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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가자평화안' 트럼프 쇼만은 아니다

작성자
장지향
조회
41
작성일
25-10-1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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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친이란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해 1200여 명을 살해하고 250여 명을 납치하면서 전쟁이 일어났다. 이후 이스라엘의 지상전으로 가자지구 사망자는 67000명을 넘어섰고 이 중 절반 이상이 여성과 어린이다. 명백한 인도주의적 대재앙이다. 전쟁은 중동의 안보 구도 역시 뒤흔들었다. 이스라엘의 연쇄 작전으로 하마스·헤즈볼라·후티 반군 등 이란 대리조직 연대인 '저항의 축'이 무력화됐고, 이란의 방공망·핵시설·미사일 전력이 파괴됐다. 친이란 시리아 세습 독재 정권도 붕괴했다. 이란은 시아파 맹주로서의 권위가 추락한 데다 핵합의 위반에 따른 유엔 제재까지 복원돼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전쟁의 격변 속에서 9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 평화안 20개 항'을 발표했다. 핵심은 휴전과 인질 석방, 하마스 무장해제, 가자 재건을 위한 국제 지원이고 '두 국가 해법'은 향후 과제로 남겨뒀다. 트럼프는 발표에 앞서 아랍·이슬람권 지도자들과 협의해 공감대를 확보했고 발표 직후에는 유럽 주요국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끌어냈다. 마침내 10 8일 이집트에서 미 중동 특사와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지낸 트럼프의 사위까지 참석한 가운데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평화안 1단계에 합의했다.

 

이번 평화안은 성공할까. 우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합병 금지 조항이 명문화된 것은 이례적이고 긍정적이다. 가자를 '리비에라'식 휴양지로 만들기 위해 주민을 이주시키겠다는 발상도 빠졌다. 9월 사우디아라비아와 프랑스가 주도한 유엔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결의안이 압도적 지지로 통과한 것이 주효했다. 아랍의 외교적 노력과 유럽의 압박이 통한 것이다.

 

유엔 결의안은 앞선 7월 아랍연맹이 채택한 '뉴욕 선언'을 토대로 '하마스 통치 종식'도 명시해 주목받았다. 아랍연맹은 사상 처음으로 하마스의 2년 전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공식 규탄했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는 아랍 및 유럽 국가들을 설득해 무슬림 세계의 리더십을 다졌다. 트럼프 2기 정부의 거래주의 기조 덕에 사우디는 '민주주의·인권 후진국'이란 정치적 부담을 줄였고 트럼프 일가와 사우디 왕실은 더 돈독해졌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자국 개혁을 위해 고유가가 필요함에도 트럼프의 증산 요청에 응하며 배포 있는 결단을 보이기도 했다. 대신 이슬람 성지의 수호국으로서 팔레스타인과 관련한 대내외 여론을 의식한 사우디는 미국을 통해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평화안의 또 다른 긍정적 요소는 하마스를 '해방전사'로 치켜세워온 튀르키예의 동의까지 확보한 점이다. 튀르키예는 2010년대 초부터 하마스 정치국을 후원했고, 이번 전쟁에서도 부상당한 하마스 대원 수백 명을 이송해 치료해줬다. 그런 튀르키예가 중재국으로 나서 하마스의 무장해제와 통치 배제의 원칙에 지지를 밝혔다. 최근 미국 주도로 이스라엘과 사우디 중심의 역내 질서 재편이 급부상하면서 일어난 변화다. 7월엔 이스라엘과의 직통 핫라인 설치에도 깜짝 합의했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하마스 무장해제의 범위를 로켓·미사일에 한정할지, 국제안정화군의 임무에 하마스의 터널망 파괴까지 포함할지, 내년 10월 예정된 이스라엘 총선이 연정 내 극우 세력의 반발로 앞당겨질 경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어떤 정치적 계산에 나설지 등 어느 하나 선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번 평화안은 최적 타이밍의 현실적 절충점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외교적 성과를 위해 종전, 아브라함 협정 확대, 걸프국 재정 지원을 통한 가자 재건을 매우 원하고 역대 어느 미국 지도자보다 네타냐후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부디 이번만큼은 달라지길.

 

 

* 본 글은 1014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장지향

수석연구위원, 센터장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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