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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트럼프-빈살만의 초밀월 시대

작성자
장지향
조회
46
작성일
25-11-2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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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무함마드 빈 살만(MbS)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대로 백악관을 찾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국가원수가 아닌 왕세자에게 군 의장대 사열과 제트기 퍼레이드부터 대규모 공식 만찬까지 이례적인 의전을 동원해 환대를 베풀었다. 이어 파격적으로 확대된 양국 협력 계획이 발표됐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첫 해외 순방으로 사우디를 찾았을 때 윤곽이 드러난 '경제-안보·기술 메가 딜'이 더 심화된 내용이었다. 사우디가 막대한 대미 투자를 확약했고 미국은 차세대 F-35 전투기를 포함한 첨단 무기 판매, AI 기술 이전, 원자력 기술 협력을 승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MbS 왕세자를 바라보며 "우리는 모든 사안에서 늘 같은 편이었다"고 치켜세웠다.

 

MbS 왕세자는 올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직후 축하 통화에서 6000억달러의 대미 투자 계획을 깜짝 발표했고 5월 트럼프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에서 4000억달러 추가 투자를 요청받자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이번 방미에서 총 1조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 약속을 공식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왕세자가 그렇게도 바라던 최신 스텔스 F-35 전투기 판매 승인을 선물처럼 내줬다. F-35는 현재 중동에서 이스라엘만 보유하는 기종으로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조차 아직 도입 승인을 받지 못한 전투기다.

 

나아가 미국은 사우디가 왕정의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비전 2030' 개혁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칩 판매도 허용했다. 사우디는 풍부한 에너지를 무기 삼아 역내 최대 AI 데이터센터 구축이라는 야심을 키워왔다. 이런 사우디가 급증할 전력 수요에 대비해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미국은 두 나라 간 민간 원자력 협력 협상 타결을 선언하며 제도적 기반까지 마련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미국과 사우디의 초밀월 관계에는 무엇보다 사우디의 '중국 거리두기'라는 전제가 자리하고 있다. 사우디는 미·중 경쟁과 이스라엘·이란 대립이라는 복잡한 역내 구도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외교 다변화와 균형외교를 구사해왔다. 사우디에 미국과의 협력은 대외 전략의 핵심축이지만 중국과도 디지털·원자력·군사 협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하지만 6월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서 미국이 사상 초유의 이란 핵시설 타격을 감행하고 중동 질서 재편의 주도자임을 확실히 보여주자 사우디의 셈법도 변했다. 사우디는 중국 화웨이 등으로의 기술 유출을 차단하라는 미국의 강력한 보안 규정을 전격 수용하기로 했다.

 

OPEC 최대 생산국인 사우디의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증산 요구에 호응해 세계 원유 시장에서 '드릴 베이비 드릴'을 실천하며 미국과의 전략적 유대를 돈독히 하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중국과의 AI 패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에너지 주도권 확보가 핵심이라고 본다. AI 확산과 디지털 전환으로 글로벌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미국이 안정적인 에너지 기반을 마련해야만 우방국이 적대국에 의존하는 구조를 미리 차단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사우디와 걸프 산유국을 상대로 기후변화에 따른 에너지 '전환'이 아닌 수요 확대를 충족하는 에너지 '추가' 정책이 본질이고 미국과 우방국의 에너지 우위가 세계 평화와 번영의 토대라고도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중국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의 규모와 속도가 국제사회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며 국내 값싼 전력공급을 위해 화석연료 의존 구조를 유지한다. 미국도 기후변화 대응이 아닌 석유·가스 시추 확대에 매진한다. 이때 MbS '비전 2030' 추진을 위해 고유가가 절실함에도 증산을 결단해 트럼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 본 글은 1125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장지향

수석연구위원, 센터장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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