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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공동 발표문 없어
한·미 교감 충분한지 의구심
북 비핵화·안보공약 언급 안 돼
미·북 선의에만 의존할 수 없어
주한미군 활용 확대 미국 뜻 확고
변화한 국제질서 고려한 대응을
지난 25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무난한 상견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트럼프의 돌발 행동이나 외교 관례를 무시하는 협상 스타일로 회담 직전까지 가슴 졸였던 게 사실이다. 실제 트럼프는 이 대통령과 회담 2시간여를 앞두고 특검의 국내 교회와 주한 미군 기지 내 한국군의 압수수색을 문제 삼으며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겠냐”며 회담 전망을 어둡게 했다. 회담장까지 이어진 이런 공격적인 트럼프를 이재명 대통령은 차분하게 설명하고, 트럼프가 원하는 북·미 정상회담 카드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유도했다. 조선 협력 프로젝트(MASGA·미국의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한반도 평화 등 한·미 양국의 공동 이익을 위한 비전과 기대를 제시하며 양 정상의 공동 관심사를 부각한 게 먹힌 것이다.
이 대통령이 취임
82일 만에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정상 간에 친밀도를 높이고, 신뢰를 조성한 점은 회담을 앞두고 나왔던 우려를 기우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 취해 들뜨기보다 부족한 건 없었는지, 국익을 위해 한국이 앞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검토와 치밀한 대비가 필요하다.
통상과 안보의 여전한 불확실성
이번 회담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대화와 외교를 통한 원칙이 강조되었다는 점은 한반도 안보를 위해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핵심 전제인 미국의 변함없는 대한(對韓)
안보공약 유지와 관련한 트럼프의 입장은 공개되지 않았다.
특히 북한의 핵 위협이 고도화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문제와 한·미 연합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방안도 없었다. 이번 회담 후 공동 언론발표문이나 공동성명이 공식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양측의 교감이 아직 충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한·미 동맹의 역할 확대 문제도 앞으로 줄다리기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미국은 1990년대 이후 동맹 정책에 있어 ‘부담 분담(burden sharing)’을 추구했다. 한·미는 지난해
10월 2030년까지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SMA)을 타결했지만, 트럼프는 집권 이후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이 필요하다며 압박하고 있다. 주한 미군에 대한
‘비용 분담(cost sharing)’ 요구다. ‘부담 분담’은
‘비용 분담’보다 확장된 개념인데 지역 및 국제 차원에서 동맹국들의 강화된 기여를 요구한다. 미국은 한·미 동맹에도 이러한
‘부담 분담’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입장이고, 이미 미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한·미 동맹이 북한 위협뿐만 아니라 지역 차원의 도전에 대해서도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구상을 직간접적으로 표명해왔다. 북한의 핵과 재래식 위협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난
30여년간 한·미 동맹은 ‘한반도 방위 동맹’으로서의 역할에 한정돼 있었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한국을 미국이
‘지켜주고(defend)’ 있다는 편견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제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동맹의
‘현대화’라는 개념으로 한반도를 벗어난 동맹의 미래상을 완성하려 한다.
이런 기조는 흔들릴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한·미 동맹이 북한 위협만 보는 게 아니라 지역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트럼프가 회담 중 이 대통령에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중국에 갈 때 같은 비행기를 타자”라고 한 것은 농담이 아니라 대 중국 정책에서 한·미가 같은 길을 가야 한다는 점을 에둘러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미 동맹의 역할 확장은 지역 안정을 해칠 수 있는 행위자에 대한 공동 견제를 의미한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이에 대한 입장 표명에 소극적이었지만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과거와 같은 안미경중(安美經中)에 안주할 수 없는 시대라는 점을 언급했다. 이는 그동안 북한에 한정했던 동맹의 역할 재조정이 피할 수 없는 현안이 됐다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미군기지 소유권 요구한 트럼프 속내
한·미 동맹의 역할 확장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6년
1월 한·미 외교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존중하되, 미국 역시 한국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지역 분쟁에 연루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20년 가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은 최근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원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내 미군기지에 대한 ‘소유권(ownership)’을 언급한 건 그린란드 매입 발언과 같이 영토 확장 의욕에 따른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소유권’을
‘다른 행위자의 의사에 구애받지 않는 배타적 결정권’으로 해석한다면 소유권 주장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즉 주한미군 기지에 대한
‘소유권’은 매입이나 처분이 가능한 자산(이는 법적으로 불가능)이라기보다 유사시 주한미군의 자유로운 출입과 해외 주둔 미군의 한반도 기지(평택)
접근성 강화 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와 유사한 입장에 있는 일본 내 미군기지를 비롯해 중동이나 유럽에 있는 미군 기지 역시 소유권은 해당 국가에 있다.
미군 기지의 소유권을 내어 달라는 트럼프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한다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외교적 균형이 맞지 않게 된다.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이 소유권 카드를 꺼낸 건 해외 최대 규모인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와 주한미군의 활용 범위를 대북 억제력에서 확대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동맹의 여건을 고려해 내어줄 건 내어주되 받을 건 챙기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국방비를 줄이려는 미국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다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방안이다. 전략적 유연성이 주한미군의 차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군이 필요할 경우 주한미군을 증원하거나, 병력 차출을 첨단 무기로 대체하는 등의 내용을 명문화하는 방식이다.
동맹 역할 확대 통해 뒷배 챙겨야
그동안 한·미 정상회담의 단골 의제였던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확고한 한반도 안보공약, 그리고 확장억제 보장 등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이번 회담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트럼프와 이 대통령 모두 북·미 협상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한반도에서의 과도한 긴장 해소와 중장기적 평화에 분명 긍정적 신호다.
하지만 비핵화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핵심적 요건이고, 지난 7월 31일의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완전한 북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DPRK)”가 한·미 공통의 목표임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한 정상 차원의 명확한 의사 표현이 없다면 비핵화보다는 일정 수준의 핵능력 보유와 핵군축 회담을 고집하는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다.
이번 회담이
“극적 반전이 있는 잘 만들어진 화제작”이라는 대통령실의 평가를 뒷받침하려면 이런 명문화한 입장 표명을 우리가 먼저 요구했어야 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부담의 경감이나 대북 유화 제스처라는 면에서 유리한 측면일 수 있다.
반면 우리에겐 확실한 안전장치를 갖추지 못한 채 미국과 북한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또 한반도 문제가 대화를 통해 충분히 해결 가능한 수준이 됐기에 한·미 동맹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는 미국의 논리를 반박하기도 어렵게 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대통령은 신뢰를 갖추고, 호흡을 맞출 기반을 마련했다. 이제는 각론에서 미국만(only America)이 아닌 한·미 모두에게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내야 한다. 한·미 동맹이 북한의 위협만 보는 게 아니라 지역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출 준비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그 연장선에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바뀌지 않을 미국의 목표와 전략에 매달린 채 달라진 국제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낙오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뒷배를 든든히 해 둬야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도 풀 수 있다.
* 본 글은 8월 28일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부원장, 수석연구위원, 센터장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겸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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