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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트럼프의 ‘동맹 어법’ 해석

작성자
차두현
조회
62
작성일
26-02-0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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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설을 통해 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국제질서에 있어 유럽 동맹국들의 기여를 폄훼하는 한편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국가는 미국뿐이라고 주장했다. 1월 말 열린 기업가 사교모임 연설에서는 캐나다, 그린란드,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새로운 주()로 편입하기 원한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이미 1기 행정부 때부터 ‘동맹국들이 미국을 벗겨 먹고 있다(ripping off)’는 표현을 자주 써온 그의 이러한 어법은 과연 “미국과의 동맹을 신뢰할 수 있고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회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유럽 동맹국들은 ‘유럽군(European Solidarity Force)’ 창설 논의를 활성화하고 있고, 국내적으로도 한·미동맹에만 몰입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정적 측면에만 집중해서 보면 트럼프 행정부 대내외 정책의 난맥상은 더 가중될 것이고, 미국의 쇠락은 피할 수 없는 추세이며, 동맹 네트워크에 대한 미국의 신망은 회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가지는 가장 큰 문제점은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가 생겨날 당시의 위협, 즉 국제질서를 뒤흔들려는 권위주의·전체주의 세력들의 위협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면서 그런 위협과 타협하거나 편승하는 것이 실용적이라는 사고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딜레마는 보호해야 할 국제질서에 비해 미국의 군사력은 제한돼 있다는 사실이었고, 이 문제는 동맹국들의 부담 분담(burden-sharing) 없이는 해결할 수 없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국들에 대한 격한 비판은 일부 편견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모스크바의 위협을 경계하면서도 러시아산 가스 공급에 의존하던 모순적 행동, 중국 등 새로운 도전 세력에 대한 양다리 걸치기식 태도, 자체 군사력 증강에는 소극적이면서 미국의 기여만을 강조하는 무임승차 심리 등에 대한 미국의 불만을 반영하고 있다. 바이든 시대에 제기된 ‘격자무늬 동맹(Lattice-like alliance)’이나 ‘민주주의연대’ 개념 역시 어법은 점잖았지만 국제질서를 지키는 것이 미국만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 질서의 수혜자인 동맹국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있었다.

 

지역 및 국제질서 유지를 위한 분업 체계는 1990년대부터 미국이 동맹국들에 바랐던 것이고, 어떤 동맹국이 가장 잘 부응할 수 있는가에 따라 미국의 안보 공약이 차등화되는 시대가 이미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들을 비판하면서도 “유럽 동맹국들이 강력해지기를 원한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유럽 역시 트럼프 어법에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그 대응의 핵심은 동맹의 이완이나 이탈이 아니라 자체 능력 강화를 통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전반적인 방어력 향상이었으며 ‘유럽군’ 창설 움직임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다.

 

거칠기는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동맹의 이완이나 해체보다는 새로운 변환과 재편으로 봐야 하고, 제대로 된 동맹국 선별하기에 가깝다. 또한 파트너들의 형평성 있는 기여를 강조하는 정책은 향후 어떤 미국 행정부가 들어서든 그 기본틀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로서도 ‘자주’를 내세우며 우리 의제에만 몰입하는 것, 한반도의 외형적 평화에만 집착해 미·북 협상에 조급성을 드러내는 것, 주변국의 압력 회피를 명분으로 기계적 균형을 추구하는 것 등은 트럼프 어법이 그렇게나 경멸했던 또 다른 형태의 편승과 다름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 본 글은 29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차두현

부원장, 수석연구위원, 센터장

차두현 부원장은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겸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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