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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바다는 세계경제의 동맥과도 같다. 하루 약 2천만 배럴의 원유와 막대한 양의 액화천연가스(LNG), 그리고 수많은 석유화학 원료가 이 바다를 통과하지만,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흐름은 통계 속 숫자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 동맥이 막히는 순간, 숫자는 곧바로 물가와 환율, 산업 생산의 급격한 변동으로 나타난다. 최근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시도는 바로 그 보이지 않던 흐름을 현실의 위기로 끌어올리고 있다.
세계 곳곳에는 병목 지점이 존재한다. 수에즈운하, 믈라카(말라카)해협, 대만해협 모두 글로벌 물류의 핵심축이다. 물동량에서는 이들이 호르무즈해협보다 더 크다. 하지만 호르무즈는 ‘대체 가능성’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사실상 유일한 취약 지점이다. 다른 곳과는 달리 돌아갈 바닷길이 없는 곳, 그곳이 호르무즈다. 이 때문에 봉쇄는 곧바로 가격 상승을 넘어서 공급 축소로 이어진다. 한국처럼 에너지와 원자재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에는 이보다 더 직접적인 충격은 없다.
원유·LNG·환율의 삼중 압박
호르무즈해협은 전세계 해상 원유 수송의 약 20%, LNG 수송의 약 25%가 통과하는 핵심 경로다. 한국의 경우 원유 수입의 약 70%가 중동, 그중에서도 걸프만에 집중돼 있으며, 이 가운데 대부분이 호르무즈의 좁은 수로를 거친다. 한국의 대걸프협력회의(GCC,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카타르·오만·바레인으로 구성된 걸프 산유국 협의체) 수입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8%에 이른다. 원유에서 정제된 상품의 40% 정도는 교통수단에 사용되고, 50% 이상은 정제 후 다른 상품으로 변신해 제조업의 소재로 사용된다.
문제는 단순한 물량 감소가 아니라 가격 메커니즘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상승할 경우 한국의 연간 수입액은 약 90억~100억달러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환율 상승이 결합한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한편으로는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을 예상케 함으로써 달러화 강세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 무역수지를 악화해 원화 약세를 가져온다. 이중 충격으로 약해진 원화는 다시 수입물가를 자극하는 파생된 물가 상승 구조를 만든다.
원유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LNG 역시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 연간 4천만t 이상의 LNG를 수입하며, 2025년의 경우 약 15%를 카타르에서 수입했다. LNG는 가정용 취사·난방으로 사용되고 다수는 발전용으로 사용되는데, 가격이 10% 상승할 경우 전력 생산 비용은 수조원 단위로 증가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고, 제조업 전반의 비용 구조를 흔든다.
결과적으로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유가 및 LNG 가격 상승→환율 상승→생산비 증가’의 경로와 ‘유가 및 LNG 가격 상승→국내 전력 및 소재 가격 상승→생산비 증가’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비용 견인 인플레이션 경로를 형성한다.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거시경제 전반을 흔드는 충격으로 작용한다.
나프타·헬륨·비료까지 연쇄 타격
에너지보다 더 직접적인 충격은 제조업 공급망에서 발생한다.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는 원유에서 추출되는데 수입의 절반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그중 약 54%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나프타 가격이 10% 오르면 에틸렌 생산 원가는 약 6~7%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틸렌은 연간 1천만t 이상 생산되는 한국 화학 산업의 기초 소재로, 플라스틱·섬유·자동차·전자제품 전반에 쓰인다. 즉, 나프타 공급 차질은 곧 제조업 전체의 비용 상승으로 확산한다. 이미 일부 기업은 재고 부족으로 생산을 줄이고 있고, 우리나라는 나프타의 수출 금지를 선언했다. 원유 수급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나프타의 국내 생산량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나온 조처다.
또 하나의 핵심은 헬륨이다. 한국은 헬륨 수입의 약 65%를 카타르에 의존한다. 헬륨은 반도체 공정에서 냉각과 압력 제어에 필수적이며, 대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공급되지 않을 경우 일부 공정은 가동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유황과 비료 시장도 영향받는다. 중동은 세계 유황 수출의 약 45%를 차지한다. 유황은 황산과 질소비료 생산의 핵심 원료다. 실제로 전쟁 이후 요소 가격은 단기간에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며 급등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니다. 비료 가격 상승은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자물가를 자극한다. 에너지에서 시작된 충격이 식탁으로 확산되는 파생 인플레이션 구조다.
호르무즈, 대체 경로가 없다
최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주요 해상 병목 지점 중 호르무즈해협은 대체 경로가 없는 결절점(chokepoint)으로 분석된다. 예컨대 수에즈운하가 막히면 희망봉을 돌아갈 수 있고, 믈라카해협이 막히면 인도네시아 남쪽 항로를 이용할 수 있다. 비용은 증가하지만 물류의 성격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호르무즈해협은 다르다. 중동 산유국의 수출은 지리적으로 이 해협에 묶여 있는데, 그 이유는 대체 경로로 육로를 이용해야 해서 운송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랍에미리트의 푸자이라 항구로 트럭으로 운송하거나 사우디 쪽의 일부 파이프라인이 존재하지만, 봉쇄 전 수출량의 10~15% 수준에 불과하다. 즉, 봉쇄시 최대 85~90%의 물량이 직접 영향받는다. 호르무즈로 통과하는 물품이 원유와 LNG 등 주로 액상 품목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더 가중된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지역별로 지극히 비대칭적 충격을 준다. 미국은 셰일 혁명 이후 원유 생산량이 소비량을 충족하는 수준에 와 있다. 따라서 호르무즈해협 봉쇄의 직접적 영향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유럽은 원유 수입의 12~15%가 호르무즈해협을 경유하며, LNG 일부를 카타르에 의존해 동아시아보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의 영향은 작은 편이다. 다만 유럽연합이 기본적으로 에너지 수입국이기 때문에 봉쇄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부정적 영향은 받는다. 반면 동아시아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중국·일본 동북아 3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70~90% 수준이며, 그중 상당 부분이 중동에 집중돼 있다. 특히 한국은 원유, LNG, 석유화학 원료 모두에서 중동 의존도가 높아 중첩된 취약 구조를 갖는다. 결국 같은 봉쇄라도 미국이나 유럽에는 가격 변수에 불과하지만, 동아시아에는 물량 변수로 작용한다. 이것이 이번 위기의 본질이다.
경제 안보의 새 변수 ‘통행세’
이란이 시행하기 시작한 통행세 부과는 날벼락 같은 충격이며,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인공적인 운하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국제 해협은 원칙적으로 자유 통항이 보장되며, 이는 국제해사기구(IMO)와 유엔해양법협약이 유지해온 기본 질서다. 게다가 해협 한쪽은 이란 영토지만 반대편은 아랍에미리트 영토다. 말하자면 대한해협에서 우리나라가 통행세를 부과하겠다는 발상과 유사하다.
군사적 통제하에 특정 국가가 통행을 제한하거나 비용을 부과할 경우, 이는 사실상 해상교통의 사유화에 해당한다. 만약 통행세를 지금 일부 경우에 부과했다고 알려진 200만달러로 책정한다면 이란은 150조원 이상의 연간 통행세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문제는 선례를 남긴다는 점이다. 특정 국가가 전략 해협을 통제하고 비용을 부과하는 모형이 확산할 경우, 이는 글로벌 무역에 재앙과 같은 상황이 되므로 무역 질서는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분쟁이 아니라 경제 안보 질서의 대변화를 뜻한다.
드러난 취약성… 비용 넘어 구조로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한국은 에너지, 화학, 금속, 산업가스 등 핵심 산업 전반에서 중동 의존도가 높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장은 비축 확대가 필요하다. 한국의 전략비축유는 약 90일 수준이지만, 실제 산업 수요를 고려하면 대응 여력은 더 짧다. LNG와 헬륨처럼 비축이 어려운 품목도 있다. 그래서 수입선 다변화가 필수적이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등으로 공급망을 분산해야 한다. 물론 가격과 인프라 제약이 따른다. 장기적으로는 산업구조 전환이 불가피하다. 에너지 집약적 산업 비중을 낮추고, 재생에너지와 수소 등 대체에너지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핵심 소재의 국산화와 재활용 비율을 높이는 전략이 요구된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연결된 세계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세계화는 효율성을 극대화했지만 동시에 취약성을 키웠다. 그 취약성은 언제나 가장 좁은 길목에서 드러난다. 호르무즈해협은 단순한 지리적 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세계경제가 얼마나 좁은 통로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다. 문제는 봉쇄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취약성에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다.
* 본 글은 4월 2일자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객원선임연구위원
김흥종 박사는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정대책위원회 위원이자,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겸 대미전략정책본부 경제정책자문팀장이다. 한·러대화(KRD), 법과정책포럼과 금융국제화포럼의 회원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의장을 지냈다. 또한아시아태평양EU학회(EUSAAP) 회장, 한국EU학회(EUSA-Korea) 회장, 한국APEC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3년에는 인도 G20 Think20에서 TF 공동의장을 맡았다. 태국개발연구원(TDRI)의 국제자문위원, 세계디지털경제기술정상회의(WDET)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김 박사의 전문 분야는 세계경제, 통상정책, 경제안보, 지정학 및 지경학, 지역연구 등에 이르며,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경제·통상·외교정책 수립 과정에 깊이 관여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외교부 산하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경제부총리 보좌관, 한-EU FTA 협상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또한 G20 관련 기획재정부, APEC 및 한국 외교전략 관련 외교부, ASEM 및 브렉시트 대응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박사는 WTO, OECD, EU,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주요 국제회의 및 민간 포럼에 초청받아 연설을 해왔다. 참여한 주요 포럼에는 미국의 Opinion Leaders Seminar와 한미전략대화,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미국/유럽), 중국발전포럼, BOAO 포럼, 인도의 Raisina Dialogue 및 Kautilya 경제포럼, 프랑스의 World Policy Forum, 러시아의 Valdai 포럼, 카타르의 도하포럼, 덴마크의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 WTO 포럼, EU-아시아 학술회의, 모로코 Atlantic Dialogues, 남아공 Cape Town Conversation, 아르메니아 Yerevan Dialogue, G7 및 G20 연계 Think7/Think20 등이 있다. 김흥종 박사는 UC 버클리에서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Honorary High Table member로 지냈다. 프랑스 IFRI, 벨기에 VUB, 고려대, 터키의 마르마라대학교 등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200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으며, 국내외 언론, 방송, SNS 등을 통해 활발히 발언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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