀한 통합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드러낸다. 국가 주권을 우선시하며 낮은 단계의 통합을 선호하는 영국은 유럽연합의 긴밀한 통합 움직임에 반발하여 곧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영국의 탈퇴가 현실화 될 경우 유럽연합은 더 강한 통합을 선호하는 그룹과 연합을 탈퇴하려는 그룹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공동체이자 정치적 국가연합으로서 유럽연합이 처한 근본적 위기는 반세기 넘게 지속된 통합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가 주권이라는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데 있다. 유럽연합 추진력의 근거는 회원국의 자발적 주권 포기에 있다. 주권 포기의 반대급부로 더 큰 안보적-경제적 이익이 회원국에 제공됐기 때문에 유럽연합은 현재까지 지속돼 왔지만 이를 더 이상 보장할 수 없게 되자 곧바로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작금의 위기는 지역 통합을 고려해야 하는 한국에게는 주권을 보장하는 낮은 단계의 지역 통합이 더 지속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유럽연합의 성공과 위기 요인

유럽연합이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동시에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은 EU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발전해 온 배경에 비추어 보면 아이러니하다. 유럽연합의 모체는 1957년 설립된 유럽공동체(EC: European Community)이다. 관세 철폐와 통행의 자유를 통해 서유럽 지역을 무역블럭화하며 시작된 유럽공동체는 냉전 종식 뒤인 1993년 회원국들이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일괄 조인하면서 유럽연합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하였다.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유럽국가들이 초국가적 연합을 결성하는데 주춧돌 역할을 하였고, 다음 단계로 공통 화폐 유로(Euro)화를 쓰는 유럽 경제통화연맹(EMU: Economic Monetary Union)이 출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EU는 1999년 유로존(Eurozone)의 정식 출범 이후2003년 니스 조약과 2009년 리스본 조약을 잇달아 체결하면서 경제공동체뿐만 아니라 정치공동체의 성격을 확고히 하였다. 그 결과 1993년 당시 13개였던 회원국은 2015년 말 28개 국가로 늘어났으며, 초창기 서유럽 국가 중심이었던 유럽연합은 동유럽의 변방 국가까지 범위를 넓히게 됐다.

‘Pax Europaea’를 구가하던 유럽 연합은 2009년 유로존 위기로 인해 전성기를 지탱하던 주요 정책 기조들이 흔들리면서 위기에 처해 있다. Pax Europaea의 대표적 정책 기조는 셋으로 요약될 수 있다. 유럽연합 내 국경을 ‘사실상’ 철폐하고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솅겐(Schengen) 조약4, 유로화를 사용하는 경제통화연맹, 그리고 유럽연합의 저변을 꾸준히 확대한 확장 정책(Expansion Policy)이다. 이 셋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첫째, 솅겐 조약이 국경을 ‘사실상’ 철폐하고 이동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유럽 국가의 주민은 일자리와 주거지를 찾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회원국 단위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는 약화되고 유럽 시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강화되었다. 민족주의의 약화는 유럽 사회 내 종교적-인종적-성적 소수 집단의 권리를 강화하는 순기능으로 이어져 유럽 사회의 자유주의적 가치와 개방성을 공고히 했다.

둘째, 유로화의 도입은 일부 경제 선진국만 향유해 온 거시경제 안정과 자본시장의 혜택이 경제적으로 덜 발전된 회원국들로 확대되는 기회를 제공했다.5 2009년 유로존 경제 위기 이전까지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남유럽국가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독일, 영국,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 유로화를 쓰기 위해선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재정적자를 줄이는 등 거시경제 안정화 조치를 취해야 했으나, 이는 대부분의 유럽연합 국가들이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유럽연합 변방의, 경제적으로 덜 발전된 국가들에게 유로화는 선진 경제로 진입할 수 있는 확실한 지름길이었다. 유로화의 이런 매력은 유럽연합의 친시장적 정책과 사회 개방성이 유럽대륙 전체로 확산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솅겐 조약과 유로화가 유럽연합의 내부 결속만 다진 것은 아니었다. 이 둘은 Pax Europaea를 지탱하는 소프트파워의 바탕이 되었다. 보통 새롭게 출범하는 거대 국가 세력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유-무형의 견제를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팽창하는 초국가연합체 유럽연합 앞에서 주변 국가들은 출범을 경계하기는커녕 거꾸로 연합의 가입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유럽연합은 솅겐 조약과 유로화라는 정책만으로 주변 국가들의 긍정적 태도를 이끌어냈고, 이는 안보 환경의 안정으로 이어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냈다.

세 번째 기조인 확장 정책은 이러한 유럽연합의 소프트파워에 기반한 외교안보 정책을 의미한다. 유럽연합은 대외 환경 안정을 위해 가입 과정에서 정치적-경제적 인센티브를 활용해(Brainiff, 2011) 신청국의 내부 개혁을 촉진한다. 유럽연합이 제시하는 인센티브를 얻으려면 가입 신청 국가는 인권과 민주화, 그리고 법치를 보장하는 법률 제정, 관련 정책 개정 같은 까다로운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를 통과한 신규 가입국의 국민에겐 ‘유럽 시민’의 자격이 주어지며, 이들은 유럽연합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거주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6. 서유럽 선진국에서 살면서 취업할 수 있는 유럽연합 주민의 권리는 주변 국가 국민들이 EU를 긍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van Selm and Tsolakis, 2004).

이렇게 효과적으로 사용되던 유럽연합의 소프트파워는 2009년 유로존 금융 위기가 시작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의 존폐가 거론될 정도로 경제가 악화되자 자연스럽게 연합 가입의 이점이 줄어들었고 외부 안보 환경도 뒤따라 악화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2013년 말 러시아의 대규모 경제 지원을 받게 된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럽연합 가입의 첫걸음인 제휴협정(association agreement)을 해지하면서 촉발됐다. 연합의 메리트가 떨어지자 러시아로 돌아선 것이다.

유럽연합의 안보 위기는 말 그대로 내우외환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충돌은 유럽연합의 확장 정책이 한계에 직면했음을 의미하는 외환(外患)이다. 내부로부터의 위협은 난민과 테러의 문제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와 2016년 3월 브뤼셀 테러를 자행한 유럽 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유럽 사회의 개방성과 세속주의를 혐오하고 적대시한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유럽연합의 소프트파워가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난민 사태는 유럽연합의 인도주의적 가치를 시험대에 올렸지만 수십만 난민을 한꺼번에 받아들인 메르켈 총리의 결단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유입된 대규모 난민들의 이동으로 솅겐 조약에 따라 ‘사실상’ 없어진 국경선들이 부활하면서 유럽연합 내부 질서가 혼란에 빠지게 됐다.

유럽연합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세 가지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더 강한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유럽 내부의 강한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진보 성향의 북유럽국가에서 유럽연합에 회의적이고 난민을 적대시하는 극우세력이 부상하기 시작했고, 낮은 단계의 통합을 선호하는 영국은 곧 탈퇴 찬반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영국이 탈퇴할 경우 1957년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공동체가 창설된 이후 처음으로 유럽연합은 회원국을 잃게 된다. 유럽연합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처해 있다. ‘Pax Europaea’의 근간인 세 정책 기조를 포기할 경우 EU는 확장성과 내부 결속력 모두 잃게 된다. 하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 더 강한 통합을 추진하면 역으로 내부 반발이 커져 유럽연합이 붕괴될 수 있다. 유럽연합이 처한 딜레마를 차례로 분석하고자 한다.
 

유로존 경제 위기

2009년부터 시작된 유로존 위기는 ‘하나의 시장을 넘어 하나의 경제로 도약하려던’ 유럽연합의 발전 어젠다에 제동이 걸린 첫 번째 위기이다. 경제 위기의 중심에는 유로화가 있다. 유로화는 단순히 회원국들의 화폐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중앙은행과 하나의 통화 정책을 의미하며, 유럽연합을 지탱하는 경제적 근간이다. 1993년 발효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유럽공동체를 근간으로 한 유럽연합만 출범한 게 아니다. 공동 화폐인 유로화를 쓰는 유럽통화연맹(European Monetary Union)도 함께 출범하였다. 그만큼 유럽연합과 유로화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유로존 경제 위기의 진정한 해결은 유럽연합의 내부 결속이 유지되고, 통합 재무 정책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2009년 이후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던 유로존 국가7들은 유로화를 포기하는 대신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긴축 조치를 단행 중이다.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민간∙공공 부문이 임금 삭감 대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수용함으로써 경제를 안정화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리스는 대대적인 구제를 받았음에도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스는 2009년 유럽연합과 IMF를 통해 첫 구제금융을 받은 후 재정적자를 GDP의 15%대(2009년)에서 2%대(2013년)까지 줄이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반대로 실업률이 유로존 사태 이전의 7.5%에서 27.5%로 치솟았다8. 심각한 실업 문제로 민심이 이반하면서 2015년 초에 경제 긴축을 반대하는 시리자(Syriza) 극좌 정권이 들어섰다. 시리자는 ‘그리스 사태(Grexit)’라고 불리는 긴축정책 중지를 선언하면서 유럽연합을 위협하였다.

유럽연합과 독일의 강한 압박 앞에 시리자 정권이 채권단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으로 그리스 사태는 일단락 되었으나, 문제는 긴축정책에 대한 반감이 유럽연합 내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유로존 국가들은 높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긴축정책을 수년간 계속해 왔다. 그 결과 경제 성장이 악화되면서 부채 비율을 낮출 수 없게 되고 이는 높은 실업률과 사회 불안정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유로존 경제 안정화를 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유럽연합 내 일부 국가들이 유로화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9. 평가절상된 유로화를 포기하면 수출이 촉진되어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등 여러 경제 분야 석학들은 유럽연합의 긴축정책은 유로존의 디플레이션을 심화시켜 남유럽에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도 긴축정책이 정치 불안을 야기해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의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일관되게 유로화를 고수한다. 경제학자들의 조언과는 반대로 유로존 경제 안정화를 위해 유럽연합이 내놓은 해법은 ‘통합경제정책’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의 말대로 “유로화는 우리의 공동 운명이며, 유럽은 우리의 공동 미래”라는 것이다. 즉 유로화와 유럽연합은 뗄래야 뗄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유럽연합 수뇌부의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유로화와 유럽연합을 분리하고, 경쟁력이 낮은 국가들에게 유로화를 포기하는 선택을 허용하라고 조언하지만 유럽연합의 입장은 그와 정반대로 긴축정책을 기약 없이 지속하는 한이 있어도 유로화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의 말대로 유로화는 경제 정책이 아니라 애당초 유럽 통합을 위한 정치 프로젝트였다. 사실 유럽통화연맹 출범 이전부터 경제학자들은 유로존이 단일통화권이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해왔다. 단일통화권 경제 주체들 간에 무역의존도가 높고, 노동력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경기순환 주기가 비슷해야 안정적인 통화연맹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경우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배병인, 2011).

유로존의 안정화를 위해 현재 유럽연합은 은행동맹(Banking Union)과 재정동맹(Fiscal Union)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 안정화를 위해선 경기 순환에 따라 일어나는 경제 쇼크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통일된 재정 정책 즉 재정동맹이 필요하다. 또 유로존 위기가 경쟁력이 낮은 회원국들의 금융기관에 예치돼 있던 자금이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로 빠르게 유출되는 뱅크런(Bank Run)때문에 촉발되었다는 점을 감안해 회원국 단위로 관리돼 온 금융 부분을 유럽연합이 감독하는 이른바 은행동맹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일단 은행동맹은 상당 부분 이루어진 상태이다. 단일감독체계(SSM: Single Supervisory Mechanism)와 단일은행청산기구(SRM: Single Resolution Mechanism)는 2014년 출범하였고, 국가 재정과 금융기관의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유로안정화기구(ESM: European Stability Mechanism)도 설립되었다. 그러나 은행이 파산할 경우 예금을 보전해 주는 단일예금보험(SDS: Single Deposit Scheme)은 독일이 반대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주로 채권시장에서 필요한 자금을 조성하는 ESM10과는 달리 국가 재정에서 지원되는 예금보험은 재정이 부실한 남유럽국가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채질할 것이라고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재정동맹도 단일예금보험과 같은 이유로 독일과 북유럽국가들이 반대해 지지부진하다. 유로존 금융 위기의 구조적 원인을 크게 보면 북유럽과 남유럽의 경제력 차이에서 비롯된 재정적 불균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유럽연합의 경제원조기금(Structural Funds and Cohesion Fund)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리, 즉 주권의 본질적 부분을 포기하는 재정동맹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실현 가능성 자체가 의문시 되고 있다. 남유럽국가들이 주권 포기를 우려한다면 북유럽 국가들은 남유럽 국가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이들 나라의 부채를 궁극적으로 책임지게 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유로존의 빠른 안정화를 위해선 은행동맹과 재정동맹을 통한 더 강한 경제적 통합이 필수적이지만, 사실 이미 늦은 감마저 있다. 재정동맹과 단일예금보험의 사례처럼 더 강한 경제 통합을 위한 핵심 조치들은 아직 취해지지 않고 있다. 유로화의 안정을 둘러싼 갈등은 겉으론 회원국 간 경제력 차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론 통합의 속도, 즉 국가 주권을 경제 안정화를 위해 얼마나 포기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원국 간의 이견에서 기인한다. 2009년 같은 경제 위기가 다시 닥친다면 현재의 유럽연합이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우크라이나 사태는 유럽연합의 확장 정책(Enlargement Policy)과 전통적 영향 영역(sphere of influence)을 유지하려는 러시아의 충돌로 인해 일어났다. 전체 인구의 반이 러시아계이며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입장에서 지정학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나라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유럽연합의 알력은 친러 정권을 붕괴시킨 2014년 유로마이단(Euro Maidan)혁명 이전부터 치열하였다. 푸틴 대통령은1999년 취임한 뒤 유럽공동체와 유사한 유라시아 경제동맹(Eurasian Economic Union)을 창설하고 우크라이나 같은 구소련 국가들에게 가입 압력을 넣는 등 전통적 영향권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서방세력에 대한 지원을 등한시 하다가(Sherr, 2013)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내전이라는 러시아의 기습 도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이 펼쳐지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전통적 영향권뿐 아니라 가치관을 둘러싼 충돌이기도 하다.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연합이 유럽대륙을 통합하고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있던 배경에는 유럽연합의 기본 가치인 자유, 인권, 평화, 법치에 동의하는 모든 유럽 국가에게 가입을 허용해 온 개방성이 자리잡고 있다. 이로 인해 1957년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공동체가 출범할 당시 6개였던 회원국이 2015년 현재 28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개방성을 자국 영향권 내에 있는 국가들을 흡수하려는 전략으로 간주했다. 1993년 유럽연합 출범 이후부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유럽연합이 미국의 입김이 강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나토)를 대체할 것으로 보고 이에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2004년 이후 전통적 영향권 내에 있다고 믿었던 폴란드와 발틱 3국,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차례로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러시아는 생각을 바꿨다. 러시아는 유럽연합의 확장을 전략적 측면에서 재고하면서 이를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Monaghan, 2014).

이러한 인식의 저변에는 러시아 국민들의 ‘대국에 대한 갈망’이 깔려있으며, 이를 잘 대변하는 이가 푸틴 대통령이다. 그의 최대 외교안보 목표는 러시아를 구소련에 버금가는 강대국으로 재건하는 것이다. 현재의 영향권을 지키고 궁극적으론 구소련의 전통적 영향권을 최대한 되찾는 것이 중장기적 목표이다.

게다가 유럽연합이 강조하는 인권과 법치도 러시아 기득권 세력이 추구하는 권위주의 정책과 충돌한다. 러시아의 전통적 안보관으로의 회귀, 그리고 점점 강해지는 러시아 사회의 권위주의적 특성은 유럽연합과의 공존을 어렵게 만들어 갔다.

러시아가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유럽연합은 기존의 소프트파워를 바탕으로 하는 확장 정책을 고수했다. 2003년 유럽연합은 오늘날 공동외교안보정책(CFSP: 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의 바탕이 되는 유럽안보전략(ESS: European Security Strategy)을 채택했다. ESS는 유럽연합 공동안보정책의 목적과 도구를 각각 안보 체제 확립과 다자 간 협력으로 규정하고, 가장 심각한 위협을 국가가 아닌 초국가적 위협(transnational threats)으로 설정했으며11 군사적 억제력은 회원국 주권의 관할하에 두도록 했다.

‘자체 군사력이 없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에게 위협되지 않는다’는 유럽연합의 믿음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하드파워가 없는 유럽연합은 경제 제재만으로 러시아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려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2014년 7월과 9월 추가 집행된 유럽연합의 경제 제재는 도발 억제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고, 첫 번째 휴전협정인 민스크 휴전(Minsk Protocol)도 친러시아 반군의 도발로 즉각 와해되었다. 유럽연합의 무력함은 두드러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의 추가 도발을 막은 힘은 유럽연합이 아니라 미국과 나토에서 나왔다.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마찰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무장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 진정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강경 대응은 독일과 프랑스의 협상력을 높여 2015년 2월 러시아가 민스크 2 협정(Minsk Agreement 2)에 서명하도록 압박했고, 이 협정은 아직 유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군사력 없는 유럽연합은 허구라는 쓴 교훈을 남겼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일단 진정되었지만 이 사태를 기점으로 유럽연합의 안보 전략에서 확장 정책의 비중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 가입을 위한 기본 조건은 가입 희망국가가 지리적으로 유럽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인데, 동쪽을 향한 확장은 러시아에게 막혀 불가능해졌고 따라서 확장 정책도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대신 신규 회원국인 발틱 3국과 폴란드 등 동유럽 회원국을 러시아의 위협에서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이들 국가를 방어하려면 소프트파워에만 의존하는 유럽연합의 현재 안보 전략은 수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요원해 보인다. 유럽연합은 기본적으로 군사력을 배제하는 민간 안보 체제를 고수한다. 이 배경에는 공동안보전략이 회원국의 주권 영역인 ‘국방’을 침해하게 되는 정치적 부담과, 미국을 구심점으로 유럽안보를 맡고 있는 나토의 존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는 군사적 억제력을 배제한 유럽연합 안보 전략의 허점을 정확하게 찔렀다고 볼 수 있다. 유로존 안정화와 마찬가지로 유럽 회원국의 가장 민감한 주권 사항인 국방의 통합을 과연 현재의 유럽연합이 이뤄낼 수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이에 대한 해결이 늦춰질수록 유럽연합의 안보 위기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난민 사태와 이슬람 테러 공격. 유럽사회의 우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유럽난민 문제도 아주 시급한 이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전란으로 발생한 수많은 난민들이 유럽으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그림 1). 지중해를 통해 밀입국하려다 숨진 난민의 수는 2013년 600여 명이었지만 2014년에는 3,500여 명으로 급증했고 2015년에도 비슷한 수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Archick, 2015).

그림 1. 난민 유입 주요 루트

그림 1. 난민 유입 주요 루트

2015년 9월 초 엄마와 터키에서 그리스로 밀입국 하려다 배가 전복돼 익사한 3살짜리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라의 사진은 유럽의 여론을 크게 자극해 메르켈 총리가 일방적으로 난민 수용을 결정 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난민 사태에는 인도주의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난민 유입으로 인해 유럽에선 인구, 사회, 경제 등 거의 모든 면에 걸쳐 급진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난민 유입을 반대하는 극우세력이 유럽연합 전역에서 급부상하는 등, 난민은 유럽연합 앞에 놓여진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이에 최근 유럽연합은 난민의 중간 집결지인 터키가 난민의 월경을 막고 자국에 대신 수용하는 대가로 유럽연합 가입과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는 협상을 타결하였다. 인권 침해와 정치적 탄압 문제로 오랫동안 터키의 가입에 부정적이던 유럽연합이 급격히 입장을 바꿀 만큼 난민 문제는 중대한 현안이다.

유럽에 유입되는 난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13년 43만 명이었던 난민 신청자는 2014년 63만, 2015년에는 무려 130만 명 이상이 됐다.12 대규모 난민 유입은 유럽연합을 크게 뒤흔들고 있다. 일단 가입국 간 통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솅겐 조약과 난민이 도착한 첫 회원국에서만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더블린 조약(Dublin Regulation)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난민들의 유입루트인 유럽연합 회원국은 주로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과 불가리아다. 더블린 조약에 따르면 매년 유입되는 수십만 난민들을 이들 국가들이 ‘담당’해야 하는데 이들 나라들은 당연히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이는 결국 한시적으로 더블린 조약을 유예하는 선언으로 이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난민들이 선호하는 독일과 영국으로 가기 위해 중간에 있는 국가들을 불법 월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유럽연합의 내부 국경을 부활시켜 검문과 검색을 강화하는 것인데, 이는 솅겐 조약의 실질적 폐지를 의미한다. 2015년 9월부터 독일 정부는 대규모 난민 유입으로 몸살을 앓는 뭔헨에서 가장 가까운, 같은 솅겐 조약 가입국인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한시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13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인 독일에서까지 솅겐 조약 붕괴의 구체적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난민 사태는 유럽 사회의 질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유입된 난민은 유럽의 인구 구조를 극적으로 바꾸고 있으며, 일부 유럽 국가의 상황은 심각하다. 현재 유럽에 들어오는 난민 중 66%가 남성이며, 미성년자의 경우 남성의 비율은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고 있는 스웨덴에서는 16~17세의 성비가 여성 100명 당 남성 123명이 될 정도로 성 균형이 붕괴되었다14. 이런 급격한 변화는 장기적으로 유럽 사회의 인구 구조를 급변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 내 무슬림 인구는 전체 인구의 6%이며, 2030년에는 8%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15. 이들 상당수가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벨기에, 이태리 등 유럽연합의 주요 국가에서 살고 있다. 난민 사태와 이민을 통한 계속적인 유입, 그리고 높은 출생률로 인해 유럽 내 무슬림 인구의 평균 연령은 32세로 유럽 인구의 평균 연령인 40세보다 8년이나 젊다.

젊은 무슬림 인구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유럽 경제를 활성화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난민들이 유럽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OECD16에 의하면 독일이 새로 받아들인 난민을 정착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향후 2년간 GDP의 0.5%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의 비용은 더 높아져 스웨덴의 경우는 GDP의 0.9%가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무슬림 인구는 장기적으로 노령화되고 있는 유럽 노동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겠지만, 이들이 노동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때까지 유럽 사회가 상당한 경제적 비용을 치를 것은 자명하다.

더 심각한 것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무슬림 인구와 유럽 사회의 문화적 충돌인데, 이는 난민들의 성공적인 유럽 사회 안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 이면에는 종교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문화와 유럽 사회 특유의 개방주의와 세속주의 간의 갈등이 있으며, 이로 인해 유럽 내 무슬림들의 경제적-사회적 소외가 가속화 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이 무슬림 이민자 2세나 3세까지 대물림 된다는 점이며, 유럽 사회를 위협하는 이슬람 테러리즘은 이런 구조 속에서 배양된다.

특히 프랑스가 이슬람 테러조직의 주 공격 대상이 되는 이유는 프랑스 사회의 전통적 사회규범인 비종교주의(Laicite) 와 이슬람 문화 간의 갈등 때문이다. 대표적인 현안이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기 위해 쓰는 히잡(hijab)이다. 프랑스 공립학교나 공공조직에서 종교적 상징은 착용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쓸 수 없다. 이슬람에서 여성의 정숙함의 상징이기도 한 히잡은 유럽 사회의 개방적 사회문화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종교적 상징성의 착용 금지는 일부 유럽 무슬림에게 종교적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다문화를 포용하면서도 동시에 종교와 국가를 분리하는 정교분리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유지한다. 이슬람과 유럽 사회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대립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 유럽 무슬림들이 IS의 급진 종교이념에 쉽게 경도되는 현상은 이상하지 않다. 이들은 IS 의 급진적 원리주의에서 유럽의 세속주의로 인해 약해진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는다. 여기에 매력을 느낀 상당수 유럽 무슬림들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IS전사로 내전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중동의 전장에서 군사훈련과 이념 교육을 받은 후 유럽으로 귀환해 지하드(성전)를 계속한다. 2015년 12월 현재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IS전사로 뛰는 서유럽 출신 지하디스트17들은 약 5,000명으로 이중 80%가 프랑스, 독일, 영국, 벨기에 4개 국가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다(The Soufan Group, 2016). 유럽 안보당국은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 중 일부가 이미 귀국해 대규모 테러를 벌일 것을 우려해 왔는데, 우려는 2015년 11월 파리 테러와 2016년 3월 브뤼셀 테러로 현실화 되었다. 최근 이 두 사건의 주범들이 시리아 IS에 가담해 활동하다 돌아온 벨기에∙프랑스 출신 중동 이민자 2세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IS에서 활동 중인 유럽 출신 지하디스트들의 숫자에 비추어 볼 때 이 두 공격은 시작일 뿐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향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하디스트들의 무차별 테러는 유럽과 이슬람의 갈등 프레임을 확대시켜 난민들을 유럽의 새로운 소외계층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래는 더욱 비관적이다. 현재 난민 사태와 테러 공격으로 인해 유럽 사회 내 이슬람과 난민에 대한 혐오는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전통적으로 난민에 관대했던 유럽의 진보적 국가들에서도 극우세력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독일과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국가에선 개방적 난민 정책에 대한 강한 반발 여론으로 인해 극우세력에 대한 지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표1).

표 1. 국가별 극우세력의 성장

Source: http://www.express.co.uk/news/world/629022/EU-migration-crisis-far-right-parties-Europe-Germany-Sweden-France

Source: http://www.express.co.uk/news/world/629022/EU-migration-crisis-far-right-parties-Europe-Germany-Sweden-France

메르켈 총리의 대규모 난민 수용 결단은 당시 전 세계에서 칭송을 받았지만, 진보적이던 북유럽국가에서 ‘극우세력의 확산’이라는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초래했다. 극우세력은 이슬람과 난민에게만 적대적인 것이 아니다. 북유럽국가의 극우정당들은 대다수가 자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원하기 때문에 EU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 지고 있다. 덴마크의 덴마크 국민당(DF), 네덜란드의 자유당(FVV), 오스트리아의 자유당(FPO)은 모두 유럽연합에서 부분 또는 완전 탈퇴를 원한다. 이렇게 성장한 반(反) 유럽연합 세력이 각 회원국의 정치권에 큰 영향을 미침에 따라 유럽연합에 대한 전반적인 회의감, 즉 ‘유럽회의론(Euroscepticism)’이 유럽연합 핵심국에 확산되고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영국이 탈퇴를 결정한다면 유럽연합이 단순히 회원국 하나를 잃는 것을 넘어 연합의 의미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Brexit”)

영국은 독일·프랑스와 함께 유럽 대국 중 하나지만 프랑스의 반대 때문에 유럽공동체(EC) 출범 18년이 지난 1975년에 비로소 유럽공동체에 가입할 수 있었다18.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2016년 영국의 데이빗 카메론 수상은 유럽연합 탈퇴 찬반 국민투표를 2016년 6월 23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카메론 수상이 유럽연합과 영국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민투표를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영국의 탈퇴를 희망해서가 아니다. 2009년 유로존 금융 위기 이후 유럽연합의 정책은 점점 더 긴밀한 통합 방향으로 향해 가는데 반해 영국 집권 보수당의 반발도 비례해 커가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유로존 경제 안정화를 위해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은행동맹과 재정동맹이 런던의 금융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불만과 우려가 크다.

영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유럽회의론이 강했다. 현 영국 보수당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마가렛 대처 수상은 1988년 이미 유럽의 통합으로 인해 국가의 주권이 제한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하였다19.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비중과 영향력이 큰 중요 회원국이지만, 유럽연합의 성격과 목적을 규정하는 1957년 로마조약 또는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TFEU: the Treaty on the Functioning of the European Union)’에 제시된 핵심 목표, 즉 ‘점점 긴밀해지는 연합(‘an ever closer union’)’에 대해선 항상 회의적이었다. 영국은 유로존 금융 위기와 난민 사태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자국의 주권 보호에 민감했고 이에 따라 낮은 단계의 연합을 선호해 왔다. 단일시장(single market)은 영국을 지금까지 유럽연합에 잔류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이런 경제적 이익을 위해 영국은 ‘어느 정도의 주권 제한’이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2009년 이후 경제 위기와 안보 위기가 가중되면서 유럽연합은 더 강한 통합으로 나가기 시작하였고, 이에 영국를 비롯한 기타 회원국들에 대한 추가적 주권 제한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기로에 서게 된 카메론 수상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에 대한 범국민적 지지 또는 반대를 확인해야만 하였다. 유럽연합 잔류를 원하는 카메론 수상은 영국의 주권 보호를 위한 일련의 예외적 특혜를 유럽연합에 요구하였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는 유럽연합의 ‘점점 긴밀해지는 연합’을 위한 비용 분담 의무에서 영국은 면제되었고, 영국 의회가 유럽연합의 법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돼 주권이 강화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유럽연합이 추진 중인 은행동맹에 영국이 불참하고 영국의 자금이 유로화 안정을 위해 쓰이지 않을 것임을 보장받았으며, 유로화가 아닌 독자 화폐를 사용하는 회원국에게 유럽연합이 정책적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다짐 받았다20.

하지만 유럽연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 탈퇴 지지 여론과 잔류 여론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표221). 영국 내 회의론자들은 더 긴밀한 통합으로 나아가는 유럽연합의 움직임이 자국의 주권을 제한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더 높은 경제적-정치적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 것으로 믿는다22.

표 2. 영국 유럽연합 탈퇴 찬반 여론조사 결과(1977~2015년)

표 2. 영국 유럽연합 탈퇴 찬반 여론조사 결과(1977~2015년)

그렇다면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현재로서는 최소한 단기적으로 영국에 손해가 크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우선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단일시장을 잃게 되며, 탈퇴 후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재협상해야 하는 최악의 경우까지 생길 수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비회원국이 단일시장에 참여하려면 유럽연합의 규제를 준수하도록 하고 회원국들과 마찬가지로 일부 부담금을 내게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노르웨이와 스위스이다. 탈퇴할 경우 영국은 유럽연합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면서도 단일시장에 대한 접근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연합의 규제를 계속 준수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반대 이유 가운데 하나인 난민 정책도 탈퇴를 통해 개선되기보다 악화될 수 있다. 현재 도버해협 건너 영국의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프랑스 도시 칼레(Calais)에는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는 난민들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은 프랑스 정부가 난민들이 유로터널에 난입하거나 또는 페리를 타고 영국으로 밀입국 하려는 시도들을 막고 있지만,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프랑스가 방관할 가능성이 높다.

탈퇴에 따른 높은 대가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이를 강행할 가능성에 대해 유럽연합도 불안해 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영국에게 더 강한 통합 기조에 관한 예외를 사실상 허용했으며, 이는 향후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더욱 긴밀한 통합’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이 영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이유는 현 시점의 분열은 러시아를 더욱 호전적으로 만들고, 나아가 기타 회원국의 연쇄 탈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늘 자유무역을 강조하고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나라다. 이로 인해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 좀 더 비중을 두는 독일과 프랑스와 대립할 때가 잦다. 영국을 지지하는 네덜란드와 아일랜드 같은 중소 유럽 국가들은 영국이 탈퇴할 경우 당할지 모를 정책적 불이익을 걱정해 뒤따라 탈퇴할 수 있다.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더 긴밀한 통합’의 반작용에 대한 해법으로 일각에서는 ‘두 가지 속도’의 통합을 제시한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강력히 통합된 연합과 유로화 대신 단일 유럽 시장을 바탕으로 좀 느슨하고 유연하게 결합한 연합이 공존하는 방식이다23. 1993년 공식 출범한 이후 쉬지 않고 달려오던 유럽연합은 영국의 강한 주권 보장 요구 앞에서 일단 멈춘 상태이다. 영국을 잔류시키기 위해 유럽연합은 샤를 드골이 말했던 “대서양에서 우랄까지 더 긴밀해지는 유럽 국가들의 연합”이라는 이상을 포기하고 잠시나마 통합의 속도를 늦추는 것을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에 달려 있다. 만약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다면 EU는 소수의 국가를 중심으로 통합을 가속화 하는 ‘핵심 유럽(Kerneuropa)’24과 ‘기타 유럽’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유럽연합이라는 이상의 사실상 종말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유럽연합의 외부적 확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면, 영국 탈퇴 여부는 유럽연합의 내부적 결속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결론

유럽연합의 핵심적 정책 기조인 솅겐 조약, 유로화, 그리고 확장 정책은 현재 모두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이다. 유럽 경제의 중심인 독일은 남유럽국가들의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유로존 경제를 떠받치는 ‘최후의 지급자(payer of last resort)’ 역할을 거부하고, 남유럽국가들은 장시간 구조개혁에 지쳐가고 있으며, 경제 정책에 대한 주권을 실질적으로 상실하였다. 내부적으로는 몰려드는 난민들로 인해 솅겐 조약이 사실상 백지화 되었고, 북유럽국가들은 자국의 국경에 대한 주권을 포기한 상태이다. 외부적으로 유럽연합의 확장은 러시아로 인해 우크라이나에서 막혀 있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유럽연합은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더 강력한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 내부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한 상태이다. 더 긴밀한 통합을 위한 비용은 당장 지불해야 하지만 결실은 요원하고 불확실하다. 유럽연합 전반에 통합에 대한 회의론이 강하게 대두되는 것은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움직임은 이러한 통합 회의론을 잘 상징할 뿐 아니라 유럽연합이 처음부터 동상이몽의 국가들로 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처음부터 정치적 연합으로서의 유럽연합을 구상했다면 다른 한편에서 영국은 유럽연합을 단일시장으로만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럽연합이 오랫동안 황금기를 구가했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이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유럽연합은 지정학적 조건으로 형성된 문화적 동질성과 경제적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정치 연합을 도모하는 거대한 초국가 프로젝트이다. 난민 사태와 우크라이나 분쟁, 심지어 유로존 경제 위기도 현재 유럽연합이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 아니다. 유럽연합 위기의 근본 원인은 결국 20세기 최고의 정치경제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21세기의 초국가연합이 과연 17세기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phalia)에서 파생된 국가 주권이라는 근대적 한계를 넘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이다.

유럽연합의 위기는 지역 통합을 추구하는 다른 나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Pax Europaea가 보여준 긍정적 교훈은 지역 통합을 통해 안보와 경제가 신장하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사회적으로 가까워지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반목하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25. 하지만 작금의 위기는 지역 통합이 국가 주권을 보존하는 보수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긴밀하지만 작은 연합과 크지만 느슨한 연합의 갈림길에 놓인 유럽연합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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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현
고명현

여론・계량분석센터 / 사회정보관리연구프로그램

고명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여론·계량분석센터 사회정보관리연구프로그램 연구위원이다. 컬럼비아대학교 (Columbia University)에서 경제학 학사, 통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Pardee RAND Graduate School에서 정책분석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UCLA의 Neuropsychiatry Institute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사회 네트워크, 복잡계 사회적 상호작용, 질병의 지리공간 모델링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