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물

기고

검색창 닫기 버튼

[이코노미조선] 지도 위에 묶인 100년의 분쟁, 태국·캄보디아 충돌

작성자
김흥종
조회
142
작성일
25-08-25 11:25
  • 프린트 아이콘
  • 페이지 링크 복사 아이콘
  • 즐겨찾기 추가 아이콘
  • 페이스북 아이콘
  • 엑스 아이콘

지난 5월부터 다시 긴장이 높아가고 있는 태국과 캄보디아 간 국경분쟁은 8 7일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긴급 중재로 임시 휴전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양국과 관세 협상을 거부하겠다고 협박하자 꼬리를 내린 모양새다. 하지만 휴전 후에도 인명 사상과 충돌이 이어지는 등 대치 국면은 계속되고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 간 국경분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분쟁은 약 120년 전인 1907년에 체결된 한 조약에서 비롯됐고, 그 배경에는 태국의 전신인 샴(Siam) 왕국과 당시 프렌치 인도차이나의 이름으로 이 지역을 식민화했던 프랑스 간 영토 획정(劃定) 과정이 있다. 당시 체결한 조약 때문에 지금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프랑스가 대신 완수한 캄보디아 고토(故土) 회복


19세기 중반 샴 왕국은 프랑스와 영국, 두 개의 식민 제국 사이에서 줄타기했다. 1863년 프랑스는 크메르 왕국(현 캄보디아)을 보호국으로 만들었고 1867년 프랑스-샴 조약을 통해 크메르 왕국에 대한 지배를 확립했다. 프랑스는 이후 자국의 식민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크메르 왕국 영토의 상당 부분을 샴 왕국으로부터 돌려받았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던 샴 왕국으로서는 영토 일부를 넘겨주는 방법으로 주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샴 왕국이 프랑스에 넘겨준 땅에는 1794년 샴 왕국이 병합한 바탐방(Battambang), 씨엠립(Siem Reap), 시소폰(Sisophon)이 포함됐다. 앙코르와트 유적과 크메르 북부 지역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런 조치로 식민지 캄보디아는 과거 앙코르 왕국 최전성기 고토의 상당 부분을 수복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때 획정한 국경선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글로 된 곳에서 강이나 언덕, , 주요 지형지물을 기준으로 국경선을 정했는데 철책도 없어 논란의 소지가 다분했다. 특히 국경선을 획정하는 데 일방의 어떤 전략적 의도가 개입되었다면 문서화된 국경선조차 논쟁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1907년 샴-프랑스 국경 조약, 또 다른 국경 분쟁의 씨앗


1907 3 23, 태국 방콕에서 프랑스 특명전권공사인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와 샴 왕국 외무 장관인 데바웡세 왕자가 마주 앉았다. 두 사람 앞에 놓인 두꺼운 조약문 위에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국경분쟁의 마침표를 찍을 조약이 서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조약은 1867년 프랑스-샴 조약에서 비롯된 갈등을 종결짓는 마지막 협정이었고, 과거 크메르 제국의 심장부인 앙코르와트 유적을 다시 캄보디아 품으로 돌려보내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날 서명한 샴-프랑스 국경 조약은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이르는 현재 태국의 국경선이 대부분 포함된다. 국경선 획정 과정은 복잡했지만 1904년 프랑스와 샴 왕국이 합의한 당그렉 산맥을 기준으로 국경을 삼자는 합의는 여전히 유효했다. 이 원칙에 따르면, 현재 캄보디아 북쪽 경계의 한 부분, 해발 500m가 넘는 고지대에 있는 프레아 비헤르 사원은 샴 영토에 속한다. 하지만 샴-프랑스 국경 조약과 조약에 딸린 부속서에 있는 일부 지도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면서 또 다른 국경분쟁의 씨앗이 됐다. 특히 프레아 비헤르 사원 일대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조약서에 딸린 ‘부속서 지도’에는 ‘당그레 산맥을 기준으로 국경을 삼자’는 원칙과 달리 프레아 비헤르 사원과 그 주변 고원 일대가 캄보디아 영토로 표시됐다.

 

해당 지역만 어떤 이유로 원칙을 따르지 않았는지는 현재까지 밝혀진 게 없다. 다만 사원이 있는 고원지대가 캄보디아 평야를 굽어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점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즉 높은 고지대 절벽 끝에 있는 사원에서 내려다보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캄보디아 영토가 한눈에 들어온다. 실측을 위해 해당 지역을 방문한 프랑스인도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이 사원 지역을 탐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당시 샴 왕국이 부속서에 나온, 다르게 그려진 지도에 대해 공식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부속서 지도의 세부 내용을 엄밀하게 검증하지 못한 채 서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샴 왕국이 태국으로 바뀐 1950년까지 이들이 생각하는 국경선은 프레아 비헤르 사원을 포함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 서명한 지도는 프레아 비헤르 사원과 고원 일대를 모두 캄보디아 영토로 표시했다. 생각 속 국경선과 지도의 불일치는 그대로 문서에 박제됐고, 향후 태국과 캄보디아 간 국경분쟁의 씨앗이 됐다.

 


드러난 진실과 공방


1954년 캄보디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프레아 비헤르 사원과 그 주변 일대가 캄보디아 영토로 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태국은 군대를 동원해 곧바로 사원을 점령했다.

 

캄보디아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국경 문제를 제소했고, 태국도 자국의 입장을 담아 제소했다. 1962 ICJ는 캄보디아의 손을들어주었다. 태국이 이 지도에 대해 수십 년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 핵심근거였다. 판결에 따라 태국은 사원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가져간 유물을 반환해야 했다.

 

하지만 판결 자체도 논란이 됐다. 판결은 1907년 부속서에 그려진 모든 영토가 아닌 사원과 바로 인접한 주변만 캄보디아 영토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인접 고지대나 접근로에 대한 소유권은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국경분쟁의 불씨는 남게 됐다. 2013 ICJ는 해석 판결을 통해 사원 주변 일부 지형까지 캄보디아 영토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진입로와 인근 고원 전체의 귀속 여부는 현재까지 불분명한 상태다.

 

태국은 ICJ의 판결에 따라 사원 주변부만 캄보디아 영토로 인정했고, 사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등에 대해서는 태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원 주변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만큼 사실상 태국 허락 없이는 사원에 진입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끝나지 않는 태국·캄보디아 간 지도 전쟁


2008년 캄보디아가 프레아 비헤르 사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 등재되자 태국은 크게 반발했다. 이는 곧 캄보디아의 영유권을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2011년까지 양국은 여러 차례 무력 충돌을 벌였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25년 현재까지도 ‘지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태국과 캄보디아 접경 지역의 충돌은 양국 정부가 ‘대화와평화적 해결’을 약속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태국과 캄보디아 간 국경분쟁에서 볼 수 있듯이 프레아 비헤르 사원은 단순한 유적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제국주의 외교의 술수, 지도 제작의 권력, 탐욕과 어리석음, 현대 국제법의 모호함이 뒤엉켜 만든 역사적 매듭이다.

 

지도 위의 경계선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면서, 접경지 인간의 삶과 국가의 자존심을 흔들고 있다.

 

 

* 본 글은 818일자 이코노미조선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김흥종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교수는 현재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특임교수이고,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이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이며, 한·러대화(KRD) 위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김 교수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교수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교수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11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view more
페이지 상단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