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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너무나 낯선, 대격변의 중동 질서

작성자
장지향
조회
115
작성일
25-08-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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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를 향하는 지금 중동의 지역 질서는 대격변의 재편기를 관통 중이다. 6월 이스라엘의 대이란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이란 전쟁이 12일 만에 이스라엘의 압승으로 끝나고 기존의 역학 구도를 뒤흔들면서다. '12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최첨단 기술로 정보·공중·사이버전을 결합해 이란 본토의 핵시설과 군사 인프라를 정밀 타격했다. 여기에 사상 초유의 미국발 벙커버스터와 스텔스기 지원 공습까지 더해지며 역내 패권국 이란은 단숨에 무력화됐다. 미국은 '탈중동' 선언에도 결정적 순간에는 군사 개입 의지와 역량을 투사할 수 있음을 입증했고 휴전 중재까지 성공했다.

 

결국 이란과 대리조직 연대인 '저항의 축' 등 시아파 진영은 크게 위축됐고 이스라엘과 수니파 걸프 산유국 주도의 새로운 질서가 떠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집권과 함께 미국 경제 우선주의 구호 아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국을 핵심 투자 파트너로 부각했다. 과감한 개혁개방을 추진 중인 걸프 국가들은 미국의 탈중동 기조와 이란의 군사 모험주의에 대비하고자 이스라엘과의 데탕트를 모색하며 주목받고 있다.

 

아무도 상상조차 못 한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이 이 낯선 재편기의 출발이었다. 이후 뱀의 머리인 이란을 상대로 '네버 어게인' 이스라엘의 질주가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절대적 우세 속에 12일 전쟁이 개시되자 이란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반격에 나선 이란은 이슬람 3대 성지인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예루살렘에도 이례적으로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 금기조차 고려하지 못할 만큼 혼란에 빠진 모습이었다.

 

결국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최측근 다수가 제거되고 하메네이는 3주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민 보호라는 기본 기능조차 수행하지 못한 정권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포스트 하메네이 체제를 둘러싼 엘리트 갈등까지 불거지면서 이란이슬람공화국 체제는 1979년 수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동 갈등의 중재자를 자처하던 중국이 이번 전쟁에서 무력한 방관자로 전락한 것도 관전 포인트다. 중국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우려하고 갈등 확산을 반대하는 보도자료를 내는 데 그치며 영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막강한 하드 파워를 바탕으로 중동 질서를 좌우하는 절대 강자로서의 미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최근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해상을 봉쇄하자 중국은 후원국인 이란에 압박을 가하는 대신 러시아와 함께 자국 선박의 안전 항로 확보에만 몰두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걸프국 입장에선 중국이 독보적인 에너지 수출국이자 외교 다변화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한층 더 명확해졌다.

 

물론 이란이 핵무기 개발 의지를 고수하는 한 긴장 완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기대하긴 이르다. 그럼에도 이란은 당분간 이스라엘·미국과 정면 대결보다는 러시아·중국과 함께 구축한 반미 연대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위주의의 축'이라 불리는 러시아·중국·이란 연대는 그다지 강고하지도 않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란의 경제적 고통에 별 도움을 주지 않으며 특히 중국은 걸프국과의 경협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신중동 질서의 아킬레스건은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참사에 따른 여론 악화다. 아랍 무슬림 국가의 위상을 의식해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요구해온 걸프국이 신질서 편입에 적극 나서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강경파 연정의 무리한 가자시티 점령 계획은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이 꿈꿔 온 전례 없는 지역 질서의 안착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 본 글은 826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장지향

수석연구위원, 센터장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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