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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전쟁도 평화도 아닌 연옥, 이란은 왜 멈춰 있나

작성자
김흥종
조회
69
작성일
26-01-2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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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이란이다. 안 그래도 경제가 어려웠는데 최근 갑자기 화폐 가치가 급락하고 물가가 뛰는 어려운 상황이 닥치자 상인들의 항의 시위가 시작되었고, 시위는 마른 장작에 불붙듯 퍼져나갔다. 결국 대규모 소요 사태는 많은 사상자를 낸 참극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며 적극 개입까지 언급하다가 지금은 속도 조절 중이고, 주변국들은 상황이 안정되기를 바라면서 향후 국면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란을 이해하려면 1979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란은 원래 미국의 핵심 우방이었다. 팔레비 왕정 체제는 중동에서 가장 친미적인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국왕이 축출되고 반미, 반서방을 정체성으로 삼는 이슬람 공화국이 탄생했다. 이때부터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단순한 외교 갈등이 아니라 체제 차원의 적대 관계로 굳어졌다. 혁명 직후 발생한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는 무려 444일을 끌면서 양국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갔다.

 

혁명 직후 곧바로 이란은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어진 이라크와의 전쟁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8년을 끌면서 이란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동시에 외부 위협에 맞서 자립과 저항을 중시하는 정치 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이 무렵부터 이란 정권은 반미를 넘어 미국은 믿을 수 없는 적이라는 인식을 체제의 핵심 서사로 삼게 된다.

 

미국의 직접적인 제재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1995년 클린턴 행정부는 이란의 석유와 가스 산업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까지 제재하는 이른바 이란·리비아 제재법을 도입했다. 이후 이란은 금융·에너지·무역 전반에서 세계 경제로부터 점점 고립됐다. 2000년대 들어 핵 개발 문제가 불거지면서 제재는 더 강화됐다.

 

2015년은 잠시 예외였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과 서방은 핵 합의(JCPOA)에 도달했고, 제재 완화와 국제무대 복귀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이란 내부에서도 경제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자라났다. 그러나 이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한 합의에 불만을 가졌던 트럼프 정부는 2018년 일방적으로 핵 합의에서 탈퇴했고, 최대 압박 정책으로 제재를 다시 강화했다.

 

오늘날 이란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이란 정부의 정책 실패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장기간 누적된 제재로 인해 석유 수출은 제약을 받고, 금융 거래는 막혀 있으며, 외환의 부족과 고물가가 일상화됐다. 통화가치 하락과 실업, 생필품 가격 상승은 중산층과 상인 계층까지 압박하고 있다. 최근 소요 사태에서 보수적인 상인들까지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은 이란 경제의 숨통이 그만큼 조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소요 사태에 개입하겠다고 말했을 때 이란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는 카타르나 UAE뿐만 아니라 이란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심지어 이란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이스라엘도 미국이 직접 개입하지는 말아 달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이스라엘의 요청은 극히 예외적으로 보인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비롯해 다양한 반이스라엘 시아파 무장세력을 지원하면서 이란은 이스라엘에는 체제적 위협이 된다.

 

주변 중동 국가들은 왜 이란의 정권 교체를 원치 않을까. 이란의 붕괴가 가져올 혼란이 지금의 이란보다 훨씬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인구 9000만명이 넘는 대국이며, 만약 국가 통제력이 무너지면 중동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이스라엘을 포함해 사우디와 UAE, 카타르 등 주변 국가들은 이란과 경쟁 혹은 적대 관계에 있지만 동시에 지금 그대로의 이란을 바라고 있다. 이란 정권의 몰락으로 다른 왕정 국가들에서 체제 불안정이 나타날까 우려하기도 한다.

 

2002년 처음 가 본 테헤란은 여러 해 동안의 경제 제재로 이미 지쳐 있었다. 특히 청년들은 암울한 미래 앞에서 방향을 잃은 듯 보였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거의 없지만 세계는 그때보다 훨씬 더 이란의 붕괴를 감당할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어려움은 가중되고 불안정은 지속될 것이다.

 

 

* 본 글은 122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김흥종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박사는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정대책위원회 위원이자,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겸 대미전략정책본부 경제정책자문팀장이다. 한·러대화(KRD), 법과정책포럼과 금융국제화포럼의 회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의장을 지냈다. 또한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김 박사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박사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와 한미전략대화,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박사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20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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