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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외교분야에서 지난 100일 동안 굵직한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대통령의 첫 방미로 미국과 관세협상이란 난제를 비교적 무난히 관리했다. 방미 길에 앞서 관행을 깨고 일본을 먼저 들른 것도 일본과 관계를 지속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미국, 일본 관계 관리에 대한 평가는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욱 좋은 평가를 받는 듯하다.
불안요소도 있었다. 미국에 구금되었던 한국인 노동자 문제는 대미 관계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큰 리스크였다. 다행히도 정부의 빠른 조치로 우리 국민들은 모두 안전하게 귀국했다. 시간이 지나 당황하고 있는 쪽은 투자와 기술이전을 받아야 하는 미국인 듯하다. 그사이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북한, 중국, 러시아가 나란히 모습을 보여 세 나라 사이 협력관계를 과시했다. 요컨대 이재명 정부의 첫 100일은 미국, 일본, 북한, 중국, 러시아라는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다섯 요소가 지배했다.
이쯤에서 주변 큰일을 처리하느라 바빴던 이재명 정부 외교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챙겨야 하는 일은 없는지 돌아보자. 1949년 11월 당시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는 중국 외교부를 창설하며 "외교무소사(外交無小事)", 즉 외교에 작은 일은 없다는 발언을 했다. 외교에는 중요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은 없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1980년대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는 2010년 외교를 '정원 가꾸기'에 비유했다. 정원을 몇 달만 돌보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듯 외교에서도 외교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한때 좋았던 관계도 꾸준한 관심을 주지 않고 방치하면 정원에 잡초가 무성해지듯 관계 약화, 위기와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국 외교에는 주변 4강과 한반도처럼 늘 관심이 가는 주제 외에도 덜 주목받지만 매우 중요한 아세안과 같은 대상도 있다. 아세안은 우리에게 무역 2위, 투자 2위 지역이고 연간 1000만명 넘는 인적 교류를 하는 대상이다. 최근 국방과 방산 협력도 심화되고 있으며, 수많은 지역 다자협력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아세안은 한반도와 주변 4강 다음가는 중요 지역이다. 슐츠의 말처럼 다른 일에 온 정신을 쏟아 아세안이라는 정원에 관심을 충분히 기울이지 못한다면 이런 중요한 정원에 잡초가 무성해질 수도 있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 이래 꾸준히 아세안과 관계를 잘 만들어왔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한·아세안 관계 발전의 결정적 변곡점이 되었다. 최근에는 국방, 방산, 안보 분야 등 협력이 전방위로 심화되었다. 신남방정책을 계승하는 이재명 정부도 아세안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야 한다. 다가오는 10월 말 아세안 국가와의 정상회의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 정상회의를 통해 이재명 정부에서도 한·아세안 관계를 중시하고 과거의 협력관계를 이어나가는 동시에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 본 글은 9월 22일자 파이낸셜뉴스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수석연구위원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2012년까지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다. 현재 한국동남아학회 부회장, 해양경찰청의 자문위원이고,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최근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적 공간의 등장(2015), 북한과 동남아시아(2017), 신남방정책이 아세안에서 성공하려면(2018),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신남방정책의 역할(2018), 한국과 아세안의 전략적 공통분모와 신남방정책(2019), 비정형성과 비공식성의 아세안 의사결정(2019), 피벗: 미국 아시아전략의 미래 (2020, 역서), G-Zero 시대 글로벌, 지역 질서와 중견국(2020), “Southeast Asian Perspectives of the United States and China: A SWOT Analysi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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