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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당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핵국가(nuclear power)로 지칭하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역시 같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용인(recognized)’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미 대선 기간 중 발표된 공화·민주 양당의 정강정책에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란 목표가 삭제됐다는 점, 조 바이든 행정부 기간 핵국가라는 명칭 자체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우려를 기우라고만 보기 힘들지만 이를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정책 자체의 변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재 핵확산금지조약(NPT)상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고 용인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5대 ‘핵무기 보유국(nuclear-weapon states)’뿐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등이 NPT 체제를 거부하면서 핵무기를 가졌지만 공식적으로 지위를 인정받은 건 아니고, 이러한 체제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핵무장 국가(nuclear-armed states)’나 ‘핵국가’ 등의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즉 상대방이 가진 핵능력을 인식하는 것과 핵 보유를 공식 인정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폭발 능력을 보였고, 핵무기를 투발할 다양한 수단(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방사포 등)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 위협이 없다고 인식한다면 미국이 우리에게 공약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의 존재 의미 자체가 사라진다. 북한 핵 위협에 대한 대응은 정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핵국가라는 표현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북한 핵 위협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다. 용인은 해당 국가가 핵무기를 계속 보유할 수 있도록 사실상 허용하는 것이다. 이는 불법적 핵무기 보유에 대한 징벌(국제제재 등)을 철회하는 소극적 용인에서 관계 정상화와 협력을 추구하는 적극적 용인(미국·인도 관계 같은)까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과 같은 길을 걷기를 원하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법적 핵능력을 지닌 체제로서의 위치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북한 핵 위협을 인식하는 정도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북·미 간 핵 군축협상을 벌이다 보면 결국 용인의 길로 갈 것으로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 도미노 현상과 NPT 체제 와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백악관이 트럼프 2.0 시대에도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힌 이유도 그 때문이다.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하는 방법은 국제제재와 외교·군사적 압박 등의 압력 수단과 대화·협상을 통한 변화 유도 등 다양한 방법이 있고, 역대 미 행정부는 공통적으로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활용해 왔다.
현 단계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핵 용인으로 흐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의미 없는 논쟁이 아니라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향을 활용해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강화를 끌어내는 일이다. 북한을 핵국가로 인식할 정도라면 그러한 핵 위협을 관리할 현실적 수단 역시 대폭 보강돼야 한다. 부담 분담을 카드로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를 비롯한 실물적 확장억제 조치를 요구할 우리의 논리는 오히려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핵무기를 통해 결함투성이 체제를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하는 북한의 딜레마를 한·미가 함께 공략하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 북한 핵의 용인을 막는 최선의 방안이다.
부원장, 수석연구위원, 연구실장, 센터장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겸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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