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023년 상반기에 전술핵탄두 ⟪화산-31⟫과 고체연료 ICBM인 ⟪화성-18⟫을 공개했다. 연이은 신형 핵무기의 공개는 우리의 안보 불안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해 보인다. 북한은 특히 2022년 한 해 동안 전술핵 능력 강화를 홍보하면서, 반년 이상 탄도미사일 등 운반수단 능력을 집중 시위한 이후에야 신형 전술핵탄두를 공개했다. 이를 감안하면 전술핵은 아직 개발단계로, 향후 핵실험 등 검증과 양산과정을 거쳐야 완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ICBM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액체연료로 달성할 수 있는 ICBM의 성능 한계까지 접근하여 ⟪화성-17⟫을 만들었으나, 이동발사식으로는 부적절하게 큰 크기와 중량으로 TEL 운용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은 이동발사식 고체연료 ICBM의 개발을 시작했다. 그 결과 북한은 작년 말 ICBM용 고체연료 대형엔진의 시험을 공개했으며, 올해 2월 열병식에서 고체연료 ICBM용 발사차량을 공개했다. 그리고 4월에 이르러 ⟪화성-18⟫ 신형 고체연료 ICBM 시험발사를 공개했지만, 개발 성공까지는 상당한 과정이 남아있다.
북한은 최근 신형 핵무기 공개과정에서 기술의 불완전과 개발일정 지연을 노출했음에도, 여전히 핵무기 위력 과시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군사적 용도로 사용하고 있지만,
핵사용의 정치심리적 공포를 활용하여 상대방을 겁박하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1을 수행하여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한다. 인간의 감정을 조작하려는 심리전과는 달리, 인지전은 적국 지휘부와 국민의
인식과 의사결정을 조작하여 승리를 쟁취하려는 교전 형태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인지전 공격을 방어할 뿐만 아니라, 반대로
북한을 대상으로 인지전을 수행해야 한다. 한미일 3국 정보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강화하여 북핵의 실체를 파악하는 한편, 한국형 3축체계 강화와 핵민방위능력 양성, 한미 연합핵전략과 한반도 핵전력 비상전개체제를 구축하여,
핵사용 시 북한정권 소멸이라는 메시지를 확립해야 한다.
전술핵탄두 《화산-31》 공개의 의미
북한은 2023년 3월 28일 국영 매체를 통하여 ⟪화산-31⟫ 전술핵탄두를 공개했다. 보도내용에서는 핵무기연구소의 현지시찰만을 밝히면서 핵탄두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2 그러나 북한은 노동신문에 8장의 사진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전술핵탄두의 제원과 탑재수단 등 세부사항을 간접적으로 공개했다.
《화산-31》의 특징
북한이 ⟪화산-31⟫로 공개한 탄두는, 사진상의 제원표에 따르면
약 5kt의 파괴력을 가진 전술핵탄두로 볼 수 있다. 공개된 사진을 바탕으로 추정하면 직경 50cm 이하에 전체 길이 90cm 내외로 평가되고, 미사일과 어뢰 등 전술핵 탑재수단들에 장착될 수 있다. 탄두중량은 현재 500kg 내외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순항미사일과 방사포탄에 원활하게 탑재하여 발사하기 위해서는 탄두중량을 200kg 미만으로 줄여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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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화산-31》 핵탄두의 크기 추정
(출처: 북한 국영매체 / 필자 편집)
이와 함께 북한은 ⟪화산-31⟫을 탑재할 수 있는 무기체계들도 동시에 공개했다. 해당 무기체계는 8종으로, 탄도미사일 5종, 순항미사일 2종, 그리고 수중공격무인정 1종이다.
4 즉, 북한은 이렇게 다양한 탑재수단에 장착할 수 있는 표준형 핵탄두를 만들어, 마치 레고처럼 원하는 대로 끼워놓고 발사할 수 있도록 준비했음을 암시한 것이다. 각종 문건들을 종합하여 북한의 핵운용 절차를 유추해볼 때, 평시에는 핵탄두를 별도로 보관하다가 명령하달 시 반출하여 미사일 등에 탑재하고 공격한다. 따라서 이러한 모듈화와 표준화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은 ⟪화산-31⟫이라는 이름으로 31번째 설계한 핵탄두임을 암시하여, 자신들이 이미 다양한 형태의 핵탄두 형상을 상정하고 개발해왔음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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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화산-31》 핵탄두와 8종의 장착무기체계
《화산-31》의 무기체계 평가
전술핵(Tactical Nuclear Weapon)이란 ‘전시에 작전적・전술적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로, ICBM이나 SLBM과 같은 전략핵 이외의 핵무기체계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6 냉전 초기 유럽전선에서 소련과의 전력 격차를 상쇄하기 위하여, 미국은 폭발력을 줄여서
7 전장에서 실제 사용될 수 있는 핵무기로서 전술핵을 개발했고, NATO에 더하여 한반도에도 전술핵무기를 배치하여 북한의 병력 우위를 상쇄하고 전쟁을 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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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사진 분석을 통해 나타난 《화산-31》의 폭발위력
이미 지적한 것과 같이, 북한은
《화산-31》의 폭발위력을 5kt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소위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인 전술핵무기로서, 파괴력을 제한함으로써 북한군에게도 미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화산-31⟫을 무려 8종의 무기에 장착하는 표준 양산형 전술핵탄두로 소개하였다. 이는 핵탄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는 김정은의 지시
9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단일 설계의 탄두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단일화된 탄두를 채용한 것은
북한이 핵 타격작전의 교리를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한이 ⟪화산-31⟫의 탑재를 공언한 투발수단들은 전술핵무기로서 서로 다른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화성포-11라⟫ 신형전술유도무기와 600mm 초대형 방사포는 전방에 한정된 전술목표를 타격해야 하는 반면, KN-23과 KN-24, ⟪화살⟫ 계열의 순항미사일, ⟪해일-1⟫ 수중무인공격정은 후방의 전략목표가 타격대상이다. 서로 다른 성격의 표적을 공격해야 하므로, 핵심은 탄두의 파괴력을 어느 정도로 설정하느냐 이다. 그러나
북한은 표준전술핵의 파괴력을 5kt으로 설정함으로써 자가당착에 빠졌다.
통상 5kt의 파괴력이면 낙진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줄이는 가운데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사거리 200km의 ⟪화성포-11라⟫ 전술탄도미사일이나 사거리 400km 미만의 600mm 초대형 방사포에서는 파괴력 5kt이라는 설정은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공군기지나 사령부 지휘통제시설처럼 엄체화(掩體化) 표적에 대해 공격하려면 지표 폭발로 타격을 해야 한다. 그러나 5kt의 파괴력에서 견고한 강화건조물의 파괴반경은 500m 이내이며, 일반건물의 파괴범위는 800m 정도에 불과하다.
10 공항이나 항만을 완전히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1발로는 불가능하며 3~5발을 명중시켜야 완전한 무력화가 가능하다.
11 특히 ⟪해일-1⟫은 항만공격용 핵어뢰로, 5kt의 파괴력으로는 해일 효과로 항만을 무력화시키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표적이 후방 공군기지나 항만이라면 오히려 15~20kt급의 전술핵 타격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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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미국의 저위력핵무기(Low-Yield Nuclear weapon)
12를 기준으로 하여 ⟪화산-31⟫을 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자국 수뇌부를 정밀타격 할 수 있는 미국의 ‘B61 Mod 12’ 핵폭탄 같은 저위력핵무기에 대해 두려움을 느껴왔다. 반대로 북한 스스로가 유사한 핵무기로 무장한다면 충분히 대한민국과 일본 등 주변국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화산-31》 단일탄두로 전술핵전력을 구성하려는 것은 타당한 핵전력 건설의 방향이 아니다. 냉전 초부터 핵전략을 주도해온
미국이나 러시아는 다양한 파괴력의 전술핵탄두를 채용하여 표적별로 적절한 타격수단을 선택해왔다. 특히 미국이 저위력핵무기를 채택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와는 달리 정밀타격과 벙커관통능력을 첨단기술로 구현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런 능력이 없으므로 저위력의 전술핵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여태까지 북한의 무기체계 개발과정을 보면, 일정이 지연되더라도 결국에는 무기체계를 완성시켜왔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전제권력이므로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북한은 예정한 일정표에 맞춰 성과를 내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핵실험까지 감행하여 ⟪화산-31⟫의 개발 성공을 입증할 것이기에 절대로 방심해선 안된다. 결국
무기체계로서 완성되지 못한 《화산-31》을 공개한 것은 전술핵무장이 완성되었다는 내러티브(Narrative)13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화산-31⟫이 성공한다 해도 앞서 언급한 한계로 인하여, 북한은
결국 더욱 강한 20kt 파괴력의 소형 전술핵탄두를 별도로 개발하여 배치할 것이다.
고체연료 ICBM 《화성-18》의 등장
북한은 2023년 4월 13일 고체연료 방식의 ICBM인 ⟪화성-18⟫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국영매체를 통해 밝혔다. 북한은 ⟪화성-18⟫을 ‘전략무력의 전망적인 핵심주력수단’이자 ‘중대한 전쟁억제력의 사명을 수행’하는 수단으로 소개했다.
14 이날 발사에서 ⟪화성-18⟫은 3단까지 단 분리를 모두 수행하면서 1,000km를 비행했다.
15 북한은 시험발사가 성공했으며 ‘군사적 효용성’이 담보되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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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18》의 특징
⟪화성-18⟫은 고체연료 방식의 3단 추진 ICBM이다. 여기에 채용된 고체연료엔진은 2022년 12월 9일 지상분출시험을 실시했던 ‘대출력고체연료발동기’로 추정되는데,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추력은 140tf에 이른다.
16 미사일의 크기는 전장 약 22m에 직경 1.8~2.0m이며 중량은 약 55~60톤 수준으로 추정되어, ⟪화성-17⟫보다는 작고 ⟪화성-15⟫와 거의 유사하다. 형태는 2단부터 지름이 1.5~1.7m로 줄어드는 병목 형태로, 고체연료 ICBM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플랫폼은 2023년 2월 열병식에서 공개되었던 9축 18륜 차륜형 이동식 발사차량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발사차량은 발사 전날부터 평양 삼석시장 인근의 터널 속에 은폐하다가 김정은의 대동강 별장 인근까지 5km를 이동하여 미사일을 발사했다. 발사차량은 지상에 고정한 후 발사관 뚜껑을 분리한 후, 발사관을 수직으로 세워 ⟪화성-18⟫ ICBM을 발사했다.
⟪화성-18⟫은 콜드런칭(cold launching)으로 발사관 밖으로 나온 후 1단 엔진을 점화하여 상승했다. 특히 ⟪화성-18⟫은 1단 점화 후 정상궤도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미사일이 자국 상공을 통과할 것을 우려하여 홋카이도 주민을 대상으로 ‘J-얼럿(J-Alert)’ 경보를 발령했다.
17 그러나 1단 분리후 ⟪화성-18⟫은 다시 각도를 높여 고각발사로 경로를 바꾸어 1,000km를 비행하고 일본 홋카이도 앞의 EEZ 내에 낙하했다.
[표1] 북한과 주요국가의 ICBM 비교
한편 북한은 이번 ⟪화성-18⟫ 발사에서 ‘시간지연분리시동방식’을 채용하여 미사일의 최대속도를 제한하면서 성능을 검증했다고 밝혔는데, 시간지연분리시동방식이란 ‘
무추력 관성비행’(unpowered coasting)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8 무추력 관성비행은 통상 인공위성 발사 시 로켓의 추진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북한도 4월 발사로 추후 정찰위성 발사를 위한 데이터를 수집했을 것이라는 관측
19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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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18》의 무기체계 평가
⟪화성-18⟫은 북한 ICBM 개발의 종착점에 가까운 미사일이다. 북한은 그간 ICBM의 추진체로 액체연료 엔진을 사용해왔으나, 액체연료 방식은 연료와 산화제 주입에 시간이 소요되어 즉각적인 발사가 어렵고, 엔진계통에 부품이 복잡하여 안정성에 문제가 있었다. 연료/산화제 주입 시간단축은 연료탱크나 산화제탱크의 앰퓰화(ampule化)를 통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21 그러나
액체연료 방식의 고질적인 문제인 안정성은 손쉽게 해결될 수 없었으며, 이는 ICBM의 이동발사를 추구하던 북한에게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고체연료 ICBM으로의 전환을 오래전부터 시도해왔다.
22 북한은 이미 KN-23・24 등을 실전배치하면서 진작에 단거리탄도미사일의 고체연료화에 성공했기에, ICBM의 고체연료 엔진채용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특히 이번 발사에서 북한은 이전과는 다른 미사일 운용 양상을 과시했다. 과거 ⟪화성-15⟫나 ⟪화성-17⟫이 평양 순안공항의 활주로나 주변도로 등 포장로에서만 운용이 가능했던 것에 반해, ⟪화성-18⟫은 비포장로를 기동하여 인근의 개활지 공터에서 발사를 실시했다. 구형의 액체연료 미사일과는 달리
고체연료 방식인 《화성-18》은 이동시 진동에 훨씬 더 안정적이며, 실전적인 발사가 가능하다. 반면 북한은
기존의 《화성-15》나 《화성-17》 등 액체연료 방식 ICBM을 이동발사식에서 사일로(고정기지) 발사방식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대로 이번 시험발사가 과연 성공인지 여부는 검증할 필요가 있다. 이번 시험발사로 드러난 ⟪화성-18⟫의 사거리는 5,500km 내외로
23 미국 본토타격용 ICBM의 전체 사거리를 구현할 수 없었다. 요컨대 ⟪화성-18⟫은 아직 ICBM으로서의 성능을 갖추지 못했으며, 오히려 ⟪화성-15⟫나 ⟪화성-17⟫ 등 액체연료 ICBM에 비하여 부족한 성능이다. 즉,
《화성-18》의 대출력고체연료 발동기는 ICBM용으로 아직 완성되지 못했고,
북한이 예고한 기간보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더 걸려야 안정된 성능을 보여줄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북한이 이런 기술을
단거리미사일에 전용하면 우리 군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그림4] 《화성-18》 ICBM의 비행경로와 단 분리
애초에
《화성-18》은 강력한 최신 대미 핵억제수단으로,
미국 본토 타격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적인 내러티브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발사에서 1단을 정상각도로 쏘기 위하여 전체 사거리 검증을 포기하는 일은 있기 어렵다. 결국 북한이 ‘시간지연분리시동방식’으로 발사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화성-18》의 추진계통이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실을 감추기 위한 조치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의 상승단계에서 정상궤도에서 고각궤도로 전환에 성공했다는 점은 GEMS(General Energy Management System)의 채용 등 기술적 진전을 암시하며,
24 앞으로도 기술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북한은 빠른 시일 내에 ⟪화성-18⟫의 시험발사를 반복하면서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를 달성하고자 할 것이다.
핵그림자를 드리우기 위한 북한의 인지전
전술핵탄두와 고체연료 ICBM은 북한 입장에서는 전략적 불리함을 일거에 역전할 수 있는 게임체인저이다. 전술핵으로 한미연합군에 대한 불리함을 극복하고 고체연료 ICBM으로 미국에 대한 전략적 억제역량을 확보하려면, 완성된 무기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함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핵타격능력을 꾸준히 증강시켜왔으며, 그
과정을 신중하게 입증하면서 실질적인 능력이 있음을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북한은
2022년부터 실질적인 능력의 개발과 검증보다는 내러티브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북한은 각종 단거리미사일을 공개함과 동시에 공세적인 핵교리를 선포하고 핵타격훈련을 실시하면서 일련의 전술핵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막상 전술핵 능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전술핵탄두의 기폭시험을 실시하지 못했고, 핵탄두도 올해가 되어서야 겨우 공개했다. 또한 공개된 핵탄두도 앞서 언급했듯이 한반도에서의 핵운용에 적절한지 의문이다.
또한 북한은 ⟪화성-18⟫의 발사를 첫 고체연료 ICBM의 개발 성공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ICBM으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를 구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ICBM들은 정상궤도에서의 대기권 재진입과 다탄두 능력 등을 아직 갖추지 못하여 유효한 ICBM 전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 그의 딸까지 나서서 반복적으로 대대적인 내러티브 만들기에 나서는 것은 단순히 대외적으로 위력을 과시하고 국내적 지지기반을 다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의 이러한 시도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1 차원의 접근으로 볼 수 있다. 인지전이란
적국의 지도부와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인지하도록 하여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적을 패배시키는 교전활동을 의미한다. 현대전에서는 영토 점령이나 병력 섬멸 등 물리적인 교전보다는 회색지대분쟁이나 하이브리드전, 사이버전 등 비물리적・비살상 교전이 더욱 중시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은 가짜뉴스나 역정보를 통하여 정부와 국민을 이간하고 언론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등 인지영역을 교전대상으로 삼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포장하는 내러티브를 퍼트려서 상대방의 인지를 바꾸는 내러티브전(Narrative Warfare)
13도 인지전의 한 형태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성공을 목격한 북한도 바로 이러한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북한의 노림수는 결국은 핵그림자(Nuclear Shadow)25의 내러티브를 확립하여 우리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즉 북한은 핵무기에 대한 심리적 공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인지전을 펼치고 있다. 완성 여부와 무관하게 핵무기를 계속적으로 공개함으로써 핵전력이 모두 갖춰졌으며 언제든 핵타격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정착시키고자 한다. 북한이 언제든
전술핵으로 한반도 전체를, ICBM으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인식을 퍼트림으로써 주요한 의사결정권자들이 북한에 감히 대응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이다. 이러한 인지전이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의 어떠한 지도자도 핵전쟁의 두려움으로 북한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조차 없게 될 위험이 있다.
정책 제언
북한의 목표는 정권 생존이었지만, 김정은 집권기 이후 점차 대담해졌다. 작년에는 핵무력정책법을 발표하며 미국은 전략핵으로 억제하며 한국은 전술핵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핵전략을 공표했다. 그러나 전략핵과 전술핵을 동시에 갖추려면 엄청난 국가적 투자가 필요하다. 핵무기가 유일한 동력인 북한은 엄청난 경제난 속에서도 국가의 명운을 걸고 핵개발을 지속하면서, 특히 자신들의 핵개발 일정을 착실히 지켜왔다.
그간 북한은 무기체계의 개발 성공을 선제적으로 선전하고 추후에 신속히 이를 보완하는 방법을 채택해왔다. 그러나
최근 지도부의 희망과 핵 연구개발 능력과의 괴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산-31⟫ 전술핵탄두과 ⟪화성-18⟫ ICBM의 공개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5월 31일 ⟪만리경-1⟫ 정찰위성과 ⟪천리마-1⟫ 우주로켓의 발사 실패
26도 능력보다 선전에 집중하는 북한의 전략적 조급함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2023년 4월 26일
워싱턴 선언(Washington Declaration)으로 한미 간의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 NCG)이 결성되고 한반도에 전략원잠(Nuclear-Powered Ballistic Submarine, SSBN)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등
한미 간의 핵 보장(nuclear assurance)이 강화되면서 전략적 상황이 불리해지는 것도
북한이 조급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당장 능력을 보여줄 수는 없어도 핵 위협을 통하여 영향력을 확대해야만 한다. 즉
핵그림자를 최대한 드리움으로써 협상과 대결에서 모두 우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 북한이 인지전을 수행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도 일부의 진실로 포장한 거짓을 우리에게 들이밀면서 국가적 의지를 꺾으려는 인지전을 계속 수행할 것이다.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인지전 공격에 대한 방어를 수행할 뿐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북한에 대한 인지전을 수행해야만 한다. 우선 방어단계에서는 북한의 모든 행동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한계를 명확히 지적하여 적의 인지전 공격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신속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집단을 활용하여 국내외에 명확한 판단을 전달할 수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북한의 핵활동 의도와 능력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보수집역량을 더욱 높여 나가야만 한다.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정보감시정찰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며,
한미일 삼각의 대북정보공유를 단순히 공유 차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정보수집과 분석까지 실시간의 유기적 정보협력체제로 진화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전술핵을 감히 사용할 수 없도록 북한을 좌절시키는 대북 인지전 공세에 나서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한국형 3축 체계의 약점을 보완함으로써 대북억제 메시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독자적 정찰감시능력과 KAMD 강화 등으로 대응태세를 높이고 있지만, 현 정부임기 내에서 완성하기 어렵다. 오히려
핵민방위 능력을 신속히 정착시킴으로써
어떠한 핵위협에도 국민과 정부가 하나 되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국가적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북한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한미 안보동맹의 측면에서는 워싱턴 선언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실질적인 핵태세를 과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한미 NCG를 통하여
한미 연합핵전략을 세우는 한편
미국 핵무기의 한반도 비상전개 훈련을 꾸준히 실시하는 등 한반도 방어용 핵전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한미 양국의 끈끈한 핵동맹을 통하여
북핵 공격은 북한정권 소멸이라는 내러티브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러한 다각적인 노력이 성과를 거둘 때, 우리는 북한의 인지전 시도를 막고 북한 지도부를 좌절시킬 수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