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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성자
윤영관
조회
127
작성일
26-06-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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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우리는 6·25전쟁이 터진 지 76년째를 맞았다. 전쟁의 와중에 태어났던 필자는 전쟁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연히 부모님을 통해 그 참담했던 시절과 피난 갔던 경험에 대해 듣곤 했을 뿐이다. 주지하듯 미국을 비롯한 16개 전투지원국이 참전해서 남쪽 절반에서나마 대한민국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사건이 나 자신의 삶과 실감 나게 연결되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 시절이 지나면서부터였다.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 안에서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어떻게 말살되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제야 비로소 만일 그들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얼마나 끔찍하게 변했을까 생각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 가끔 꾸었던 악몽 중 하나는 북에 살면서 보안원에 쫓겨 다니는 꿈이었다.

 

1995 7 27일 워싱턴 DC에서는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공원이 제막되었다. 위치도 링컨 메모리얼 바로 옆 아주 좋은 자리였다. 판초를 입고 행군하는 자세의 19인 용사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전협정 69주년을 맞은 2022 7 27일에는 미군 전사자 36634명과 한국인 카투사 전사자 7174명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새긴 ‘추모의 벽’이 새롭게 건립되었다.

 

그 후 언제부터인가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공원을 방문할 때마다 궁금증이 생겼다. 왜 희생을 치른 미국에는 추모공원이 있는데 정작 그들의 희생으로 살아나, 잘살게 되었고 자유를 누리는 민주국가 대한민국에는 추모공원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한국에는 이렇다 할 추모공원이 없다. 부산 남구에 유엔군 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된 유엔기념공원(유엔군공원묘지)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 1, 전선 대치 중 사망한 유엔군 장병들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유엔군사령부가 주도하여 조성한 묘지다. 지금까지 참전국 중 11개국들에 의해 합동 관리되고 있다.

 

민주국가로서의 한국이 국가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 그들의 참전 덕분이었다면, 한국이 최빈국에서 세계 12위의 선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고, 군부 독재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안보 환경을 제공해 준 것이 한·미 동맹이었다. 그런데도 반듯한 추모공원이 서울에 없다는 것이, 우리가 그동안 먹고사는 데만 몰두하면서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러던 차에 몇몇 분들이 워싱턴의 추모공원과 같은 반듯한 추모공원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한국전참전용사한미추모사업회, 이사장 이영훈 목사). 그 운동을 주도하는 분들 중 한 사람이 40여년 전쯤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 교포 박선근 씨다. 그는 6·25전쟁이 터졌을 때 8세였는데 마침 며칠 전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린 그는 전쟁 당시 시골 논바닥에 누워 있던 외국군 시신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한 시신은 한쪽 눈이 논의 물에 잠기고 다른 쪽 눈은 하늘을 향해 치켜뜨고 있는 끔찍한 모습이었는데 평생 잊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번은 미군 비행기가 추락했는데 비행사가 비행기와 함께 폭발해서 찢겨진 시신이 조각조각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것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걸프 전쟁 때 징집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미국 정부의 통지서를 받았을 때, 그 외국군 시신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눈물지었다.

 

그들은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달려와 그같은 희생을 치렀을까?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추모기념비에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것은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이다. 우리는 고귀한 생명을 바친 미군 용사들, 유엔군 및 한국군 전사자들 모두의 희생 덕택에 이제까지 자유를 누려왔다.

 

개인적으로 서울에 워싱턴 DC의 추모공원 못지않은 추모공원이 세워지기 바란다. 더 나아가 긴밀한 한·미 협력이 이루어지기 바란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국제정치를 보는 시각이나 전략은 특이하다. 그리고 이른바 자유주의 국제질서도 약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럴수록 우리 정부가 외교 역량을 발휘해서 미국이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을 확실히 지키도록 만들기를 희망한다.

 

이란 전쟁이 끝나면 트럼프 대통령의 남아있는 외교 관심사는 북한 문제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 경우, 북·미 협상이 열린다면 미국·한국·북한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항구적 평화안을 끌어낼 수 있기 바란다. 물론 한국도 미국에 대해 나름대로 기여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조업 재건을 통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나섰는데 한국이 앞서있는 몇몇 제조업 분야의 탁월한 능력으로 미국 제조업 부흥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 같은 긴밀한 한·미 협력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미국 제조업의 재건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6·25전쟁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영령 앞에서 “우리는 자유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당신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글은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윤영관

이사장

윤영관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이사장이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입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서울대학교에 임용되기 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3년간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또한 한국미래전략연구소를 설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고, 한반도 평화연구소의 창립 회원이자 이사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동아시아 비전그룹 II 공동의장(2011-2012)과 국회의회 외교 자문위원회 위원장(2019-2020)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국제정치경제, 한국 외교정책, 남북관계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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