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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전범국 독일에 부과·조정된 금액보다 규모 커… ‘불평등 상징’ 베르사유조약 떠올리는 21세기판 불평등조약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통상 정책으로 인한 긴장과 피로감이 극심하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한국이 3500억달러(약 483조원)를 미국 정부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에 투자하고 투자금의 사용처는 미국이 결정하며, 수익금이 날 경우 대부분을 미국이 가져가는 조건의 투자협정을 받아들이라 압박하고 있다. 이렇게 합리성도 현실성도 찾아보기 어려운 미국의 요구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이 표류하는 이유
현재까지 밝혀진 투자계획의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일단
특수목적법인에 투자하는 한국 쪽은 의사결정 과정에 전혀 참여할 수 없다. 오로지 자금공여자일 뿐이다. 한편, 자기자본이거나 대출로 마련한 자금을 활용하는 통상적인 투자의
경우 투자 결정은 신중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투자위험을 모두 투자자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는 한국의 대미 투자에서 미국 쪽은 이런 위험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업에 투자했는데 원금이 모두 고갈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고스란히 한국 쪽의 손실일 뿐이다. 이런 구조는 도덕적 해이를 피하기 어렵다.
크게 양보해 위험사업에 투자해서 큰 수익을 창출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에도 수익의 대부분은 미국 쪽이 가져가며, 한국 쪽은 여전히
막대한 기회비용을 짊어지게 된다. 투자자금이 미 달러화로 지급되므로 한국 쪽이 달러로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는 항변은 사소해 보이기까지 한다. 약정한 투자금 규모가 우리 경제의 체력이 감당할
만큼 적정한 규모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런 이유로 양국 간 협상은 표류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문득 생각나는 것은 이 계획이 투자라기보다는 사실상 배상금이나 벌금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하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우방국들이 미국을 속여 벗겨먹었다(rip off)고 하면서, 트럼프 정부에서는 더
이상 이런 행위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속여서 미국의 부를 훔쳐왔다면 당연히 3500억달러는 투자액이라기보다는 변제해야 할 배상금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이 국제경제 질서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역사 속 불평등조약의
상징으로 남은 1919년 베르사유조약이 떠오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듬해 프랑스 베르사유에
모인 전쟁 당사국들은 전후 질서를 논의했다. 양 진영은 4년여의
참화를 겪으면서 사망자 2천만 명을 포함한 약 4천만 명의
사상자를 기록했고, 경제적 피해는 4조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오스만제국 등 패전국들은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거나 국가 자체가 해체됐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국은 패전국 독일에 가혹한 조건을 부과했다.
그 핵심은 막대한 전쟁배상금이었다. 조약이 체결될 때 구체적인 금액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독일은 전쟁 피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끝없는” 배상 의무를 받아들여야 했다. 1921년 런던회의에서 마침내 배상금
총액이 확정됐다. 그것은 1320억 금마르크(Goldmark)였다. 이 액수는 당시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2.5~3배에 해당했다. 단순히 무거운 부담이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였다. 독일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다.
동맹국 한국에 GDP 5.7% 금액 요구
런던회의 당시 상환은 약 30년 이상에 걸쳐 나눠 납부하는
구상이었다. 이 계획은 1924년 도스안(Dawes Plan)을 통해, 배상금 총액은 줄이지 않고
상환 일정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1929년
영플랜(Young Plan)을 통해 배상금 총액을 애초 규모의 약 4분의 1인 360억 금마르크 내외로 줄이고, 59년에 걸쳐 분할 상환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현금을 마련할 수
없었던 독일은 배상금 대부분을 석탄·철강·선박 등의 현물로
내야 했고, 1920년대 내내 재정 압박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1923년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그 극적인 결과였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이 유럽으로 전파되자 독일은 더 이상 배상해나갈 여력을 상실했다. 1933년
나치당 집권 이후 독일은 배상을 거부했고, 국제사회도 대공황이라는 시대 상황을 고려해 1932년 로잔 회의를 통하여 독일에 배상 의무를 사실상 면제했다. 결국
베르사유조약은 비현실적인 배상요구액과 이행되지 못한 약속으로 역사에 남았다.
애초 런던 회의에서 결정된 배상금 액수와 상환기간으로부터 독일이 부담해야 했던 배상금 규모를
추산해보면, 이는 매년 GDP의 8%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하지만 1929년 합의한 영플랜을 따른다면, 배상금 규모는 매년 GDP의 1.5% 내외로 줄어든다. 총 GDP보다 작은 수준으로 축소된 배상금 총액과 59년의
상환기간에 의해 그나마 합리적인 수준이 된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이 약정한 대미 투자 규모는 3년 반 동안 GDP의 20% 수준이다. 대략 GDP의 5.7% 내외를 매년 특수목적법인에 미 달러화로
배정하는 계획이다. 이렇게 본다면, 규모 면에서 한국의 부담액은
패전국 독일의 그것과 비견할 만하다. 유럽 대륙을 전쟁의 잿더미로 만든 가해자, 독일에 대해 연합국 쪽은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처벌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가혹한 배상금은 처벌을 상징한다. 물론 그 조처가 지나쳐 오히려
독일 사회를 극단적으로 몰아넣었고,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을 부른 배경이 되었다는 반성이 뒤따르지만, 최소한 그 논리적 명분은 전범국의 책임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지난 70여 년간 미국의 동맹으로서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협력해왔다. 한국전쟁
이후 피로 맺어진 동맹은 오늘날까지 유지됐고 한국은 자유무역과 개방경제, 그리고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 1조9천억달러에 이르는 총 GDP는 바로 그 성실한 협력과 희생 위에서 세워졌다.
투자협정으로 포장한 ‘불평등조약’
그런 한국에 지금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매년 GDP의 5.7%에 해당하는 투자다. 투자 구조와 금액만 놓고 보면 베르사유조약 당시 독일의 부담보다 약간 가벼운 수준이지만 그 뒤의 조정 과정을
거쳐 도출된 수정계획보다는 훨씬 과중하다. 혹자는 독일의 경우 전쟁배상금이고 한국은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투자 결정권이 없고 투자 성공에 대한 보수가 없다는 측면에서 그냥 지급하는
배상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은 전범국이었고 수십 년간 분할 상환 구조였지만, 한국은 동맹국임에도 단기간에 사실상 ‘주권적 제약’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한국은 무엇을 그리 잘못했을까.
투자는 본래 상호호혜적이다. 자본을 제공하고, 수익을 나누며, 성장의 기회를 함께 만드는 것이 투자다. 그러나 미국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분명히 얘기하고 있다. 미국과의
통상협의는 상호 윈윈(win-win) 구조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에 충실하며, 세계 각국은 미국에
그동안 부당하게 약탈해간 부를 관세와 투자로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으라는 것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시절 불평등조약은 치외법권과 강제개항이었다. 20세기 초 베르사유조약은 전쟁배상금이라는 형태로
강제한 불평등조약이었다. 그리고 21세기 오늘날 불평등조약은
투자협정이라는 포장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신뢰의 문제가 떠오른다. 오늘의 글로벌경제에서
가장 큰 비용은 관세율 몇 %가 아니라 신뢰의 부재에서 나오는 불확실성이다. 상대국 정책의 불합리성과 이에 따라 제기되는 불확실성은 보이지 않는 비용으로 작용하며 관세보다 훨씬 더 해악이
크다. 예측 불가능한 요구와 불투명한 투자 조건을 세계를 향해 휘두르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 기반을 흔드는 불확실성이며 공멸을 향한 불가역의 통로로 작동한다.
베르사유조약과 작금의 한-미 투자협의는 둘 다 불가능하거나
불합리한 조건이라는 점에선 닮아 있다. 다만 간과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독일은 처벌 대상이었고, 한국은 협력 파트너라는 점이다. 오늘 한국이 마주한 요구는 현대판 불평등조약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진대, 설혹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우리는 협상에서 성공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나.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한 요구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베르사유조약의
배상금은 끝내 이행되지 못했고 오히려 국제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한국에 대한 가혹한 요구
역시 장기적으로는 양국 관계를 약화하고 신뢰를 훼손할 뿐이다. 투자는 함께 성장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동맹국에 가혹한 부담을 지우는 방식은 투자도, 협력도
아니다. 이는 단기적으로 부의 일방적 이전이며, 장기적 불확실성과
불신의 씨앗이다.
불확실성과 반지성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베르사유조약은 패전국 독일을 무너뜨렸고, 결국 더 큰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고, 신뢰를 회복하며, 상호호혜적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한국이 감당해야 할 몫은 분명 있지만 그것이 불평등의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지성을 극복하고 이성을 근간으로 하는 국제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
* 본 글은 9월 19일자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교수는 현재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특임교수이고,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이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이며, 한·러대화(KRD) 위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김 교수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교수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교수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11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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